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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훈의 ‘남자 옷 이야기’ ⑪

특별한 순간을 더욱 빛나게 하는 예복

  • 남훈│‘란스미어’ 브랜드매니저 alann@naver.com│

특별한 순간을 더욱 빛나게 하는 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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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복은 많은 사람이 모이는 행사에 신비한 매력을 더하고, 우리로 하여금 우아하고 근사한 중세시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잘 고른 예복은 평생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순간을 함께하는 동반자이며, 정중한 존경과 감사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특별한 순간을 더욱 빛나게 하는 예복
한국에서 예복은 명절과 같다. 1년에 두 번 정도 느리게 돌아오는 연례행사처럼, 일상에서는 줄곧 잊고 있다가 가끔 급하게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예복이란 본래 우리 인생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 날을 기념하고 사람들이 모여 함께 즐기기 위해 필요한 드레스 코드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선 오로지 결혼식에서 그것도 신랑이나 신부 같은 주인공만 입는 옷차림으로 좁혀서 이해된다. 결혼을 앞두고 신랑이 구비하는 설빔과도 같은 슈트 한 벌, 그리고 결혼식 당일에 입는 턱시도(Tuxedo)나 연미복(Swallow Tailed Coat)을 예복이라고 통칭하는 것이다.

보는 사람조차 조마조마할 만큼 급하게 속사포처럼 진행되는 한국의 결혼식 풍경처럼 예복을 고르는 일도 순식간에 처리된다. 인생의 새 출발을 하는 남성을 위해 신중하게 마련된 슈트는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며, 일생에 흔하지 않을 결혼식에서 신랑의 몸을 감싼 예복의 상징은 얼마나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기억되겠는가. 그런데도 남자를 위한 예복은 언제나 신부의 웨딩드레스보다 열 배쯤 가볍게 다루어진다. 결혼을 앞두고 장만하는 슈트나 턱시도가 신랑의 몸과 마음에 모두 어울리도록 배려하기는커녕, 평소 유니폼처럼 입던 슈트보다 좀 더 비싼 가격표가 붙었거나 혹은 언젠가 한번 꼭 사고 싶던 브랜드에 지갑을 열어버린다. 게다가 결혼식 시간은 상관하지 않고, 그저 주위에서 권하는 대로 턱시도를 빌려 입는 간편함을 택한다.(턱시도는 저녁에만 입는 이브닝 웨어다!)

특별한 순간을 더욱 빛나게 하는 예복

예복은 상대를 향한 예의이며, 자신의 문화적 수준을 드러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사실 그렇게 슈트를 구비하고 턱시도를 빌린다고 해도 결혼식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간 오피니언 리더들의 옷차림을 그 사회의 현재 수준을 보여주는 문화라고 생각하고, 옷의 사회성을 감안하면서 철학적으로 접근해왔다. 문화적으로 보면 결혼식은 신랑과 신부만을 위한 혼인 서약의 자리가 아니다.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아낌없이 축하해주는 공식적인 행사인 동시에, 가족과 친지와 친구들까지 광범위하게 모이는 축제이고, 따라서 그 성격에 맞는 옷차림과 음식과 친교가 등장한다. 이처럼 가족과 친구를 통해서 함께 나누어지고 전승되는 기억은 젊은 날의 발랄함을 넘어, 인생의 마지막까지 잊히지 않는 충실함과 깊은 추억을 담게 될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사다주는 옥스퍼드 구두는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닐 것이며, 할아버지가 아끼던 낡은 턱시도를 물려받은 새신랑의 삶은 얼마나 아름다워질 것인가. 그것이 클래식 문화의 본질이고 시대를 통해서 더욱 깊이가 생기는 사회의 특성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점심시간의 식당처럼 급하게 치러지는 결혼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 이유로 대강 마련된 예복을 대충 입고 결혼식을 치르는 신랑의 모습도 이젠 변해야 한다. 그래서 이 멋진 가을에, 비단 신랑과 신부뿐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우리 모두의 삶의 클라이맥스가 되는 결혼식과 파티에 적합한 옷차림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다.

오직 한순간,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옷



시간의 흐름에 상관없이 오래도록 유지되는 것만으로도 높은 명성을 획득하는 가치가 있다. 이를테면 삶의 전 영역에서 디지털 기술이 상용화되는 시대지만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의 클래식 시계가 많은 사람에게 필생의 소원으로 여겨지고 높은 가격에 판매되는 것이 그렇다. 결혼예물용 시계를 고를 때도 과거에는 당시의 유행이나 브랜드 네임을 우선적으로 고려했지만, 최근에는 장인정신으로 만든 오토매틱 방식의 가죽 스트랩 시계를 선호하는 추세다. 한 번뿐인 결혼을 위한 것인 만큼 좀 더 특별한 방식으로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마찬가지로 소중한 결혼식을 앞두고 신랑을 위해 마련하는 슈트라면 대중을 위한 기성복보다는 오직 나만을 위해 재단되고 만들어진 맞춤복이 더욱 적합하지 않을까. 물론 기성복은 편리하고 실용적인 옷이다. 표준적인 몸 사이즈라면 기다리는 시간이 짧은 기성복이 일상생활의 여러 경우에 적합하다.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입어야 하는 옷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부분의 라이프스타일에 두루 맞춘 기성복을 그간 충분히 경험했다면, 특별한 행사인 결혼식 때는 정말 좋은 품질을 가진 맞춤복을 입는 것이 그 의미를 배가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결혼이란 한 사람에 대한 영원한 사랑의 맹세를 포함하고 있다. 그토록 소중한 서약을 하는 자리에 흔하게 구할 수 없는 맞춤복을 입는 것이다. 맞춤복이야말로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만들어지는 귀한 옷이며, 나 아닌 다른 누구에게도 어울리지 않는 한정품(Limited Edition)이기 때문이다. 맞춤복을 고를 때는 가격표와 브랜드 레이블 외에도 살 펴볼 것이 많다. 오래도록 결혼의 기억을 담은 채 친구처럼 성숙해갈 훌륭한 소재와 핸드메이드로 꼼꼼하게 바느질한 재단의 흔적을 찾아야 한다. 품질 좋은 맞춤복은 거의 세일을 하지 않는다. 인생의 친구와도 같은 좋은 슈트에는 제값을 치러야 하는 것이니까.

존경과 감사를 표현하는 방식

글로벌 비즈니스맨이라면 사회적으로 공유되는 약속이자 문화의 일부인 드레스 코드로서의 예복에 대해서도 알아둬야 한다. 많은 기업이 나름의 복장 규정을 갖고 있다. 어떤 기업은 슈트를 중심으로 하는 정장을 선호하고, 또 어떤 기업은 비즈니스 캐주얼이라는 유연한 유럽식 콘셉트를 선택하며, 이런 가이드라인 없이 아예 자율복장을 허용하는 기업도 있다. 이는 최고 경영자가 어떤 옷을 선호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기업이 수행하는 비즈니스에 가장 적절한 드레스 코드가 무엇이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것이 바로 드레스 코드다.

드레스 코드는 따지고 보면 어려운 게 아니다. 결혼식에 초대받은 손님이 무조건 슈트를 입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유분방한 청바지를 입고 가지는 않는 법이다. 가벼운 조깅을 하러 가는 길에 섬세한 캐시미어 스웨터를 입지 않으며, 자율 복장이 보편적인 기업이라면 굳이 더블 브레스티드 슈트를 독야청청하게 입을 까닭이 없다. 이처럼 드레스 코드란 하고 싶지 않은 규정을 억지로 지키는 게 아니라, 마땅히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가 편해지는 자연스러움에 기반을 둔 것이다.

따라서 비즈니스 캐주얼이라고 옷차림에 유연성을 부여한 회사에서는 슈트와 재킷 차림을 비즈니스 파트너나 상황에 맞게 스스로 선택하면 된다. 공식적인 자리에 슈트나 재킷과 같은 정장을 입어서 예의를 표현하는 건 살아가면서 고마운 사람에 대한 감사 인사만큼이나 긴요한 일이므로, 우리는 서양식 파티에 필요한 드레스 코드를 익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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