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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괴짜들 ⑦

‘블루 마스터’ 이창후

“태권도 잘 하는 게 ‘유식함’이라는 걸 보여주겠다”

  • 송화선│동아일보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블루 마스터’ 이창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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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마스터’ 이창후

이창후씨가 하늘 높이 뻗는 발차기 동작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실전 상황에서는 자세를 낮춰 엉거주춤 차야 한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그는 끝내 무술 시범에서 볼 수 있는 호쾌한 기술을 보여주지 않았다.

태권도 4단 이상이면 지도자가 될 수 있다. 그 역시 국내외에 많은 제자를 둔 사범이며, 한동안 경원대 겸임교수로 태권도학과 학생들을 지도하기까지 했다. 이게 그가 배우고 가르치는 ‘진짜 태권도’다.

태권도인의 자부심

꼭 필요한 동작 이외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제자리에 둔다. 그리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다. 즉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

이창후 저 ‘태권도 삼재유강’ 중에서



이씨가 태권도를 이용해 세상과 또 다른 ‘게임’을 하고 있다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세상에 ‘진짜 태권도’를 알리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20여 년째 수련하고 있을 뿐 아니라 관련 책과 논문도 꾸준히 발표중이다. 서울대를 졸업한 철학박사가 태권도 원형 찾기에 ‘다걸기’를 하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것도 때리고 맞고 뒹굴며 온몸으로 태권도를 익힌 뒤 철학·역사까지 섭렵해 새로운 이론적 기틀을 만들어낸다면? 그는 이 게임에 뛰어들었고, 세상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처음 태권도를 시작할 때부터 ‘문무겸비’를 목표로 삼았다. 여러 격투기 가운데 태권도를 선택한 건 아직 이론적 기반이 완성되지 않아 철학자가 할 일이 많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한국 태권도 철학을 집대성하자’는 꿈을 이룰 기회는 생각보다 쉽게 찾아왔다.

“대학교 2학년 때 ‘내가 주먹을 쥐는 것은’이라는 시를 써서 태권도부 부지에 실었는데, 그걸 국기원 고위 인사가 보고 연락을 해왔어요. 태권도 철학을 정리하는 이론적인 작업을 할 사람이 필요한데 해줄 수 있겠느냐고요. 세계에 소개할 ‘태권도 경전’을 만들어보라는 얘기였죠.”

관련 분야를 공부하고 이광희 사범의 조언을 받아 이듬해 원고를 완성했는데, 아는 태권도계 선배들이 송고를 말렸다. 그의 이름은 빠지고, 처음 원고를 부탁한 관계자의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러고 보니 은밀하게 부탁해온 과정도 마음에 걸려 그는 이 책을 일반 출판사에서 독자적으로 출간하기로 했다. 제목은 ‘태권도의 철학적 원리’로 정했다. 이후 이씨는 ‘태권도 심경’ ‘태권도 삼재유강’ ‘태권도 현대사와 새로운 논쟁들’ 등 태권도 관련 책을 잇달아 펴내고 있다. 주된 내용은 태권도의 실전성을 알리는 것, 그리고 우리 민족 전래의 고유 무술이라는 것을 논증하는 것이다. ‘태권도는 실전성이 없다’, ‘태권도는 일본 가라테를 모방한 것이다’ 라는 반박이 없지 않지만, 이씨는 학술대회와 사이버 공간에서 열리는 논쟁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이런 주장을 ‘격파하고’ 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이런 활동을 통해 태권도의 이론적 지평을 넓혀가는 것. 그래서 태권도가 몸뿐 아니라 머리도 사용해야 하는 분야가 되는 것이다. 그는 “태권도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유식하다고 생각해야 태권도가 발전한다”고 했다.

“태권도학과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스스로 무식하다고 생각하냐 유식하다고 생각하냐. 질문하곤 합니다. 그러면 하나같이 자기들이 무식하다고 답해요. 제가 답답한 건 그런 부분입니다. 태권도 하는 사람이 태권도에 대해 아는 건 왜 지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거지요. 일본 무술이 세계적으로 각광받게 된 건 그들이 ‘사무라이 전통’을 세우고 무술 하는 것, 무술 속의 철학을 연구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태권도를 몸으로 할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정신적 뿌리를 연구해야 합니다. 제가 ‘태권도 잘 하는 사람은 유식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대학원에서 서양 철학을 전공하고 논리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태권도에 동양 철학을 접목해 새로운 해석을 풀어낸다. 하늘, 땅, 사람을 뜻하는 ‘삼재’와 겨루기 원리인 거리, 기세, 균형을 관련시키기도 한다. 22년째 파란 옷을 입어온 뚝심으로 태권도의 본질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중이다.

자세를 낮추는 것은 겸허이다. 이 겸허함 속에서 몸의 삼재를 제 나름의 자리에 둔다. 그러면 숙이지 않게 된다. 겸허 속에서도 불필요하게 숙이지 않을 수 있다면 자존심을 지키며 예절과 처세의 모두를 한꺼번에 이룰 수 있다. …하지만 하단전을 낮추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마찬가지로 겸허 속에서 자유롭게 처신한다는 것은 또한 당연히 힘들지 않겠는가.

이창후 저, 태권도 삼재유강’ 중에서

신동아 2010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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