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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미디어시대의 클래식 캐릭터 ⑧

그들이고 싶었던 나의 몸부림

피노키오와 미운 오리새끼

  • 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그들이고 싶었던 나의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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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고 싶었던 나의 몸부림

인형극 ‘미운 오리새끼’의 한 장면. 이 동화는 ‘개천에서 난 용’이었던 저자 안데르센의 자전적 이야기로 해석된다.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새끼’(1843)와 콜로디의 ‘피노키오’(1883)는 100년 넘게 전세계 어린이들에게 가장 널리 읽힌 동화에 속한다. 이 두 동화는 모두 ‘교육의 중요성’을 증명하는 전형적인 동화 문법을 따르고 있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문제적 텍스트이기도 하다. 나 또한 어린 시절 설움을 딛고 한 마리 우아한 백조로 날아오르는 미운 오리새끼 이야기에서 감동을 받았고, 천신만고 끝에 꼭두각시인형에서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피노키오를 보며 박수를 쳤다.

어린이의 불안과 조급증

하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생각해보니 박수칠 일만은 아니다. 다른 오리들처럼, 다른 인간들처럼 만드는 것이 교육의 목적일까? 다른 인간과 똑같지 않더라도, 오리와 똑같지 않더라도, 굳이 백조떼를 찾지 않더라도, 그저 미운 오리새끼나 나무인형인 채로, 미숙하고 부족하지만 여전히 ‘나다움’을 잃지 않은 채로 어른이 될 수는 없을까?

‘미운 오리새끼’와 ‘피노키오’는 어린이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매우 효과적으로 묘사한다. ‘미운 오리새끼’는 세상은 ‘거대한 그들’과 ‘나약한 나’로 나뉘어 있는 것처럼 느끼는 어린이들의 전형적인 공포를, ‘피노키오’는 빨리 어른이 되어 부모님을 만족시키고 싶어하는 어린이의 조바심과 ‘다른 아이들’처럼 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생생하게 형상화한다. 특히 아버지 제페토가 외투를 팔아 자신의 학비를 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피노키오가 빨리 돈을 벌어 아버지를 호강시켜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목은 언제 읽어도 뭉클하다. 저마다 나는 왜 빨리 자라지 않는지, 어른이 되는 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고민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피노키오의 조급증은 성장 속도에 대한 어린이의 불안을 닮았다. 하지만 어른이 되기 위한 매뉴얼을 되도록 빨리 마스터하는 것이 정말 옳은 것일까?

피노키오의 교육자는 단지 아버지 제페토와 학교 선생님이 아니라 피노키오가 가출해서 길 위에서 만난 모든 존재다. 피노키오는 정해진 교육의 한 지점으로 달려가기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와중에, 그리고 언뜻 잘못돼 보이는 교육 속에서도 뭔가 배워간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캐릭터다. 피노키오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해 모범생이 되려고 무리 한 탓에 공부와 학교생활에 지쳐 탈선해버리고 만다. 피노키오의 진정한 변화는 모범생 만들기 프로젝트가 아니라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는 태도에서 비롯됐다.



피노키오는 유혹을 참지 못하고 교과서를 팔아 꼭두각시 인형극을 보러 갔다가 허풍선이에게 잡히고, 양고기구이 장작감으로 불에 타버릴 위기에 처한다. 피노키오는 울부짖고 애원하여 간신히 살아나지만 자기 대신 다른 꼭두각시를 장작으로 쓴다는 말을 듣고 진심을 다해 선처를 부탁한다. 나무로 만들어진 형제나 다름없는 꼭두각시가 불타버리도록 내버려둘 수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도 선생님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피노키오는 같은 나무로 만들어진 꼭두각시의 고통을 이해했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혹독하게 앓는 과정에서 피노키오는 교과서에 배우기 힘든 훌륭한 가르침을 얻었다.

그렇다면 제 임무가 무엇인지 알겠습니다. 자, 호위병님들! 나를 묶어 저 불속에 던져주세요! 내 소중한 친구 어릿광대가 나 때문에 타죽는 건 옳지 않아요. 절대 안돼요!

- ‘피노키오’ 중에서

한편 미운 오리새끼는 왕따의 고통을 견디는 방식으로 극기(克己)를 택한다. 과연 옳은 방법일까? 미운 오리새끼인 채로 그들의 일원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백조임이 밝혀질 때까지 기다려야만 할까? 조용히, 티 나지 않게,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그런데도 백조임이 증명되지 않는다면? 평생 백조를 만날 기회조차 생기지 않는다면? 미운 오리새끼는 이런 질문에 답을 주지 못한다. 그런 점에선 피노키오가 훨씬 매력적인 대답을 제시하는 것 같다.

유혹에 약해 더 매력적인

어린 시절 나는 이런 고민을 많이 했다. ‘나는 실수도 많이 하고, 거짓말도 많이 했는데, 내가 정말 정상적인 어른이 될 수 있을까’하는 고민 말이다. 피노키오가 거짓말을 할 때마다 코가 쭉쭉 늘어나는 모습은 어린 마음에 엄청나게 충격적인 시각적 이미지로 각인됐다. 피노키오처럼 코가 늘어나진 않았지만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푸른 멍이 점점 커지는 것만 같았다. 피노키오는 내게 용기를 주는 존재이기도 했다. 피노키오는 미운 오리새끼처럼 무작정 참지만 않고 실수도 하고 일탈도 하고 돌이킬 수 없는 실패도 하면서 아름다운 영혼으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나는 ‘극기의 달인’ 미운 오리새끼보다 ‘유혹에 약한’ 피노키오가 좋다. 피노키오가 요정과의 약속을 어기고 로메오의 유혹에 꼴딱 넘어가는 장면은 언제 보아도 귀엽고 흥미진진하다. 이것이야말로 ‘어린이의 유토피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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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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