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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 절집 숲에서 놀다 ③

통도사

들머리 솔숲, 한국의 상징적 풍광

  • 전영우│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통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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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인구밀집 지역에 형성된 소나무 숲은 농경사회에서 인간의 지속적 간섭으로 만들어진 ‘인위적 극상(極相) 상태’의 숲이라 할 수 있다. 극상이란 천이(遷移) 단계의 마지막에 나타나는 안정된 숲을 뜻한다. 온대지방의 경우 소나무처럼 햇볕을 좋아하는 양수(陽樹)로만 이뤄진 숲을 그대로 두면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그늘에 견디는 힘이 있는 신갈나무나 서어나무 같은 중용수(弱陰樹) 숲으로 변한다. 그 후 그늘에 견디는 힘이 아주 강한 까치박달나무와 층층나무 같은 음수(陰樹)들이 자리 잡는다. 이처럼 음수들이 제자리를 잡아 숲의 구조에 더는 변화가 생기지 않고 안정된 상태를 극상 상태라고 한다.

소나무 숲을 ‘인위적 극상’이라 일컫는 이유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수종이 자연스럽게 바뀌어 이뤄진 자연적 극상림과 구분하기 위해서다. 소나무 숲은 농경을 위한 인간의 지속적 간섭으로 인해 오랜 세월 극상 상태가 유지됐다. 농경문화에 의해 1000년 이상 유지됐기에 일각에서는 소나무 숲을 이 땅의 풍토가 만들어낸 고유의 문화경관이라고 해석한다.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배 교수가 소나무 숲을 한국의 대표적 풍경이라고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최근 전통문화경관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고 있지만, 우리 사회가 지난 50여 년 사이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급격히 전환됨에 따라 농경문화가 일구어낸 독특한 전통경관이 사라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국성을 상징하는 소나무 숲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단적인 사례로, 40년 전 전체 산림 면적의 60%를 차지하던 소나무 숲이 오늘날 25% 미만으로 줄어들었고, 소나무 단순림(單純林)의 구조도 급격히 바뀌고 있다. 농촌 인구 감소와 도시화로 인가 주변 소나무 숲은 자연의 천이에 따라 혼효림(混淆林)으로 급속하게 바뀌었다. 그나마 사찰 중 몇몇 곳이 소나무 숲의 옛 모습을 비교적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 전형적인 솔숲을 통도사에서 찾을 수 있다.

통도사 무풍한송(舞風寒松)

통도사는 신라 선덕여왕 재위시 자장(慈藏)율사가 당나라에서 불법을 배우고 돌아와 646년에 창건한 가람이다. 자장율사는 귀국하면서 가져온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금강계단에 안치하고, 승려의 규범과 법식(法式)을 가르치는 한편 불법을 널리 전하면서 통도사를 계율의 근본 도량으로 만들었다. 통도사란 절 이름은 “영취산의 기운(氣運)이 서역국 오인도(西域國五印度)의 땅과 통(通)한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세워진 대광명전(국보 290호)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지만 17세기 전반 두 번에 걸쳐 영산전(靈山殿), 극락보전(極樂寶殿) 등의 법당과 보광전(普光殿), 감로당(甘露堂), 비각(碑閣), 천왕문(天王門), 불이문(不二門), 일주문(一柱門), 범종각(梵鐘閣) 등이 중수됐다. 국보로 지정된 대광명전 외에 은입사동제향로(銀入絲銅製香爐·보물 334호), 봉발탑(奉鉢塔·보물 471호)이 있고, 성보박물관에는 병풍, 경책(經冊), 불구(佛具) 및 고려대장경(해인사 영인본) 등 다양한 사보(寺寶)가 소장되어 있다.

통도사

남쪽 산록의 솔숲 속에 있는 통도사 5층탑.

통도사 산문(山門)을 들어서면 길은 통도천(通度川)을 가운데 두고 왼편의 보행로와 오른편의 자동차 도로로 나뉜다. 무풍교 건너편으로 난 길은 자동차 왕래가 빈번해진 1990년에 만들어진 자동차 도로다. 무풍교 입구에서 청류교에 이르는 솔숲 사이로 난 1km 정도의 길은 보행로이며, 무풍한송(舞風寒松)은 이 들머리 솔숲을 일컫는 별칭이다. 이 들머리 솔숲은 그 별칭처럼 서늘한 기운의 소나무들이 울렁이는 바람에 따라 춤추는 형상으로 아름답게 늘어서 있다. 통도천을 따라 청류교를 만나는 지점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이 같은 들머리 솔숲은 이제 통도사를 비롯해 몇 안 되는 절집에서만 겨우 만나볼 수 있다.

들머리 숲길이 1km이니 그리 먼 거리라 할 수 없다. 산책하듯 걸어도 반시간이면 족하다. 서두를 이유가 없다. 10km 길이라도 되는 양 천천히 음미하듯 걷는 것이 이 솔숲의 진수를 만끽하는 방법이다. 산업문명이 요구하는 속도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농경문화를 꽃 피운 조상들의 느린 속도에 맞춰 걸을 때 비로소 들머리 솔숲의 아름다움을 가슴에 제대로 담을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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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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