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번지(樊遲)가 농사일 배우기를 청하였다.
번지가 또 ‘밭농사 배우기’를 청하였다.
공자, 말했다. “내가 노숙한 농사꾼은 아니지 않으냐!”
번지가 나가자 공자가 말했다. “소인배다. 저 녀석은! 윗사람이 예(禮)를 좋아하면 백성이 공경하지 않을 리 없고, 윗사람이 의(義)를 좋아함에 백성이 복종하지 않을 리 없으며, 윗사람이 믿음(信)을 좋아하는데 백성이 마음 주지 않을 리 없다. 대저 이렇게만 하면, 온 사방에서 농사꾼들이 아이는 들쳐 업고 세간은 짊어지고 몰려들 터인데, 어디 농사지을 겨를이 있다는 말이냐.”(논어, 13:4)
농사일 배우기를 요구한 번지의 질문은 실은 오늘날 우리가 가진 의문점을 대변한다. 당대의 ‘실학자’라고나 할까? 그의 질문에는 공자의 가르침이, ‘말씀인즉슨 지당하지만 먹고사는 기술 곧 생산 활동과는 직접 관련이 없지 않으냐’라는 의심이 깔려있다. 공자의 가르침이 실용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번지의 질문은 우리가 지난 백년간 공자에게 던진 힐문과 전혀 다르지 않다. 공리공담, 탁상공론, 허학(虛學)과 같은 말들이 유교를 비판하는 표현들이었다. 공자 당대에, 더욱이 그의 제자가 이런 식의 질문을 했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이에 대해 공자는 자기 학문이 농사기술이 발휘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근본적 기술이라는 점, 컴퓨터 용어를 빌리자면 운영체계(OS)와 같은 것이라고 알려준다. 또 그 운영체계의 요소들을 예법과 정의 그리고 신뢰라고 제시하고 있다.
이 대화에서 주목할 점은 시대의 핵심과제를 ‘시스템’의 문제로 인식하는 공자의 시각이다. 공자가 실용기술을 요구하는 번지에 대해 소인배라고 짜증을 낸 것은, 춘추시대의 본질적 문제는 생산을 위한 작업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발휘할 수 있는 정치사회적 토대, 즉 시스템을 마련해주는 데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농사기술을 천하게 여겨서가 아니라, 시대의 본질적 문제점이 경영체계의 미비에 있고 따라서 혁신의 과제는 새로운 시스템의 구축에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대화는 공자가 시스템의 중요성과 경영의 특수성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생활 속의 달인’(SBS방송)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보듯, 전문적 기예를 갖춘 사람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존재한다. 문제는 이들이 제 기예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주는 일이다. 공자는 이 점을 당대 지식인의 가장 큰 책무로 파악했던 것이다. 공자는 춘추시대의 대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용어로 하자면 ‘사회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판단했던 사상가다. 단순히 물질적 기술(physical technology)의 차원이 아닌 사회적 기술(social technology)에 대한 전면적 혁신이 요구되는 때라고 보았다.
이런 시스템이 마련되기만 하면 ‘날고 기는’ 농사꾼들이 “온 사방에서 아이는 들쳐 업고 세간은 짊어지고 몰려들 터”이므로, “농사지을 겨를조차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공자는 피터 드러커가 규정한 경영의 정의, 곧 “경영이란 다양한 지식과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의 조직에 통합하는 인간의 모든 노력”(이재규, ‘피터 드러커에게 경영을 묻다’, 103쪽)이라는 점을 최초로 인식하고 실천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논어에는 인(仁)과 덕(德) 같은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개념들과 함께 실제 현장의 구체적 인간관계와 조직경영의 사례들이 다양한 금언의 형태로 담겨있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이참에 유명한 스티븐 코비의 경영개발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든지 ‘성공하는 사람들의 8번째 습관’과 같은 식으로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경영 원칙을 논어에서 뽑아보면 어떨까. 공자에게 드리워진 엄격하고 엄숙한 느낌을 불식하면서 또 논어에 대해서도 좀 더 친근하고 가까운 ‘경영의 지혜서’로 다가갈 수 있도록 말이다. 이런 생각이 터무니없는 것이 아닌 까닭은, 논어에서 다음 대목을 접할 때면 꼭 어느 회사의 사무실 안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곤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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