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말씀하시다. “군자의 특징은 모시기는 쉽지만, 그의 마음에 들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마음에 들기 어려운 까닭은 업무의 성취가 마땅하지 않으면 만족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모시기가 쉬운 까닭은 아랫사람들을 부릴 적에 그 각각의 기량에 맞춰서 업무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반면 소인의 특징은 모시기는 어려운데, 그의 마음에 들기는 쉽다는 점이다. 업무 이외의 일로써도 그를 기쁘게 할 수 있지만, 반면 아랫사람에게 다 갖추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논어, 13:25)
이런 대목은 2500년 전의 말이라기에는 그 숨결이 오늘날에도 너무나 생생하다. 마치 서울 강남의 어느 오피스 빌딩에서 일어난 일을 사실적으로 서술한 것으로 여겨질 정도다. 이 장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으리라.
제대로 된 상사(上司)는 모시기는 쉬워도 그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기는 어렵다. 모시기가 쉬운 까닭은 업무 밖의 사사로운 관계에서는 대범하고 또 부담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업무에 관련해서는 제대로 일처리를 하지 않는 한, 그는 만족하지 않는다. 사적인 관계에서는 대범하면서도 공적인 업무에서는 엄격하다는 것. 한편 아랫사람에게 일을 맡길 때는 각각의 장단점과 기량의 높낮이를 감안하여 분담시킨다. 그러므로 담당자는 맡은 일을 해내기가 쉽다. 이것은 리더가 업무 전반을 파악하고 있고 또 부하들의 능력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사는 신뢰할 수 있다. 그리고 모시기가 쉽기 때문에, 조직의 분위기는 부드럽고 화목할 가능성이 높다.
경영이론서, 논어
반면 이런 상사도 있다. 모시기는 까다로워도 그의 마음에 들기는 쉬운 사람. 이런 리더는 자신이 상사라는 자의식이 강하다. 그래선지 걸핏하면 사소한 트집을 잡는다. 그만큼 모시기가 어렵다. 반면 그를 만족시키기는 어렵지 않다. 과장된 복종의 몸짓과 업무 외의 사사로운 ‘기름치기’를 즐기기 때문이다. 반면 사람을 부릴 때는 담당자가 팔방미인이기를 요구한다. 매양 “그것도 못하냐!”는 식이다. 일이 잘못되면 그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돌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것은 리더가 업무 전반을 파악하지 못하고 직원 각각의 특성과 기량을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이런 리더는 좋은 성과는 본인 덕택이요, 실패한 것은 아랫사람 탓으로 돌리기 십상이다. 이런 직장의 분위기는 위축되어 있고, 정상적인 의사결정과정보다는 비선 조직이 힘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미국 광고업계의 유명한 경영자이자 광고기획자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오길비(David Ogilvy·1911~99)의 다음 비평은 마치 위의 두 직장상사에 대한 총평처럼 느껴진다.
“나는 스스로를 성공으로 이끌 만큼 훌륭한 부하를 고용할 줄 아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고용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깁니다.”(오길비, ‘나는 광고로 세상을 움직였다’, 57쪽)
동서고금이 어쩌면 이렇게 다르지 않을까 싶다. 이런 식으로 논어를 읽고 해석하다보면 2500년 전부터 오늘까지 인간은 거의, 아니 전혀 진보하지 않았다. 케케묵은 책인 논어가 아직도 고전으로 살아남은 비극적(?) 원인도 여기서 비롯하는 것이리라.
자, 그렇다면 공자가 권하는 경영 원칙의 첫 번째는 “모두 갖춘 사람을 바라지 말라”는 대목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공자가 평생을 두고 존경했던 노나라 건국자, 주공(周公)은 그의 아들에게 국가경영의 요체를 전수하는 자리에서 “오래된 동지를 큰 잘못 없는데 자르지 말고,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갖추기를 요구하지 말라”(논어, 18:10)는 가르침을 내린 바 있었다. 누군들 입속의 혀처럼, 혹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는 완벽한 부하를 바라지 않으랴. 허나 나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님을 스스로 안다면, 그런 완벽한 사람을 딴 데서 구해서 될 일이 아니다. 자칫하면 위의 소인배 상사와 같은 꼴이 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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