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술
이때 따져볼 점이 있다. 주전자에 물이 제대로 차 있는지 여부다. 만약 주전자에 적정량의 물이 차있지 않다면 화력을 1단에서 2단으로 올렸을 때 물이 끓기는커녕 다 증발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이런 상태를 물이 부족하다 하여 음허(陰虛)라고 한다. 예상외로 화력이 3단이면 물이 너무 빨리 끓어 넘치거나 주전자를 태울 수 있다. 이런 상태를 양기가 넘친다 하여 양성(陽盛)하다고 한다. 뜸 치료를 할 때 환자의 상태가 중요한 건 이 때문이다.
구술로 전해 내려오는 화타의 의술을 채록한 고대의 ‘중장경’부터 현대의 한의학 교과서에 이르기까지 한목소리로 “음기가 많거나(물이 적거나), 양기가 많으면(불기운이 많으면) 뜸을 뜨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사정 탓이다. 실제로 뜸을 잘못 뜨면 환자에게 없던 병이 생기기도 한다.
뜸의 좋은 점과 나쁜 점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 지적했지만, 필자가 최근 왕진했던 한 분의 이야기가 교훈적이다. Y대 학장을 역임한 분이 암에 걸려 목숨이 열흘밖에 남지 않았다는 선고를 받았다. 마지막 치료라 생각하고 쑥뜸치료를 받았는데, 상당히 호전 기미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미심쩍어 필자를 불러 확인하고 싶어했다. 가서 보니 상태가 듣던 것과 달리 좋아 보였다. 그런데 얼굴이 붉고 가슴이 답답하다며 상기 증상을 호소하였다. 뜸의 열기가 내부로 들어간 것이라 진단하고 횟수를 줄이고 기(氣)를 아래로 내리는 혈을 권고했다. 그런데 사흘이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중풍이 왔다는 것이다. 너무나 빠른 안타까운 결과였다.
큰 불은 오히려 기를 소멸시킨다
뜸은 질병 예방에 좋다. 그러나 그 혈자리가 한두 곳에 불과하다. 다산 정약용은 늘 병으로 고통을 받았다. 실증 한의학의 대가인 다산의 건강뜸은 신수혈에 뜸을 지지는 방법이다. 신수는 엉덩이뼈 뒤쪽, 등 뒤 푹 파인 곳이다. 신수혈 뜸은 하초가 튼튼하지 못하고 정력이 약한 사람에게 가장 훌륭한 건강법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뜸의 적정성을 놓고 이렇게 정의했다. 小火生氣요 壯火食氣라. 작은 불은 생기를 만들지만 큰 불은 오히려 기를 소멸시킨다는 것이다.
|
여러 곳에 뜸을 뜨고 건강을 지키는 방식은 문헌상 일본이 유일하다. 일본의 ‘상한의문답’을 보면, 몸의 정해진 자리 네 곳에 꾸준히 뜸을 떠서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이 전하는 모양이다. 일본에서도 이 방법을 놓고 논란이 많았던지, 조선의 사신으로 일본을 찾은 조숭수에게 그 타당성을 물었다. 조숭수의 대답 역시 나의 대답과 같다. “음기가 많거나 양기가 넘치는 사람에게는 뜸 치료를 해서는 안 된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끊임없이 가장 적합한 대응을 하는 것이야말로 의사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