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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에 숨어 있는 인재(人災)들

제1장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상상하라

  • 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에 숨어 있는 인재(人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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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별로 주파수가 다른 일본의 전기체계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에 숨어 있는 인재(人災)들
원자력발전소가 끼치는 피해 가운데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전자파다. 원자력발전소는 대용량의 전기를 생산하기에 발생하는 전자파도 강한 편이다. 원자력발전소가 일으키는 또 하나의 문제는 복수를 하고 나온 바닷물인 온배수(溫排水)다. 증기가 흐르는 관 밖을 흐르게 된 바닷물은 관 안의 증기를 식혀 물로 돌려주고 자신은 3~6℃ 정도 온도가 올라간다. 배수는 들어갔다 나오는 물인데, 복수기에 들어갔다 나오는 바닷물은 따뜻하기 때문에 ‘온배수’라고 한다.

원전 1기당 초당 270t의 온배수가 쏟아지면 원전 주변 바닷물의 온도가 올라간다. 따라서 그 바다 환경에 맞게 설정한 양식업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원전회사 측은 온배수가 영향을 끼치는 범위를 조사해 그 안에서 양식과 어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배상을 한다. 전자파 피해와 온배수 피해 등을 줄이려면 사람이 덜 사는 곳에 원전을 지어야 한다.

간토 지방은 일본의 중심지이기에 대부분의 지역이 도시화돼 있다. 를 보면 다른 지방은 바다를 면한 영역이 많은데, 간토 지방만은 북쪽으로는 바다를 접하지 못해 임해 지역이 좁다. 둥그런 형태로 태평양만 좁게 마주하고 있는데, 태평양 지역으로는 대도시가 많다.

도호쿠 지역은 한반도의 함경도에 비유할 수 있다. 인구도 적다. 따라서 도쿄전력은 돈을 지불하고 도호쿠 지방에 모든 원자력발전소를 짓게 되었다. 후쿠시마 발전소 사고가 나기 전까지 도쿄전력은 3개의 원자력단지를 운영했는데, 2개 단지는 도호쿠 지방에 세우고, 1개 단지는 추부(中部) 지방에 세웠다.



가장 먼저 세운 것은 도호쿠 지방인 후쿠시마(福島)현 후쿠시마 제1발전소였다. 이어 후쿠시마 제1발전소 남쪽에 후쿠시마 제2발전소를 짓고, 추부(中部)지방인 니가타(新瀉)현에 가시와자키 가리와(柏崎刈羽) 발전소를 지어 운영했다.

가시와자키 가리와 발전소는 도쿄전력이 운영한 최대의 원전 단지인데, 이 발전소는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와 연계되므로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가시와자키 가리와 발전소와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 간의 연계 관계는 뒤에서 상술하기로 한다.

일본은 지방별로 서로 다른 주파수의 전기를 생산하고 사용한다. 도쿄 이북에 있는 3개 전력회사는 50Hz(헤르츠)의 전기를 생산해 사용하고, 그 이남에 있는 7개 전력회사(오키나와전력 포함)은 60Hz의 전기를 생산하고 사용한다. 는 주파수로 나눠본 일본의 전력회사 일람이고, 은 일본의 주파수 지도다. 을 보면 일본은 본토 정중앙을 경계로 주파수가 확연히 나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50Hz든 60Hz든 대부분의 나라는 한 주파수로 통일돼 있다. 그러나 일본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수리남 등과 함께 50Hz와 60Hz의 전기를 혼용하는 흔치 않은 나라다. 한 나라에 2개의 전기 주파수가 존재하는 것은 문제다. 50Hz 지역에 살다가 60Hz 지역으로 이사 가면 전기제품을 사용하는 데 애로가 생긴다. 물론 변환기를 통해 주파수를 바꿔줄 수 있지만, 변환기를 만드는 것 자체가 비용 낭비다.

세키가하라 전투를 계기로 갈라선 간토와 간사이

일본 전력계는 주파수가 나눠져 있는 것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로 보고 있다. 일본이 두 개의 주파수를 사용하게 된 것은 간토와 간사이 사이의 지독한 라이벌 의식 때문이다. 간토와 간사이 간의 적대감은 한국의 영·호남 갈등 이상이다. 역사적인 갈등을 풀지 못했기에 일본은 선진국답지 않게 2개의 주파수를 혼용하는 나라가 되었고, 그 결과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가 났을 때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사고가 확대되는 과정에는 그 지역 사람들이 만들어온 역사와 문화가 큰 영향을 끼치므로 이 부분도 상세히 살펴봐야 한다. 조선 초기 일본은 다이묘(大名) 등으로 불리는 수십 명의 성주가 패권을 잡기 위해 싸우는 전국(戰國)시대였다. 우리의 삼국시대는 신라 백제 고구려 3국이 쟁패했다. 가야를 보탠다 해도 4국이 다툰 시절이었다. 일본의 전국시대에는 ‘구니(國)’로 불린 수많은 나라가 갈등하며 싸웠다.

이 혼란을 제압해 패권을 잡은 이가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을 도탄에 빠지게 한 ‘우리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다. 도요토미의 시절은 그의 사망으로 오래가지 못했다. 도요토미가 죽자 조선을 침략한 왜군이 철수해 임진왜란이 막을 내렸다. 그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을 따르는 세력과 이에 반기를 든 세력이 대립했다.

반기를 든 세력의 대표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였다. 두 세력은 한판 싸움으로 승부를 갈랐는데, 그 결정전(決定戰)이 일본 역사에서 유명한 ‘세키가하라(關ケ原)전투’다. 이 전투는 1600년 10월 21일 일어났다.

일본 지도를 보면 본토 중앙에 ‘비와(琵琶)호’라는 아주 큰 호수가 있다. 그리고 도쿄와 오사카 사이에 우리의 울산광역시에 비교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공업도시 나고야(名古屋)가 있다. 세키가하라는 비와호와 나고야 사이에 있는 전략 요충지다. 기후(岐阜)현 남서쪽 끝인 후와(不破)군에 있는 이부키(伊吹)산지와 스즈카(鈴鹿)산맥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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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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