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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독배를 마실 수는 없다!

제2장 연이은 수소폭발 세계를 긴장시키다

  • 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혼자서 독배를 마실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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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는 상명하복을 중시한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에 절대적으로 순종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독재를 하기 쉽다. 그런데도 일본 사회가 독재로 흐르지 않는 것은 많은 매뉴얼이 있기 때문이다(사실 일본 조직에는 상급자가 마음대로 하는 특성이 많이 발견된다).

상급자일지라도 매뉴얼에서 벗어난 것은 지시하기 어렵다. 매뉴얼대로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항명을 한 하급자에게는 절대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일본이다.

문제는 매뉴얼이 없는 사태가 벌어졌을 때다. 그때는 누구도 소신 있게 행동하지 못한다. 일본에서 공부한 석현수 무대감독은 한국인과 일본인 기질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일본인들은 사전에 약속되지 않은 일은 하지 못한다. 어릴 때부터 자기가 맡은 일만 성실히 하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공연 중 한 배우가 대사를 잊어버리면 상대 배우가 애드리브로 메워줘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가 하기로 한 대사만 한다. 즉흥성이 없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즉흥성을 발휘하면 오히려 문제의 배우가 된다. ‘융통성(ゆとり, 裕り·유도리)’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은 반대다. 한국인들은 즉흥성이 뛰어나다. 일본의 회사원은 부장이나 사장이 있건 없건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한다. 사무실에 뱀이 들어온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이렇다. 일본인들은 바로 대응하지 않고 사장이나 부장에게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고, 지시가 내려진 뒤에 행동한다. 부장이나 사장이 없으면 올 때까지 마냥 기다린다. 반면 한국인들은 먼저 뱀을 잡고 본다.



응급 상황에는 즉흥성이 강한 한국인들이 잘 대처한다. 그러나 평상시 한국인들은 즉흥성 때문에 누군가가 농담을 하면 일손을 멈추고 전부 농담에 참여한다. 일본인들은 일하는 중에는 농담하는 법이 없다. 누가 농담을 해도 일절 대응하지 않고 자기 일만 한다.”

‘유도리’가 없는 사회가 일본이다. 2003년 일본 문부과학성은 ‘유도리’ 없음이 주입식 교육에서 생겨났다고 보고, 2003년부터 유도리 교육을 시작했다. 그러나 오히려 학생들의 실력이 저하되는 현상이 나타나 2010년 주입식 교육으로 되돌아왔다. 유도리 없는 매뉴얼 사회가 좋은가, 임기응변의 사회가 좋은가? 분명한 것은 일본은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짜여진 사회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가시와자키 카리와 망령

앞에서 정리했듯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1발전소, 후쿠시마 제2발전소, 가시와자키 카리와 발전소라는 3개의 원자력발전 단지를 운영했다. 이 가운데 가장 신형이고 가장 큰 단지가 가시와자키 카리와 발전소였다. 가시와자키 카리와의 6호기와 7호기는 일본이 개발한 제3세대 비등수로(ABWR)인지라 설비용량이 무려 135만6000여 kW나 되었다.

이렇게 큰 원자로가 있으니 7기가 있는 가시와자키 카리와 발전소의 총 설비용량은 도쿄전력 전체 원전 설비용량의 47.5%에 달했다. 는 도쿄전력이 운영한 3개 단지의 17기 원전이 상업발전을 시작한 때와 설비용량을 정리한 것이다.

태평양에 면한 쪽은 지진이 많이 일어나지만 동해 쪽은 상대적으로 적게 일어난다. 그런데 2007년 7월 16일 니가타현 앞바다에서 규모 6.8의 강진이 일어났다. 가시와자키 카리와의 7기 원전 중 지진이 일어난 날 2,3,4,7호기는 가동되고 있었고, 1,5,6호기는 정비를 위해 정지 중이었다.

1,5,6호기가 받은 충격은 이 원전의 내진(耐震) 설계치를 약간 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런데 지진 이전부터 정지하고 있던 3호기의 주(主) 변압기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지진 직전까지 가동되고 있던 6호기에서는 정해진 관로로 흘러야 하는 계통수(水) 1.2t이 새나와 바다로 흘러들었다. 이 계통수의 오염 정도는 규제치 이하였지만, 지진으로 인해 원전에서 화재가 일어나고 방사능이 섞인 물이 바다로 흘러갔다는 사실은 주변 지방자치단체를 긴장시켰다.

아무도 결심하지 못했다

니가타현을 비롯한 자치단체들은 가시와자키 카리와 원전의 재가동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도쿄전력에 확실한 안전 검사를 받으라고 요구했다. 도쿄전력은 안전 검사를 받고 재가동을 해도 좋다는 판정을 받았지만 지방자치단체들은 내진 부문 등이 약하다며 안전장치를 추가할 것을 요구하며 계속해서 재가동을 승인하지 않았다.

전력회사는 전기를 생산해야 이윤을 얻는다. 가시와자키 카리와 원전이 오래 멈춰 서 있으면 도쿄전력은 상당한 손해를 본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들이 요구하는 안전 검사에 응하고, 필요한 보강 조치를 했다.

그런데도 지방자치단체들은 더 큰 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며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재가동 승인을 미뤘다. 지방자치단체들은 한 호기마다 정밀한 검사를 한 후 재가동을 허용했다. 가시와자키 카리와 발전소의 7기 원전은 2010년에야 모두 가동될 수 있었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선거권을 쥔 주민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주민 안전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주민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 결과 도쿄전력은 매출과 이익에서 큰 손해를 보았다.

이러한 기억이 있으니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1발전소의 원전에 해수를 주입해 더 큰 사고를 막고 원자로를 버린다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용단(勇斷)’이다. 상투적인 결정은 삼척동자도 할 수 있다. 큰 손해를 보는 줄 알면서도 더 큰 손해를 막기 위한 용단은 아무나 내리지 못한다. 그래서 CEO는 소탐대실(小貪大失)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대범한 사람이 맡아야 한다.

신동아 2012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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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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