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호

관료주의 관료주의

제2장 연이은 수소폭발 세계를 긴장시키다

  • 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입력2012-03-02 13: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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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료주의 관료주의

    2011년 11월 12일 후쿠시마 발전소를 찾은 기자단 앞에서 설명하는 요시다 마사오 소장.

    핵연료가 녹아내리는 1호기에 해수를 넣어야 한다는 것은 원자력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도 누구도 결심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1호기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났다.

    이것으로 모든 위험이 사라지면 다행이다. 1호기에서는 노심 용융이 계속 일어나고 있으니 수소는 또 발생한다. 그런데 격납용기가 온전하니, 이 수소는 격납용기 상단에 모여 다시 수소폭발을 일으킬 수 있다.

    격납용기를 비롯한 1호기의 구조물들은 1차 수소폭발로 충격을 받아 약해져 있으므로 2차 폭발이 일어나면 무너질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일본은 체르노빌-4호기와 같은 사고를 당하게 된다.

    따라서 수소폭발이 일어난 다음에라도 해수를 주입해 추가 폭발을 막는 것이 급선무다. 그런데도 도쿄전력 본사는 침묵했다. 그러자 요시다 마사오 소장이 독단으로 1호기에 해수 주입을 결정해 명령을 내렸다.

    그에 따라 후쿠시마 제1발전소 직원들은 12일 오후 7시 4분부터 소화(消火)펌프를 사용해 바닷물을 1호기 원자로 안과 격납용기 안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요시다 소장은 이를 본사에 보고했다. 본사에서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요시다 소장의 결정을 추인해준 것으로 이해됐다. 그런데 이것이 엉뚱한 일로 인해 돌변했다.



    간 나오토 총리의 그릇된 판단

    도쿄전력은 엄청난 사고를 일으킨 만큼 직원을 총리실에 보내 상황 보고를 하고 있었다. 도쿄전력 측은 이 직원을 통해 추가 수소폭발을 막기 위해 1호기에 해수를 주입하고 있는 상황을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에게 보고하게 했다.

    간 나오토 총리는 도쿄(東京)대학 이학부 응용물리학과를 졸업했다. 물리학은 원자력공학과 연결되니 그는 원자력에 대한 이해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후쿠시마 제1발전소 1호기 폭발에 대해 그릇된 정보를 갖고 있다면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 1호기가 수소폭발을 한 후 도처에서 해수를 주입해 추가 폭발을 막아야 한다고 하자, 간 나오토 총리는 도쿄대학 교수로 내각의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마다라메 하루키(班目春樹) 위원장에게 “1호기에 해수를 주입할 경우 재임계(再臨界)를 일으킬 수 있느냐”고 물었고, 마다라메 위원장은 “그럴 수 있다”고 대답했다(2011년 5월 22일 도쿄전력 발표 내용으로 요미우리신문 보도에 근거).

    해수를 주입할 경우 핵분열을 멈춘 핵연료가 다시 핵분열(재임계)할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하는 쪽으로 존재한다. 반면 과열된 핵연료를 식혀 추가 수소폭발을 막을 가능성은 100%에 수렴하는 쪽으로 존재한다. 마다라메 위원장은 과학자이기에 제로에 수렴하지만 가능성은 있다고 대답한 것 같은데, 간 나오토 총리는 해수를 넣으면 무조건 핵연료가 다시 핵분열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때 총리실에 나와 있는 도쿄전력 직원이 “해수를 주입했다”고 보고하자, 간 나오토 총리실은 “1호기가 재임계(再臨界·다시 핵분열하는 것)하는 것 아니냐. 왜 해수를 넣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총리 관저에 파견돼 있던 도쿄전력 관계자는 본사에 “총리의 판단이 없으면 해수 주입은 실시하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에둘러 전했다. 일본은 분명하게 표현하지 않는 사회다. ‘그럴 것이다’라고만 해도 그렇게 하는 사회가 일본이다.

    이 연락을 받은 도쿄전력 본사는 후쿠시마 제1발전소와 연결된 화상회의 통신망을 통해 오후 7시 25분 후쿠시마 제1발전소에 1호기에 대한 해수 주입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강력한 지진에도 불구하고 본사와 발전소 사이의 화상통신망이 연결돼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다. 화상통신을 하는 전원은 가동됐던 모양이다). 이 지시를 받은 요시다 소장은 분노했던 것 같다.

    속으로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이 본사에 앉아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절규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사의 지시이니 직원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직원을 부른 그는 “지금부터 하는 말은 듣지 말라”고 전제한 뒤, “본사에서 해수 주입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라고 말했다.

    ‘지금부터 하는 말은 듣지 말라’고 전제한 뒤 본사가 내린 ‘해수 주입 중단 지시’를 작업요원들에게 전파한 것이니, 본사의 지시를 어기고 해수 주입을 계속하라고 지시한 것이 된다. 직원들은 본사와 현장 사이에 혼선이 있다는 것을 즉각 알아챘다. 그들도 ‘눈치가 빤한’ 월급쟁이들이니 본사와 소장의 지시를 혼합해, 급히 추진하던 해수 주입을 천천히 했다.

    그 사이 간 나오토 총리실은 해수를 넣을 경우 1호기가 재임계할 가능성은 얼마인지 더 알아보게 했다. 저녁 7시 40분 전문가들은 해수를 넣을 경우 1호기가 재임계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정확히 보고했다.

    이 보고를 받은 간 나오토 총리는 7시 55분쯤 도쿄전력 직원에게 “1호기에 해수를 주입해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직원으로부터 이 보고를 받은 도쿄전력 본사는 즉각 요시다 소장에게 해수 주입 재개를 지시하지 않았다. 추측건대 본사는 총리의 정확한 진위 파악을 위해 노력한 것 같다. 그리고 총리가 생각을 바꿨다는 것이 확인되자 비로소 요시다 소장에게 해수 주입 재개를 지시했다. 그때가 오후 8시 20분이었다. 총리의 잘못된 판단에 도쿄전력은 25분의 시간을 소모한 것이다.

    8시 20분 본사에서 해수 주입 재개 지시가 내려오자 요시다 소장은 담담하게 본사 지시를 직원들에게 전달했다. 직원들은 본사와 소장 간의 문제가 풀렸구나 하면서 하던 해수 주입을 계속했다.

    얼마 후 본사는 요시다 소장이 본사의 지시를 묵살하고 계속 해수 주입을 하고 있음을 알고 요시다 소장에게 구두 주의조치를 주었다. 묵살한 것은 사실이기에 요시다 소장은 항거하지 않았다.

    물러나는 간 나오토 총리

    그리고 얼마 후 도쿄전력 본사가 요시다 소장에게 해수 주입 중단을 지시한 것은 총리실의 의견 때문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자 정치권이 관심을 기울였다. 일본 국회에서 간 나오토 총리가 그때 “해수 주입을 중단하라”고 말했는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일본 국회는 더 이상 총리의 실수를 따지지 않았다. 일본 언론도 총리의 판단 미스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

    이유는 더 큰 사고가 났기 때문일 수 있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에서는 1호기에 이어, 3호기 2호기, 4호기에서 같은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4기에서 방출된 방사성 물질에 의한 피해를 막는 것이 급선무가 됐기에 총리실의 허술한 개입을 따질 계제가 아니었는지 모른다.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도 최고 지도자의 실수에 대해서는 쉽게 따지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언론과 국회는 제대로 따지지 못했지만, 중요한 순간에 소심한 결정과 엉뚱한 판단을 한 지도자는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간다고 해도 지도력을 상실한다. 간 나오토 총리는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 5개월 뒤인 2011년 8월 말 사임하고, 같은 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가 새 총리대신이 되었다.

    간 나오토 총리의 소심한 결심과 비교되는 것은 2010년 11월 23일 북한이 연평도를 향해 방사포 등을 쏘았을 때 보인 이명박 대통령의 태도다. 북한군 4군단의 연평도 포격은 백주에 일어났기에 현장 상황이 중계됐다. 대한민국이 공격을 당했는데, 취임 시 대한민국을 보위하겠다고 선서한 대통령은 “확전을 방지해야 한다”는 말로 대응을 자제하게 했다.

    7개월 전 천안함 사건을 당해 46명의 군인이 전사한 사실이 있는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의 새로운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청와대의 확전 방지 지시에 대해 즉각 여론은 맹비난했다. 그러자 연평도 포격전이 끝난 그날 저녁 이명박 대통령은 합참을 방문해 북한의 해안포 부근에 (북측) 미사일 기지가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타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차 떠난 다음에 손을 든 것이다.

    매뉴얼 사회의 명암

    후쿠시마 제1발전소 1호기의 수소폭발 문제를 취재하면서 기자는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들에게 같은 사고가 일어나면 우리는 누가 해수 주입을 결정하는지를 물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발전소장이 내린다”라고 대답했다.

    “요시다 마사오는 우리로 말하면 본부장이다. 발전소장 위에 본부장이 있으니 본부장이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하니 “아니다. 그것은 소장이 내리면 된다. 소장이 못하면 본부장이 한다”라고 대답했다.

    과연 그렇게 될까. 같은 사고가 일어나면 한국수력원자력의 본사는 청와대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있을까. 현장 책임자는 본사의 의중을 파악하는 데 노력하지 않을까. 도쿄전력이 해수 주입 문제를 놓고 헤맨 것은 그러한 상황에 대비한 매뉴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매뉴얼 사회이기에 매뉴얼대로 움직인다. 매뉴얼대로만 하면 어떤 결정, 어떤 실수를 해도 면책받는 것이 일본이다.

    그런데 매뉴얼이 없는 상황을 만나면? 매뉴얼이 없는 상황에서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결정을 내린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하니 누구라도 쉽게 결단하지 못한다. 그 사이 상황은 악화돼 간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다.

    상명하복을 중시하는 관료사회의 맹점을 극복하는 것이 매뉴얼이다. 그런데 매뉴얼이 없는 상황을 맞자 일본은 관료주의 타성을 벗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한국은 어떤 사회인가. 한국의 관료주의는 일본의 관료주의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한국은 온갖 사고와 사건에 대응할 매뉴얼을 갖고 있는가? 한국은 그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사회인가?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에서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너무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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