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500년마다 오는 큰 쓰나미와 지진
1998년, 지형학을 전공한 홋카이도(北海道)대학의 히라카와 가즈오미(平川一臣) 특명교수는 태평양에 면해 있는 홋카이도 도카치(十勝) 평야의 깎아지른 해안단구 벼랑 위에서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해발 15m쯤 되는 이 단구 위에 해저에 있어야 할 모래와 둥근 돌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지형학 전문가인 그는 단번에 ‘20m 높이의 거대한 쓰나미가 덮쳐 해저의 돌과 모래가 15m 높이의 단구에 올라갈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20m 높이의 쓰나미가 몰려오려면 얼마나 큰 지진이 일어나야 하는가. 홋카이도 동쪽에는 치시마(千島)해구가 있다. 이 해구는 바다 쪽 땅(플레이트)이 육지 쪽 땅(플레이트) 밑으로 파고들어가 생겨났다. 해저지진은 바다 쪽 플레이트가 육지 쪽 플레이트 밑으로 파고들어 육지 쪽 플레이트를 위로 들어 올리면서 일어난다.
홋카이도에서 발생한 지진 역사를 알려면 오래된 문헌을 뒤져야 하는데, 홋카이도는 변방이기에 그런 기록을 남긴 문헌이 거의 없다.
도쿠가와(德川) 막부 시절 권력 1인자는 쇼군(將軍)이었다. 쇼군을 보필하는 막부의 고위 직책 중의 하나가 ‘로주(老中)’다. 1786년 일본 역사에서 탐험가로 유명한 모가미 도쿠나이(最上德內)는 다나무 오키쓰구(田沼意次) 로주의 명령을 받아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치시마 열도(러시아 이름은 쿠릴 열도)에 있는 우룻푸(得撫島)로 갔다(지금 우룻푸 섬은 러시아 영토다).
우룻푸 섬에 상륙한 그는 ‘쓰나미에 떠밀려 섬 언덕에 난파해 있는 러시아 대형선을 봤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는 일본 역사서에 기록돼 있지 않은 쓰나미 흔적이다.
고대에 태평양에 면해 있는 일본 동쪽에서는 여러 차례 초대형 쓰나미가 발생했음이 분명하다. 쓰나미를 기록한 문헌이 너무 적기에 제대로 추적할 수가 없을 뿐이다. 따라서 학자들은 육지에 올라와 있는 바다 퇴적물에 주목한다.
그 결과 모가미는 지난 6500여 년 동안 거대한 쓰나미를 동반한 큰 지진이 수십 차례 있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거대한 쓰나미를 일으킨 지진은 300~500년마다 반복해서 일어난 것으로 추정됐다. 가장 가까운 시기에 큰 쓰나미를 일으킨 해저지진은 17세기 초에 있었던 것 같다. 이 지진과 쓰나미는 과거에 있었던 어떤 ‘지진+쓰나미’보다 훨씬 강력한, 사상 최대의 ‘지진+쓰나미’인 것으로 판단됐다.
해저지진 중에서도 무서운 것은 지진 발생 지역이 이동하면서 넓어지는 ‘연동지진’이다. 바다와 육지에 있는 플레이트가 만나, 어느 쪽(대개는 바다 쪽) 플레이트가 다른 쪽(대개는 육지 쪽) 플레이트 밑으로 들어가면 지진이 일어나는데, 이 지진으로 이웃에 있는 단층도 영향을 받아 그곳에서도 지진이 일어나는 것이 연동지진이다. 해저에서 연동지진이 일어나면서 발생하는 쓰나미는 더욱 높아진다.
도쿄(東京)대학 지진연구소의 후루무라 다카시(古村孝志) 교수는 “수십 분 차이로 연동지진이 일어나면 각각의 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가 1.5~2배 정도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추정했다.
3연동 지진에 대한 공포
시즈오카(靜岡)현에는 ‘하마나(浜名)’란 이름의 호수가 있는데, 이 호수는 일본 지리사(地理史)와 지진사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 호수의 면적은 68.8㎢이고, 둘레는 103㎞, 최대수심은 12.2m이다. 이 호수는 육지의 한 부분이 꺼지면서 생긴 함몰지로, 가까이 있던 바닷물이 밀려들어와 만들어졌다. 그리고 바다와 접한 곳에 모래톱이 생겨 바다와 분리된 호수가 되었다.
이러한 하마나 호수가 1498년 일어난 대지진과 해일로 바다와 경계를 짓는 모래톱이 씻겨 나가 다시 바다와 연결됐다. 지금도 바다와 연결된 모습으로 있다. 이 하마나 호수 서쪽에 ‘나가야모토야시키(長谷元屋敷)’란 유적이 있는데, 이 유적지는 과거 이 지역에서 발생한 쓰나미의 흔적을 담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은 지진과 쓰나미로 재해를 입었지만 물산이 풍부해서 다시 사람들이 들어와 살다가 또다시 재해를 당한 재해 다발지역이다.
앞에서 언급했듯 160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기후(岐阜)현의 세키가하라(關ケ原)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아들 세력과 싸워 승리함으로써 일본의 패권을 잡고 일본 역사의 무대를 에도(지금의 도쿄)로 옮겼다. 세키가하라 전투 5년이 지난 1605년 2월 3일 저녁 8시쯤 시즈오카현 스루가(駿河)항에서부터 규슈(九州)까지 태평양에 접해 있는 일본 동쪽 전 해안으로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왔다. 하나미 호수는 바다와 연결돼 있는데다 호수 자체도 지진에 의해 흔들렸기에 호수 에서도 쓰나미가 발생했다.
이 쓰나미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을 통일한 다음에 일어났기에 일본 역사서에 많이 기록돼 있다. 이 쓰나미는 지진에 비해 매우 규모가 컸다고 한다. 문제는 쓰나미의 규모를 유추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학자들은 나가야모토야시키 유적에서 1605년에 발생한 거대한 쓰나미 흔적을 찾아냈다. 호수 바닥에 있어야 할 돌과 모래가 육지로 올라와 있는 것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큰 쓰나미가 일어났기에 호수도 쓰나미를 일으켰을까?
1605년의 쓰나미는 다른 곳에서도 큰 피해를 일으켰다. 당시 사람들은 하마나에서 멀리 떨어진 시코쿠(四國) 섬의 도쿠시마(德島)현 동쪽에 있는 시시쿠이우라에서 ‘달이 뜰 무렵 큰 쓰나미가 밀려와 땅이 갈라지고 물이 솟아올라 사람들이 놀라 산으로 도망쳤다’는 기록을 남겼다.
도쿠시마 사람들은 1605년 시시쿠이우라에서 지진으로 인해 해안가 땅속에 있던 물과 모래가 솟구치는 액상화 현상이 일어났다고 기록해놓은 것이다. 사람들이 놀라 산으로 도망쳤음은 쓰나미가 몰려왔다는 뜻이다.
시즈오카는 동쪽으로 태평양을 바라본다(1부 1절 1장의 그림1 일본 지도 참조). 도쿠시마는 남쪽으로 태평양에 면해 있다. 따라서 일본 동쪽에서 지진이 일어나 쓰나미가 밀려왔다면, 이 쓰나미는 시즈오카를 덮칠 수는 있어도 도쿠시마는 덮치기 어렵다. 도쿠시마의 오른쪽에는 와가야마(和歌山)현 등이 있는 기이(紀伊)반도가 있어 동쪽에 몰려온 쓰나미를 막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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