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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원자력, 일본을 지원하다

제3장 전원 복구로 사고 수습에 성공하다

  • 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한국 원자력, 일본을 지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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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원자력, 일본을 지원하다

도쿄전력이 사고가 난 후쿠시마 제1발전소 현장에 제일 먼저 투입하기 위해 지원받은 두산인프라코어의 자회사인 밥캣 사의 건설용 로봇 T-300 컴팩트 트랙 로더. 일본은 평면에서 움직이는 휴먼로봇 강국이지, 전투용 로봇이나 건설용 로봇의 강국이 아니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전체 정유시설 가운데 20%가량이 가동을 중지했다. 일본 최대 정유회사인 JX NOE(옛 일본석유)는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등 국내 정유업체에 원유 구매와 석유제품 공급을 요청했다. 정유업체들은 원유의 안전한 확보가 중요하기에 산유국과 6개월에서 1년 정도 앞선 시기에 필요한 원유를 미리 계약해놓는다. JX NOE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대지진이 일어나 정유시설이 파괴되거나 가동할 수 없게 되자 JX NOE는 계약에 따라 산유국에서 자사로 오는 원유 중 일부를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한국의 정유회사에 그들이 장기 계약해 도입하고 있는 원유를 받아서 대신 처리해달라고 한 것이다. 한국의 정유업체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일본도 휘발유, 등유, 경유, 항공유 등 원유를 정제한 제품이 필요하다. 대지진을 당했으니 기름은 더욱 긴요해진다. JX NOE는 한국 정유업체들에 이러한 유류를 우선 공급해달라고 했다. 한국 정유업체들은 다른 나라에 수출하기 위해 정제해놓은 기름을 그 나라의 양해를 얻어 JX NOE 측에 우선 공급했다. 간단히 정리하면 한국 정유업체들은 JX NOE가 해야 할 정유를 대신해주고 거기서 나온 결과물을 일본에 공급해준 것이다.

건설용 로봇 제공한 두산

앞에서 미국 방산업체인 키네틱 노스아메리카는 두산인프라코어의 자회사인 밥캣에 건설용 로봇을 부탁하라고 했는데, 두산인프라코어와 밥캣은 이를 받아들였다. 2011년 4월 24일 두산인프라코어는 “원격조종이 가능한 밥캣의 건설장비 2대가 지난주부터 사고가 난 후쿠시마 제1발전소 원전 내부에 들어가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투입된 장비는 그래플(grapple·집게 역할 하는 장비)을 단 ‘밥캣 T-300 컴팩트 트랙 로더’였다. 이 장비는 13㎞ 떨어진 곳에서도 원격조종을 할 수 있다. 이 장비에는 7대의 카메라, 온도 감지기, 송·수신용 무선 장비, 방사선 센서가 부착돼 있어 사고를 당한 원전 구석구석을 다니며 현장 모습을 찍어 송신하고 방사선 등을 측정할 수 있다. 밥캣을 통한 지원과는 별도로 두산인프라코어는 지진 피해 복구를 돕기 위해 스키드 스티어 로더 10대, 굴삭기 1대와 인력을 일본으로 보냈다.

미국 GE사가 일본에 이동식 발전기를 제공한다고 한 3월 19일,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이 김황식 국무총리에게 “미국의 발전 설비는 제작과 수송 등에 오랜 시간이 걸리니 현대중공업이 일본에 긴급 지원하는 게 좋겠다”는 제의를 했다. 그에 따라 정부는 김 총리 주재로 긴급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일본은 현대중공업의 이동식 발전설비에 바로 관심을 표명했다.

한국 원자력, 일본을 지원하다

현대중공업은 비상발전기로 쓰이는 이동식 발전기를 만드는 유력 업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현대중공업은 도쿄전력에 이동식 발전기 4대를 지원했다. 도쿄전력 측이 한글로 쓴 플래카드를 내건 것이 이채롭다.

PPS(Packaged Power Station)으로 불리는 현대중공업이 개발한 이동식 발전 설비는 40피트 컨테이너에 담겨 있다. 공장형이 아니라 컨테이너형이라 배에 실어 운반하는 데 좋고 설치하는 데도 편리하다. 보통의 이동식 발전설비는 경유를 주로 사용하나 현대중공업의 이동식 발전설비는 저렴한 중유를 사용하기에 경제적이다. 현대중공업은 엔진과 발전기를 포함한 대부분의 기자재를 국산화해 PPS를 만들었다. PPS는 내구성이 좋기에 비상시의 보조전원 역할뿐만 아니라 상용(常用) 발전기로도 쓸 수 있다. 송·배전이 어려운 낙도와 오지, 지진 피해를 자주 보는 곳에 특히 유용하다.

이 PPS는 2010년 규모7.9의 강진이 발생한 아이티 대지진 때 해를 입지 않고 정상 가동해 긴급한 전력 수요를 충당했다. 2009년 9월 쿠바는 강력한 허리케인 구스타프(Gustav)를 만났지만 현대중공업이 설치한 PPS는 정상 가동됐다. 칠레에 수출한 PPS도 2010년 2월 발생한 규모8.8의 강진을 견뎌내며 전기를 생산했다. 현대중공업은 2010년 2억7000만 달러어치의 PPS를 수출했다. 대상 국가는 쿠바, 브라질, 칠레, 이라크 등 22개국이고, 누적 수출 대수는 1000여 기다.

쿠바의 지도자 카스트로는 현대중공업의 PPS에 매료된 이로 꼽힌다. 현대중공업은 2005년부터 2007년 사이 네 차례에 걸쳐 644기(총 발전용량은 125만 kW)의 PPS를 쿠바에 수출해 8억5000만 달러를 벌었다. 카스트로는 현대중공업에 선수금까지 지급하며 PPS 도입에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쿠바의 10페소 지폐에 PPS를 그려 넣게 했다. 쿠바중앙은행은 2007년 1월 1일부터 발행한 10페소권 지폐에 ‘에너지 혁명(Revoucion Energetica)’이란 글귀와 함께 PPS 도안을 넣었다.

현대중 이동식 발전기 제공

정부는 도쿄전력에 4대의 PPS를 제공하기로 했다. 4대의 PPS는 1만 가구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5600kW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4대의 PPS 가격은 50억 원이다. 이 비용은 현대중공업이 3분의 2를 부담하고, 정부가 3분의 1을 맡는 선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애초 정몽준 의원은 비상전원 확보가 절실한 후쿠시마 제1발전소를 염두에 두고 PPS 제공을 발의했는데, 3월 19일부터 후쿠시마 제1발전소의 외부전원이 확보되자 도쿄전력은 전기가 부족한 도쿄 지역을 위해 PPS를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은 60사이클(60Hz)의 전기를 사용하나 도쿄전력은 50사이클(50Hz)의 전기를 생산 공급한다. 60사이클 전기를 생산하는 장비를 50사이클 생산 장비로 바꾸는 데는 한 달이 걸리는데 현대중공업은 철야작업으로 1주일 만에 끝냈다. 그리고 바로 배에 실어 도쿄 인근인 지바(千葉)현에서 도쿄전력이 운용하는 아네가사키(姉崎) 발전소로 보냈다. 현지에 PPS를 설치하는 데는 3개월가량 걸리는데 현대중공업 기술진은 4주 만에 작업을 완료했다. 그리고 4월 27일 준공식을 열고 도쿄로 전력을 공급했다.

그 외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는 3월 18일 도쿄 KBC(코리아비즈니스센터)를 통해 후쿠시마 현 재난본부가 필요로 하는 유아용·성인용 기저귀 5640장과 목장갑 1만5000켤레를 전달했다.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후쿠시마 제1발전소의 원전사고를 당한 일본에 한국이 지원한 것은 사상 최대 규모였다. 한국이 재난을 당한 나라에 지원한 것은 2010년 대지진을 당한 아이티에 1250만 달러어치를 제공한 것이 최대였는데 그것을 넘어섰다.

역사는 돌고 돈다. 과거 역사에서 오랫동안 한반도는 일본에 문화를 전해주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개화에 뒤져 역전이 됐다. 이후 한국은 일본을 모방하며 추적했다. 원자력에 대해 공부하던 시절, 기자는 일본의 원자력 관련 법률과 한국의 원자력 관련 법률을 읽어보고 실소를 금치 못한 적이 있다. 한국 법률은 일본 법률을 번역한 것으로 토씨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한 한국의 원자력이 갑작스러운 재해로 큰 사고를 당한 일본을 지원하게 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한국은 조선과 제철, 전자, 자동차에 이어 원자력에서도 일본과 대등한 수준에 올라섰다. 이제는 원자력에서도 일본을 앞질러야 할 때다. 그 시작은 보다 안전한 원전을 짓는 것이어야 한다.

신동아 2012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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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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