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명사 에세이

매니페스토 7년의 슬픔

  • 강지원│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상임대표, 변호사

매니페스토 7년의 슬픔

2/2
이들의 야욕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의석을 300석으로 늘리는 데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신설 세종시를 포함해 의석을 3석 늘리는 대신에 다른 곳에서 3석을 줄여야 하는데, 영·호남에서 각 1석씩 줄인다 해도 나머지 1석을 더 줄여야 했다. 그런데 각각 자기네 텃밭에서는 절대 1석을 더 줄이려 하지 않았다. 이에 아예 총수를 300석으로 늘려버린 것이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겨? 이 나라 정치인? 아니 정치꾼들에게 정치판을 맡겨? 이런 의구심이 치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나라 지역주의 정치풍토 쇄신의 최대 걸림돌은 영·호남이다. 영·호남 주민들이 아니라 그들을 선동해온 영·호남의 정치꾼들이다.

지역주의 정치의 불가피성을 논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 나라처럼 정치권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나라에서 어디 출신이 집권자나 의회 권력자가 된다는 것은 그 영향이 엄청난 일이다. 드러내진 않지만 온 국민이 지역 간 불신의 늪에 빠져 있다. 상대 지역 출신과는 혼사도 꺼린다는 말이 있다. 필자와 같은 영·호남 부부도 잘만 사는데,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이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무너짐으로 해서 그에 따른 비용 부담이 얼마나 큰지는 계량해보지 않아도 뻔하다. 게다가 오는 12월에는 대통령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이때에도 지역적 편파성은 기승을 부릴 것이다. 총선보다도 심해 정점을 찍을 것이다.

매니페스토 운동은 1834년 영국의 보수당 당수 로버트 필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사실 중세가 무너지고 근대시민정치의 일환으로 투표제도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는 영국도 선거문화가 형편없었다고 한다. 투표 매수, 뒷거래, 부정투표가 횡행해 수많은 사건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에 로버트 필이 처음으로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한 공약은 결국 실패하게 마련”이라면서 구체적인 공약으로 선거에 임하겠다고 선언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플랫폼(Platform)이라고 하고, 독일에서는 선거강령(Wahlprogramm)이라고 하는데 최근에는 선거매니페스토(Wahlmanifesto)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부터 매니페스토 정책선거운동이 시작됐다. 그동안 고질적인 돈봉투 선거, 연고 선거, 중상모략·허위비방 선거, 이미지·바람몰이 선거, 선전·선동 선거 등을 뿌리 뽑자고 해왔는데 이를 위한 대안이 바로 매니페스토 운동이었다. 이제는 고무신짝을 포함해서 돈봉투를 돌리는 자는 찍지 말고 좋은 정치공약을 내놓은 사람을 찍자는 것이다. 같은 지역 출신이라든지 같은 학교, 같은 성씨라고 찍어주지 말고, 말 잘한다고, 얼굴 잘생겼다고, 선전·선동 잘한다고 찍어주지 말자는 것이다. 그가 어떤 공약을 내놓았고 그것을 뒷받침할 구체적인 재원조달 방법을 제시하는 등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무엇보다 그 후보가 그런 공약을 지켜낼 수 있는 인물인지를 가늠해보자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지금까지 7년째 노심초사 정치개혁 매니페스토 운동을 해온 사람으로서는 착잡하기 짝이 없다. 우리 유권자가 변하면 좋겠는데, 문제는 유권자의 변화를 가로막는 선전·선동꾼 정치인들이다.

매니페스토 7년의 슬픔
姜智遠



1949년 서울 출생

1972년 서울대 문리대학 정치학과 학사

1976년 제18회 사법시험 합격 후 검사, 교수, 변호사 등으로 활동

2005년부터 푸르메재단 공동실행대표로 활동

2006년부터 한국매니페스토 실천본부 상임공동대표로 활동

2009년부터 필하모니아 코리아 단장으로 활동


차라리 매니페스토 당을 하나 만들어버릴까. 그래서 싸돌아다니는 선거운동을 일절 배척하고 종일 좋은 공약만 내놓는 활동을 하다가 막상 선거에서는 장렬하게 전사하듯 떨어지는, 그런 정당을 만들어버릴까. 우리 세대에서는 정녕 이런 풍토를 뜯어 고치지 못하고 죽는 것일까. 7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을 회상해보면 절로 슬픈 생각이 앞을 가린다. 그래도 오늘, 부디 올해는 유권자 반란의 해가 되기를 기대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또다시 집을 나선다. 한 알의 밀알이라도 심어보자고, 그것이 가만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안고서.

신동아 2012년 4월호

2/2
강지원│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상임대표, 변호사
목록 닫기

매니페스토 7년의 슬픔

댓글 창 닫기

2019/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