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호

문명에 대한 반성, 생명을 향한 첫걸음

  • 김학순│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입력2012-03-20 13: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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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명에 대한 반성, 생명을 향한 첫걸음

    ‘침묵의 봄’<br>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에코리브르, 398쪽, 1만8000원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이 일어나기 며칠 전, 저명한 과학저널 ‘네이처’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300년 안에 지구촌 생물 종의 75% 이상이 사라지는 ‘대멸종’을 맞을 수 있다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안토니 바르노스키 교수의 경고장이었다. 지난해 6월에는 전 세계 바다 생태계가 전례없는 대규모 멸종 단계에 진입할 위험이 커졌다는 국제해양생태계연구프로그램(IPSO)의 새로운 보고서가 유엔에 제출됐다. 이 보고서는 여러 요인이 한데 어우러져 바다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급속도로 파괴되고 있다고 전했다. 인간의 무분별한 어류 남획과 농가에서 흘러나온 화학비료 등에 따른 오염, 이산화탄소 배출이 낳은 해양 산성화, 기후변화가 여기에 포함된다.

    지구는 50억 년 동안 이미 다섯 차례나 ‘생물 대멸종’을 겪었다. 여섯 번째 대멸종 위기의 문제점은 과거와 확연히 다르다는 데 있다. 다섯 번의 대멸종은 운석이나 혜성 충돌, 빙하기와 같은 자연 현상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여섯 번째 대멸종은 지구온난화, 서식지 파괴, 바이러스 전파 같은 인간적인 요인이 초래한다는 게 큰 차이점이다. 지구촌에서 꿀벌이 사라지는 주원인도 지구온난화라는 분석이 나온 지 오래다.

    개미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이를 흥미롭게 비유한다. “돈 벌자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건 저녁밥을 지으려 루브르 박물관 그림들을 태우는 격이다.”

    이 같은 인류의 난개발과 환경파괴에 사실상 처음 경보를 발한 것은 꼭 50년 전에 한 여성 생물학자가 쓴 도전적인 책이다. 오늘날 환경운동의 기폭제가 된 ‘침묵의 봄’(원제 Silent Spring)은 1962년 출간 이후 환경보호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을 혁명적으로 바꾸고 지은이 레이첼 카슨(1907~1964)을 ‘환경운동의 어머니’ 반열에 올려놓았다.

    새들이 사라진 아침



    카슨이 ‘침묵의 봄’을 쓰게 된 결정적 동기는 조류학자이자 친구인 올가 허킨스가 보낸 한 통의 편지 때문이었다. 허킨스의 편지에는 세상에서 소중한 생명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담겨 있었다. 카슨은 친구의 이야기에 감동과 충격을 동시에 받아 살충제와 같은 화학물질이 자연을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침묵의 봄’은 화학물질로 인한 자연생태계의 오염을 충격적인 사례를 들어 고발한다. 지은이는 시종일관 생명과 자연은 하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 책의 상당 부분은 당시 ‘기적의 살충제’로 불리던 DDT의 치명적 폐해에 할애돼 있다. DDT는 말라리아 때문에 해마다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어야 했던 인류에게는 구원의 손길이었다. DDT만큼 값싸고 효과적인 살충제는 없었다. 살충제 DDT를 개발한 파울 뮐러는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이 만능 살충제에 카슨이 칼을 겨누었다. 그렇지만 카슨이 이 책에서 언급한 첫 번째 화학물질은 DDT가 아니라 방사능 요소인 스트론튬 90이다. 카슨이 비밀 핵실험과 핵무기 비축에 대항하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 고백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책은 어느 화창한 봄날 아침 눈을 떠보니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 적막한 장면으로 막을 연다.

    “봄을 알리는 철새들의 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지역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때 새들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가득 찼던 아침을 맞는 것은 어색한 고요함뿐이다. 노래하던 새들은 갑작스럽게 사라졌고, 그들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던 화려한 생기와 아름다움, 감흥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너무도 빨리 사라져버렸다.”

    새들은 살충제·제초제 같은 화학물질에 오염돼 죽어버렸다.

    살충제로 바퀴벌레를 잡으려고 했던 어느 미국 부부의 일화는 끔찍하다. 베네수엘라로 이주한 이 부부는 집에 바퀴벌레가 많아 엔드린이 포함된 살충제를 뿌렸다. 이들은 한참 지나 살충제를 잘 닦아낸 뒤 강아지와 갓난아이를 데리고 돌아왔다. 그럼에도 그 독성을 견디지 못한 강아지가 갑자기 토하며 발작을 하다 죽었다. 아이는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책은 유독물질이 모체에서 자식 세대로 이어진다는 사실도 일깨운다. 이처럼 무시무시한 사례들이 생생하게 독자에게 다가간다. 카슨은 화학방제를 열렬히 옹호하는 사람 가운데 뛰어난 곤충학자가 많다는 미스터리도 폭로한다.

    “이 학자들의 배경을 조사해보면 화학회사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전문가로서의 명성, 때로는 자신의 직업 자체가 화학방제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 이들의 성향을 알게 된다면 살충제가 무해하다는 주장을 믿을 수 있겠는가?”

    화학물질로 인한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자신인데도 잘못된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기관을 유지하기 위해 세금을 내고 있다고 개탄하기도 한다.

    이 책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 나오는 두 갈래 길을 인용해 비유하며 마무리한다.

    “아직 가지 않은 다른 길은 지구의 보호라는 궁극적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기회라 할 수 있다. 새롭고 창의적인 접근법은 이 세상이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생물과 공유하는 것이라는 데에서 출발한다.”

    지속 가능한 개발

    ‘침묵의 봄’은 딱딱한 과학적 내용을 문학적 감수성을 가미해 서정적으로 풀어나간다. 그리스 신화가 인용되고, 시적 수사학도 곳곳에 등장한다. 환경 전문가인 알렉스 맥길리브레이가 이 책을 “과학과 문학이라는 두 장르가 결합해 탄생한 일종의 하이브리드”라고 평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카슨이 원래 작가를 꿈꾸며 영문학과에 입학했으나 전공을 바꿔 생물학을 공부한 덕분이다. 그러면서도 ‘침묵의 봄’은 비판적 사고와 통합능력을 보여준 결정체로 평가받는다.

    카슨이 위대한 점은 그때까지 아무도 모르고, 증언해줄 사람 하나 없는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고발해 사회제도를 변혁시켰다는 데 있다. ‘침묵의 봄’은 환경운동이 모든 나라의 사회정책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채찍질했다.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환경문제를 다루는 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곧이어 미국 의회도 DDT가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증거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에서 환경보호국이 처음 만들어진 것도 이 책 때문이었다. 1970년 ‘지구의 날’(4월 22일)이 제정된 것 역시 이 책 덕분이라는 걸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나아가 이 책은 세계적으로 환경윤리의 중요성을 각인시키고, 1992년 ‘리우데자네이루 선언’을 끌어내는 동력이 됐다. 환경과 개발에 관한 기본원칙을 담은 이 선언은 ‘지속가능한 개발’의 정신을 뿌리내리게 했다.

    ‘불편한 진실’을 쓴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자신이 환경운동을 펼치는 데 ‘침묵의 봄’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카슨은 환경운동뿐 아니라 과학자들에게도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1999년 미국 생물학연구소는 생물학자 19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자신의 연구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고전을 꼽으라는 내용이었다. 그 결과, ‘침묵의 봄’이 2위를 차지했다. 1위는 유진 오덤의 ‘생태학’이었다. 이 조사에서 ‘침묵의 봄’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나 제임스 왓슨의 ‘이중나선’보다 앞섰다. 하버드대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은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도 ‘침묵의 봄’을 읽고 생물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 책은 미국 랜덤하우스 출판사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논픽션 중 5위에 올랐다. 세계를 대표하는 100인의 석학이 선정한 ‘20세기를 움직인 10권의 책’에서는 4위였다.

    이 책은 전 세계 10여 개 언어로 번역돼 지금도 꾸준히 애독되는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냉전 시절 소련에서는 ‘침묵의 봄’을 비밀리에 번역해 읽었다는 일화까지 전해진다. 한국에서는 1990년에 들어서야 비로소 환경운동이 움트기 시작했으나, 선구적 시민단체의 하나인 한국환경재단은 ‘레이첼 카슨 홀’을 만들어 그 업적을 기리고 있을 정도다.

    ‘침묵의 봄’은 하마터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뻔했다. ‘뉴요커’에 연재했던 글을 책으로 출간할 무렵 농약제조업체와 화학업계 등이 각종 모략으로 방해했기 때문이다. 시카고 벨시콜이라는 화학회사는 출간 전에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휴턴미플린 출판사는 보험을 추가로 든 후에야 이 책을 펴낼 수 있었다. 전국해충방제협회는 카슨을 조롱하는 노래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도리어 ‘침묵의 봄’을 더욱 널리 홍보해주고 말았다. 책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자 당시 큰돈을 벌던 화학회사와 이를 방조한 공무원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광고에 민감한 일부 언론도 공룡 같은 화학회사들의 입맛에 맞춰 카슨에게 적대적인 글을 써댔다. 일부 관료들은 심지어 카슨을 ‘빨갱이’로 몰아붙였다.

    DDT에 관한 한 카슨의 주장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완벽하게 결론이 난 문제는 아니다. 이 책에서 예측한 미래가 다소 빗나갔기 때문이다. 생명이 사라진, 텅 빈 지구와 DDT로 인한 암의 증가는 입증되지 않았다. 말라리아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는 나라에서는 지금도 DDT를 사용한다. DDT의 환경오염보다 말라리아로 말미암은 사망이 더 참혹해 어쩔 수 없어서다. 이제 어떤 이들은 ‘침묵의 봄’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말라리아로 죽었다고 비판한다. 그러자 세계보건기구(WHO)도 2006년 DDT를 실내 벽면이나 건물 지붕, 축사 등에 뿌리는 것을 권장한다고 발표했다. DDT의 복권이다.

    그렇다고 카슨의 업적을 평가절하하는 사람은 없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인간이 스스로 일군 문명에 대한 반성과 의심하는 법을 가르쳐 준 데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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