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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장 ④

파란만장 외길인생 걸어온 방짜 유기장 이봉주

“우리만의 뛰어난 합금기술, 반드시 지켜낼 겁니다”

  • 한경심│한국문화평론가 icecreamhan@empas.com

파란만장 외길인생 걸어온 방짜 유기장 이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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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외길인생 걸어온 방짜 유기장 이봉주

달군 바둑을 화덕에서 꺼내는 이봉주 옹.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시간이 그에겐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그는 탁 방주의 은혜를 평생 잊지 않았다. 지금 문경 그의 공장 마당 한가운데는 탁 방주의 공적비가 서 있다. 그 비각에는 특별히 총 5111㎏에 달하는 방짜기와 2290장을 얹었는데 처음에는 사람들이 모두 말렸다고 한다.

“구리기와를 얹으면 녹이 슬고, 기와에서 떨어진 빗물에 풀이 다 죽는다고 했어요. 그런데 웬걸요, 빗물이 떨어진 곳의 풀이 더 싱싱해요. 제가 금속학자에게 물어보니 당연하다고 해요. 방짜는 해로운 것을 잡는 기능이 있으니까 오히려 풀이 더 잘 자라는 거랍디다.”

18개월 만에 대장 기술 익히고 실패작도 잘 팔려

탁 방주는 북한에서 보부상을 지낸 이로, 처음 서울에 와서는 유기가게를 했다. 사업 감각이 뛰어난 그는 곧 이남에는 안성유기처럼 예쁜 주물유기는 잘 만들고 또 징이나 꽹과리 같은 악기는 방짜로 만들어내지만, 대야나 양푼 같은 큰 그릇과 요강 방짜는 부족하다는 사실에 착안해 납청 출신 기술자들을 불러 모아 양대공장을 차렸다.

“제가 기술을 배우겠다고 나서자 탁 방주님이 적극 지원해주셨어요. 주물유기나 목공, 도자기 일은 장인과 보조 한 명만 있어도 그럭저럭 일을 해나갈 수 있지만, 방짜는 열한 명이 한 조가 되어 일해야 하니, 장인 하나를 키워내기가 쉽지 않지요. 더구나 총책임자인 원대장은 복잡한 제작 과정을 다 알아야 하는데, 한 과정을 익히는 동안 누군가 옆에서 불도 피워주고 달구어주고 붙잡아주고 때려주고 해야 하니 혼자 익힐 수가 없어요. 또 불 피우는 숯 값과 연습하다 나온 불량품은 주인이 다 감당해야 하니, ‘대장 하나 만들기 위해 주인 하나 망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불 때는 풀무꾼으로 안풍구와 밖풍구, 원대장을 도와주는 제질풍구가 있어야 하며, 원재료인 구리와 석을 정확히 합금하고 융해하는 겟대장, 녹여낸 바둑(바둑알처럼 납작한 원판)을 모루 위에 올려놓고 메질하는 앞망치대장, 달군 바둑을 세게 쳐서 넓히는 센망치, 바둑을 넓히는 집게잡이인 네핌대장, 달군 바둑을 메질하고 칼갈이도 해야 하는 곁망치, 제질(모양을 잡는 과정)이 끝난 뒤 가질(연삭·硏削)을 맡은 가질대장 등 방짜 제조 과정은 열한 명의 협업이 필수다. 기계 해머가 도입돼 인원을 줄여도 최소한 여섯 명은 필요하다. 이 중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일을 할 수 없다.

“인건비도 원대장이 100을 가져간다면 앞망치대장과 가질대장, 겟대장이 50, 곁망치는 30, 센망치는 25, 안풍구와 밖풍구는 20, 제질풍구는 10을 받습니다. 게다가 기술이 좋으면 ‘가정’이라고 특별수당까지 주어야 합니다. 북한에서 하루 임금이 쌀 두 되였는데, 공방 원대장은 쌀 두 가마니였으니 기세가 대단했지요.”

일제가 전쟁에 쓰느라 놋제품을 깡그리 걷어간 뒤여서 집집마다 놋그릇과 재떨이가 필요했고 수저, 대야와 요강은 혼수품이기도 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일이 밀려드는데 원대장의 숫자가 워낙 적다 보니 기술 좋은 대장과 장인들의 ‘곤조(근성)’는 악명이 높았다. 방주는 늘 대장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러던 차에 성실한 청년 이봉주가 기술을 배우겠다고 나섰으니 탁 방주로서는 환영할 일이었다.

“탁 방주 님은 직접 풀무질까지 하며 도와주셨지요. 모두 퇴근한 공방에서 친구 한 명의 도움을 받아가며 연습을 했습니다. 모양을 내는 제질을 어느 정도 익히고 거친 가장자리를 잘라내는 협도질과 테두리를 꺾는 기술도 배웠지만 제가 만든 대야는 세모가 되기도 하고 네모도 나오곤 했어요. 대야가 둥글지 못하면 벼름질과 가질하기가 힘드니 가질대장은 탁 방주에게 짜증을 내곤 했습니다. 당시 장인은 팔린 만큼 받는 도급제였기 때문에 물건이 안 팔리면 수입이 줄거든요. 그때도 방주님은 어떻게든 팔 테니 걱정 말라며 그들의 불평을 다 막아주셨지요.”

물론 그의 작품이 재고로 쌓이기만 했다면 탁 방주도 끝까지 그를 밀어주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가 만든 못난 대야가 선임대장이 만든 예쁜 대야보다 더 잘 팔려나가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유기는 물건 값도 인건비도 근수에 따라 값을 매겼습니다. 그러나 소비자에게 팔 때는 물건 개수에 따라 돈을 받았지요. 그때 최동길이라는 유명한 유기상인이 있었는데, 혼자 거래하는 유기 양이 한강 이남에서 거래하는 양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았어요. 이 사람은 이문을 많이 남기기 위해 가벼운 것을 선호했지요. 제가 만든 것은 모양은 없었지만 가벼웠으므로 제 것만 싹 쓸어가곤 했어요.”

그의 작품은 늘 바닥이 나니 그는 서둘러 자꾸 만들어야 했고, 실력이 늘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운이다. 그러나 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인내다.

“일을 배우는 시기 어려움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제질 풍구를 부는 아이와 교대하면서 풍구 부는 일부터 시작해 새벽에 일어나 숯불을 피워놓고 대장들의 심부름을 해야 했어요. 그들의 비위를 맞춰가며 시키는 일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 마음 졸여가며 일을 배웠습니다. 공방에서 제일 아래 계급이었던 거죠.”

결국 원대장이 되는 것은, 밑바닥에서 시작해 맨 위로 올라가는 일이었다. 어려운 훈련과정을 견디는 인내심과 훈련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행운이 따라야 한다. 노력한다고 누구나 원대장이 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그에겐 행운과 인내심, 이 두 가지가 다 있었다. 그 덕택에 그는 불과 1년 반 만에 원대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자 그가 일을 배우기 위해 비위를 맞춰야 했던 대장들이 이번에는 원대장인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애를 쓰는 처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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