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호

쪽빛 바닷가에서 가지는 애모의 감상

  • 최학│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jegang5@yahoo.com

    입력2012-06-19 17: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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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시가지를 지나와 성처럼 도시를 둘러싼 고지대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작은 만(灣)을 끼고 앉은 통영 원도심은 장난감 도시처럼 올망졸망해 보인다. 저렇게 작고 예쁜 곳에 정말 배들은 닻을 내리고 자동차들은 소리를 내며 다니는 것일까. 자못 유치한 동심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도 그 탓이지만 막상 도심으로 내려서 보면 세상에 흔한 것들이 이곳에도 모두 들앉아 있어 적이 안심된다. 백화점이 있고, 미장원이 있고, 정보통신학원이 있다. 그리고 좁은 가도는 출퇴근 시간과는 무관하게 제대로 속력을 내지 못하는 차들로 가득하다.

    나그네란 제 떠나온 곳과 다를 바 없는 풍물을 보고서도 전혀 다른 냄새를 맡을 줄 아는 이를 일컫는 말이다. 하여 통영을 찾아온 객인들은 이곳 통영만이 가진 냄새와 빛깔을 찾는답시고 코를 킁킁거리고 눈빛을 반짝이게 마련이다. ‘길 떠난 자, 통영에 오면 모두 시인이 된다’는 저 지극히 감상적인 언사도 이들이 지어낸 말에 지나지 않는다.

    통영, 안쓰러운 사랑을 키우는 쪽빛 바다

    ‘시’와 ‘시인’이란 말이 한 도시의 수사(修辭)가 되고 있는 저간의 사정이야 새삼 일러 무엇하겠는가. 이는 통영의 복인 동시에 통영의 동통(疼痛)인 것을. 그렇지만 성긴 빗방울이라도 떨어지는 날, 포구에 정박한 배들처럼 출렁이는 걸음으로 부두 거리를 걷다가 문득 환청 같은 소리를 듣고 선상의 깃발들을 쳐다보노라면, 아무리 각박한 가슴일지언정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같은 시 구절 하나는 읊조리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 역시 통영인 까닭에서다.

    더위가 오기 직전, 나는 또 문학을 배운다는 학생들을 이끌고 통영을 찾았다. 이들 학생에게는 생애 처음의 문학답사이지만 내게는 정례적인 행사나 다를 바 없다. 그 단조로움을 덜고자 나는 해마다 행선지를 바꾸는 형편이었는데 통영은 항상 이웃 삼천포며 진주와 함께 묶어두고 있었다. 까닭은 모른다. 그냥 청마(靑馬·시인 유치환)의 시를 떠올리면 웬일인지 박재삼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진주 남강의 쪽빛 강물이 그려지는 탓인지도 모른다.



    자동차가 도심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다 큰 녀석들이 창밖을 내다보며 소리쳐댄다. “우체국이 어딨어? 우체국?” 이것도 교육의 힘이다. 학생들에게 나그네의 후각을 심어주려고 사전에 ‘청마 탐구’를 시켰던 게 이런 효과를 낸다.

    통영중앙우체국 건물은 좁고 복잡한 거리 한쪽에 단정하게 앉아 있다. 청마 유치환 덕에 우리나라 우체국 중에서도 가장 유명세를 타고 있다는 그 건물이다. “이럴 바엔 아예 우체국 이름을 청마 우체국이라고 하자”는 논의도 그치지 않는다는 소식도 듣고 있다. 그렇지만 막상 우체국에 들어선들 무엇이 있겠는가. 요즘 같은 세상에 창가에 서서 편지봉투에 우표를 붙이고 있는 한 사람인들 만날 수 있을 까.

    남모르는 단심(丹心)을 가졌던 청마는 통영에 머물던 시기, 거의 매일같이 이곳에 와서 편지봉투에 우표를 붙이곤 했다고 한다. 요즘처럼 e메일이며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쓰지 못했던 때니 응당 그런 수고와 불편쯤은 감수했으리라.

    애달픈 사랑이 전설이 된 우체국

    한낮의 우체국 안은 월말의 은행처럼 번잡하다. 편지를 전해주는 일보다 돈 거래의 일이 훨씬 많아 보이는 요즘의 우체국, 이곳에서 청마의 체취를 맡고 그의 족적을 더듬는 일은 부질없다. 시간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혹한 시간조차 창밖에 드리워지는 에메랄드빛 하늘만큼은 어쩌지 못한다. 내가 천천히 창가에 다가가 청마 선생께 문후 인사를 올린다. “선생님, 요즘도 편지를 부치러 오십니까?” “그렇다네…” 웅웅, 창을 통해 전해 오는 도시의 소음도 이곳에선 바닷바람과 한통속으로 여겨진다. 한 개인이 가졌던 애달픈 사랑이 그 지극한 언어로 인해 전설로 감염되는 공간이 이곳임도 깨닫게 된다.

    기념 삼아 굳이 통영우체국에서 엽서 한 장이라도 쓰겠다며 창구 앞에 줄을 서는 학생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문득 나는 친구에게, 애인에게 쓸 그들의 언어가 어떤 것인지 궁금해진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행복하여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중략)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껴

    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행복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 시 ‘행복’

    나는 이 시를 중학교 다니던 시절 산골 초가의 호롱불 곁에서 읽었다. 그러곤 인생의 모두를 눈치 챈 양 서글피 눈물방울을 찍기도 했다. 그리고 무수히 시간이 흐른 뒤, 나 혼자 통영을 찾았을 당시, 해저터널 입구의 산언덕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다시금 이 시를 읊조리려 했는데 참 우스운 일이었다. 도무지 우체국의 시는 생각나질 않고 대신 ‘나 죽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린(愛隣)에 물들지 않고…’ 하는 유치환 시 ‘바위’ 한 구절만 끝도 없이 주절거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먼 진주 땅에 살면서 하루에도 서너 통씩 청마의 연서(戀書)를 받았다는 여인, 그도 이미 이승을 떠난 지 오래다.

    너는 저 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 번 흔들지 못한 채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愛慕)도 사리(舍利)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 이영도의 ‘탑’ 전문

    금기의 사랑에서 뿌려진 안쓰러운 절구들만 남고 시인들은 떠났다. 우체국에서 멀지 않은 곳, 청마가 살았다는 그 약방골목에도 낯선 인파만 넘치고 있을 따름이다.

    으레 다음 순서는 ‘청마문학기념관’인 줄 알고 있는 학생들을 이끌고 통영항으로 나섰다. 시인의 육필에서, 몇 장의 낡은 사진에서, 생전에 사용했던 물품에서 시인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비린내 풍기는 바닷가에서, 장사꾼들의 악다구니에서, 깨져 널브러진 조개껍데기에서 훨씬 더 생생한 시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유치환뿐이랴. 또 다른 시인 김춘수며 음악가 윤이상, 화가 전혁림의 예술을 키운 자양이 바로 이 정겨운 바다와 이 바다를 끼고 산 사람들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굳이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아갈 필요가 없다. 좀 더 나은 경치를 보겠다고 대교를 넘어 미륵섬으로 가볼 까닭도 없다. 이 그림 같은 작은 항구에 통영의 모든 것이 있 기 때문이다. 근처의 허름한 식당에 들러 대구뽈찜이나 가자미찜을 시키면 인정 많은 통영 ‘아지매’는 바다 향기를 통째로 퍼다줄 줄도 안다. 청각, 톳, 미역 등으로 맛을 낸 나물국 하나가 그렇다. 이 맹맹하면서도 향기 나는 국물 맛을 어떻게 표현할까.

    나물국에 곁들여 소주 한잔을 하는 사이, 내 학생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없다. 이 손바닥만한 바다가 저들을 흩어놓았다. 홀로 혹은 짝꿍과 함께 항구를 걷고 있을 젊은이들, 그들 또한 머잖아 사랑의 시련에 여러 번 생채기를 입고, 만남과 이별의 애틋함과 막막함에 마음을 놓은 다음 성가신 모든 것을 떨쳐놓고 저 혼자 다시 이 통영을 찾아올 것임을 난들 왜 모르겠는가.

    거제, 바다와 산이 어우러져 빚는 청정 풍광

    학생들과 함께 여러 차례 문학답사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이편 남쪽 해안지역을 택하는 경우 하룻밤 잠자리 장소로는 대개 거제를 택했다. 둘러보는 곳과 잠자는 장소가 다르다는 개념에서 보면, 더 이상 나아갈 데 없는 거제 섬이 하룻밤 안식을 취하기에는 딱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끝 간 데 이르렀다는 안도감이 수면까지 편케 했던 기억이 여러 번이다.

    그러나 거제는 섬이면서도 섬이란 느낌을 거의 주지 않는다. 큰 다리(거제대교)로 뭍과 이어진 데다 섬 자체의 덩치가 워낙 커서 그렇다.

    대교를 넘어가서 머지않은 곳에 청마 유치환이 태어난 마을이 있다.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가 그곳이다. 거제대교 남쪽의 1018번 지방도로를 이용하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마을 입구 길가에는 청마의 시 ‘둔덕골’을 새겨놓은 큼지막한 ‘고향 시비’가 서 있어 이정표 역할을 한다.

    청마의 옛집도 근래 복원이 됐다. 가운데 안채를 두고 좌우에 사랑채와 행랑채가 늘어서 있는데 좌우의 집은 최근에 지은 것이고, 안채 하나가 옛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 사이 주인이 세 차례나 바뀌었는데 시에서 이를 매입해 복원했다. 나아가 시에서는 청마기념관까지 짓는다고 한다. 시인이 태어난 곳(거제)과 오래 생활한 지역(통영)이 지척인데도 지방자치단체들끼리 서로 우리네 사람입네, 다투며 그 흔적 챙기는 일에 거액을 쏟아 붓는 저간의 사정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제 지자체들의 문화적 안목도 이렇게 높아졌구나, 평가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여기도 현실적인 상업주의가 적잖이 틈입돼 있음을 눈치 채고 보면 씁쓰름한 느낌을 떨칠 수 없다. 그럴 여유와 능력이 있다면 스스로 유명해져 죽은 이의 뒤를 챙겨 덕을 얻기보다는 차라리 불우해 지금 빛을 보지 못하는 이들을 챙기거나 그 터전들을 가꿔 뒷날을 도모함이 진정 이 땅의 문화 예술을 키우는 데 이바지하는 것은 아닌지. 그나저나 살아생전에도 나름의 안일을 누렸던 청마가 죽어서 더 큰 호강을 누리니 어쨌든 이는 모두 그의 복이다.

    지척에 있다는 청마의 무덤은 무덤대로 둔 채 장승포로 달린다. 그러곤 그곳에서는 또 학생들의 등쌀에 못 이겨 해금강이며, 외도해상공원을 둘러보는 유람선을 탄다.

    인기 드라마의 촬영지가 된 탓에 더욱 유명세를 탄 외도해상공원. 외국인을 포함해 하루에도 수백 수천의 구경꾼이 모여든다지만 나 같은 무심주의자한테는 ‘섬에 갖다놓은 어린이공원’에 지나지 않는다. 수십 년간 땀 흘려 섬을 가꾼 이들한테는 외람된 언사지만, 왜 자연을 자연대로 두지 않고 억지로 화장을 시켰나 싶어 되레 시큰둥할 수밖에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거제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선은 장승포에서 구조라, 학동해수욕장을 거쳐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이르는 그 길이다. 완급 고저가 적절히 배치된 지형에 도로가 걸려 있는데 주위의 수림까지 울창해 바라다보이는 바다의 경관이 탁월하다.

    최학

    1950년 경북 경산 출생

    고려대 국문과 졸, 동 대학 교육대학원 석사

    197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현 고려대문인회 회장

    창작집 ‘잠시 머무는 땅’ ‘그물의 눈’ ‘식구들의 세월’ 등

    장편소설 ‘서북풍’‘안개울음’ ‘미륵을 기다리며’‘화담명월’등


    몽돌이 깔려 있다 해서 몽돌해수욕장으로도 불리는 학동해수욕장을 만나면 무조건 차를 버리고 돌밭을 걸어볼 일이다. 돌밭을 훑어가는 파도소리는 자연이 만들어내는 음향의 극치감을 느끼게 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여러 차례 거제 여행에서 가진 느낌이지만, 섬에 왔다 해서 해안만 따라 돌다 보면 거제의 전부를 봤다고 하질 못한다. 소매물도까지 갔다 오는 길에는 학동해수욕장에서 갈라지는 길을 타고 내륙 깊숙이 파고드는 것이 좋다. 자연휴양림과 구천저수지를 거치는 그 노정은 바다 산악의 품 안에서만 감상할 수 있는 청정 풍광과 적요를 만나는 여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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