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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경의 ‘눈으로 듣는 음악’ ⑪

죽어서야 영원한 사랑을 한 ‘작은 참새’ 에디트 피아프

  • 황승경│국제오페라단 단장·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죽어서야 영원한 사랑을 한 ‘작은 참새’ 에디트 피아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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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봉이 부른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가사처럼, 에디트의 노래에는 선원이 많이 등장한다. 한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 선원을 사랑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에디트의 내면적인 의식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실제 에디트의 인생에 등장하는 많은 남자는 매번 첫사랑처럼 순수하고 진실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사랑했지만 오래 이어지지 않는다. 몽마르트 언덕에 위치한 파리의 명물 ‘물랭루즈’에서 만난 여섯 살 연하의 이탈리아계 미남가수 이브 몽탕(Yves Montand·1921~1991)과의 사랑도 그러했다. 이때 에디트가 부른 노래가 그 유명한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이다. 이미 정상에 서 있던 에디트는 자신의 무대 1부를 이브 몽탕이 홍보할 수 있게 했고, 남자친구의 곡을 선별해주면서 물심양면 도와주었다. 이들의 관계는 이브 몽탕이 유명세를 타면서 서서히 식어가게 된다.

이즈음 에디트의 명성은 미국에까지 전해졌다. 그동안 프랑스 샹송이 상륙하지 못했던 미국에서 에디트의 생소한 음악과 창법은 신선하게 다가갔다. 프랑스의 이국적인 분위기와 에디트의 눈물겹게 아련하면서도 정열적인 음악은 미국인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에디트는 미들급 세계 챔피언이자 프랑스의 복싱영웅인 마르셀 세르당(Marcel Cerdan· 1916~1949)과 운명적으로 미국에서 마주치게 된다.

마르셀 세르당과 ‘사랑의 찬가’

이미 세 아들을 둔 가장으로 챔피언 타이틀 경기 때문에 미국에 머무르고 있던 마르셀과의 만남은 축복받을 수 없는 만남이었지만, 두 사람은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당당하게 사랑했다. 그러나 사랑은 짧았다.



미국의 제이크 라모타에게 패해 타이틀을 내준 마르셀이 라모타와의 리턴 매치를 앞두고 에디트를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가던 중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진 것이다. 1949년 10월 27일 그가 탄 비행기는 대서양 한가운데서 추락했다. 그의 나이 34세. 109승(64KO) 4패라는 대기록에도 마침표를 찍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전해 들은 에디트는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라도 일찍 보고 싶은 에디트가 여객선 대신 비행기를 탈 것을 권유했기 때문이다. 에디트는 드디어 찾아온 사랑을 보내는 고통과 절망, 그리고 죄책감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두문불출했다. 이때 비극적 감정이 온몸으로 전율하며 태어난 노래가 바로 ‘사랑의 찬가(Hymne A L?Amour)’였다. 마르셀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애절하고 구슬프게 부르짖었던 이 노래를 통해 에디트는 어둠의 세계에서 다시 나올 수 있었다.

둘의 사랑은 짧았지만, 두 사람이 나눈 편지는 책(마르셀 세르당과 에디트 피아프의 편지)으로 출판돼 지금도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는 것을 보면 둘의 사랑은 결코 짧지만은 않은 듯하다.

혹자는 파리를 대표하고 동시대에 활동한 에디트 피아프와 코코 샤넬을 비교한다. 그러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각자 분야에서 최고가 된 것을 제외하고는, 둘의 삶은 확연히 다르다. 남성관부터가 다르다. 일 중독자였던 코코 샤넬은 권력과 부를 가진 남성과의 사랑을 통해 사업을 확장시켰지만, 에디트 피아프는 사랑이 존재하기에 노래를 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에디트 피아프’라는 상품의 사업 확장이나 전략적인 제휴 개발은 중요치 않았다. 사랑에 빠지면 자신의 모든 것을 오직 한 사람에게 조준하고 그 틀에서만 움직였다. 미국 순회공연을 하던 중 에디트는 다른 순회공연을 하던 프랑스 샹송가수 자크 필스(1914~1970)를 만나 또 다른 사랑에 빠지며 뉴욕에서 첫 번째 결혼을 한다. 타의추종을 불허한 샹송의 여왕 에디트의 영향 덕에 자크는 미국 내 인지도를 높였고 성공가도를 달린다. 두 사람은 음악 안에서 감미로운 사랑을 확인하지만, 역시나 다정한 사랑의 속삭임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사실, 에디트는 평상시에도 다소 경박할 정도로 언행이 직설적이었고 감정기복이 심했지만 교통사고로 인한 약물 과다복용으로 주변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결국 피폐한 몸으로 재활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되었다. 자크는 에디트의 병적인 히스테리를 참지 못하고 결혼 4년 만인 1956년에 결혼생활을 끝냈다. 혼자 남게 된 에디트는 술과 약물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는데, 이때 그의 건강도 급격히 나빠진다. 자신의 외할머니와 어머니처럼 알코올중독에 모르핀 상습복용까지 겹쳐 자신의 나이보다 훨씬 늙어보였고, 점차 머리도 빠지게 되면서 완전히 웃음을 잃게 된다.

나란히 묻힌 ‘21세 연하남’ 테오파니스

생전 에디트는 “노래를 못하면 살아갈 수 없고, 죽음보다 외로움이 더 무섭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관객 앞에서 노래를 못하게 되는 순간이 자신이 죽는 순간이란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외로운 성장환경 탓에 사랑을 갈구했던 에디트는 무대 위에서 노래로 연기하며 사랑에 대한 고통과 슬픔을 치유받았지만, 공연 중 쓰러지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라이브 공연을 할 수 없게 된다.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1961년 어느 날, 마지막 사랑이 찾아왔다. 25세의 잘생긴 이발사였던 테오파니스 람부카스(1936~1970)는 노래를 하고 싶었고, 에디트는 그를 기꺼이 제자로 받아들였다. 테오파니스의 가능성을 발견한 그는 그리스어로 ‘사랑하고 있다’는 의미인 ‘사라보’라는 예명을 지어주었다. 테오는 아프고 지친 에디트를 진심으로 보살폈다.

그러나 에디트와 21세 연하남의 만남을 호의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아들뻘’ 남자를 유혹한 늙은 여우라며 손가락질하거나 에디트의 명성을 이용한 결혼이라고 입방아를 찧었다. 결국 에디트는 1년간의 마지막 결혼생활을 끝내고 생을 마감했다. 테오 역시 에디트가 떠난 지 7년째 되던 해에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에디트가 묻힌 파리의 페르 라세즈 묘지에서 에디트 옆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마지막 남편 테오. 어쩌면 에디트는 죽어서나마 열정적으로 부르짖던 영원한 사랑을 실현한 게 아닐까.

에디트 피아프의 48년간 생애는 이미 여러 편의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었는데, 특히 2007년 영화 ‘장밋빛 인생’은 많은 이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연극 ‘에디트’, 창작 뮤지컬 ‘빠담 빠담 빠담’, 발레 뮤지컬 ‘사랑의 찬가’에 이르기까지 ‘작은 참새’ 에디트의 인생에 깃든 노래와 사랑 이야기는 지금도 무대에 오른다. 에디트의 일생과 그가 절규했던 노랫말은 사람들의 가슴 깊숙이 숨겨두었던 감정을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사랑의 묘약’일지도 모르겠다.

신동아 201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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