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부담금은 이처럼 줄어든 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병의원에 지불해야 할 보험자부담금, 즉 보험급여 수가는 대폭 늘어났다. 포괄수가제가 되면서 보험자부담금이 지불 총액 평균 기준으로 34.5%나 인상됐다. 복지부는 이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에 추가 투입돼야 할 돈이 198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보험급여 수가가 이처럼 늘어난 이유는 환자가 내야 할 비급여 항목 중 20%를 공단이 책임지기로 한 데다 물가상승률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보험급여 인상분도 환자부담금처럼 수술마다 차이가 크다. 자궁적출술이 46.4% 인상된 데 반해 백내장수술은 0.4% 인상에 그쳤다. 제왕절개술 40.0%, 맹장수술 24.4%, 편도수술 17%, 치질수술 15.1%, 탈장수술 8.7% 순이다.
환자부담금이 줄어든 것보다 보험자부담금 증가폭이 크다보니 7개 수술에 대해 각 의료기관이 받아가는 총 진료비(총수가=환자부담금+건강보험부담금) 평균은 오히려 18% 늘었다. 복지부의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병의원 측도 손해 볼 게 없다. 문제는 환자부담금이 크게 내린 데 반해 보험자부담금, 즉 보험급여가 그만큼 오르지 않은 백내장수술과 탈장수술이다. 자궁적출술(25%), 제왕절개술(19%), 맹장수술(16%), 편도수술(10%), 항문수술(7.48%) 순으로 총 진료비(총수가)가 증가한 반면, 백내장수술은 오히려 6.0% 줄었고, 탈장수술은 0.98% 감소했다. 복지부는 포괄수가제와 행위별수가제로 각각 치료받았을 때의 차이를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산모 이모 씨는 A 병원에서 제왕절개수술로 아이를 낳고 일주일간 입원해 있었다. 입원료, 식대, 마취료, 수술료 등 총 170만 원의 진료비가 발생했고, 그중 환자부담금으로 75만 원을 지불했다. 하지만 같은 시기 B 병원에서 제왕절개수술을 받은 친구 김모 씨는 총 진료비가 150만 원밖에 발생하지 않은 데다 본인이 낸 진료비는 27만 원에 불과했다.
왜 이런 차이가 일어났을까. 이 씨가 입원한 병원은 행위별수가제를 적용하는 병원인데 반해 친구 김 씨가 찾은 병원은 포괄수가제를 선택한 병원이었기 때문이다. 포괄수가제가 적용된 김 씨의 경우는 대부분의 보험 비급여 항목이 급여로 적용돼 환자부담금이 대폭 줄어들어 있었다. 더욱이 영수증을 서로 비교해보니 이 씨의 영수증에 영양제, 빈혈제 등이 비급여 항목(환자부담금)으로 잡혀 있었다.
정부, 환자는 대환영
복지부는 포괄수가제를 전면 실시하면 진료비 거품이 없어지면서 환자 측이 물어야 하는 진료비 부담이 확 줄고 항생제 오남용과 과잉검사를 줄여 환자의 건강권도 담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리베이트 관행도 일부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환자나 가족은 병원비 예측이 가능해져 가계지출 계획을 세우는 데 좋고, 병의원도 꼭 필요한 진료만 하게 됨은 물론, 들인 비용에 비해 효과가 좋은 재료나 서비스를 선택함으로써 그만큼 이익을 늘릴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렇게 되면 병원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진료비의 적정성을 두고 서로 감정 상하도록 싸우는 일도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는 게 복지부의 생각이다.
복지부의 설명대로 된다면 의료소비자인 환자 측에선 포괄수가제가 전혀 나쁠 게 없다.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 당장 줄고 의료비 지출을 예상할 수 있으며 바가지요금까지 막을 수 있다니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다. 거기다 건강권까지 담보된다니 더욱 좋다. 정부도 대환영이다. 환자부담금이 줄면 전체 의료비 지출이 줄고 과잉진료에 따른 급여누수를 막아 시일이 흐르면 보험재정 안정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포괄수가제를 실시하면 1년 후 의료비 지출을 가늠할 수 있어 정책대응이 쉬워진다. 이와 관련해 2009년 충북대와 서울대산학협력단이 그동안 포괄수가제를 선택해온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만족도를 설문조사한 결과, 만족 또는 매우 만족한다는 답변이 96%에 달했다. 행위별수가제는 87%였다.
그런데 5월 1일 새롭게 출범한 제37대 의협(회장 노환규)은 이미 2월 15일 전임 집행부가 포괄수가제 전면 실시를 합의한 건정심에 참여했음에도 뒤늦게 건정심의 위원 구성을 문제 삼아 “의협은 포괄수가제에 합의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27명의 위원 중 의사단체를 대변하는 사람이 3명밖에 없어, 반대를 했으나 수적 우세에 밀려 잘못된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결국 의협은 5월 24일 건정심 탈퇴를 선언했다. 건정심은 못 믿겠으니 장외에서 실력행사를 하면서 국민과 직접 대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의사 양심 빼앗고 부작용 속출”
의협이 포괄수가제를 반대하며 내세우는 가장 큰 이유는 의료의 질 저하와 의사와 환자의 선택권 무시, 신기술의 발전 저해 등이다. 즉 복지부의 총 진료비 인상률로는 정상적인 치료행위를 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의협은 “포괄수가제로 총 진료비를 고정시키면 의사들은 재료비와 검사료, 치료비를 아끼기 위해 노력하고 환자가 퇴원하기에 아직 불안한 상태인데도 조기퇴원을 강요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필요한 검사나 치료를 생략할 수도 있고, 싸구려 의료품을 사용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도 덧붙인다.
더욱이 “신기술이 개발돼도 사용할 수 없으며 진료비를 많이 내더라도 좀 더 쾌적하고 통증이 적으며 미용적인 방식의 고급 수술을 원하는 환자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게 의협의 호소다. 의협은 포괄수가제를 “국민을 실험용 쥐로 만들고 의사에겐 전문가적 선택권을 빼앗아가며 양심을 팔아먹게 하는 제도”라고 비판한다. 다음은 의협이 포괄수가제가 전면 실시될 경우 과별로 일어날 수 있다고 밝힌 부작용 사례다.
안과의 백내장 수술(총 진료비 -6%) : 최근에 개발된 인공수정체 대신 10년 전 쓰던 인공수정체를 삽입함으로써 수술할 때 절개해야 할 부위가 커진다. 따라서 입원 일수가 증가하고 환자의 사회복귀가 지연될 수 있다. 원가 보상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서 최신 재료를 사용해 수술의 질을 높이고 입원 일수를 줄일 필요가 없다. 또한 수술 절개 부위를 작게 하기 위해선 고가의 정밀기계를 사용해야 하지만 대도시 이외 지역이나 수술 건수가 많지 않은 곳은 수술 자체를 포기하거나 예전 방식으로 절개 부위를 크게 할 수밖에 없다.
산부인과 제왕절개술(+19%) : 수술 중 간혹 과다출혈 상황이 발생하는데 자궁을 보존하면서 지혈을 하려면 풍선확장술이나 자궁동맥색전술을 사용해야 하지만 병원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하에선 아예 자궁 자체를 들어내버리는 소극적 진료밖에 할 수 없다.
산부인과 자궁부속기 수술(+25%) : 복강경(수술도구가 달려 있는 일종의 내시경)으로 배에 작은 구멍을 내고 자궁근종만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 하지만 비싼 재료가 많이 들어가 아예 배를 절개하는 수술을 하거나 자궁 전체를 들어내는 수술이 진행될 가능성이 커진다. 난소에 난 혹을 제거할 때도 혹만 제거해야 하지만 비싼 재료 문제로 난소 전체를 제거하는 수술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또한 장기끼리 들러붙는 유착을 방지하기 위해 유착방지제를 써야 하지만 비용 문제로 사용을 꺼리게 된다.
이비인후과의 편도수술(+10%) : 비용절감을 위해 전신마취보다 국소마취를 하는 경우가 증가하는 데다 진통제 사용을 줄여 환자의 통증이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출혈이 없으면 당일 퇴원을 시켜 수술 후 환자의 불편과 통증은 더욱 커진다. 코블레이터 편도 절제술과 같은 신의료 기술이 사장될 우려도 있다
시민단체 “이러고도 의사 양심 운운?”
의협은 포괄수가제를 일정한 돈을 내고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뷔페식당에 비유하면서 “좋은 재료를 사용해 맛있는 음식을 내놓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비용을 들여야 하는데 원가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으면 좋은 재료와 기술을 사용할 수 없고 결국 요리는 맛이 없어져 뷔페식당은 망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복지부와 의협이 의료 서비스 질 하락을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의협이 수술 거부라는 극단적 처방을 들고 나온 궁극적 이유는 결국 ‘돈 문제’다. 복지부가 전체적으로 인상됐다고 발표한 총 진료비, 즉 총수가가 행위별수가제하에서 의사들의 주머니에 들어왔던 실제 수입보다 터무니없이 적다는 항변인 것이다. 안과의사회가 유독 따로 성명을 내고 수술 거부를 최초로 발표하는 등 포괄수가제에 극렬 반대하고 나서는 이유도 결국 다른 수술의 총수가가 오른 데 반해 백내장만 유독 총수가가 6% 줄어든 게 결정타였다. 그래서 일부 의사들 사이에서는 “복지부가 총수가를 조금이라도 더 인상해주면 이 지루한 공방은 금세 끝이 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복지부는 “이미 건정심의 합의가 있었고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6월 5일)했기 때문에 올해 내 추가 인상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