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7월 31일 한국야쿠르트가 신제품 ‘헬리코박터 프로젝트 윌’을 내놓았다는 소식을 전하는 한 일간지 기사의 첫 문장이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란 위염, 위궤양, 위선암, 위림프종 등을 유발하는 세균이다. 술잔을 돌려 마시거나 찌개 등을 함께 나눠 먹는 습관 때문에 한국인의 70%가 헬리코박터균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야쿠르트는 2000년 이름도 생소한 이 세균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유산균 음료를 출시했다. 헬리코박터 프로젝트 윌은 출시 2주 만에 하루 30만 개씩 팔리는 대박을 터뜨렸고 10여 년 동안 하루 70만 개씩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 윌이 유산균 업계의 전설적인 메가 히트 브랜드가 된 비결은 무엇일까?
시대적 배경과 맞아떨어진 출시
브랜드 윌의 가장 큰 성공 비결은 시장 내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는 점이다. 1990년대부터 식생활이 서구화되면서 육류 소비가 많아졌고 변비라는 질병이 일반화됐다.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왜 세균을 돈 주고 사 먹느냐”며 유산균 음료를 믿지 않던 사람들도 1990년대 들어 유산균 음료를 일상적으로 접하게 됐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유산균 음료 기능은 장 건강과 변비 예방 위주였다. 1995년 고급 발효유시장의 문이 열렸지만, 그 역시 장 건강 위주였다.
2000년 출시된 윌은 ‘발효유는 장에 좋다’는 상식을 깨고, 처음으로 장이 아닌 위에 초점을 맞춘 브랜드다. 이미 경쟁이 치열한 레드 오션에 뛰어들기보다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것.
윌과 같이 개척정신을 발휘한 아이템이 시장에서 성공했을 때, 그 성과는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과일, 채소 등 몸에 좋은 식품으로 화장품을 만든 화장품 브랜드 스킨푸드나, 진짜 바나나우유는 본래 노란 게 아니라 하얗다는 개념을 도입해 ‘하얀 바나나우유’ 시장을 연 매일유업의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 등도 마찬가지다.
한편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은 1982년 처음 발견되었지만 이후 국내에서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한국야쿠르트에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였다. 1976년 세워진 중앙연구소는 30여 년간 유산균과 기능성 음료 연구에 힘써 ‘한국야쿠르트 성장의 원동력’이라고도 불린다. 그 연구소에서 아기 돼지의 설사를 막는 사료를 개발하던 중 우연히 헬리코박터균의 운동을 저해하는 항체를 발견했다.
마침 1990년대 국내에서 헬리코박터균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높아진 것도 윌 출시와 맞아떨어진 호재였다. 1994년 세계보건기구(WHO)의 하부조직인 국제 암 연구기관(JARC)에서 헬리코박터균에 대해 직접적으로 암을 유발하는 ‘확실한 발암인자’라고 선언했고 몇몇 언론보도를 통해 우리나라는 맵고 짜게 먹는 식습관 때문에 이 균의 서식률이 매우 높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1998년 우리나라 성인의 사망원인 중 위암이 가장 비중이 큰 것으로 발표됐는데 위암의 주요 발병 원인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라는 사실이 덩달아 보도됐다. 이런 시대적 배경 때문에 헬리코박터균을 잡는 유산균에 대한 관심 및 수요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야쿠르트 이정열 마케팅 팀장은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라도 시대가 받아들이지 않아 성공 못하는 브랜드도 많다. 그런데 윌의 성공에는 시대적 배경과 기술적 밑바탕이 딱 맞아떨어졌다. 브랜드로서 아주 운이 좋았다”라고 평했다.
‘게부랄티’ 떠오르게 하는 네모 용기
윌은 물론 기능을 중시하는 기능성 음료지만, 기본적으로 맛 역시 중요하다. ‘헬리코박터균을 잡는 윌’이 음료로서 어떤 맛을 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한국야쿠르트는 당시 서울 광화문 등지 고깃집에서 누룽지맛 사탕이 유행하는 것에 주목했다. 윌의 주요 타깃인 40~50대가 달달하고 담백한 맛을 좋아한다는 힌트를 얻은 것. 또한 위염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끝에 속이 쓰릴 때 시큼한 맛이 넘어오는 것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를 통해 한국 사람들이 속을 다스릴 때 자주 쓰는 매실, 배의 맛을 넣어 상큼하면서도 누룽지맛과 유사하게 부드럽고 달짝지근한 맛을 만들었다.
윌은 어른 손가락 하나 높이의 사각 용기에 담겨 있다. 국내 유산균 음료 중 처음으로 사각형 용기를 택한 것. 여기에도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 팀장의 얘기다.
“출시 전에는 삼각형, 사각형, 요구르트병 등 다양한 용기 후보 샘플이 있었어요. 저희 아버지가 미군부대에서 일하셨기 때문에 ‘게브랄티’를 자주 봤거든요. 샘플 중 갈색 사각형 병은 게브랄티와 매우 비슷한 거예요. 1970년대를 살았던 한국 사람들은 게브랄티를 다 보약으로 알고 있어요. 어려서 게브랄티를 본 사람들이 윌이 출시된 2000년대에는 40대 이상중장년층이 우리 제품의 주요 타깃이 된 거죠. 그 세대가 이 네모난 용기에 든 음료를 한번쯤 먹어보고 싶어 할 거라 확신했어요.”
당시 생산 라인에서는 처음 네모난 용기를 시도하는 것이라 불만이 많았지만 결국 사각형의 용기는 고급스러운 느낌을 줘 많은 인기를 얻었다.
‘헬리코박터 프로젝트 윌’이라는 브랜드 작명 과정에서도 어려움이 있었다. 처음 브랜드명은 일단 ‘위를 위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윌이라고 지었다. 그런데 영문으로 ‘will’은 의지를 뜻하기도 하지만 유언장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고민 끝에 ‘위를 위한 발효유 윌’이라는 브랜드명을 정했지만 당시 식품 판매 허가를 내주는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위를 위한 발효유 윌이라고 하면 위장약으로 인식될 수 있다”며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결국 ‘헬리코박터균을 잡는 윌’이라는 의미에서 ‘헬리코박터 프로젝트 윌’이라는 브랜드명을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