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삼국 말기의 궁예도 비슷한 경우다. 한반도 통일을 꿈꾸었던 그도 시대가 따라주지 않음을 개탄하며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강원 영월군 영월읍 흥교리 일대는 궁예의 피눈물이 서린 곳이다. 일찍이 세네카가 말하지 않았던가. 운명에 순응하는 자, 운명의 신이 황금수레에 태워 고이 모셔 간다. 운명을 거역하는 자, 수레바퀴 뒤편에 묶어 끌고 간다.
영월에 위치한 세달사지(址)는 행정구역으로 영월읍 흥교리에 속한다. 영월읍에서 남으로 난 길을 타고 서강을 건너면 버스 종점이 나온다. 여기서 ㄹ자 좁은 도로를 타고 굽이굽이 한참 올라가다보면 놀랍게도 탁 트인 벌판을 만나게 된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신기루 같은 일이다. 마을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고갯길을 돌면 어느 순간 널따란 들판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지질학적으로 말하자면 플래토(plateau), 즉 해발 500m 선상의 넓은 고원이다.
게다가 들판은 평지처럼 완만해 산 정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마치 무릉도원처럼 숨어 있다 ‘짠’하고 등장하는 마을이 바로 흥교리다. 마을을 둘러싼 높은 산들이 마치 대나무 소쿠리처럼 동네를 푸욱 감싸 안고 있다. 영월초등학교 흥교 분교는 마을 중앙에 자리한다. 깊은 산속이어서 그렇겠지만 너무나 고요하고 적막해 세상의 어떤 소란함도, 무서운 전쟁도 비껴갈 것 같은 안온함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궁예가 이곳에서 통일의 꿈을 키운 것일까.
그러나 이 천혜의 땅에서 웅지를 키우던 궁예도 결국은 비운의 삶을 살다 간 셈이니 나는 자꾸만 산세와 마을 전체를 둘러보고 또 둘러보게 됐다. 굳이 그 이유를 붙여본다면 흥교를 빙 둘러싼 채 방패 역할을 해주는 산 기운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배산임수(背山臨水)라는 것밖에 모르는 아마추어 풍수가의 무모함이라고나 할까. 얄팍한 내 내공으로는 짐작도 못하겠지만 흥교 땅이 워낙 근사해 보인 탓에 궁예의 파란만장한 삶과 견주어보고 싶었다.

폐교된 영월초등학교 흥교 분교.
지금은 폐교된 영월초등학교 흥교 분교는 화전민이 넘치던 그 옛날에는 학생수가 150명이 넘는, 강원도에서 제법 규모가 큰 분교였다. 화전 경작이 금지된 이후 시름시름 학생이 줄어 지난 1998년 폐교되고 남루하게 버려졌다. 여름 한철 누군가가 임차해 사용했다는 분교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단풍나무 한 그루가 가을볕에 제 몸을 스스로 붉게 불태우고 있다. 뒤편 공터에는 여름밤을 취하게 했던 수많은 소주병과 고기를 구워 먹던 이글대던 불판들이 낙엽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그 가운데로 살이 오른 갈색 뱀 두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
여행의 목적이 각기 다르고 감회 또한 다르지만 폐교를 둘러보는 일은 쓸쓸하기 그지없다. 깊은 산골 출신인 나는 한순간 야릇한 비애를 느끼게 된다. 삶이 결코 행복하지도 풍요롭지도 않았던 유년 시절의 기억이 겹쳐지면서 묘한 슬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절대 오지가 최근 들어 주목을 받는 것은 어느 날 귀한 기왓장들이 발굴되면서부터다. 이곳이 바로 궁예가 도를 닦던 세달사지로 확인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고원 지대인 흥교마을에는 열두 가구가 오순도순 살고 있다. 고랭지 채소를 가꾸는 토박이는 몇 안 된다. 이른바 산자수명한 곳을 찾아온 대처 사람들이 사는 그림 같은 집들이 서너 채 풍경 속에 잡힌다.

담배건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