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감적인 몸매보다는 연기력으로 인정받고자 했던 배우 안소영.
세상이 변하면서 직업을 가진 여성이 늘어났고, 영화는 그들에게서 소재를 찾았다. 호스티스나 창녀, 여대생, 현지처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고, 때마침 흥행이 보장되는 여배우 세 명이 등장했다. 장미희, 정윤희, 유지인이 그들이다. 이 세 명의 여배우와 그들의 자리를 노리는 신인 여배우들이 카메라 앞에서 옷을 벗어야 했다. 아직 그렇게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검열의 가위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영화 속 여배우들은 속이 비치는 얇은 옷에 노브라 차림으로 연기했고,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쏟아지는 폭우를 맞으며 어디론가 달려갔다. 언제나 하얀 속옷 차림이거나, 하얀 잠옷 차림, 또는 얇은 하얀 옷차림이었다. 남성 관객들은 비에 흠뻑 젖어 사시나무처럼 떠는 그녀들의 영화 속 감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젖은 옷이 딱 달라붙어 훤히 비치는 가슴만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렇게 야금야금, 찔끔찔끔거리다 마침내 1982년 ‘애마부인’의 개봉으로 서슴없이 여배우의 가슴 노출을 선전하고, 여배우의 가슴 크기로 영화를 광고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애마부인’은 1970년대 중반 에로티시즘을 표방하며 프랑스에서 개봉한 쥐스트 자캥 감독, 실비아 크리스탈 주연의 에로티시즘 영화 ‘엠마누엘 부인’(1974)을 비롯해 ‘O양의 이야기’(쥐스트 자캥 감독, 1975), ‘채털리 부인의 사랑’(쥐스트 자캥 감독, 1981) ‘빌리티스’(데이비드 해밀튼 감독, 1977) 등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여배우의 옷을 벗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적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애쓴다는 나름의 예술관을 표방한다. 그것이 바로 영상미이며 에로티시즘의 미학이다. 하지만 영화적 표현이라고 하기에는 치졸한 수준의 포그 필터, 과도하게 관능적인 음악 등을 사용한 게 전부였다.
육체파 배우의 등장

1960~70년대에도 관능적인 매력을 지닌 여배우들이 있긴 했다. 최지희, 오수미, 문숙 같은 이들인데, 당시엔 그들의 매력을 표현할 방법이 별로 없었던지 ‘이국적인 마스크’라고 선전되곤 했다. 그들은 동양적으로 아름다운 미인의 얼굴을 선호하는 당시 남성 관객의 취향 때문에 주연보다는 도발적인 성격의 조연에 머물렀고, 비슷한 얼굴이던 염복순의 경우 영화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단명하고 말았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다. 전형적인 동양 미인의 얼굴이 아닌 안소영, 오수비, 염혜리 같은 배우가 육체로 승부를 걸었고, 영화제작자들은 그들의 육체로 관객을 설득한 것이다.
‘애마부인’의 여주인공은 언제나 정숙한 유부녀다. 남편의 외도와 무관심 속에 ‘내가 왜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가’ 고민하며 침묵하고 인내하는 여성이다. 그런데 주변 사회가 바뀐다. 여성이라고 해도 언제까지나 남편이 자신의 성욕을 해결해주기만 기다릴 수는 없고, 수동적인 자세로 성욕을 억제하며 살 수는 없게 된 것이다. 남자들이 자신의 성욕을 밖에서 발산하고 다니는 동안, 참고 참았던 부인의 성욕이 폭발한다. 폭발의 도화선은 언제나 남편의 외도가 들키는 시점이다. “네가 한다면 나도 한다.”
애마부인 안소영은 가슴 큰 여배우로 성공을 했다. 그리고 그가 출연한 모든 영화는 가슴으로 홍보됐다. 두 번째 영화 ‘탄야’(노세한 감독, 1982) 역시 포스터와 내용 모두 ‘애마부인’과 비슷했다. ‘애마부인’이 성공한 그해 안소영은 ‘불바람’(김수형 감독, 1982) ‘암사슴’(김수형 감독, 1982) 같은 ‘애마부인’의 아류작에도 출연했다. 그리고 ‘산딸기’(김수형 감독, 1982)에서는 현대 여성이 아닌 시골 처녀로 등장해 향토 에로물 시리즈의 시대를 연다.
당시 현대 여성의 애욕을 다룬 영화의 다른 편에는 일제강점기 또는 조선시대 농촌 또는 산골을 배경으로 여성의 애욕을 그리는 시대물이 있었다.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 그런 영화들이 붐을 이루기 시작한다. 문여송 감독의 ‘처녀의 성’(1977)은 당시 신인이던 김영란을 주연으로 내세웠고, 정진우 감독은 정윤희 주연의 향토 에로물을 만들었다. 이두용 감독의 ‘뽕’(1985)은 최고의 흥행작이 됐고, 현대 에로물에는 담을 수 없는 고금소총류의 해학이 담긴 이런 영화들은 ‘변강쇠’(엄종선 감독, 1986)에 가서 정점을 찍었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현대 에로물과 함께 비디오 시장의 양대 산맥으로 에로 비디오의 시대를 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