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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뛴 사진 120만 장 모아 한국미술사연구 집대성할 것”

‘문화재 발굴 60년’ 정영호 단국대 박물관장

  • 신성미│동아일보 기자 savoring@donga.com

“발로 뛴 사진 120만 장 모아 한국미술사연구 집대성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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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도자기, 회화, 불상, 석물 등 문화재를 수집하면 반드시 그 출처를 밝혀내는 꼼꼼한 분이셨어요. 특히 문화재를 아끼는 마음이 대단하셨습니다. 고려청자 같은 귀한 물건은 물론이고 술잔을 받을 때도 한 손으로 드는 모습을 보지 못했어요. 반드시 두 손으로 정성스럽게 들었지요. 그러니 대단한 수장가가 될 수밖에요.”

그는 “문화재를 ‘내 것’이라 생각하면 소중히 여기게 되고, 소중히 여기면 문화재는 영원히 보존될 수 있다”며 독자들에게도 문화재에 대한 애정을 당부했다.

정 관장이 발굴한 국보 및 보물만 해도 수십 점이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단양신라적성비(국보 제198호)와 중원고구려비(국보 제205호)다. 1978년 1월 충북 단양군의 성재산 산성에서 학생들과 답사를 하다 신발 바닥에 묻은 흙을 돌에 대고 털어내려 했다. 뭔가 글자가 보이는 것 같아 쌓인 눈을 털어내고 보니 글자는 더욱 선명해졌다. 신라의 관직을 가리키는 단어였다. 이것이 바로 6세기 신라가 고구려의 영역이던 단양을 점령한 뒤 진흥왕이 세운 비석이다.

신발 흙 털다 발견한 단양적성비

1979년 4월에는 충북 충주의 입석마을에 서 있던 비석이 실은 5세기 고구려 장수왕 때 고구려의 남하정책을 기념해 세운 중원고구려비임을 새롭게 밝혀냈다. 예부터 마을 어귀에 서 있던 비석이지만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아 마을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선돌로만 여겨왔다. 이것을 비범하게 본 정 관장이 이끼를 제거하고 빛을 비추어 글자를 판독해 고구려의 접경비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정 관장은 문화재 발굴 인생 60년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문화재로 강원 양양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진전사(陳田寺) 터를 꼽았다. 그는 1965년 이곳에서 ‘진전사’라고 쓰인 기와를 줍고, 쓰러진 부도(浮屠·보물 제439호)와 석탑(국보 제122호)을 발굴해 복원했다. 부도란 고승의 사리를 안치한 탑으로, 특히 이 부도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도라는 의미가 있다.

“진전사는 통일신라 때 당에서 선종을 들여온 승려이자 조계종의 종조(宗祖)인 도의국사가 창건한 절입니다. 도의국사는 이곳에서 40년을 보내고 입적하셨지요. 조계종의 종찰을 발굴했다는 데 큰 보람을 느낍니다.”

양양의 문화유산 보존에 기여한 공로로 정 관장은 양양의 명예군민으로 위촉됐다.

정 관장은 매달 한 차례 일본 쓰시마(對馬島)를 찾는다. 그는 1977년부터 지금까지 쓰시마를 방문한 횟수가 169차례라는 사실을 정확히 세고 있을 정도로 쓰시마에 애정이 깊다. 그가 쓰시마와 인연을 맺은 것은 단국대 사학과 교수 시절인 1977년 국사 개론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구한말 애국지사로서 의병을 일으키려다 일본에 누설돼 쓰시마에 끌려갔다가 순국한 면암 최익현 선생(1833~1906)에 대한 이야기로 수업을 마쳤다. 면암 선생이 죽기 직전 6개월간 대마도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상태였다. 한 학생이 “교수님은 여기저기 답사를 많이 하셨는데 쓰시마에는 가보셨습니까?”하고 물었다. 못 가봤다고 하자 “면암 선생의 사적을 밝히려면 교수님께서 다녀오셔야지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가 처음 쓰시마에 갔을 때 현지 주민은 아무도 면암을 몰랐다. 막막한 상황이었지만 쓰시마의 향토사학자 나가도메 히사에(永留久惠) 선생과 만나 많은 도움을 얻게 되었다. 황수영 전 총장은 좋은 일이라고 칭찬하며 “쓰시마에 왜 면암뿐이겠느냐. 대마도는 조선통신사를 비롯해 한국인과의 교류가 많았으니 함께 연구해보자”고 했다. 쓰시마는 일본 본토보다 부산과 더 가까워 예부터 쓰시마 주민들은 한국에 관심이 많았고 한국과 교류도 잦았다.

이에 정 관장과 황수영 전 총장은 일본인 전문가들과 함께 쓰시마한국선현현창회를 만들어 쓰시마를 거쳐 간 우리 선현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우기로 했다. 쓰시마를 배경으로 펼쳐진 역사적 사실을 왜곡 없이 바르게 후세에 전함으로써 한일 친선교류에 기여하기 위해서였다. 1986년 ‘대한인 최익현 선생 순국비’를 시작으로 백제 왕인 박사, 조선통신사, 신라국사 박제상 등 대마도를 거쳐 간 선현을 기리는 기념비 10개를 지난해까지 세웠다. 처음에는 정 관장과 황수영 전 총장이 주머니를 털어 기념비를 세웠다. 정 관장은 오피스텔까지 팔았다. 이후에도 친지들과 제자들, 사찰 등에서 성금을 모아 기념비를 건립해왔다. 비석을 세우는 데서 끝나지 않고 1년에 2차례씩 기념비 10개를 도는 의식을 치른다.

한일교류사 연구에 큰 공로

2004년 쓰시마 주민은 한일 교류사 연구와 친선에 애써온 정 관장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성금을 모아 기념비를 건립했다. 정 관장은 현재 쓰시마 시 자문대사이기도 하다.

정 관장은 지금도 서울 청량리 자택에서 경기 용인의 박물관까지 지하철로 출퇴근한다. 팔순이 다 되었지만 여전히 국내외를 누비며 답사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만주 지역인 중국 랴오닝(遼寧) 지린(吉林) 헤이룽장(黑龍江)성 등 동북 3성과 네이멍구(內蒙古), 러시아 연해주 지역을 다니며 발해 유적을 연구 중이다.

기자와 처음 만난 것도 2012년 10월 러시아에서였다.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고려학술문화재단의 주최로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국사학자였던 산운 장도빈 선생(1888~1963)을 기리는 기념비 제막식이 열렸다. 이를 비롯해 블라디보스토크 연방극동대에서 발해 학술회의에 참석하고 연해주 발해 유적을 답사했다. 3박4일의 빡빡한 일정에도 정 관장은 일행에게 특유의 시원하고 명료한 말투로 유적을 해설해주었다. 젊은 시절부터 럭비와 레슬링으로 체력을 다졌고 답사를 위해 전국을 발로 뛴 덕분이다. 자동차가 흔치 않던 시절에는 5만분의 1 지도를 들고 내려가 답사지에서 수십 리를 걷기 일쑤였다. 하루 종일 160리(약 63km)를 걸은 날도 있었다고 한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활기찬 미소부터 내비쳤다.

“그동안 국내외를 답사하며 찍은 흑백사진이 100만 컷, 컬러 슬라이드가 20만 컷에 달합니다. 이 사진들을 정리하고 연구 결과를 집대성해 ‘한국미술사연구’라는 제목으로 10권 분량의 저서를 내는 게 목표입니다.”

신동아 201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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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미│동아일보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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