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 좀 더 나은 삶을 바란다면 각오하고 바뀔 준비를 하라, 매 순간 최선을 다하라. 그리고 건강해라.”
한국 투자은행(IB) 업계 1세대인 윤경희 맥쿼리증권 회장(66)은 ‘영원한 현역’이다. IB업계에선 50대 초반이면 현역에서 떠나는 게 일반적인 일이지만 60대 중반인 윤 회장은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한다. 그의 주요 역할은 기업의 인수합병(M·A) 자문.
2012년에도 그는 여러 건의 대규모 거래를 성사시켰다. 대우인터내셔널의 교보생명 지분 24% 매매, SK텔레콤의 하이닉스 인수도 그의 작품이다. SK텔레콤의 인수액은 3조4000억 원대로 2012년 M·A 가운데 가장 큰 거래 중 하나였다.
2012년 11월 30일 오전 10시경 경기 광주시 곤지암 컨트리클럽에서 윤 회장과 라운드를 함께 했다. 영하의 날씨가 이어지고, 아침 안개가 걷히지 않아 티오프 시간이 조금 지체됐다. 코스 주변엔 잎들을 털어낸 나무들과 억새, 적송이 겨울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파5, 1번 홀에서 티샷하기 전에 그가 기자에게 물었다.
“올해 나이가 몇인가요?”
우리 나이로 마흔여덟이라 하자 그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 번졌다.
“아주 좋을 때군요. 아직도 창창한 나이니.”
대부분의 마흔여덟 중년은 이 말에 “네?”라고 되받을지 모른다. 오십을 바라보고, 육체도 조금씩 시들고 있음을 느끼는 사람들. 그가 다시 덕담을 했다.
“모든 일에는 늦을 수는 있어도 너무 늦은 시기는 없습니다. 각오하고 바뀔 준비를 하세요. 시작하려는 그 시점이 가장 빠른 때입니다. 그리고 성공하는 습관을 기르십시오. 그것을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하십시오.”
‘굿히트(Good hit).’ 그의 드라이버샷은 장타는 아니었지만 깔끔했다. 공은 페어웨이 왼쪽에 예쁘게 앉았다. 세컨드, 서드 샷도 힘의 낭비가 없는 압축적 스윙이었다. 스리 온에 10m 퍼팅도 침착하게 마무리해 파 세이브.

윤 회장은 훌륭한 CEO의 조건으로 전문성, 전략적 사고, 솔선수범, 비전 제시와 추진력을 꼽았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였다. 다른 직장을 찾아볼 생각을 하고 있는데, ING베어링은 그에게 서울대표 자리를 제안했다. 회사가 그의 실력을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이후 몇 년간 그는 오히려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포스코, KEPCO, 주택은행 등 주요 기업의 증시 상장을 이끌자 외국계 IB로부터 영입 제의가 잇따랐다.
윤 회장은 5~7번 홀에서 연속 파를 기록하더니 8, 9번 홀에서 연이어 더블보기를 했다. 마음먹은 대로 잘되지 않는 게 골프다. 골프란 겉으로는 비폭력적인 게임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매우 폭력적이라고 골프 교습가 봅 토츠키가 말하지 않았던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놓곤 어느새 화나게 하고, 비참하게 한다. 그러나 윤 회장은 낙심하지 않고 후반에 잘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골프는 잘 안 될수록 서두르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어차피 잘되지 않다가도 다음 홀에서 또 살아나기도 하고, 한두 홀 잘돼도 18홀을 다 돌고 나면 자신의 핸디캡이 그대로 나오는 게 골프입니다. 무리할 일이 아닌 겁니다. 참 정직한 운동입니다.”

버디 퍼팅에 성공하고 환호하는 윤경희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