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슨이 본격적으로 세계적 기업을 일구기 시작한 시점은 괴상한 항공회사를 만들면서부터다. 바로 저비용 항공사의 시초로 평가받는 버진애틀랜틱이다. 그는 이 아이디어를 자신의 여행 중에 얻었다.
1980년대 초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에 가려고 했던 브랜슨은 자신이 타려던 비행기가 취소되자 몇몇 사람과 비행기 한 대를 전세 내기로 했다. 전세 비용은 2000달러(약 230만 원). 당시 이 비행기를 타려던 사람의 숫자로 1인당 비용을 나눠보니 39달러가 나왔다. 우리 돈 약 5만 원에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사실은 비행기 여행이 지금처럼 대중화하지 않은 당시엔 파격 그 자체였다.
브랜슨은 그 자리에서 항공사 설립을 결정했다. 주변 사람들이 “음반회사가 무슨 항공회사를 만든다는 거냐, 반드시 실패한다”고 말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집념과 고집이 1984년 버진애틀랜틱을 탄생시켰다.
사업 초기엔 당연히 어려움이 뒤따랐다. 영국의 국영 항공사 브리티시항공이 워낙 대형 경쟁자인 탓에 비행기 1대로 출발한 버진애틀랜틱은 도저히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많았다. 신규 진입자에 대한 브리티시항공의 방해 공작도 드셌다.
하지만 브랜슨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기존 항공사의 기내 서비스가 엉망이어서 불쾌했던 경험에 착안해 서비스를 대폭 개선했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의심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비디오, 음악, 게임, 목욕, 미용, 안마까지 기내 서비스로 제공했다. 지금은 대다수 항공사가 제공하는 서비스지만 1980년대만 해도 혁신적인 구상이었다.
여객기에 비치한 물품도 최고급이었다. 승객들이 멋진 디자인의 소금통과 후추통을 자꾸 가져가자 브랜슨은 아예 이양념통 바닥에 ‘버진애틀랜틱에서 슬쩍해온 것’이라는 문구를 새겼다. 승객의 도난 행위를 익살스러운 홍보 문구로 바꿔버린 셈이다. 즐거움과 유머, 도전정신으로 사업을 벌이는 그의 인생관이 집약된 행위다.

이후 버진애틀랜틱은 승승장구해 세계적 항공사로 거듭났다. 자신감을 얻은 브랜슨은 2000년 호주에서 버진블루(現 버진오스트레일리아)를 만들어 또다시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유로벨지안항공, SN브뤼셀항공 등과의 합병으로 버진애틀랜틱의 덩치를 더욱 키워낸 브랜슨은 이제 우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올해 3월 브랜슨은 또 한 번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우주여행사 버진갤럭틱의 민간 관광우주선 ‘스페이스십2’가 자체 로켓 엔진으로 첫 우주비행에 성공한 것이다. 스페이스십2는 대형 운반기 화이트나이트2에 실려 고도 1만5000m까지 올라간 뒤 분리에 성공했다. 순식간에 초음속을 돌파해 마하 1.2까지 속도가 올라간 이 우주선은 16초 뒤 고도 1만7000m에 도달했다. 이후 서서히 고도를 낮추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모하비 사막의 비행장에 무사히 착륙했다.
브랜슨은 1969년 TV로 지켜본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장면을 오랫동안 잊지 못하고 자신과 가족의 우주여행을 오랫동안 꿈꿔왔다. 2004년 9월 그는 단순히 자신과 가족의 모험 정도가 아닌 대대적인 우주관광사업 구상을 밝히고 버진갤럭틱을 설립했다. 20여 년 전 버진애틀랜틱을 설립할 때처럼 많은 사람이 황당한 발상이라며 비웃었다. 하지만 브랜슨은 보란 듯이 9년 만에 일반인 우주여행의 꿈을 실현 직전 단계까지 성공시켜 자신을 비판하던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고공에서 우주선 로켓에 점화해 초음속 비행을 한 민간 항공사는 버진갤랙틱이 처음이다. 비용도 1인당 20만 달러(약 2억2000만 원)로 비교적(?) 저렴하다. 기존의 우주비행은 수천만 달러의 비용이 드는 로켓을 지상에서 쏘아 올리는 방식으로 시도됐다. 우주선이 지상에서부터 올라가니 엄청난 비용이 든다. 하지만 브랜슨은 우주관광선을 운반용 항공기에 실어 고도 1만5000m까지 올려보낸 뒤 로켓에 점화해 무중력 상태를 경험할 수 있는 지상 100㎞ 고도의 우주 경계까지 다시 올리는 방식을 채택해 비용을 크게 낮췄다.
스페이스십2는 한 번에 2명의 조종사와 6명의 승객을 싣고 우주 경계에서의 6분간 무중력 상태 경험을 포함한 3시간 비행에 나설 계획이다. 러시아의 우주관광처럼 엄청난 체력 조건과 장기간의 훈련은 필요 없다. 20만 달러의 요금 역시 러시아에서 수개월에 걸친 우주인 훈련을 포함해 받는 우주관광비의 100분의 1 수준이다. 이미 560여 명의 예약자가 2만 달러의 계약금을 내고 예약했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안젤리나 졸리 부부, 애시튼 커처, 톰 행크스 등이 예약자 명단에 포함됐다.
이번 시험비행 성공으로 브랜슨은 내년 상반기 첫 상업 우주관광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우주관광사업이 활성화하면 브랜슨은 세상에 없던 사업을 새롭게 창조해 거대 시장으로 키운 공로자이자 혁신가로 거듭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