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호

전시행정, 예산전용, 중복투자, 정치 입김…혈세 낭비 막아라!

한식 세계화의 허와 실

  • 김지영 기자│kjy@donga.com

    입력2013-07-23 10: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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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윤옥의 한식이야기’는 영부인 화보집?
    • 뉴욕 플래그십 무산은 예견된 일
    • 1차 탈락 과제 10건에 연구비 더 퍼줘
    • 정운천 전 장관, 선거운동 때도 한식재단 월급 받아
    • 농식품부 감사서 수의계약 비리 드러나
    • 대외호감도·인지도 향상? K팝 영향 컸다
    전시행정, 예산전용, 중복투자, 정치 입김…혈세 낭비 막아라!

    김윤옥 여사가 2010년 10월 12일 서울 성북동 한국가구박물관에서 G20 참석 정상 부인들과 오찬을 함께하며 한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식세계화사업은 국민의 호응과 기대 속에서 출발한 이명박 정부의 간판 사업이다. 2008년 10월 한식세계화 선포식 개최를 시작으로 그해 12월 기본계획 수립과 2009년 5월 범정부 차원의 한식세계화추진단(이하 추진단) 출범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가 명예회장을 맡은 추진단은 한식을 2017년까지 세계 5대 음식으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세계화 인프라 구축 △한식 연구개발(R·D) 확대 △전문인력 양성 △기업지원 및 투자활성화 △우리 식문화 홍보 등 정부가 세운 5대 전략과 9대 중점과제에 따라 계획을 실행해 국민의 열망에 부흥하겠다는 의지도 천명했다.

    이때부터 ‘영부인 사업’으로 불리기 시작한 이 사업에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931억여 원의 국민 세금이 투입됐다. 주무부처인 당시 농림수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 現 농림축산식품부)는 기본계획 수립을 비롯해 사업을 총지휘하고,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이하 유통공사)와 한식재단, 농림수산식품기술기획평가원(이하 농기평)은 농식품부의 세부계획을 추진하는 실무를 맡아왔다. 민관합동 정책자문기구인 한식세계화추진단도 함께했다.

    이처럼 조직적인 지원과 1000억 원에 가까운 막대한 예산을 들인 이 사업은 그간의 요란한 홍보에도 불구하고 국고만 축낸 게 아니냐는 빈축을 사고 있다. 감사원이 6월 말 내놓은 ‘한식세계화 지원사업 집행실태’ 감사결과보고서도 여러 사항을 지적했다.

    법정 공고기간 무시

    정부는 올해도 191억여 원의 혈세를 한식세계화사업에 쏟아 붓고 있다. 만일 지난 4년간 거듭된 시행착오가 앞으로도 되풀이된다면 이 사업은 폐업 위기에 몰릴 수도 있다. 막대한 예산에 비해 성과는 미흡했지만 이를 통해 새로운 교훈을 얻어야 할 때다.



    감사원에 따르면 2009~2012년 4년간 한식세계화사업에 들어간 931억여 원의 예산 중 계획대로 쓴 금액은 704억 원(76.6%)뿐이다. 나머지 예산 227억여 원(23.4%) 중 68억여 원은 사업 내용을 바꿔 집행했고, 이듬해로 이월하거나 불용 처리한 금액도 각각 77억여 원, 81억여 원에 달한다. 감사원 관계자는 농식품부가 사업 타당성을 사전에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예산을 편성하거나 당초 사업내용과 다르게 사용하도록 용도 변경을 승인한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해연도에 편성된 예산을 다 못 쓰면 이듬해 예산이 삭감되니까 연말에 남은 예산을 집중적으로 사용하려다보니 사업내용 변경 승인이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농식품부는 사업 집행기관인 한식재단 등이 요청한 내용 변경을 연도 말인 4분기에 대부분 승인했다. 이렇게 해서 사업내용이 변경된 예산이 4년간 약 136억 원. 그럼에도 실제 집행된 예산은 그 절반 수준인 68억여 원에 그쳤다. 당초 세부계획에 없던 사업이 졸속으로 진행되다보니 중도에 엎어지는 등 갖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2010년 말 국회에서 50억 원의 예산을 승인한 ‘뉴욕 플래그십(fiagship) 한식당 개설사업’이 대표적이다. 플래그십은 체험 마케팅 공간을 활용해 특정 브랜드의 이미지와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상징적 홍보용 매장을 말한다. 농식품부에서 수립한 마스터플랜의 주요 내용은 이랬다. ‘민관 공동으로 250억 원을 들여 뉴욕 맨해튼에 있는 110~160석 규모의 식당을 매입한 후 연소득 10만 달러 이상의 고객을 상대로 90달러 내외의 최고급 한정식을 판매한다.’ 그런데 이 사업은 2011년 9월 23일부터 20일간 민간사업자 선정을 위한 공모를 진행한 결과 신청자가 없어 결국 무산됐다. 한식을 통해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는 사업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던 사업이 아무런 후속대책도 없이 흐지부지 끝나버리고 말았다.

    감사원은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제7조에 따라 40일 이상 공고해야 한다는 규정을 무시하고 20일만 공고해 민간사업자가 제반 요건을 충실히 검토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은 점을 사업이 무산된 근본 원인으로 지적했다. 미국 동포사회에서는 이 사업의 실패를 두고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음은 LA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한 교포의 전언이다.

    40억 연구용역의 진실

    “한국 정부가 미국에 고급 한식당을 낸다고 했을 때 그런 발상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았다. 고급 한식당이 들어서면 영세한 한식당들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데 누가 환영하겠나. 민간사업자 선정 공고도 20일밖에 내지 않아 모르고 지나친 사람이 많지만, 알아도 엄두를 못 냈을 것이다. 매장 매입에 대한 위험부담도 큰 데다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100억 원을 선뜻 투자할 사업가가 몇이나 되겠나.”

    그는 “땅값 비싼 뉴욕 중심가에 플래그십을 낼 게 아니라 미국 여러 곳에 한식 홍보관을 만들어 외국인이 한식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꾸준히 관리하면 동포사회로부터도 환영받고 홍보효과도 좋을 것”이라며 “정운천 당시 한식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여러 관계자가 이런 동포사회의 조언을 듣고 갔는데 왜 반영하지 않고 밀어붙였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더 큰 문제는 예산의 편법 전용이다. 농식품부는 뉴욕 플래그십 한식당 개설사업이 무산된 후 민간사업자 모집 공고 등에 들어간 비용 4000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 49억6000만 원을 2011년 11월부터 여섯 차례에 걸쳐 한식 기능성 연구사업비와 한식세계화 사이트 서버 확장 등 콘텐츠 개발비로 집행하게 했다. 다른 해에는 한식세계화 사이트에 2억 원 안팎의 예산을 들였지만 2011년 말 집행된 관련예산은 약 10억 원에 달한다.

    이 사업은 당초 ‘국회 보고 후 추진’이라는 조건을 달고 50억 원의 예산이 책정된 만큼 잔액을 모두 불용 처리하거나, 다른 사업으로 변경하고자 할 때는 형식적으로라도 국회 보고 절차를 거쳤어야 한다. 하지만 농식품부는 국회에 알리지 않고 사업내용 변경을 승인해 잔액 중 35억 원을 2회로 나눠 농기평에서 연구용역에 쓰게 했다. 농기평은 그해 쓰고 남은 예산 5억 원을 여기에 보태 연말에 약 41억 원을 28개 대학의 연구용역비로 집행했다.

    연구사업에 참여할 대학을 선정하는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다. 그해 11월 농식품부로부터 26억 원의 예산 집행통보를 받은 농기평은 공모한 67건의 과제에 대해 서면 평가를 실시한 후 먼저 47건의 과제를 공개평가 발표 대상으로 선정했다. 그런데 12월 중순 농식품부가 한식 연구사업에 15억 원을 추가 집행하게 하자 농기평은 기획은 물론 공모나 서면평가 절차도 없이 먼저 뽑은 과제 47건에 점수를 매겨 성적순에 따라 28건의 지원대상을 최종 확정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원래 점수가 낮아 선정될 수 없었던 10건의 과제가 도리어 먼저 뽑힌 고득점 과제 18건보다 더 많은 연구비를 지원받는 불합리한 결과가 나타났다. 한식에만 쓰는 식재료가 아닌 ‘팥의 대사성 질환 개선 및 기능성 규명’ 등 사업 타당성이 낮은 과제도 더러 눈에 띄었다. 당초 계획과 달리 한식 세계화에 맞게 특화한 지정 과제가 전무한 점도 아쉽다.

    브룩 실즈는 한식 마니아?

    전시행정, 예산전용, 중복투자, 정치 입김…혈세 낭비 막아라!

    2010년 11월 발간된 ‘김윤옥의 한식이야기’

    한식세계화사업의 홍보비 예산은 전체 예산의 평균 30%에 육박했다. 일반 기업의 제품 홍보비는 전체 매출의 10~20% 규모. 홍보비 지출이 과도하다는 지적에 유관기관 관계자들은 “한식세계화사업은 우리 음식과 음식문화를 세계에 알려 한식의 인지도 향상과 소비 촉진을 이끌고 이를 통해 우리 문화와 국가 이미지 제고 등에 기여하기 위한 사업이므로 홍보가 매우 중요한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홍보예산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던 유통공사의 대한민국식품대전(KFS) 진행비가 한식 세계화와 거리가 있어 2014년도부터 지원목록에서 빠지면 홍보예산 비중이 19%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학계 등의 전문가들은 한식세계화사업 성공을 위해 홍보가 중요하다는 점을 부인하진 않았지만 비효율적 홍보비 사용에 대한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한 전문가는 “홍보 비용 대비 효과가 미미한 건 전시행정에만 급급한 탓”이라고 날을 세웠다. 2011년 5월 24일 할리우드 여배우 브룩 실즈가 뉴욕의 한국마트에서 고추장을 들고 서 있는 사진이 미국 잡지 ‘라이프스타일’에 게재된 후 정부가 사실과 다른 내용의 보도자료를 뿌려 국민을 호도한 것이 그런 예다. 당시 ‘라이프스타일’에는 한식에 관한 아무런 언급 없이 브룩 실즈의 사진 한 장만 달랑 실렸다. 이 사진은 한식 홍보를 위해 연출한 장면이었다.

    농식품부는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그해 6월 8일 한식재단의 해외 한식 종합 홍보사업 추진상황을 알리며 “브룩 실즈가 고추장을 쇼핑하는 장면이 보도돼 현지에서 화제가 되고 있고, 브룩 실즈가 한식을 좋아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뿌렸다. 한 지상파방송 뉴스는 여기에 살을 붙여 “브룩 실즈가 한식을 좋아해 잡채와 비빔밥 재료를 직접 구매했다”고 보도했다.

    한식재단은 이 보도의 한식 홍보효과를 7400만 원으로 산출했다. 또 당시 보도된 27건의 관련 기사로 모두 7억여 원의 홍보효과를 거둔 것으로 농식품부에 보고했다. 매체의 성격과 노출 빈도수, 순간시청률, 구독률, 열독률 등 기사의 홍보효과를 객관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잣대를 제시하지 않고 기사의 홍보효과를 주먹구구식으로 산출한 한식재단에도 문제가 있지만, 이를 그대로 수용해 허위 보도자료를 만든 농식품부도 홍보효과를 부풀렸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홍보비의 부적절한 사용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2010년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를 앞두고 발간한 책자 ‘김윤옥의 한식이야기’가 도마에 오른 것도 그 때문이다. 2010년 2월 말 유통공사가 낸 제작 입찰공고에 ‘한식 레시피북’으로 명시된 이 책은 김윤옥 여사가 저자로 나서면서 방향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그해 3월 제안서 평가 결과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제작용역업체로 선정된 S사 관계자는 “입찰공고를 보고 순수하게 한식을 홍보하는 요리책으로만 생각했는데 정부 관계자들은 영부인의 미담 일색인 책을 만들고 싶어 했다”며 “그렇게 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게 뻔해 영부인이 잘한다는 요리와 한식이론을 더 넣었다”고 전했다.

    ‘개인 요리책’ 논란

    책 제작에 참여한 한 스태프는 ‘김윤옥의 한식이야기’를 “요리 위주의 일반 요리책과 달리 저자인 영부인의 화보가 전체 분량의 28%인 23쪽에 걸쳐 실려 있고, 영부인의 미담도 절반을 차지해 개인의 요리 에세이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식 요리책을 만들어 G20 정상회의 같은 국제회의에서 한식을 알리겠다는 본래 취지가, 김 여사가 저자로 나서면서 퇴색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책을 봤다는 누리꾼들은 “영락없는 영부인 화보집” “국민 세금으로 개인 요리책을 만들었으니 영부인은 제작비를 국가에 반납해야 한다. 반납을 거부하면 배임죄!”라고 성토했다.

    전시행정, 예산전용, 중복투자, 정치 입김…혈세 낭비 막아라!

    2010년 3월 한식재단 출범 기념식이 열린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참석자들이 현판식 후 박수를 치고 있다.

    ‘김윤옥의 한식이야기’는 국빈 선물용으로 모두 1700부가 발행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나중에 300부를 더 찍은 사실을 취재 과정에서 확인했다. 정부 관계자는 “한식 홍보 명목으로 이 책에 들어간 예산은 제작용역업체 S사에 지불한 계약금 9950만 원과 홍보비 600만 원, 300부 추가 발간비용 650만 원 등 모두 1억1200만 원”이라고 했다.

    혹시 추가 발간비용으로 지불한 650만 원이 국내 시판용으로 찍은 ‘김윤옥의 한식이야기’ 제작비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당국에서는 G20 정상회의가 끝난 뒤 이 책을 국내 시판용으로 발간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출판업계에서는 제3의 출판사에서 1쇄 5000부를 시판용으로 발행했는데 원작의 스태프들과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모두 폐기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원작의 저작권자는 한식재단, 저자는 김 여사인데도 저작권 문제가 풀리지 않은 것은 시판용 책이 원작이 아닌 재편집 가공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 여사를 인터뷰해 책을 대필한 작가와 기획자, 사진작가 등 제작에 참여한 스태프들이 자신의 저작활동에 대해 저작권을 갖게 된다. 만일 저작권 사용 동의를 받지 않고 책을 내면 무단 도용으로 문제가 불거질 수 있는데, 원작의 제작 스태프들이 제시된 ‘거래 조건’을 끝내 수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윤옥 여사와 정운천 전 농식품부 장관이 각기 추진단 명예회장과 한식재단 초대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한식세계화사업이 정치적으로 이용된 측면도 없지 않다는 지적이다. 2010년 4월 13일 한식재단 이사회 의사록에 따르면 정운천 전 장관은 한식재단 초대 이사장으로 선임된 지 2개월 만에 전북도지사 선거 출마를 이유로 사퇴 의사를 밝히고 업무를 인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 전 장관은 낙선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한식재단 이사장으로 복귀했다.

    도지사 낙선 후 이사장 복귀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간사인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은 “정 전 이사장이 선거운동에 나선 몇 개월 동안 한식재단은 최고 결정권자가 공백인 상태로 운영됐다”며 “재단 일을 전혀 하지 않고도 월급을 꼬박꼬박 챙겼다”고 지적했다. 농식품부 관계자에게 진위를 묻자 “사실”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 관계자는 “지난 연말 국정감사에서 그 문제의 시정을 요구해 올해 2월 환수 조치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식재단 이사장은 비상임직이라 월급이 아닌 수당을 받는다”며 “정 전 이사장의 수당은 월 250만 원이었는데 선거 출마로 재단 일을 하지 않은 날수가 17일이어서 정 전 이사장으로부터 125만 원을 돌려받았다”고 전했다.

    한식세계화사업은 한식재단 등 여러 기관의 업무가 분산돼 중복 투자 등이 빚어져 효율성이 떨어졌다. 이에 유통공사에서 추진해오던 한식 스타셰프 양성을 비롯한 사업 대부분이 한식재단으로 점차 이관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한식재단은 직원들의 이직이 잦아 업무연속성과 책임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식재단 이사 교체율은 45%, 직원 이직률은 146%에 달하고 평균 근속기간이 6.6개월에 불과하다. 재단 관계자는 “재단이 맡고 있는 업무의 규모에 비해 근무환경이 열악한 실정이라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것 같다”며 “전문인력 보강과 급여의 현실화가 시급하다”고 토로했다.

    한식재단은 2012년 런던 올림픽을 겨냥해 11억 원의 비용을 들여 제작한 유럽의 한식당 가이드북 20만 권이 관광안내소 대신 창고에 쌓여 있다고 알려져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재단 관계자는 “런던 올림픽의 규모를 고려해 수량을 정했는데 소진하지 못했다”며 “20만 권 전부는 아니고 일부만 창고에 보관돼 있다”고 해명했다.

    한식 스타셰프 양성을 담당한 유통공사는 선발기준에 맞지 않는 교육생을 선발해 도마에 올랐다. 유통공사가 정한 교육생 선발기준은 ‘대학 조리학과 출신이나 외식 분야에서 3년 이상의 근무 경험자를 우선 선발하되, 한식세계화사업의 취지에 부합하도록 외국어 능력도 평가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한식 스타셰프 양성과정 교육기관(숙명여대, 경희대, 우송대)에서 선발한 교육생 227명 중 53명(23.3%)이 조리학과 전공자가 아니고 조리 경력도 3년 미만이었다. 조리 경력 3년 미만의 교육생은 대학이나 대학원 재학생이 주를 이뤘다. 경희대와 우송대는 외국어 능력을 검증하지 않고 교육생을 뽑았다.

    아시아 호텔에 한식 속속

    유통공사가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뉴욕, 홍콩, 호주 등 세계 주요 거점도시를 중심으로 구성한 해외 한식당 협의체들은 협의체의 전문성 부족과 관리 소홀로 협의체 홈페이지가 처음 구축된 후 한 번도 업데이트되지 않거나 한식 관련 콘텐츠가 전혀 없는 상태로 개설돼 있었다. 한식세계화 홈페이지와의 링크를 통해 정보와 운영노하우를 교류하는 조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미국 애틀랜타에 만들어진 미동남한식세계화협의회의 경우 총 사업비 4만7000달러 중 3만450달러가 이미 지급됐으나 수뇌부의 내분으로 공금횡령 의혹이 불거지는 등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유통공사 관계자는 “잔금 1만 6550달러는 기존에 제출된 지출 증빙서 등을 토대로 현장 실사 후 관련 규정에 의거해 조치할 계획”이라며 “관리 감독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시행정, 예산전용, 중복투자, 정치 입김…혈세 낭비 막아라!

    미국 잡지 ‘라이프 스타일’지에 실린 미국 여배우 브룩 실즈 사진. 한식 홍보용 연출 컷이다.

    농식품부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자체 감사를 실시해 농식품부 직원 1명과 한식재단 직원 2명, 유통공사 직원 2명을 징계했다. 특정업체와의 수의계약을 지시하거나 경쟁입찰 대상 계약을 수의계약으로 추진한 사실이 적발됐다. 감사원의 징계 수위는 주의나 통보에 그쳤다. 감사원 관계자는 “농식품부에서 이미 문제 건에 대해 징계해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며 “예산 낭비를 막고 업무 효율성을 높이려면 사업비의 편법 전용을 근절하고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유관기관 관계자들은 “한식세계화사업의 잘못된 점만 보지 말고 지난 4년간 이뤄낸 소기의 성과도 짚어달라”고 주문했다. 이들은 한식세계화 사업의 필요성과 실현 가능성에 대한 국민 공감대가 확산되고 뉴욕시민의 한식 선호도가 2009년 9%에서 2011년 41%로 높아진 점, ‘미슐랭가이드’의 스타 등급을 획득한 한식당이 2010년에는 하나도 없었지만 2012년에는 5곳으로 늘어난 점, 아시아지역 호텔과 유명 셰프가 운영하는 식당에 한식 메뉴가 속속 선보이고 있는 점 등을 강조했다. 고무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한식세계화사업만의 성과로 보기에는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며 “K팝 붐이 아시아를 넘어 미주, 유럽으로 확산되면서 한국문화와 한식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진 것이 적잖이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학계 전문가 중에는 “한식세계화사업이 아직 초기 단계라 어설픈 구석이 많다”고 지적하면서도 “한식은 상품이라기보다 문화이기에 당장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가 미미해 보이지만 한식세계화의 길이 더딜 뿐 이 사업의 성공 가능성은 아주 크다”고 확신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한 대학 교수는 “한식의 인지도와 선호도 향상에 한식세계화사업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건 분명하지만, 이를 객관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못 만들어내는 게 문제”라며 한식 세계화를 앞당기기 위한 해법을 제시했다.

    현지 시장 중심 전략 필요

    “무엇보다 한식 세계화의 전략 수정이 시급하다. 물건을 팔려면 현지 시장에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정책 운영에 돈을 써야 하는데 지난 4년간은 한식을 이해시키는 데 공을 들였다. 한식이 일본음식처럼 세계적인 음식으로 거듭나게 하려면 먼저 생산자 관점이 아닌 현지 시장의 수요자 관점에서 정책을 펴야 한다. 둘째, 유망 시장에 집중해야 한다. 음식도 먹는 단계가 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동남아 국가나 문화가 비슷한 중국 등 시장 침투가 유리한 지역을 먼저 공략해야 한다. 셋째, 인종과 국경을 초월해 한식을 팔아줄 사업 주체를 다양화해야 한다. 한식을 파는 사람이 꼭 현지 교포나 한국인일 필요는 없다. 세 가지 전략의 틀을 만들어놓고 현지 수요자 중심으로 세부계획을 짜야 예산 낭비를 막고 업무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 중장기사업을 분류해놓는 작업도 필요하다.”

    한식세계화사업 실무자들도 그간의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나름의 묘안을 제시했다. 한 관계자의 제언은 이렇다.

    “한류 드라마와 K팝 열풍에 힘입어 한국을 찾는 관광객이 날로 늘고 있다. 한국문화와 한식에 호감을 가진 이들이 한국에서 한식에 대해 더 좋은 인상을 받고 요리방법을 배워갈 수 있게 하면 귀국해서도 한국에서 수입한 식재료를 찾을 것이고, 이는 우리 농식품 수출과 농어민 소득 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촉발한다. 따라서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이 한식을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국내 외식기업의 위생과 서비스, 음식의 맛과 질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키고, 우수한 외식기업의 해외 진출을 촉진해 맥도날드와 같은 글로벌 프랜차이즈로 키워야 한다.”

    이밖에 “일본의 스시나 베트남의 쌀국수 같은 대표 메뉴를 서둘러 개발해야 한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식체험교실을 전국 주요 관광지에 열어 상시 운영해야 한다” “좋은 아이디어 공모 이벤트를 상시 진행해 사업에 활용한다”는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투자 대비 업무 효율과 성과를 높이기 위해 농식품부에서는 현재 한식세계화 5개년 계획을 짜고 있다. 농식품부는 앞에서 짚은 문제점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시정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서면 답변을 보내왔다. “예산 편성 및 승인 시 사업 타당성을 철저히 검토하고, 사업 추진 상황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평가해 다음 연도 사업에 반영하는 등 피드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요지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각계에서 제시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앞으로 진행되는 한식세계화사업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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