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호

‘조직 보위’ 위해 피해 여성 두 번 짓밟았다

2008년 민주노총 간부의 전교조 여교사 성폭력 사건, 그 후

  • 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입력2013-07-23 10: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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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 보위’ 위해 피해 여성 두 번 짓밟았다

    피해자 김 교사를 지지하는 모임에서 사건 발생부터 5년 동안의 기록을 정리한 책을 펴냈다.

    2008년 12월, 민주노총 간부의 전교조 여교사 성폭력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촛불시위 등 긴박한 시국 상황과 맞물려 언론의 주목을 크게 받았던 이 사건은, 그러나 이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사건 당사자들이 입을 굳게 닫았기 때문이다. 뜨거웠던 언론의 관심은 얼마 안 가 수그러들었고,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됐는지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기자가 이 사건을 다시 끄집어낸 것은 최근 출간된 ‘하늘을 덮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의 진실’ 때문이다. 성폭력 피해 여성(책에서는 ‘피해생존자’로 표현)인 김모 교사를 지지하는 모임에서 사건의 전말을 정리한 백서다.

    책의 일부 내용이 가해자나 민주노총, 전교조 측의 주장과 다를 수는 있다. 하지만 논란이 될 만한 곁가지들을 쳐내더라도 이 책은 진보진영이 ‘조직 보위’라는 명분 아래 피해 여성을 어떻게 조직적으로 파멸시키고, 성폭력 피해를 가중시켜 갔는지 낱낱이 보여준다.

    김 교사는 전교조 동료인 손모 씨의 요청으로 당시 수배 중이던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을 며칠 동안 자택에 숨겨주었다. 그러다 이 위원장이 검거되자 그의 도피를 도왔던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대책회의를 열었다. 그날 저녁 술자리가 파한 후 민주노총 간부 김모 씨가 귀가하는 김 교사의 뒤를 따라갔다. 함께 택시에 탄 김 씨는 차 안에서 김 교사의 몸을 더듬는가 하면, 돌아가라는 김 교사의 요구를 무시하고 집 안에까지 따라 들어와 강압적으로 성관계를 가지려 했다.

    김 교사가 강하게 반항하자 포기한 김 씨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녀의 거실에서 잠이 들었다. 김 교사는 손 씨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지만, 느지막하게 나타난 손 씨는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고, 오히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라면을 끓여 먹고 가겠다는 김 씨를 거들기까지 했다. 이 과정에서 김 교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치와 공포, 고통을 느꼈다.



    조직의 타도 대상 된 피해자

    김 씨는 이후 “(손 씨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며 “(기억은 나지 않지만) 미안하네, 미안한 거지”라고 말했지만, 김 교사에겐 전혀 사과로 느껴지지 않았다. 김 교사는 ‘전혀 미안한 표정이 아니라 오히려 능글맞게 웃었다’고 썼다. 손 씨 역시 김 교사와 김 씨의 화해를 주선하려고만 할 뿐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합리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오히려 민주노총에서 사건 진상을 조사하자 사실을 왜곡하기도 했다고 기록돼 있다.

    책은 “발생 상황을 살펴보면, 피해생존자에게 가한 폭력이 단순히 김 씨의 ‘성욕’ 때문이 아님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며 “이는 조직의 보위를 위한 ‘대책’을 군말 없이 따르지 않는 사람에 대한 협박이었다”고 규정했다. 김 교사는 이 위원장 검거 후 대책회의에서 허위진술을 강요하는 요구에 반발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김 교사는 자신이 소속된 전교조의 정진화 당시 위원장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다. 그런데 정 위원장의 첫마디는 “고소하지 말고 조직 내부에서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전교조나 민주노총이 매우 어려운 시기인 만큼 정부나 보수언론, 보수단체들이 이 사실을 알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정부와 싸우기도 어려운데 이 사실만큼은 알려져서는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김 교사는 “갑자기 진흙 구덩이에 나를 빠뜨려놓고 흙을 덮어버리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당시의 심정을 기록했다.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고 언론에 보도되자 전교조 지도부와 조직활동가들은 오히려 성폭력 피해자인 김 교사를 혹독하게 질타했다. 그들은 김 교사를 돕던 진보인권운동가 오창익 씨가 사실을 과도하게 왜곡하고 있으며, 피해생존자도 사실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심지어 민주노총에서 진상규명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사건을 조사하고 기자회견을 하자 전교조 수석부위원장과 사무처장 등 지도부가 나타나 강력하게 항의하며 위원들과 충돌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김 교사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조직적인 2차, 3차 가해에 시달렸다. 그는 “그들에게 나는 피해생존자가 아니었다. 그저 조직의 명을 따르지 않는 타도 대상이었다”고 한탄했다.

    “전교조 성폭력 사건 더 있다”

    ‘조직 보위’ 위해 피해 여성 두 번 짓밟았다

    2009년 2월 피해자 김 교사를 대리해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이 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사건보고서를 채택하며 사건을 은폐하려 한 정진화 전교조 위원장 등 3인의 ‘2차 가해자’에 대해 제명을 권고했다. 하지만 후임 정진후 위원장 체제가 들어선 전교조는 징계재심위원회를 열고 별다른 설명도 없이 징계 수위를 ‘경고’로 낮췄다. 또한 전교조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사건 관련 글들이 정 위원장의 지시로 모두 삭제됐다. 이후에도 전교조는 민주노총 성평등미래위원회에서 작성한 사건 평가보고서 채택을 무산시키는가 하면, 사건 전말을 담은 공식적인 백서 발간 제안도 외면했다.

    이 때문에 일부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총선에서 정진후 위원장이 민주노총 대표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에 오르자 ‘사건 은폐·축소 책임’이 있다며 후보 사퇴 요구를 했다. 이에 대해 정 위원장은 “저는 피해자를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했을 수 있으나 가해자를 옹호하거나 의도적으로 피해자의 상처를 외면하고 아픔을 가중시켰다는 문제 제기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통합진보당도 별문제 없다며 그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지금 진보정의당 국회의원이다.

    이처럼 사건을 대하는 전교조의 행보를 보면 성폭력 피해자의 치유보다는 조직의 도덕성 훼손을 막는 데 더 방점을 둔 게 아닌가 싶다. 또한 타인의 잘못에는 추상같이 엄정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잘못은 은폐하려는 이중성도 문제다.

    2011년 전교조 등 진보진영은 한 고위공무원에 대해 “2005년 발생한 인화학교 성폭행사건(영화 ‘도가니’의 배경) 당시 해당 지역 교육감으로 있으면서 사후 대처가 미흡했다”며 사퇴를 강하게 요구했다. 그가 사퇴하자 전교조는 “사의 표명으로 끝낼 일이 아니라 피해자 및 광주시민, 전 국민 앞에 제대로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진보진영은 2010년 성희롱 발언 파문을 일으킨 강용석 의원에 대한 제명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자 “국회가 제정신인지 묻고 싶다”며 힐난했다.

    하지만 성희롱과 비교도 안 되는 범죄인 성폭행 사건이 조직 내에서 발생하자 은폐하기에 급급했다. 백서에 따르면 정진화 위원장이 김 교사에게 “조직(전교조) 내 성폭행 사건이 (여러 건) 있었는데 두 건을 해결했고 무척 힘들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피해자 “죽지 않으니까 산다”

    김 교사는 자살을 시도했을 만큼 커다란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멀쩡하던 이가 절로 빠지기도 했다. 그는 책에서 “그냥 산다, 죽지 않으니까 산다”고 토로했다. 그는 결국 전교조를 탈퇴했다.

    그가 원한 것은 단순했다. 조직과 조직의 지도부, 그리고 가해자들이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진정 어린 반성을 하는 것. 하지만 그의 바람 중에 이뤄진 건 아무것도 없다. 성폭력 가해자인 김 씨는 대법원에까지 상고한 끝에 3년 실형을 살고 출소했다. 김 교사가 2차 가해자로 지목한 3명은 여전히 진보진영에서 활동하고 있다.

    김 교사를 지지하는 모임이 세상에 진실을 알리겠다며 이 책을 펴낸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진보진영의 반응은 침묵에 가깝다. 애써 외면하는 듯하다. 그런데 김 교사와 지지모임은 진보 매체로부터 외면 받으면서도 ‘신동아’의 취재 요청은 ‘보수언론’이라며 거절했다.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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