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호

“막강 세력(총리 장관 수석)에 실리(차관 실·국장)도 넓힌 바둑판”

박근혜 정부 ‘성균관대 파워’ 쑥쑥

  • 송국건|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3-07-22 16: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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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정 컨트롤타워 3분의 1 성대 출신
    • 靑 참모들 건배사는 여전히 ‘太平成大’
    • 후기대 출신의 숨은 경쟁력 발휘?
    • ‘보이지 않는 손 있나’ 견제도
    “막강 세력(총리 장관 수석)에 실리(차관 실·국장)도 넓힌 바둑판”

    성균관대 명륜당 전경.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등으로 여야가 극한 대치를 벌이던 7월 9일 밤 당·정·청 핵심 인사 9명이 삼청동 총리공관에 모였다. 자정까지 이어진 이날 심야 회의에선 정치 현안, 실물경제 악화 대응 방식, 지방공약 이행 방안 등 국정 현안들이 폭넓게 다뤄졌다.

    ‘9인 회의’는 6월 14일 처음 열린 이후 여권을 움직이는 세 축인 청와대, 정부, 새누리당 간 막후 조정자 노릇을 하고 있다. 실질적인 국정 컨트롤타워로 자리를 잡았다. 2주에 한 번꼴로 회의를 열어 격의 없는 토론을 통해 박근혜 정부의 전반적인 국정운영 방향을 정한다.

    ‘9인 회의’의 멤버는 청와대의 허태열 비서실장·유민봉 국정기획수석·이정현 홍보수석, 행정부의 정홍원 국무총리·현오석 경제부총리·김동연 국무조정실장, 새누리당의 황우여 대표·최경환 원내대표·김기현 정책위의장이다.

    정권 안착기 ‘질적’ 차별화

    관심을 끄는 대목은 9인의 멤버 가운데 성균관대 출신이 3분의 1인 3명이라는 점이다. 정홍원 총리(법학과), 허태열 실장(법학과), 유민봉 수석(행정학과)이 그들이다. 유 수석은 20여 년 동안 성대 교수로 있으면서 기획조정처장과 행정대학원장을 지냈다. 특히 허 실장과 정 총리는 성대 법대 동창회장 자리를 주고받은 사이기도 하다. 허 실장이 2005~2008년 제 9·10대 회장, 정 총리가 바통을 이어받아 2009~2010년 11대 회장을 지냈다. 그 뒤를 공교롭게도 황교안 현 법무장관(법학과)이 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성시경(성균관대·고시·경기고) 내각’이란 조어가 회자될 정도로 성대 출신이 대거 발탁됐다. 1기 내각(18명)과 청와대 수석비서관 이상(12명) 등 최고 요직에 기용된 파워 엘리트 30명 가운데 성대 출신이 7명(23%)이나 됐다. 서울대의 10명(33%)에 바짝 근접한 두 번째였다. 이명박 정부 초대 내각 후보자 16명, 노무현 정부 때의 21명 중에 성대 출신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박근혜 정부의 성대 인맥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들은 대부분 힘이 막강하다. 사정라인 핵심인 법무부 장관(황교안)과 청와대 민정수석(곽상도), 그들을 지휘하는 국무총리(정홍원)와 대통령비서실장(허태열)이 모두 성대 법학과 출신이다.

    유민봉 국정기획수석은 박근혜 대통령이 화두로 내건 ‘창조경제’의 조타수다. 모철민 교육문화수석(경영학과)도 박 대통령이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교육개혁을 이끌고 있다. ‘윤창중 스캔들’로 낙마했지만 이남기 전 홍보수석(신문방송학과)도 새 정부 초기의 언론정책 전반을 관장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6개월이 돼가는 시점에 성대 출신들은 ‘9인 회의’를 이끄는 등 실제로 정권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정권이 안착되는 기간에 청와대와 행정부, 각 산하단체, 정부 유관기관에도 성대 인맥이 광범위하게 포진했다.

    먼저 권력의 핵인 청와대의 경우 5월 29일 현재 비서관급 이상 51명 가운데 성대 출신은 5명(10%)으로 육사 졸업생과 함께 두 번째로 많다. 서울대 (17명·33%) 다음이다. 성대와 육사의 뒤를 고려대(4명), 연세대·한양대(3명)가 이었다. 한 여권 인사는 “청와대 참모들의 회식장소에서 ‘태평성대(太平成大)’를 외치는 건배사가 나온 지 오래됐다”고 전했다.

    일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의 45개 기관 1급 이상 221명 중 성대 출신은 14명(6.4%)이었다. 이명박 정부 100일 때와 비교해 1명이 늘었지만 육사와 함께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숫자도 숫자지만 성대 출신은 청와대와 행정부 요직에 등용돼 ‘질적’으로도 차별화된다.

    ‘후기 성대’의 경쟁력

    법조계의 성대 강세도 두드러진다. 성균관대 법학과 출신인 위철환 변호사는 지난 1월 사상 처음 직선제로 치러진 제47대 대한변호사협회장 선거에서 당선됨으로써 일찌감치 법조계의 성대 약진을 예고했다. 이후 4월 5일 단행된 검찰 검사장급 인사에서 윤갑근 서울중앙지검 1차장이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로써 검사장급 이상 법무부, 검찰 자리 61개 가운데 3개(황교안 법무장관, 오광수 청주지검장, 윤갑근 1차장)를 성대 법학과 출신이 차지했다. 서울대의 34명, 고려대의 9명에 비해선 미약하지만 연세대(2명)보다는 1명 더 많다. 나머지 대학 중에는 한양대와 경북대가 각 1명씩 포함되는 데 그쳤다. 연세대와 한양대는 노무현 정부 때 법조계에서 두각을 드러낸 바 있다.

    검찰 고위간부로 근무했던 서울대 출신 새누리당 A 의원은 “앞으로 5년 동안 검찰 인사 때마다 성대 출신이 계속 중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시절 법조계의 고려대 파워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특히 서울대, 검찰 출신 새누리당 B 의원은 성접대 의혹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김학의 전 법무차관의 사법처리와 관련된 대화를 나누던 중 “성대 파워가 대단한 것 같더라”고 말했다. 서울대를 졸업한 김 전 차관을 ‘보호’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뉘앙스가 느껴졌다.

    아직 정확한 집계가 나온 곳은 적지만, 다른 정부 부처에서도 성대 학맥이 대체로 약진하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보건복지부의 경우 한 기관이 지난 5월 본부에 근무하는 장·차관과 실·국장급 24명의 출신학교를 분석한 결과 서울대와 성대 출신이 각각 6명과 5명으로 집계돼 비슷한 분포를 보였다. 한 공직자는 “바둑으로 치면 세력(총리, 장관, 수석)이 막강해진 가운데 실리(차관, 실·국장)도 확대되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성대 출신이 박근혜 정부에서 초반 약진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성대를 졸업하고 현 정부에서 핵심 요직을 맡고 있는 고위공직자 C 씨는 ‘후기대 출신의 경쟁력’에서 답을 찾았다. 다음은 C 씨와의 일문일답.

    ▼ 성대 출신이 경쟁력이 높다는 뜻인가.

    “지금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 국정을 이끌고 있는 성대 출신들은 대학입시가 전기와 후기로 나뉘어 있을 때 후기인 성대에 입학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점수가 불과 몇 점 모자라 전기인 서울대에 못 갔을 뿐이지 다른 전기 입시 학교였던 고려대나 연세대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 정·관계에서 성대 출신은 대체로 조용한 편이었는데.

    “이른바 SKY가 세력화해가는 사이에 성대 출신은 뭉치지 못하고 묵묵히 자기 일만 열심히 해 왔다.”

    “너무 쏠려 인사 역풍 걱정도”

    “막강 세력(총리 장관 수석)에 실리(차관 실·국장)도 넓힌 바둑판”

    성균관대 출신 정홍원 국무총리(왼쪽)와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이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국무회의장에 들어가고 있다.

    ▼ 박근혜 정부에서 변화가 생긴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 일단 SKY에서 자유롭다. 박 대통령은 학벌보다는 전문성을 갖고 성과를 올리는 인물을 선호하는데 이런 점에서 성대 출신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으로 안다. 개인별로 발휘해온 능력을 인정받은 것이고, 그중에 우연찮게 성대 졸업생이 많은 것뿐이다.”

    ▼ 성대 출신들끼리 자주 모이나.

    “모임이 거의 없었다.”

    이어 C 씨는 “대통령직인수위 때 초기 인선을 해보니 성대 출신에 너무 쏠려 ‘인사 역풍(逆風)’ 걱정도 나왔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그렇게 짠 것이 아니므로 여론에 신경 쓰지 말자는 말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C 씨의 ‘후기대 경쟁력론’에 대해서는 정치평론가인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위원도 대체로 동의했다. 다음은 황 수석연구위원의 설명이다.

    “성대 약진 현상을 ‘학연(學緣)’의 결과로 보는 것은 단견이다. 이들 대부분이 각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고 봐야 한다. 이들이 고시에 합격할 당시엔 서울대 출신이 합격자의 70~80%를 차지했다. 이런 환경에서 20년 이상 인정받다가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면 능력 면에서는 나무랄 데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동안 서울대 출신들이 요직을 점유해온 게 사실이다. 서울대 학연에 의해 인재 등용에 왜곡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자성해야 한다.”

    황 위원은 이어 “중요한 것은 국가경영의 조타수로 나선 인물들이 어느 학교, 어느 지역 출신인지를 따지는 일이 아니다”며 “실제 이들이 각자 조직을 장악하고 국리민복을 위해서 실효성 있는 결과물을 내고 있는지를 확인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막강 세력(총리 장관 수석)에 실리(차관 실·국장)도 넓힌 바둑판”

    성균관대 출신 곽상도 청와대 민정수석(왼쪽)과 유민봉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그러나 정홍원 총리나 허태열 실장 등이 소수그룹인 성대 출신들을 ‘챙겼다’는 지적도 있다. 정치권 밖의 박 대통령 인재풀이 넓지 않았고 결국 ‘키맨’의 천거에 의존하다보니 성대 출신들이 곳곳에 포진하게 됐다는 해석이다.

    성대 약진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각도 있다. 한때 박근혜 캠프에 몸담았던 서울대 법대 출신 D 교수는 “박 대통령 본인이 비(非)SKY 대학인 서강대를 졸업했을 뿐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 ‘잃어버린 30·40대’를 보냈기 때문에 명문대 출신에 대한 불신 같은 게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 핵심 요직에 오른 서강대 출신은 최순홍 청와대 미래전략수석 한 명뿐이다.

    일부 정치권 인사들은 우리 사회에서 막강한 파워를 지닌 삼성그룹이 성균관대 재단이란 점을 들어 성대 인맥이 광범위하게 형성되는 데 대한 해답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정·관계의 서울대 출신 대다수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서울대의 아성은 여전히 공고하고 ‘태평성대’는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자신감이다. 법조계만 봐도 14명의 현직 대법관 중 12명이 서울대 출신이다. 나머지는 고려대와 한양대 출신이며 성대 출신은 없다. 헌법재판소도 고려대와 경북대 출신 각 한 명씩을 빼면 모두 서울대 출신이다. 채동욱 검찰총장도 서울대 출신이다.

    서울대 법대 출신 D 교수는 “서울대 법대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A 의원도 “이명박 정부 시절 고려대 전성시대가 있었지만 결국 5년 만에 퇴조하지 않았느냐. 성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했다.

    다른 대학 출신들은 웬만한 능력과 노력 없이는 정·관계의 서울대 아성을 뛰어넘기 어렵다. 한양대 출신인 정동기 전 법무차관은 2011년 1월 감사원장에 내정됐다가 여러 가지 의혹에 휘말려 중도사퇴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두루미는 날마다 미역 감지 않아도 새하얗고 까마귀는 날마다 먹칠하지 않아도 새까맣다’는 성현의 말씀으로 위안을 삼으며 이 자리를 떠난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한양대학을 나와서 마이너리거로 살아왔다.”

    자신의 허물 탓도 있지만 서울대를 졸업하지 못한 까닭에 견제와 불이익을 받아서 사퇴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의미가 실려 있다. 특히 법조계 서울대 파워는 상상을 초월한다.

    우연과 필연의 접목?

    대구 대건고와 성균관대를 졸업한 곽상도 민정수석은 2012년 4·19 총선 때 박근혜 대통령이 떠난 대구 달성군 선거구에 출마하는 문제를 고민했다. 그는 당시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주변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새누리당 공천 신청 마감 때까지 출마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는 결국 출마 의사를 접었지만 주위에선 ‘학맥 때문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에서 더 이상 승진할 가능성이 희박하자 정치 쪽으로 방향을 틀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성대 출신 공직자들은 “성대 출신을 끌어주는 ‘보이지 않는 손’은 없다”고 말한다. 이들의 말대로 후기 대학 출신으로서 학맥 프리미엄 없이 열심히 일만 해온 결과가 박근혜 정부 들어 빛을 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대 출신들의 약진엔 우연과 필연이 접목됐다’는 다른 가정도 해볼 수 있다. 즉, 박근혜 대통령이 일부러 성대 출신들을 가까이 두는 것은 아니지만 박 대통령이 중용한 고위직 인사 중 우연히 성대 출신이 많았고 이를 계기로 어느 정도는 알게 모르게 정·관계 내 동창들끼리 서로를 끌어줬을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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