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분기 영업이익 사상최고…시장 기대엔 미흡
- 중국 저가전략, 스마트폰 수요 둔화 걸림돌
- 태블릿 제품, 중급형 스마트폰 비중 높여 돌파구
증권업계뿐 아니라 개인투자자들의 관심사도 일치했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10조 원을 넘어서는지 아닌지에 따라 삼성전자 주식에 대한 투자 전망이 좌우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어 보였다.
마침내 실적이 발표된 7월 5일. 삼성전자는 2분기 영업실적을 잠정 집계한 결과 매출 57조 원, 영업이익 9조5000억 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약 20%, 전 분기보다는 8% 늘어난 수준이었다. 영업이익도 같은 기준을 적용한 결과 각각 47%, 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분기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사상 최고 기록이었다.
하지만 주식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주가는 크게 출렁였다. ‘10조 원’의 벽을 넘지 못한 데 대한 실망 매물이 무더기로 쏟아지며 주가를 끌어내렸다. 삼성전자 주가는 닷새 전에 비해 5만 원(3.8%) 하락하며 130만 원대 아래로 주저앉았다. 종가는 126만7000원이었다.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해 말부터 150만 원대까지 치솟으며 승승장구했다. 올해 6월 4일까지만 해도 주가는 154만 원을 유지하며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그러니 급전직하한 삼성전자 주가에 대한 시장과 투자자의 충격은 컸다.
그간 시장이 내놓은 삼성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 예상치는 10조~10조2000억 원 선이었다. 최근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 여력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그래도 삼성전자’라는 인식이 걱정을 불식시켰다.
10조 원의 ‘벽’
우려가 기대를 집어삼키기 시작한 건 6월 JP모건이 삼성전자 관련 리포트를 발표한 뒤부터다. JP모건은 리포트를 통해 “갤럭시S4가 이전 모델인 갤럭시S3에 비해 판매 실적 등이 매우 빠르게 둔화되고 있다”며 “스마트폰 판매량이 기대치를 밑돌며 수익성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무라와 바클레이스 등 외국계 금융투자회사도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하향 조정했다. JP모건은 삼성전자 2분기 영업이익을 9조7000억 원으로, 골드먼삭스는 9조6000억 원으로 내다봤다.
국내에서는 외국계 증권사들이 지나치게 보수적인 전망을 내놓으며 삼성전자 주가를 끌어내리고 있다고 푸념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들의 전망이 맞아떨어진 셈이 됐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이익률이 시장 기대보다 떨어진 게 영업이익 10조 원의 벽을 못 넘은 이유”라며 “이를 예측하지 못한 국내 증권사의 전망이 외국계 회사의 그것에 완벽하게 밀린 것”이라고 패배를 인정했다.
삼성전자는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명실상부한 강자다. 애플이 전화기와 컴퓨터를 합쳐놓은 독특한 모바일 기기를 내놓으며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통째로 뒤흔들고 난 뒤 삼성전자는 후발주자로 나섰다.
삼성전자는 아이폰이 세상을 충격과 환희로 휩싸이게 할 때 지금껏 낮은 기기 성능과 잦은 오류로 악명 높은 ‘옴니아’ 시리즈를 판매하고 있었다. 스마트폰 시장을 선점하지 못하자 국내 및 해외시장에서는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사업 성장 원동력이 한풀 꺾였다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시장 영향력 장기간 유지”
그러나 반격은 빠르고 강력했다. 삼성전자는 애플에 맞서기 위해 구글과 파트너십을 맺고 안드로이드 기반의 스마트폰 시장에서 리더 위치를 다져나갔다. 블랙베리 등 휴대전화 시장의 강자들이 자체 운영체제를 고집하며 시장에서 줄줄이 고배를 마신 것과 비교하면 삼성전자의 결정은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갤럭시S를 선두로 갤럭시S노트, 갤럭시S2, 갤럭시S3 등을 잇따라 선보이며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후발주자로서 겪는 고충도 있었다. 애플과의 특허침해 소송에 휩싸인 것이다. 애플은 2011년 삼성전자의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아이폰의 디자인과 이용체계 등을 표절했다며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삼성전자도 맞소송으로 대응해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호주 등 세계 곳곳에서 특허 공방전이 일어났다. 현재 9개국에서 50건이 넘는 소송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3월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소송을 맡은 미국 법원은 삼성전자에 약 6400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4월 독일 법원이 삼성전자와 모토로라가 애플을 상대로 제기한 ‘밀어서 잠금 해제’ 특허 무효 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는 등 최근 들어 특허 침해 논란에서 점차 벗어나는 모습이다.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딜라이트 전시관을 찾은 시민들이 삼성 갤럭시S4를 체험하고 있다.
여기에 애플이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타계 이후 그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는 사이 삼성전자는 최고 사양의 부품을 직접 생산하며 원가 경쟁력을 확보해나갔다. 제품의 생산 주기를 경쟁업체에 비해 짧게 유지하며 급변하는 시장 수요도 충족시켰다.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시장점유율은 2007년 17%에 불과했으나 올해 1분기(1~3월)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33%로 2위인 애플(17%)을 압도했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1위를 지키고 있다.
실적도 쑥쑥 자랐다. 2010년 154조6300억 원이던 매출액은 2011년 165조20억 원, 2012년 201조1040억 원으로 커졌다. 영업이익도 2010년 17조2970억 원에서 2012년 29조490억 원으로 늘어나며 해마다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삼성전자와 노키아
증권업계서도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당분간 패권을 유지할 것이라는 데는 공감한다. 이선태 NH농협증권 연구원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영향력은 장기간 유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애플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삼성전자의 대표적인 스마트폰 브랜드인 갤럭시S4의 판매 부진이 자리한다. 키움증권이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갤럭시, 아이폰 같은 프리미엄급 스마트폰의 성장률은 지난해 45%에서 올해 21%로 둔화하고 내년에는 18%로 더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갤럭시S4의 출하량은 약 7000만 대 수준이다.
시장 수요가 줄어들며 프리미엄급 스마트폰의 판매 가격도 올해를 정점으로 점차 하락세로 접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이뿐만 아니라 새로운 제품을 내놓아도 소비자가 스마트폰이 시장에 처음 등장했을 때 받은 충격을 잊지 못하며 점차 흥미를 잃어가는 것 또한 스마트폰 시장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요소로 꼽힌다.
스마트폰 보급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점도 시장 성장세가 둔화할 것으로 내다보는 요인의 하나다. 지역별 스마트폰 보급률을 살펴보면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시장이 74%, 북미 73%, 서유럽 61%, 중국 43% 순이다. 남미(39%)와 동유럽(37%), 중동 및 아프리카(26%) 등은 평균치(38%)를 밑돈다. 소비 여력이 충분한 선진 시장일수록 스마트폰 보급이 성숙기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상당수 전문가는 현재 삼성전자가 과거 ‘휴대전화 왕국’으로 불렸던 노키아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노키아가 2007년 세계 휴대전화 시장점유율 38%를 달리며 사상 최대 영업이익 기록을 갈아치우던 때가 오늘날 삼성전자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당시 노키아는 모토로라의 몰락과 애플의 비상(飛上)이라는 중간 시기에 시장 주도권을 완벽히 장악하고 있었다. 노키아는 원천기술을 확보해 로열티 비용을 최소화했고 자회사를 통해 운영체제를 직접 조달하며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 경쟁사에 비해 가장 저렴한 모델을 만들면서 수익성은 더 높아졌다. 시장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김지산 키움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와 노키아의 유사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삼성전자가 올 상반기에 출시한 스마트폰 모델은 갤럭시S4를 포함해 8개 정도이고 하반기에도 비슷한 수준의 모델이 출시될 예정이다. 연간 16개 제품이 출시된다고 가정하면 제품당 출하량은 약 2000만 대가 될 것이다. 전성기 때 노키아의 제품당 출하량이 약 2200만 대였다.”
노키아가 2007년을 정점으로 시장에서 사라져간 이유는 뭘까. 노키아는 저가 기술에 기반을 둔 중국 업체의 공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중국 업체들의 원가 경쟁력에서 밀리며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에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데도 소홀해졌다. 경쟁업체가 6개월마다 새로운 제품을 내놓을 때 노키아는 1년 이상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업계 1위라는 자존심 때문에, 잘 팔려나간 기존 제품에 대한 집착 때문에 새로운 기술과 혁신을 받아들이지도 못했다. 삼성전자도 아직은 아성을 위협할 만한 경쟁자가 눈에 띄지 않지만 세계 최대 소비 시장의 하나인 중국이 자국 통신망을 기반으로 저가 제품을 밀고 나서면 강력한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래도 삼성전자’?
이 같은 우려에도 대다수의 전문가는 삼성전자에 대한 지나친 비관은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스마트폰 시장에 대한 걱정이 과도하게 흐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갤럭시S4의 판매량은 4월 26일 출시 이후 두 달 만에 2000만 대를 돌파했다. 전작 갤럭시S3가 2000만 대 판매까지 100일 정도 걸렸던 것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다.
갤럭시S4가 전작 모델에 비해 저평가받은 하드웨어 분야의 혁신 부족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린다. 이승혁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갤럭시S4가 과거 모델과 크게 차별화되지 않는다”며 더 이상 소비자에게 혁신의 맛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향후 삼성전자가 휘어지는 디스플레이나 프로젝트 기능, 태양전지를 이용한 충전, 각종 헬스케어 기능 등 차별화된 하드웨어를 선보일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며 우려를 일축했다.
‘대체재 없는 1위’의 아성을 당분간 지켜나갈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에릭슨, 모토로라, 노키아, 애플 등 휴대전화 시장의 정점에 섰던 업체가 무너질 때는 공통점이 발견된다는 게 그 근거다. 모두 강력한 경쟁업체가 나타난 후 수요가 급감했다는 것이다. 이들 업체는 모두 서로 물고 물리며 시장에서 입지를 다졌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유일무이한 경쟁자인 애플이 아이폰5 이후 시장에서 주춤하며 오히려 위치가 더 공고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 시장 성장률이 점차 하락 추세에 접어들긴 하겠지만 수요 성장률이 일정 수준 이상만 되면 수익성에는 별 지장이 없다고 주장한다. 노근창 HMC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수요 성장률이 10% 이상만 유지되면 1위 업체의 영업이익률은 떨어지더라도 영업이익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증가시킬 수 있다”며 “갤럭시S4로 일어난 실적 이슈는 지나친 낙관에 대한 경고음이지, 정점이 지났다는 신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특유의 ‘시장 대응 능력’이 난관을 극복해나갈 열쇠가 될 것이라고 보는 이도 적지 않다. 삼성전자는 6월 21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프리미어 2013’ 행사를 통해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9종의 신제품을 발표했다. 갤럭시S4 미니·액티브·줌 등 갤럭시S4를 변형시킨 제품이 많았다. 3분기에는 갤럭시S노트3 출시가 예상된다.
수요 대응 능력 뛰어나
이처럼 수요에 대응하는 능력이 탁월한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수요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무작정 스마트폰 시장에만 목을 매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적인 관측이다. 삼성전자는 중장기적으로 고급형 스마트폰의 비중을 40% 선에서 유지하고 중급형 스마트폰 비중을 지속적으로 높여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중급형 스마트폰의 비중은 지난해 5%에서 올해 10%대 후반, 내년에는 20% 중반으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송종호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장점은 다양한 제품을 적재적소에 시장에 내놓을 수 있고, 브랜드 관리와 마케팅 능력이 남다르다는 것”이라며 “스마트폰 시장은 안정적인 물량을 공급하는 업체가 패권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은데,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공급이 충분하지 않은 이머징 국가를 주요 타깃으로 중급형 스마트폰을 내세워 중장기적 성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