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인만 정치를 하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는 일상 속에서 늘 정치를 한다. 우리는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관계에선 갈등과 이합집산이 발생한다. 이를 잘 해결할 것인지 여부는 정치력이 결정한다.
- 이에 따라 우리의 진로도 달라진다. 그렇다면 ‘생활정치’는 우리가 꼭 알아 둬야 할 삶의 지침이 된다. 이 연재를 통해 가정 내 정치, 연인관계 내 정치, 직장 내 정치, 학교 내 정치, 교우관계 내 정치 등 다양한 유형의 생활정치를 소개한다.
가족 관계를 소재로 한 영화 ‘고령화 가족’의 한 장면.
그러나 이는 현실에 대한 오해일 수 있다. 정치가 나쁜 것이라면 정치가 없어져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국가가 존속할 수 없다. 국가 자체가 정치의 부산물이다. 정치가 나와 상관없다는 인식은 허위의식이자 위험한 사고다. 실제로 정치는 우리 일상을 지배한다. 우리는 오늘도 정치인이 결정한 대중교통요금이나 세금, 공과금을 낸다. 정치는 좋은 것이고, 우리와 아주 관련이 깊은 것이고, 누구나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정치를 한다고 전제할 때, 특히 생활 속에서 정치를 잘해야 한다고 전제할 때 생활정치의 주 무대는 어디일까. 대표적인 세 곳을 상정할 수 있다. 가정, 직장, 학교다. 학교를 포함시킨 이유는 우리나라의 수많은 사람이 대학 또는 대학원까지 학교를 다니고 결혼한 이후에는 자녀 교육을 최대 관심사로 여기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생활정치는 가정, 직장, 학교에서의 정치를 중심으로 생활정치가 종합적으로 구현된다는 의미다. 말이 쉬워 삼위일체지, 사실 세 영역에서 정치를 잘하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다. 그러나 힘들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잘해내야 하고 또 잘해낼 수 있다.
외식 메뉴 선택의 정치학
구체적으로 가정 내 정치의 문제로 들어가보자. 우리는 정치에 무관심한 사이에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영향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상실한 영향력, 곧 ‘권력’을 되찾아야 한다. ‘폭군’이 돼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상대의 자발적 지지와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권력행사이자 정치다.
가정 내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식구들과도 거래를 하라’이다. 가족 구성원 각각이 이기적인 존재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와 교환 가능한 가치들을 찾아내 거래를 하는 것이다. 사실 모든 종류의 정치는 타협과 양보, 즉 거래를 통한 전체 이익의 증대를 꾀하는 활동이다. 또한 정치는 한정된 자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활동이기도 하다. 이 역시 광의의 거래라고 할 수 있다.
가정 내 정치의 주요 이슈는 의식주다. 그중 먹는 문제는 큰 관심사다. 오늘, 어제 저녁 때 우리 가족은 무엇을 먹었는가. 누가 그 메뉴를 정했는가.
당신이 주부라면 당신이 정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직장을 다니는 남자라면 주는 대로 먹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신이 그 집의 아들이나 딸이라면, 큰 이변이 없는 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주는 대로 먹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머니가 여행이나 외출 중이라면 무언가를 주문해서 먹었거나 있던 음식을 데워서 먹었을 수 있다.
저녁을 나 혼자 먹는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하지만 가족이 다 함께 먹는다면 상황은 조금 복잡해진다.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원하는 메뉴가 모두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집에서 저녁을 먹지 않고 외식을 할 때는 살짝 더 치열해진다. 그 기회가 자주 오지 않는다면 치열함의 수준은 높아진다. 쉽게 오지 않는 기회, 가능한 한 최고의 만족을 추구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온 가족이 만족할 만한 외식 메뉴와 그에 합당한 식당을 찾는 일은 거의 퍼즐을 푸는 수준이 되어버리곤 한다. 결단력이 출중한 당신이 메뉴와 식당을 단호하게 결정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때부터 누군가는 속으로 당신에게 불만을 가질지 모른다.
가족을 잘 설득해 일단 어딘가로 갔다고 치자. 여기서 갈등 상황이 종료되는 것은 아니다. 식당에서 뭔가 불만스러운 점이 발견되면 식당을 비판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식당을 결정한 사람에게로 원망이 향하기 마련이다. 그러게 왜 이곳으로 왔느냐는 둥, 이래서 이 집은 싫다는 둥, 역시 이럴 줄 알았다는 둥. 입 밖으로 이야기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불만 어린 얼굴을 한 가족과 마주 앉아 불편한 시간을 이어가야 한다.
이 순간 당신이 ‘그래도 맛은 좋지 않니?’ ‘다음번엔 다른 곳으로 가자’라는 위로 코멘트를 내놓아봐야 별 소용이 없다. 당신마저 폭발해버린다면? 상황은 수습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간다. 서로 잘해보자는 취지로 마련한 외식 자리가 관계에 더 금이 가게 만들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상당수 가족 구성원은 다시는 당신과 외식을 하고픈 생각이 없어지기 마련이다.
사소한 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외식 메뉴 정하기, 식당 정하기엔 고도의 정치력이 필요하다. 꼭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려고 한다면, 사전 정지작업을 해둬야 한다. 먼저 제안할 때 동조해줄 누군가를 포섭해야 한다. 그 사람이 배우자일 수도 있고, 자녀일수도 있고, 형제일 수도 있고, 부모일 수도 있다. 잠시 생각해보기 바란다. 누가 가장 만만한지를 말이다. 동조할 사람을 찾았다면, 성공에 한 걸음 다가섰다고 말할 수 있다.
밑밥 던지고 밑간 보기
하지만 이것으로 끝난 건 아니다. 누군가는 불만을 가질 것인데 이 사람에게 밑밥을 던져두어야 한다. 당신의 결정에 태클을 걸 그 사람에게는 다음번에는 네가 좋아하는 곳으로 가자거나, 오늘 거기에 가주면 뭘 해주겠다거나, 뭔가를 면제해주겠다는 식의 접근법이 주효할 것이다. 드물긴 하겠지만 상대가 돈을 요구할 수도 있다. 상대방이 강하게 나오는 순간, 당신도 잠시 고민하게 될 것이다. 과연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선택권을 내려놓는 순간 당신 입에서 나올 말은 정해져 있다.
“나는 따라갈 테니까, 알아서 결정해!”
이 순간, 다른 가족 구성원들은 잠시 움찔할 것이다. 상대방이 수그러든다면 좀 더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고, 당신이 줘야 할 것도 줄어들 것이다. 한 번쯤은 튕기면서 반응을 보는 것도 필요하다. 이렇게, 반대를 할 사람까지 손아귀에 넣었다면, 외식은 만사형통이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조금 피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맞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갈 이유가 없다면, 과감하게 양보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하지만 이런 양보가 지나쳐 매사에 당신의 의견을 개진하지 않고 추종만 하면 가족 구성원들은 당신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지 않게 된다. 가족에 대한 당신의 영향력이 축소되는 것은 물론이고 당신이 당신 인생의 주요 결정을 당신 뜻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 가족 구성원들이 당신의 일에, 당신의 진로에 자주 끼어들려 하고 간섭하려 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인생은 정말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그러니 당신은 평소 사소한 일에라도 당신의 주장을 자주 표현해둬야 한다. 동시에 평화를 깨지 않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약간의 밑간만 봐주면 가족의 외식은 훨씬 부드러울 수 있다. 또 즐거울 수 있다. ‘조용한 가족’의 ‘살벌한 만찬’이 아니라 ‘시끄러운 가족’의 ‘열정적 만찬’을 만들 수 있다. 정치는 싸울 것을 말로 하는 것이다. 이 점 잊지 말 일이다.
내란이 발생하지 않는 이유
만약 당신이 가장이고 외식 메뉴 정하기를 현명하게 해결했다면 당신에게 좀 더 어려운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집 안에서 당신은 어떤 지도자인가?’
시도 때도 없이 박근혜가 어쩌니 하며 정치 논평을 늘어놓는 당신! 정작 당신이 가정에서 어떤 정치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독재자? 그보다 덜한 권위주의자? 아니면 극단적 방임주의자? 아니면 그 좋다는, 합리적 민주주의자?
권위주의적 정치인에게 가혹하기 그지없는 평가를 내리는 남성 가장 상당수는 가정에서 독재를 일삼는다. ‘나는 절대로 독재자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가. 당신 생각 말고, 가족들에게 진지하게 한번 물어보기 바란다. 어떤 평가가 나올지 좀 두려울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독재자였다. 정치학을 전공했고, 대중을 상대로 글을 쓸 때나 말을 할 때 늘 민주주의를 강조하곤 했지만, 정작 ‘집 안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 ‘아이들은 무조건 아버지의 뜻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조금 비겁한 핑계긴 하지만, 부모의 영향이 컸던 게 아닐까 한다.
군인이셨던 내 아버지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트랩 대령 같았다. 트랩 대령처럼 미남에 부자였다는 뜻이 아니라, 완전히 ‘군대식’으로 가정을 운영했다는 이야기다. 아버지의 뜻이었는지 어머니의 뜻이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출퇴근할 때 우리 다섯 형제는 트랩가의 자녀들처럼 현관 앞에 일렬로 도열했다.
아버지가 퇴근할 때 어머니는 문앞까지 마중을 나갔다 아버지의 뒤를 바짝 뒤쫓아 오면서 그날의 아버지 기분을 몸짓으로 우리에게 표현하곤 했다. 아버지의 기분이 나쁜 날에는 ‘뿔이 났다’는 의미로 머리 뒤로 양쪽 검지를 들어올렸다. 이런 날엔 우리 형제들은 인사를 마치기 바쁘게 후다닥 방문을 닫고 들어가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냈다.
이런 날의 식사 분위기는 어둡기 짝이 없었다. 아버지의 기침소리 하나에도 흠칫 놀라곤 했다. 물론 평상시 식사 분위기도 썩 화기애애했던 것은 아니다. 상석에 앉은 아버지를 중심으로 서열대로 앉아서 가능한 한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식사를 했다. 이어 아버지의 일장훈시가 길게 이어졌다. 식사 시간에 침묵을 깰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어머니밖에 없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라났으니 내가 가부장적인 행태를 보인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행히 내 아내 역시 가부장제를 존중하는 가정에서 자라난 탓에, 속으로는 불만이 쌓여도 가능하면 내 비위를 맞추려 애써왔고 그 때문에 내란이 발생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나를 포함한 주위의 많은 중년 남성은 가끔은 독재자로, 보통 때에는 권위주의자로, 하지만 겉으로는 합리적 민주주의자를 표방하며 살아온 것 같다.
잠시 앙탈을 부려본들…
부부 관계는 다툼과 화해의 연속이다.
많은 남성 가장은, 제3세계의 독재자들이 그러하듯이, 스스로의 결정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저항에 못 이겨,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방향으로 전향한다. 권력의 무상함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말이다. 얼마 전 TV 연속극에서 나이 먹은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부엌일을 도우면서 이런 말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내가 이런 일을 하는 게 집 안에서 밀려나는 내 위상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니?”
그렇다! 권력의 논리는 가정에서도 엄정하게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신혼 초에 기선을 잡아야 한다! 인생 선배들은 이런 조언을 많이 한다. 이런 조언을 따른답시고 결혼 초기 주도권 다툼을 벌인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성공했는가. 아마도 실패한 이가 더 많을 것이다.
당신이 결혼 전에 이미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면, 기선을 잡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커플 간의 주도권은 사실 연애 시절에 결정된다.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양보할 수밖에 없는 구조. 그 얄궂은 사랑의 역학관계 속에서 ‘덜 사랑하는 쪽’이 연애 시절부터 주도권을 잡는 것이다. 그리고 이 관계는 결혼 후 가정 내 권력관계의 기저를 형성하면서 잘 변하지도 않는다.
당신의 경우는 어떤가. 당신이 더 사랑하는가, 아니면 상대방이 더 사랑하는가. 만약에 당신이 더 사랑하는 쪽이라면, 신혼 초의 주도권 다툼 따위는 무의미하다. 심리적으로 이미 접고 들어가는 상황에서 잠시 앙탈을 부려본들 구조적인 변화가 생길 리 없기 때문이다. 또, 설령 일시적으로 당신에게 주도권이 오더라도 곧 원래 상태로 환원될 가능성이 높다. 애정관계의 탄성은 의외로 강하기 때문이다.
애정관계 다음으로 가정 내의 권력관계를 결정짓는 변수는 경제권이다. 다시 말해, 누가 돈을 버느냐에 따라서 주도권을 잡는 쪽이 결정된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난 상황에서는 ‘누가 더 버느냐’에 따라 주도권을 쥐는 쪽이 달라진다. 아무래도 혼자서 돈을 버는 사람, 둘이 벌더라도 더 많이 버는 사람이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높다.
경제권과 관련해서는 ‘누가 관리하느냐’도 중요하다. 혼자서 돈을 버는 사람 또는 더 많이 버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은행 계좌관리를 파트너가 하고 있다면, 경제권을 완전하게 장악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럴 때 푸념처럼 늘어놓는 말이 바로 이것이다.
“난 돈 버는 기계에 지나지 않아.”
일반적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 관리에 대한 권한 내지 발언권을 상당 부분 갖기 마련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일개미로 전락할 수도 있는 뜻이다.
영원한 피지배층 ‘자녀’
자녀 장악력도 가정 내 권력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가정 내 영원한 피지배층인 자녀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받는 사람이 더 많은 권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혼자서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자녀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주말에 만회하려 애써보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자녀들이 성장함에 따라서 상황은 바뀔 수 있다. 아이들도 크면서 누구 덕에 자기가 먹고사는지를 차차 알아가기 때문이다. 또, 아이들이 돈의 효력을 깨닫기 시작하는 것도 돈을 버는 사람에게는 유리하다. 이런 점 때문에 아이들이 성장한 이후에는 자녀 장악력이 경제권의 향배에 따라 변하는 양상을 보이곤 한다.
그러나 자녀에 대한 장악력은 금전적 혜택을 제공하는 것만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요즘 가정 내 자녀의 발언권은 수십 년 전과 비교할 때 훨씬 드세졌다. 부모가 자녀에게 온 정성을 쏟을수록 부모 모두의 자녀 장악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정 내 권력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이외에도 많다. 누가 더 나이가 많은가, 누가 더 신체적으로 건강한가, 누가 더 교육을 많이 받았는가, 누가 더 적극적인 성격을 가졌는가, 누가 더 좋은 집안 배경을 가졌는가 등이 그것이다. 결국 부부 가운데 누가 더 많은 권력 자원을 가졌는지에 따라 주도권의 향배가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당신이 가정 내에서 상대방에 비해 얼마나 많은 권력자원을 가지고 있는지를 간단하게 진단해보자! ‘나’로 체크된 항목이 많을수록 당신이 주도권을 많이 행사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권력 자원이 영향을 미친 결과로 인해 4개의 권력관계 유형이 나타난다. 많은 전문가가 다양한 유형을 제시하지만 이를 정리하면 남편주도형, 아내주도형, 부부협력형, 부부대립형 등 4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이 네 가지 부부 권력관계 유형 중 부부 모두에게 가장 만족도가 높은 유형은 무엇일까. 부부협력형이다. 이어 남편주도형, 아내주도형, 부부대립형 순이다. 남편주도형의 만족도가 아내주도형보다 높은 이유는 가부장제의 전통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아내에게 순종해야 하는 남편보다는 기꺼이 남편에게 순종하려드는 아내의 모습이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 말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남편주도형의 비율은 빠르게 낮아지는 반면 부부협력형의 비율은 높아지고 있다.
가화(家和)는 공짜가 아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낸다. 그 시간이 고통의 연속이라면 인생 자체가 고통의 연속이라는 말과 다름없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옛말이 있다. ‘가정이 화목해야 만사가 잘 풀린다’는 뜻이다. 그만큼 가족 구성원들 간 관계가 중요하다.
내가 행복하고 가족 구성원들도 행복한 그런 가족 관계. 우리 모두는 이런 관계를 원하지만 절대로 공짜로 얻어지지 않는다. 가정 내에서도 정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이를 실천할 때 우리는 비로소 가화(家和)의 경지에 다가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