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호

급여는 높게, 가격은 낮게

코스트코

  • 구미화│객원기자 selfish999@naver.com

    입력2013-07-19 10: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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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욕심은 화(禍)를 부른다. 한때 위대한 기업으로 불리다 사라져버린 기업들도 대부분 원칙 없이 욕심을 부리다 화를 자초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30년 역사의 창고형 할인점 코스트코는 15% 마진율을 사선(死線)처럼 여기면서 공평한 비즈니스 실천을 위해 노력한 결과 불황에도 흔들림 없이 성장을 지속했다.
    급여는 높게, 가격은 낮게

    지난해 12월 15일 개장한 코스트코 광명점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으면서 국내외 대형마트들도 대부분 매출 하락세를 못 벗어나는 신세다. 그런데 세계 최대 창고형 할인점 코스트코는 연속적으로 시장 기대치를 웃도는 실적을 올려 관심을 끈다. 5월 30일 코스트코는 5월 12일 끝난 2013 회계연도 3분기(2∼5월)에 순이익 4억5900만 달러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에 거둔 3억8600만 달러는 물론 시장 전문가들이 전망했던 4억4700만 달러도 넘어서는 결과다. 코스트코는 3월에 발표한 2분기 실적에서도 5억4700만 달러 순이익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38.8%의 높은 성장을 보였다.

    업계 논리와 정반대 경영

    코스트코는 3월 현재 전 세계에 622개 매장을 두고 있다. 한국에도 9개 매장이 있다. 2012 회계연도엔 991억 달러 매출을 올렸고, 시간제 근무자를 포함해 직원 16만여 명이 근무한다. 일정액의 가입비를 낸 유료 회원에 한해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코스트코의 현재 회원 수는 6500만 명. 글로벌 시장조사 전문 업체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코스트코는 2012년 창고형 할인점 점유율 1위(46.5%)를 차지했다. 월마트 자회사인 샘스클럽(Sam‘s Club·38.4%)이 그 뒤를 이었다.

    이 같은 선전은 코스트코의 경영방식이 그동안 월가를 비롯한 증권가에서 혹평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증권가에선 “코스트코의 직원 복리후생 제도가 지나치게 방만하다”며 “고객을 버릇없게 만들고, 하찮은 직원들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투자자의 돈을 훔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수년 전 도이치방크의 한 애널리스트가 “코스트코에선 주주가 되는 것보다 고객이나 직원이 되는 편이 낫다”고 한 말은 코스트코를 바라보는 증권가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코스트코는 지난해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포천 500대 기업’ 순위에서 24위를 차지했는데, 일부 애널리스트는 그마저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라고 평했다. 경쟁업체 월마트가 2위에 오른 것과 비교하며 “코스트코가 마진율을 높이고 직원들을 더 쥐어짰더라면 이익이 더 늘어나고 순위도 올라갔을 것”이라며 못마땅해했다.



    그러나 지난 3월 로이터 통신은 미국 기업들의 2분기 실적 발표 후 “월마트의 저조한 실적은 미국 소비자가 급여소득세(payroll taxes)와 휘발유 가격 인상의 여파를 우려하고 있음을 보여준 반면, 코스트코는 미국 정부가 2년 전 급여소득세를 2%p 낮췄을 때 별다른 특수효과를 못 봤던 것처럼 올해 1월 1일 급여소득세가 다시 인상됐음에도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정부의 재정 정책과 원유가 같은 시장 상황이 소비자의 주머니 사정에 영향을 미칠 때마다 경쟁업체들은 울고 웃는 반면, 코스트코는 그런 시장 상황 변화에 흔들림이 없다는 이야기다.

    코스트코는 1983년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 남부의 커클랜드에 첫 점포를 연 이래 30년간 증권가를 비롯한 업계의 논리와 정반대로 움직였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할인점이 성공하려면 직원에게 낮은 급여를 주고, 고객이 눈치 채지 못하게 가격을 스멀스멀 올려야 한다’는 관행을 깨고도 성장을 지속했다는 사실. 코스트코는 업계에서 급여가 높기로 유명하고, ‘소비자 대변인’ ‘가격 경찰’이라고 불릴 정도로 철저한 저가 정책을 유지한다.

    미국 내 코스트코의 시간제 근무자가 받는 시급은 11.5달러부터 시작한다. 평균 시급은 17달러다. 경쟁업체 월마트의 정규직 판매사원 평균 시급이 8.81달러인 것과 비교하면 2배 가까운 수준이다. 현재 미국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달러이고, 정부에서 9달러로 올리는 안을 검토 중인 것을 감안해도 코스트코의 급여는 후한 편이다.

    더구나 의료비 부담이 높은 미국에서 코스트코는 전 직원에게 의료보험을 지원한다. 덕분에 코스트코 직원은 의료비의 8%만 부담하면 된다. 이 같은 직원 복지는 시간제 근무자에게도 적용된다.

    “직원이 많이 벌면 어때?”

    코스트코 공동 창업자인 짐 시네갈은 2011년까지 28년간 최고경영자(CEO)를 지내며 ‘직원을 잘 대접해야 사업이 성공한다’라는 기업철학을 심었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직원들이 가족을 위해 집을 사거나 의료보험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버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며 “정당한 이윤을 만드는 것, 직원들에게 더 많이 투자하는 것이 기업에 이득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회사는 쓴 만큼 벌게 돼 있다. 최저수준의 급여를 주는 것은 잘못이다. 불공평한 이익배분일 뿐만 아니라 불행해진 종업원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새로운 직장을 찾게 만든다. 그러면 관리자들은 새 사람을 뽑는 데 시간을 허비하느라 정작 비즈니스에는 신경을 못 쓴다. 코스트코에선 행복한 직원들이 회사를 사랑하며 홍보대사를 자처하는 덕분에 관리자들이 비즈니스에 집중한다. 우리가 직원을 채용하는 데 신경 쓰기보다 비즈니스에 집중해 목표를 달성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면 주가는 절로 오를 것이다.”

    그의 생각대로 코스트코는 증권가의 우려와 달리 첫해 1억 달러 매출에서 2010년 763억 달러까지 연평균 27.8%의 성장을 기록했다. 창업한 지 6년도 안 돼 30억 달러 매출을 올린 최초의 기업이기도 하다. 보수적인 투자가로 유명한 워런 버핏은 코스트코를 “3억5100만 달러를 투자할 만큼 매력적인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얼마 전 펴낸 저서 ‘워런 버핏의 포트폴리오 투자전략’에서 “코스트코 주당순이익은 2008∼2009년 금융위기를 포함해 2001년부터 2011년까지 매년 복리로 9.85% 증가했다”며 “향후 10년간 잠재적 연간수익률이 7.7%(복리)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몇 년 전 ‘위대한 기업을 넘어 사랑받는 기업으로’를 출간한 데 이어 올 초 ‘깨어있는 자본주의(Conscious Capitali-sm)’를 펴낸 미국 밴틀리대 라즈 시소디어 교수는 “사랑받는 기업은 직원 급여와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가치 사이의 상관관계를 새롭게 정의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사랑받는 기업이란 주주와 고객, 직원, 거래처 등 모든 이해당사자를 끌어안으면서 자본시장에서도 눈에 띄게 좋은 성적을 올리는 기업을 가리킨다. 2006년 6월 기준으로 지난 10년간 S·P 500 기업들은 투자자에게 평균 122%의 수익을 가져다준 반면, 사랑받는 기업들은 같은 기간 1000% 이상의 투자자 수익을 올렸다. 사랑받는 기업 명단엔 코스트코도 올라 있다.

    “사랑받는 기업은 직원들에게 월등히 높은 급여를 지불하고, 고객들에게는 낮은 가격에 상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한다. 이들 기업이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높은 급여와 복리후생 혜택은 고객들이 지불하는 가격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직원들의 우수한 생산성과 낮은 이직률이 비결이다. 만족한 직원은 기업이 더 많은 수익을 내도록 자발적으로 노력하고, 고객들로부터 충성도를 이끌어낸다. 높은 급여와 질 좋은 복리후생은 낮은 운영비용으로 변화한다.”

    ‘공평한 비즈니스’ 추구

    이를 증명하듯 코스트코는 매출에서 판매 및 일반 관리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9.8%에 불과하다. 직원 채용 및 훈련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은 덕분이다. 코스트코는 업계에서 이직률이 낮기로 유명하고, 직원 1명당 생산성은 업계 최고 수준이다. 직원 급여가 높은데도 코스트코가 높은 이익을 거둘 수 있는 비결이다. 직원들을 잘 대하는 것은 도덕적 코드가 아니라 엄연한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경영 성과 때문이다.

    코스트코를 성장시킨 기업문화의 하나는 공평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시네갈은 지난해 1월 CEO에서 물러날 때까지 연봉 35만 달러를 받았다. 여느 CEO들이 받는 연봉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금액이다. 그럼에도 그는 “35만 달러도 내겐 충분한 보상”이라며 “코스트코처럼 비용에 민감한 조직을 경영할 때는 불공평한 차이를 둬서는 안 된다. CEO가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보다 수백 배 많은 연봉을 챙기는 건 잘못된 일이다”고 말했다.

    코스트코는 이익이 늘어나면 그것을 소수 경영진의 주머니에 털어넣지 않고 직원, 고객들과 나눈다. 직원들의 의료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 것이 대표적이다. 현재는 직원들이 의료비의 8%만 부담하지만, 10년 전엔 직원 부담이 10%를 넘었다. 그것도 미국 기업으로선 아주 훌륭한 수준이라 증권가에선 이미 비용 부담이 크다고 비난이 쇄도했다. 하지만 코스트코 경영진은 직원 부담을 10% 이하로 더 낮추지 못해 안달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2003년 코스트코 최고 재무책임자(CFO)인 리처드 갈란티가 시네갈에게 “직원들이 물품을 아주 현명하게 구매함으로써 생겨난 많은 변화를 보라”며 “직원들의 의료비 부담이 10%가 넘는데, 몇 년째 덜어주지 못하고 있다”고 하자 꼭 필요한 지출이 아니면 하지 않는 시네갈이 의료비 보조를 늘리는 데 동의했다. 시네갈은 다만 한 가지 단서를 붙였다. 의료비 지원 인상에 대해 요율을 복잡하게 산정하거나 요란하게 설명을 늘어놓을 것 없이 자신이 편지 한 통을 쓰겠다고 했다. “코스트코 직원은 의료비 전액의 10% 이상을 부담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갈란티는 “직원들의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보고하면 대부분의 CEO는 비용 절감에 따른 이익 증가를 반기면서 직원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자기 주머니를 채우기 바쁘다. 하지만 시네갈은 직원들과 나누기를 원했다. 2008년 의료비 지원을 또 한 번 늘린 것도 그런 차원이었다”고 말했다.

    시네갈은 직원들을 후하게 대하는 것이 고객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믿는다. 그는 “다른 할인점 고객보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코스트코 고객들이 코스트코에 애정을 갖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누리는 낮은 가격의 혜택이 코스트코 직원의 희생을 대가로 한 게 아니기 때문”이라며 “이것은 이타적인 게 아니라 좋은 비즈니스다”라고 말했다. 최근에야 각광받는 공정 비즈니스에 대한 철학을 시네갈은 일찍이 간파했던 것으로 보인다.

    “직원과 고객을 왕처럼”

    업계에선 시네갈을 ‘창고형 할인점 전매특허자’라고 한다. 무려 60년 동안 창고형 할인점에 몸담은 살아 있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1954년 샌디에이고 커뮤니티 칼리지에 다니던 18세 학생 시네갈은 친구의 부탁으로 할인점 페드마트(Fed-Mart)에서 매트리스 하역 작업을 도왔다. 우연히 하루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 것이 평생 유통업에 몸담는 계기가 됐다. 페드마트를 설립한 솔 프라이스의 철학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당시 페드마트는 생긴 지 한 달여밖에 안 됐지만 “백화점 수준의 질 높은 상품을 낮은 가격에 파는 창고형 마트”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 이목을 끌었다. 많은 상품을 비행기 격납고처럼 겉치레 없는 공간에서 저렴하게 팔아 소매업계 빈틈을 공략했다. ‘회원제’라는 점을 제외하면 지금 코스트코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솔 프라이스는 초창기부터 상품의 종류와 가격 산정 및 진열 방식, 고객 불만 처리 정책, 광고 규칙 등 기업 운영 전반을 아우르는 원칙을 직원들과 공유하고 실천에 옮겼다. 그중 프라이스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원칙은 ‘고객 최우선’이었다. “청렴함은 고객의 신뢰를 얻고 고객의 충성도를 싹트게 하는 초석”이라고 강조하는 프라이스 밑에서 시네갈은 차곡차곡 경력을 쌓았다.

    20년간 미국 남서부 지역에서 크게 발전한 페드마트를 1976년 독일 사업자가 인수했다. 프라이스 부자(父子)는 페드마트를 나와 샌디에이고에 ‘회원제로 운영하는 할인점’을 열었다. 이름은 ‘프라이스클럽’. 시네갈을 비롯해 많은 페드마트 직원이 프라이스클럽으로 이직했다. 1950∼60년대 페드마트에서 상자를 나르고 카트를 밀던 청년들이 1970년대 들어 프라이스클럽에서 관리자 임무를 맡게 된 것이다.

    그러던 1983년, 시네갈은 시애틀 출신 사업자 제프 브로트먼과 함께 시애틀 남부 지역에 코스트코를 창업했다. 코스트코는 프라이스의 공식을 그대로 따랐다. 제한된 품목을 판매하고, 가격은 낮게 유지하며, 대용량을 팔고, 직원들에겐 높은 급여를 주고, 유료 회원제로 운영하되, 개인은 물론 자영업자들을 주요 고객으로 삼았다. 광고를 하지 않음으로써 매년 2%의 비용 절감 효과를 누리는 것도 프라이스의 공식을 따른 결과다.

    직원들을 존중했던 프라이스의 추종자였으며, 30년간 현장을 누빈 시네갈은 코스트코 창업 당시 “돈은 매장에서 버는 만큼, 경영진은 매장 직원과 고객을 왕처럼 대접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코스트코 본사 사무실 벽에도 “매장에서 연락이 오면 모든 일을 멈추고 매장 일에 집중하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미국 남서부와 북서부 지역에서 형제처럼 성장해가던 프라이스클럽과 코스트코는 1993년 마침내 합병했다. 그 결과 매장 200개, 직원 4만3000명을 거느린 거대 기업이 탄생했다. 이후 상품 제조와 유통, 마케팅 및 판매 방식 등 소매업계에 일대 혁신을 불러왔다. 솔 프라이스는 생전에 시네갈에 대해 “주주와 직원, 고객, 관리자들의 이해관계 균형을 잘 잡는 경영인”이라고 평했다.

    고품질 소품목 대용량 최저가

    ‘뉴욕타임스’는 2005년 코스트코가 월마트의 적수로 부상한 비결을 분석한 기사에서 “코스트코가 업계 정상에 한번 오른 뒤 내려오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처음 창업했을 때 그렸던 창고형 할인점 모델을 끊임없이 정제한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시멘트 바닥으로 된 꾸밈 없는 넒은 공간에서 유료 회원제에 가입한 고객들이 한정 품목 대용량을 대폭 할인된 가격에 구입하는 것”은 페드마트에 이어 프라이스클럽의 바통을 이어받은 코스트코의 기본 개념이다.

    코스트코는 보통 4000개 품목을 판매한다. 월마트가 10만 개 이상의 상품을 진열하는 것에 비하면 상품 구성이 제한적이다. 설탕 하나를 놓고 보더라도 일반 대형마트엔 브랜드와 용량이 다른 설탕 수십 종이 있지만, 코스트코엔 5kg짜리 황설탕과 백설탕 각각 한 종류가 있을 뿐이다. 품목별로 품질이 우수한 제품의 가격을 최대한 낮추면서 제품 규모를 키우는 것이 코스트코 바이어의 목표다.

    이렇게 동종 상품의 브랜드와 용량을 제한하면 소비자 선택의 폭은 줄어들지만, 각 품목의 판매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코스트코는 이런 방식으로 재고를 빠르게 소진함으로써 공급가 인하를 유도해왔다. 품목 수가 적으니 상품 진열 및 관리 비용도 적게 든다. 그렇다고 저렴한 상품들로 판매대를 채우는 건 아니다. 저급한 2류 상품은 취급하지 않는다는 게 코스트코의 전략 중 하나다.

    몇 년 전, 백화점에서 50달러에 파는 유명 브랜드 청바지를 29.99달러에 팔아 화제가 된 것도 수백만 벌을 거뜬히 소화할 수 있는 판매 방식 덕분에 공급가를 크게 낮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음번 주문에서 공급가를 7달러가량 더 낮출 수 있게 되자 코스트코는 청바지 가격을 22.99달러로 내렸다.

    어떻게 하면 한 푼이라도 더 받고 팔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게 장사꾼 마음이다. 업체들은 소비자가 눈치 채지 못하게 마진을 더 남기려고 꼼수를 부리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코스트코는 지금껏 일반 상품 마진율 14%, 자체 상표인 커클랜드 상품 마진율 15% 원칙을 철저하게 지킨다. 일반 소매업의 마진율은 보통 25%이고, 백화점은 50% 이상이다.

    시네갈은 “마진율 15%는 우리도 돈을 벌고, 고객도 만족할 수 있는 적당한 기준”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 이상을 남기면 기업의 규율이 사라지고 탐욕을 추구하게 돼 결국 고객이 떠나고, 기업은 낙오하게 된다”며 “마진율을 16%나 18%로 인상하는 순간 가격과 비용을 최소화하려 했던 코스트코의 모든 노력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강조한다.

    마진율을 지키는 것은 공급자와의 약속이기도 하다. 생산자가 많이 팔아치울 목적으로 큰맘 먹고 가격을 내려도 유통업자들이 마진을 높게 붙이면 소비자가(價)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꼴이다. 그런데 코스트코와 거래하면서 공급가를 내리면 소비자가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시원시원하게 팔려나간다. 많은 업체가 코스트코에 제품을 공급하고 싶어 하는 이유다.

    코스트코에선 50달러짜리 청바지를 22.99달러에 살 수 있지만 입어볼 수는 없다. 탈의실이 없기 때문이다. 결제 가능한 카드도 한 종류뿐이다. 일반 대형마트에는 어디나 있는 소량 전용 계산대도 없다. 모두 관리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이다. 기업 대부분이 고객 편의를 최대로 도모하려고 경쟁하지만, 코스트코는 결국 고객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면 선택하지 않는다. 시네갈은 언젠가 “경쟁자한테는 신경 쓰지 않는다. 오로지 고객만 신경 쓴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입어보지도 않고 옷을 살 수 있을까. 코스트코는 “언제든지 환불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한다. 코스트코에선 환불할 때 컴퓨터(6개월 기한)만 아니면 기간 제한도 없다. 코스트코는 고객을 신뢰한다. 고객이 코스트코를 신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뢰는 주고받는 것이다. 수많은 기업이 고객의 신뢰를 얻고자 하지만, 정작 기업 스스로 고객을 신뢰하는지에 대해선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한다.

    원칙 지키려는 순혈주의

    현재 코스트코 경영진 상당수가 페드마트와 프라이스클럽 때부터 인연을 같이하고 있다. 시네갈을 비롯한 경영진의 삶과 철학이 코스트코에 온전히 배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네갈과 마찬가지로 10대 시절 페드마트에서 일하기 시작해 현재는 코스트코 이사회 멤버인 릭 리벤슨은 “물건을 가능한 한 싸게 팔아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이 옳은 일이라 여기며 살았다”며 “그래서 늘 우리 스스로 소비자 대변인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해 은퇴한 전 수석부사장 딕 디서치오는 인생과 비즈니스가 결국 하나라고 했다. “코스트코는 우리가 자라면서 배운 것들을 실천하고 있을 뿐이다. 거짓말하지 않고, 남을 속이지 않으며, 공급자들을 이용해먹지 않는다. 그리고 직원들을 존중한다.”

    코스트코는 관리자를 외부에서 영입하지 않는 순혈주의로도 유명하다. 이직률이 워낙 낮기도 하지만 직원 우대, 철저한 마진율, 비용 최소화 등의 원칙을 흔들림 없이 지켜나가려면 코스트코의 철학과 문화를 깊이 이해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네갈은 코스트코의 순혈주의 또한 “절대 물러서면 안 되는 코스트코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시네갈은 순혈주의와 함께 관리자들의 직원 교육을 매우 중요시했다. 기업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직원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직원들이 현장에서 CEO와 똑같은 열정을 갖고 일하게 하려면 기업의 사명과 가치관을 공유하고 실천하도록 훈련시키는 방법밖에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CEO는 선생님이자 코치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가 직원들 이름을 외우고, 매장을 자주 찾아 직원과 고객의 소리에 귀 기울였던 것도 모두 교육적 효과를 노린 것이다. 그는 관리자들에게도 직원 교육을 강조했다. “근무 시간의 90%를 가르치는 데 쓰지 않으면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것”이라고 할 정도다.

    지난해 1월 1일 시네갈이 은퇴하면서 코스트코의 새로운 수장이 된 크레이그 젤리넥 역시 페드마트 출신이다. 젤리넥은 “비즈니스의 목적 중 하나는 직원들의 행복한 삶을 유지해주는 것”이라며 미국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을 지지한다. 시네갈이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직원들에게 높은 임금을 주는 것이 비즈니스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할 자신이 있어 보인다.

    한국에선 지난해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가 시행되면서 일부 지자체와 마찰을 빚은 코스트코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남아 있다. 코스트코의 일시적인 휴일 영업 강행에 대해 “콧대 높은 외국 기업의 배짱 영업”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코스트코의 주장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의무휴업을 강제한 지자체 조례가 위법 논란이 있는 데다, 대용량 한정 품목을 취급하는 코스트코는 사업자로 등록한 자영업자에게는 오히려 개인 회원보다 가입비를 적게 받고 있다. 자영업자들과 경쟁관계로 보긴 어렵다는 얘기다. 어쨌거나 지금은 코스트코도 한 달에 두 번 의무휴업을 따르고 있다.

    최근 국내 기업들도 속속 창고형 할인점을 시도하고 나섰다. 불황을 모르는 코스트코를 본보기로 삼았을 것이다. 사람 키 몇 배 높이로 물건을 쌓아놓고 파는 외형만 좇을 게 아니라, 직원을 존중하고 고객 및 거래처와 이익을 나누는 기업문화가 성공의 열쇠임을 배워야 할 것이다.

    코스트코를 연구한 시소디어 교수는 코스트코의 ‘비밀병기’로 “인간 행동, 특히 직원의 행동에 감정이 충만하도록 한 비즈니스 모델 구축”을 꼽는다. 시소디어 교수는 “보통 기업의 지적 재산이 가지는 가치에 대해서는 쉽게 이해하는 반면, 기업이 이해당사자들의 감정에 투자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이견이 많다”며 “사랑받는 기업들은 인간에 대한 신뢰가 가져오는 수익을 잘 알고 있다. 기업의 투자가치를 평가할 때 감정적인 재산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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