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호

금융 시스템 오류? 탐욕이 빚은 추악한 범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 이창무│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형사사법학 jbalanced@gmail.com

    입력2013-07-19 11: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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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느슨한 금융 감독이 범죄 기회 제공
    • 구속되거나 기소된 CEO 全無
    • 9·11 이후 테러 수사에 인력, 예산 편중
    • 탐욕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미국 뉴욕에 사는 로버트 허시는 남처럼 일찌감치 부동산에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을 크게 후회했다. 주위 사람들이 부동산 투기로 불과 몇 년 사이 수십 년간 일해도 벌까 말까 할 돈을 챙기는 걸 직접 목격하면서 배도 아프고 막차라도 타야 한다는 생각에 초조했다. 그래서 뒤늦게 부동산에 관심을 가졌다.

    2006년 여름 허시는 드디어 뉴욕 퀸스에서 적당한 매물을 발견했다. 가진 돈은 없었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구매자금 전액을 은행에서 빌려줄 테니까. 몇 년 지나면 자신이 산 건물 값은 크게 오를 것이고 그때 차액만 챙기면 된다.

    그러나 허시의 꿈이 산산조각 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07년 4월 미국 2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회사 뉴센추리파이낸셜이 파산신청을 하면서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시작됐다. 주택가격은 급락했고 원리금을 상환할 수 없게 된 허시는 개인파산 신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허시를 비롯해 수백만 명이 재산을 모두 잃고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금융의 카지노化

    미국에서 주택 대출을 받으려면 일반적으로 개인신용 점수, 정기적 수입, 보증금(Downpayment) 지불 등 대출금을 갚을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1995년 저소득층을 위한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대출제도가 만들어지면서 돈 갚을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도 대출이 허용됐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주택자금을 빌려주는 대출상품이다. 대출을 받는 사람의 신용도가 낮기 때문에 당연히 금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주택담보 대출비율(LTV)을 적용해 주택 가격의 60%까지만 대출이 가능한 데 반해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100%까지 대출이 가능했다. 부동산 경기활황을 타고 서브프라임 대출을 받은 이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07년엔 서브프라임 대출을 받은 사람이 720만 명에 달할 정도였다.

    미국 금융기관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수익을 늘리기 위해 각종 파생상품을 만들어냈다. 자산담보증권(ABS)을 만들고 악성 빚만 따로 모아 부채담보증권(CDO)을 만들어 판매하는 식으로 가상의 가치를 천문학적으로 부풀렸다. 금융공학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금융파생상품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생겨났다. 예컨대 실제 담보가치는 100원밖에 안 되는 주택금융상품을 바탕으로 도합 500원이 넘는 가치를 갖는 파생상품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또 원리금 상환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채권보증회사와 신용디폴트스왑(CDS) 계약을 체결한다. 은행들이 채권보증회사와 CDS 계약을 체결하고 보험료를 내면 대출자가 돈을 갚지 않을 때 채권보증회사가 대신 원리금 지급을 보증하는 시스템이다. 경기가 좋을 때는 각종 파생상품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지만 경기가 나빠지면 연쇄반응으로 금융기관의 줄도산이 불가피한 ‘고위험 고수익’ 구조가 형성된 것. 2004년 1분기 200억 달러에 불과하던 부채담보증권(CDO) 시장은 2007년 1분기 1800억 달러로 3년 사이 9배나 증가했다. 서브프라임 융자와 관련한 거래 액수는 1조 3000억 달러에 달했다.

    ‘돈 놓고 돈 먹는’ 카지노 자본주의의 전형이 만들어진 꼴이다. 모두들 눈이 벌게져 새로운 희생자를 불러모으는 데 급급했다. 이때만 해도 파생상품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생각했지 시한폭탄이 되리란 의심은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 거품이 너무 심하다고 판단한 미국 정부가 2004년 저금리 정책을 종결하고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고 기존 대출자들은 원리금을 갚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은행 등 금융기관 역시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해 심각한 손실을 입었다.

    결국 150년 역사를 자랑하는 리먼브러더스가 2008년 9월 15일 파산보호신청을 하면서 무려 6139억 달러에 달하는 파산 사태가 발생했다. 이후 골드먼삭스, JP 모건, 메릴린치 등 미국 5대 투자은행 가운데 3개가 파산하는 금융위기가 도래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대표적 모기지 은행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전직 최고경영자(CEO) 대니얼 머드와 리처드 사이런을 증권거래 사기혐의로 고발했다. 투자자에게 위험성을 알려주지 않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상품 판매에 주력했기 때문이었다. 위험이 폭발 일보 직전에 와 있었는데도 말이다.

    총재와 총장의 만남

    컨트리와이드파이낸셜의 안젤로 모질로 전 회장 역시 증권거래위원회가 지목한 금융위기 촉발 주범 중 한 명이다. 모질로 회장은 저신용 대출을 늘리는 것이 회사를 재앙으로 이끌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회사의 모기지 보험 능력을 과시하면서 투자자를 파산의 구렁텅이로 몰아갔다. 위험성이 높은 금융상품을 우량상품으로 속인 셈이다. 부실 채권의 누적은 결국 회사의 종말을 불러왔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모질로가 개인적으로 선호한 이른바 ‘안젤로의 친구들(Friends of Angelo)’이란 프로그램에 주목했다. 이 프로그램은 모질로가 감독기관이나 의회에 있는 유력 인사들에게 좋은 조건으로 대출을 해줘 친분관계를 넓히려고 마련한 것이었다. 물론 연간 4000억 달러 규모의 모기지 금융을 다루는 회사 처지에서 ‘안젤로의 친구들’ 대출은 소액에 불과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액수가 아니라 절차였다. 합법적 대출 절차를 무시하고 친분관계에 따라 돈을 빌려줬다는 게 문제였다.

    증권거래위원회는 모질로의 내부자거래 혐의도 적발했다. 모질로가 회사 모기지 운영이 어려워지자 이런 상태를 공개하지 않고 숨긴 채 자신의 주식 지분을 매각해 1억4000만 달러 이상의 이득을 챙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2011년 2월 미국 연방검찰은 모질로 전 회장을 기소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모질로는 증권거래위원회와 협상을 벌여 단지 6750만 달러의 벌금을 내는 데 합의했다. 이는 모기지 대출 피해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2008년 10월 중순, 티모시 가이트너 당시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가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 검찰총장을 만났다. 미국의 가장 큰 금융기관들을 거느리고 있던 가이트너 총재는 파산 직전 은행들의 구제와 거대 보험사인 AIG 처리 문제로 고심 중이었다. 쿠오모 총장 역시 은행들과 신용평가기관들이 어떻게 1년 넘게 금융시장을 파국으로 몰아넣었는지, 그리고 AIG 임원에 대한 보너스 지급이 적법하게 이뤄졌는지를 들여다보던 중이었다. 두 사람은 클린턴 행정부 때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가이트너 총재는 이 자리에서 언제 무너져내릴지 모르는 금융 시스템의 위험한 상태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금융시장 안정이 최우선 목표인데, 검찰총장이 월스트리트를 강하게 압박하면 이러한 안정화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만남 이후 가이트너 총재는 대변인을 통해 “수사를 완화해달라는 언급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결국 합법적 절차를 무시한 위험한 대출과 지나친 공격 경영이 금융위기를 재촉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충격적인 사실은 어떤 최고경영자도 기소되거나 구속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1980년대 대부조합(S·L) 대출비리 사건이 터졌을 때 미국 정부 특별조사팀은 1100건의 사건을 검찰에 고발했으며 800명이 넘는 은행 간부가 구속된 바 있다. 구속자 중엔 은행장도 여럿 포함됐다.

    증거 없앤 피의자들

    2008년 봄 금융위기가 가시화했는데도 연방수사국(FBI)은 모기지 사기 사건을 조사할 현장 인력을 당초 계획보다 오히려 줄였다. 게다가 그해 여름 법무부는 모기지 비리를 전담 조사하는 특별조사팀을 구성하라는 여론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복잡한 문제를 소수의 요원이 떠맡을 수밖에 없었다. 사태 초기 감독·수사기관들이 범죄정보 수집에 신경을 덜 쓴 탓에 막상 사태가 크게 확대된 뒤 혐의 입증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피의자 대다수가 혐의와 관련된 각종 증거를 인멸했기 때문이다. 조사를 제대로 했다면 세계적으로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초래한 이들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문제적 인물 몇 명이 몰래 만나 작당해 규제를 느슨하게 하고, 당국이 제대로 감독하지 않아 금융위기가 발생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한 분석일 수 있다. 하지만 규제를 완화하고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아 대출 사기 등 각종 금융범죄가 자행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형사처벌을 하려면 범죄 의도를 입증해야 하는데, 금융범죄는 이게 쉽지 않다는 점도 있다. 하지만 수사기관에서 조금 더 치밀하고 집요하게 범죄 혐의를 찾으려 했다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다. 특히 CEO들이 뻔히 손실을 낼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투자를 유도하고, 내부 정보를 이용해 거액을 챙겼다는 의혹에 대해 철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이를테면 메릴린치는 수백 억 달러에 달하는 부실 채권을 알면서도 보유하고 있었다. 모질로 역시 회사 경영이 어렵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의 지분을 팔았다. 그가 주식을 판 뒤 이 회사의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결국 도산으로 이어졌다. 리먼브러더스의 임원들도 파산보호를 신청하기 불과 수개월 전인 2008년 여름 회사 재정 상태에 문제가 없다고 투자자들을 거듭 안심시켰다. 월스트리트 금융회사 중 최초로 무너진 베어스턴스도 모기지 증권 상황이 어려워지자 회사 임원들이 투자자 손실을 줄이는 데 써야 할 회사 자본금을 갖가지 명목을 붙여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채우는 데 썼다. 그런데도 법무부는 모질로나 AIG 금융부문의 조지프 카사노 회장같이 회사 파산을 책임져야 할 어떤 사람도 기소하지 않았다.

    금융당국의 직무유기

    감독기관이 제대로 감독하지 않으면 금융범죄를 기소하기란 매우 어렵다. 회사를 거덜내고 있는데도 ‘조직적 횡령’ 혐의를 조사하지 않는다면 형사 사건으로 다뤄질 가능성은 애초부터 없는 셈이다. 검찰과 같은 사법기관은 금융사건의 경우 금융감독기관의 의견을 많이 참작한다. 수사도 대부분 감독기관의 고발로 시작된다. 금융범죄란 게 워낙 복잡하고 수사에 전문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미국의 금융 감독기관이 고발한 사건은 수적으로 이전보다 훨씬 적었다. 금융위기가 벌어졌는데도. 1995년 감독기관들은 무려 1837건의 사건을 연방검찰에 넘겼다. 그러나 2006년 그 숫자는 20분의 1도 되지 않는 75건에 불과했고, 이후 4년 동안 최악의 금융위기를 겪었는데도 연간 평균 72건만을 형사고발 조치했다. 미국 저축금융기관감독청(OTS)이 관할하는 은행들은 2007년 여름부터 2008년 말까지 불과 1년 반 사이에 3550억 달러의 손실을 냈으나 OTS는 2000년 이후 단 한 건도 형사고발을 하지 않았다. 미국 재무부 소속 통화감사원(OCC) 역시 지난 10년 사이 단 3건만을 형사고발했을 뿐이다.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 일부에서 컨트리와이드파이낸셜의 부실 경영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를 건의했지만 존 라이 당시 OTS 청장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일축했다. 라이 청장은 모질로와 긴밀한 친분을 맺고 있기도 했다. 심지어 금융위기가 터진 뒤 의회에 ‘금융위기조사위원회’가 만들어져 진상 규명에 나서고 일부 조사위원들이 강력한 조사를 요구했지만 컨트리와이드파이낸셜에 대한 심층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모질로를 상대로 한 청문회 계획도 공화당 의원들의 반대로 수포로 돌아갔다. 모질로는 의회 조사의 칼날도 빗나가게 할 만큼 막강했다.

    2004년 FBI가 모기지 대출 사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수사팀을 꾸려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한 바 있다. 20개가 넘는 지역에서 사기 행각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수사는 쉽지 않았다. 우선 수사 인력을 차출당하는 쪽에서 가만있지 않았다. 특히 당시 최우선 과제였던 테러 부문에선 오히려 다른 쪽 인력을 요구하는 형편이었다. 결국 모기지 사기 사건 조사는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의 위험성이 표면화하고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을 때 모기지 부정을 다루는 FBI 요원은 15명에 불과했다. FBI 전체 1만3000명 수사요원의 0.1% 남짓한 숫자다. 마이클 머케이시 법무장관은 과거 엔론 사태를 담당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과 유사한 특별조사팀 구성이 시급하다는, 거듭된 요청을 묵살했다. 수사 인력 증원과 경비를 위해 1억 6500만 달러의 별도 예산을 요구했지만 이것도 3000만 달러로 크게 줄어들었다.

    금융회사들이 연쇄 파산하는 등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FBI는 뒤늦게 화이트칼라 범죄 전담 수사요원의 숫자를 대폭 늘리기로 하는 등 때늦은 대응에 나섰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후 FBI는 경제범죄 전담 수사요원의 숫자를 177명으로 늘리는 한편 새로 1522건의 사건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 역시 1980년대 대부조합 금융위기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FBI 요원 숫자보다 수백 명이 적었다.

    테러만 범죄인가

    무엇보다 2001년 9·11테러가 금융범죄에 대한 수사를 어렵게 만들었다. 9·11테러는 지난 100년 사이 미국 국민을 가장 놀라게 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도 미국 본토가 대상은 아니었다. 미국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뉴욕과 워싱턴이 폭탄테러로 쑥대밭이 됐을 때 미국인이 느낀 공포와 분노는 상상 이상이었다. 미국 수사기관의 최대 관심사는 테러 예방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장기간의 수사 기간과 다수의 수사 인력을 요구하는 금융범죄 등 화이트칼라 범죄 수사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9·11테러 이후 연방수사기관은 범죄 수사 인력을 대거 테러 부문으로 전출시켰다. FBI는 2001년 이후 수사 부문 인력의 3분의 1이나 되는 약 1800명의 요원을 테러부문으로 옮겼다. 특히 모기지 대출 사기와 같은 화이트칼라 범죄 전담 수사 요원의 숫자를 625명이나 줄였는데 이는 2001년 이전에 비해 36%나 줄어든 수치다.

    전담 수사요원 부족은 수사의 양상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2000년만 해도 금융기관의 부정을 수사한 사건이 한 해 2400건을 상회했으나 2007년에는 1257건으로 48%나 감소했다. 보험 부정과 관련한 사건 수사는 같은 기간에 무려 76%나 줄어들었다. 반면 국가안보 및 테러와 관련한 사건의 수사는 2000년 54건에 불과했으나 2007년에는 361건으로 570% 가까이 급증했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에 따라 테러 방지 대책에 몰두한 탓에 다른 부문은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각종 감독과 규제를 풀어주고 비리와 범죄를 조사할 인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금융업계는 자물쇠 열린 곳간과 같았다. 투기 열풍 속에 한몫 잡으려고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순진한 투자자들만 끌어모으면 됐다. 언젠가는 꺼질 거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 지금은 아니고, 본인만은 예외라는 착각 속에 거품은 커져만 갔다.

    투기로 인한 거품 형성과 몰락은 역사적으로 되풀이됐다. 로마 시대부터 최근의 금융위기까지 인간의 탐욕이 끊임없이 거품을 만들고 버블 붕괴를 일으켰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가 대표적이다. 17세기 초 세계경제를 주름잡았던 네덜란드에서는 과시욕이 넘쳐났다. 당시 부의 상징이 튤립이었다. 귀족과 부유층만이 최고급 튤립을 사들일 수 있었다. 1624년 ‘황제 튤립’이라는 품종은 당시 암스테르담 시내 집 한 채 값을 호가했다. 튤립 거래는 주로 경매에 의존했지만 선물거래까지 생겨났다. 미리 어음으로 거래한 뒤 튤립 뿌리를 캐낼 수 있을 때 실물을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실체도 없는 튤립 거래가 돌고 돌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관련돼 만들어진 파생상품과 다를 바 없었다. 노란색 평범한 튤립 뿌리 값이 20길더에서 일주일 만에 1200길더로 폭등한 경우도 있었다. 광풍에 가까운 투기였다. 튤립의 적정 가격이란 건 없었다. 투기꾼들은 끊임없이 튤립 값을 올리는 데 혈안이 됐다. 다들 이런 열기가 언젠가는 수그러질 거라고 입을 모았으나 자신만 손해를 입지 않으면 된다고 여겼다. 가격이 더 올랐을 때 팔고 빠지면 된다고만 생각했다. 1637년 2월 3일, 어떤 구체적 사건이나 계기도 없이 튤립시장이 붕괴했다. 튤립을 살 사람이 더는 없다는 소문이 돌고 실제로 튤립이 전혀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조합과 저축은행

    1980년대 정크본드 투기 사태도 비슷하다. 이때도 탐욕이 빚은 거품이 엄청났다. 신용등급이 낮은 채권, 즉 정크본드를 ‘추락한 천사’라고 부르며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고 나선 것이다. 정크본드 시장의 대부 마이클 밀켄은 정크본드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신용평가 회사들이 정크본드를 낮게 평가하는 이유는 기업의 미래보다 과거만을 평가하기 때문이라고 반박하면서 정크본드의 미래 가치가 상당하다고 주장했다.

    정크본드는 1980년대 후반 대부조합 사태로 연결된다. 대부조합들은 원래 일반 서민을 상대로 담보대출을 해주는 곳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 레이건 행정부가 이자율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면서 시중은행들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너도 나도 높은 예금금리를 제시했고 대부조합도 어쩔 수 없이 고금리 경쟁에 휘말렸다.

    장기저리 대출을 주로 하던 대부조합으로서는 손실을 볼 게 뻔한데도 높은 예금금리를 약속해야 하니 죽을 노릇이었다. 정부가 긴급대책을 내놓았으나 부동산 담보대출의 경우 100%까지 대출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대부조합에 대한 각종 규제를 풀어주는 정도였다. 문제를 오히려 키우는 방안이 대책으로 나온 것이다.

    대부조합은 손실 만회를 위해 급기야 고위험 고수익의 정크본드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자산의 3분의 1을 정크본드에 투자한 대부조합도 생겨났다. 심지어 신용등급조차 매길 수 없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정크본드를 사들이기까지 했다. 대부조합 펀드 매니저들은 회사 경비로 초호화 아파트와 자가용 비행기, 요트 등을 구입하고 흥청망청 써댔다.

    수익만 창출된다면 도덕적 해이는 문제되지 않았다. 손실을 은폐하기 위한 분식회계는 기본이었다. 또 정치인들과 감독 당국자들을 매수하는 데도 열심이었다. 대다수 상·하원 의원에 대한 선거자금 지원은 물론이고 정책에 영향력이 큰 인물들을 자문역 등으로 임명했다. 한국의 저축은행들도 이명박 정부 때 비슷한 행태를 보인 바 있다.

    그러나 1980년대 말 대부조합에 대한 집중적인 조사가 시작되면서 각종 비리가 드러났고 이로 인해 700개가 넘는 대부조합이 문을 닫았다. 밀켄도 1988년 9월 횡령과 시세조종, 내부자 거래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본인의 혐의를 강력 부인하던 밀켄은 1991년 11월 결국 10년 징역형과 6억 달러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정크본드 시장은 붕괴한다. 1989년 7월 미국 의회는 대부조합이 보유한 정크본드를 청산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미국의 한 금융 저널리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투자자들이 10년 동안 긴 꿈에서 깨어나 위험이 따르지 않는 고수익은 없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자본주의의 밑바닥에는 항상 탐욕이 똬리를 틀고 있다. 모든 경제위기는 탐욕의 산물이다. 탐욕이 기회를 만나면 범죄를 낳는다. 금융범죄의 공식도 똑같다. 2008년 금융위기는 왜 발생했는가. 수많은 분석이 나왔지만 아직껏 ‘범죄’의 관점에서 바라본 경우는 거의 없다. 각종 사기와 횡령이 결합해 금융위기가 촉발됐는데도 말이다.

    ‘사람 죽이는’ 범죄

    요컨대 미국에서 시작돼 세계로 번진 금융위기를 범죄적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금융위기를 금융 시스템의 잘못에서 그 원인을 찾고 대책을 강구한다면 또 다른 금융위기가 닥쳐올 수밖에 없다. 어떤 금융 시스템도 이를 악용하려는 ‘사람’을 완벽하게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금융위기를 ‘범죄’로 인식하고 이를 막는 노력에 나서지 않는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다.

    모든 탐욕은 기회만 엿보고 있다. 그래서 감시와 통제의 틈이 조금이라도 벌어질 때 탐욕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 법이다. 범죄적 접근이 필요한 까닭이다. 일반 절도와 강도는 개인을 상대로 벌어지지만 사기와 횡령 등 금융범죄는 그 피해자가 수백만 명에 달할 수 있다. 사람의 목숨을 끊게도 만든다. 그럼에도 심각한 범죄라는 인식이 약해 경제위기가 빚어지고 많은 사람이 손해를 입는다. 범죄가 역사를 바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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