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거래위원회는 모질로의 내부자거래 혐의도 적발했다. 모질로가 회사 모기지 운영이 어려워지자 이런 상태를 공개하지 않고 숨긴 채 자신의 주식 지분을 매각해 1억4000만 달러 이상의 이득을 챙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2011년 2월 미국 연방검찰은 모질로 전 회장을 기소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모질로는 증권거래위원회와 협상을 벌여 단지 6750만 달러의 벌금을 내는 데 합의했다. 이는 모기지 대출 피해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2008년 10월 중순, 티모시 가이트너 당시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가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 검찰총장을 만났다. 미국의 가장 큰 금융기관들을 거느리고 있던 가이트너 총재는 파산 직전 은행들의 구제와 거대 보험사인 AIG 처리 문제로 고심 중이었다. 쿠오모 총장 역시 은행들과 신용평가기관들이 어떻게 1년 넘게 금융시장을 파국으로 몰아넣었는지, 그리고 AIG 임원에 대한 보너스 지급이 적법하게 이뤄졌는지를 들여다보던 중이었다. 두 사람은 클린턴 행정부 때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가이트너 총재는 이 자리에서 언제 무너져내릴지 모르는 금융 시스템의 위험한 상태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금융시장 안정이 최우선 목표인데, 검찰총장이 월스트리트를 강하게 압박하면 이러한 안정화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만남 이후 가이트너 총재는 대변인을 통해 “수사를 완화해달라는 언급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결국 합법적 절차를 무시한 위험한 대출과 지나친 공격 경영이 금융위기를 재촉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충격적인 사실은 어떤 최고경영자도 기소되거나 구속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1980년대 대부조합(S·L) 대출비리 사건이 터졌을 때 미국 정부 특별조사팀은 1100건의 사건을 검찰에 고발했으며 800명이 넘는 은행 간부가 구속된 바 있다. 구속자 중엔 은행장도 여럿 포함됐다.
증거 없앤 피의자들
2008년 봄 금융위기가 가시화했는데도 연방수사국(FBI)은 모기지 사기 사건을 조사할 현장 인력을 당초 계획보다 오히려 줄였다. 게다가 그해 여름 법무부는 모기지 비리를 전담 조사하는 특별조사팀을 구성하라는 여론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복잡한 문제를 소수의 요원이 떠맡을 수밖에 없었다. 사태 초기 감독·수사기관들이 범죄정보 수집에 신경을 덜 쓴 탓에 막상 사태가 크게 확대된 뒤 혐의 입증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피의자 대다수가 혐의와 관련된 각종 증거를 인멸했기 때문이다. 조사를 제대로 했다면 세계적으로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초래한 이들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문제적 인물 몇 명이 몰래 만나 작당해 규제를 느슨하게 하고, 당국이 제대로 감독하지 않아 금융위기가 발생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한 분석일 수 있다. 하지만 규제를 완화하고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아 대출 사기 등 각종 금융범죄가 자행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형사처벌을 하려면 범죄 의도를 입증해야 하는데, 금융범죄는 이게 쉽지 않다는 점도 있다. 하지만 수사기관에서 조금 더 치밀하고 집요하게 범죄 혐의를 찾으려 했다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다. 특히 CEO들이 뻔히 손실을 낼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투자를 유도하고, 내부 정보를 이용해 거액을 챙겼다는 의혹에 대해 철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이를테면 메릴린치는 수백 억 달러에 달하는 부실 채권을 알면서도 보유하고 있었다. 모질로 역시 회사 경영이 어렵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의 지분을 팔았다. 그가 주식을 판 뒤 이 회사의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결국 도산으로 이어졌다. 리먼브러더스의 임원들도 파산보호를 신청하기 불과 수개월 전인 2008년 여름 회사 재정 상태에 문제가 없다고 투자자들을 거듭 안심시켰다. 월스트리트 금융회사 중 최초로 무너진 베어스턴스도 모기지 증권 상황이 어려워지자 회사 임원들이 투자자 손실을 줄이는 데 써야 할 회사 자본금을 갖가지 명목을 붙여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채우는 데 썼다. 그런데도 법무부는 모질로나 AIG 금융부문의 조지프 카사노 회장같이 회사 파산을 책임져야 할 어떤 사람도 기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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