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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엘리트 장악, 주민 포섭으로 독재 내구성 키웠다

북한은 왜 붕괴도, 개혁개방도 안 할까?

  •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엘리트 장악, 주민 포섭으로 독재 내구성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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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한 독재자일수록 확고한 독재자일 가능성이 크며 이와 같은 독재자가 권력을 상실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권력을 잃더라도 그것은 이너서클 엘리트의 역모와는 상관없는 방식으로 발생한다. 자연사, 대중봉기, 외국의 간섭 등에 의해 권력을 상실한다. 그런데 앞서 지적했듯 일반적으로 독재정권 정변에서 대중 봉기나 외국의 간섭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확고한 독재, 또는 북한식 ‘수령제’는 일반적인 독재에 비해 불안정해질 확률이 5분 1에 그친다는 것이다.

북한 정권의 내구성이 강화된 또 다른 이유는 일당독재 체계를 바탕으로 정권이 주민집단을 선별적으로 포섭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일당 체제가 가진 조직상의 세 가지 특징 때문이다. 북한은 우선 당원으로서 행해야 하는 봉사는 초급 당원일 때 떠맡게 한다. 당원으로서의 이득은 고급 당원이 돼야 누리는 식으로 봉사와 이득을 위계적, 순차적으로 배정했다. 이렇게 되면, 상급 당원이 될수록 현존 정권의 영속성과 이해관계를 공유한다.

북한은 또 당원인 것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직책의 숫자를 늘렸다. 이를 통해 당원이 되고자 하는 욕구, 당원과 현존 정권의 운명공동체로서의 일체감을 높였다. 북한은 독재국가 중에서도 유별나게 거의 모든 간부의 직책 임명을 당적으로 통제한다. 또한 북한은 주민집단을 정치적 충성도에 따라 등급화하고 그에 상응하게 공공재 배분을 차별했다.

부익부빈익빈 경제구조

독재에는 독특한 경제논리, 즉 독재의 경제논리가 있다. 독재자가 권력을 유지하려면 소수의 충성집단에 충분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독재자는 다수 주민으로부터 경제잉여를 추출해 핵심 지지 집단에 재분배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은 경제성장이나 주민복지를 희생해야 가능하다. 통치집단 구성원의 충성을 유지하는 데 충분한 잉여를 확보하고 배분할 수 있다면 경제가 침체하더라도 독재정권은 위협받지 않는다.



또한 독재 국가에서 독재자-엘리트-주민 사이의 권력 배분 상태는 경제잉여의 배분 상태와 대체로 일치한다. 만약 어떤 그룹이 자신의 상대적 권력에 비해 너무 작은 이득을 얻을 경우 이 그룹은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이득 배분 상태를 바꾸고자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권력의 집중도가 심할수록 기회와 재화가 권력집단에 집중된다.

북한에서 독재의 경제논리는 1990년대 경제난을 거치면서 변모했다. 국가의 중앙재정이 붕괴하면서 독재자와 국가는 과거처럼 계획 및 배급체계를 직접 활용해 정권 핵심 집단에 경제적 특혜를 배분하는 방식에서 한계에 직면했다. 물론 계획과 배급은 완전히 철폐되지 않았지만 그 불완전성을 보완하고자 두 가지 장치가 추가로 동원됐다. 하나는 특권적 사업권을 배분해 정권 기관 운영 및 충성 집단의 소득을 보장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광물 수출이나 원조 유입과 같은 외래 수입을 증가시켜 투자와 생산을 하지 않고서도 정권 유지 자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다.

특권적 사업권 배분을 보자. 김정일은 당·군 및 보안 관련 주요 기관처럼 정권유지를 위해 불가결한 특수기관에 독점적 사업권, 특히 무역권을 배분했다. 이들은 분야별 독점 무역권을 바탕으로 상업적 활동을 전개해 독과점 이윤을 벌어들였다. 벌어들인 이윤은 해당 기관의 운영자금, 간부의 부정 축재 및 종업원의 소비 특권 유지, 그리고 김정일에게 건네는 ‘충성자금’ 상납에 사용된다.

북한에서 이러한 체계를 수립한 선구자는 다름 아닌 1970년대 후계 추진 과정에서 정치자금이 필요했던 김정일이다. 김정일이 분배하는 독점적 사업권, 특히 무역권은 각종 기관과 집단이 정권 유지에 얼마나 긴요한지에 따라 차별적으로 배분됐다. 1995년 이후 선군(先軍) 정치 시대에는 군대가 정권 유지에 가장 중요한 집단으로 대두하면서, 가장 많은 특혜를 차지했다. 2009년 이래 김정은 후계 체제 수립 과정은 장성택 최용해 등의 당료 그룹을 새로운 주류로 등장시켰고, 이에 상응한 이권 재배분 과정에서 갈등이 빚어졌다.

시장에서 富 쌓은 권력

이처럼 북한 정권의 재정체계는 조세수입이 아니라 특권기관의 ‘자체 벌이’를 바탕으로 한 운영자금 확보와 상납(충성자금)에 의존하는 체계로 점차 진화했다. 이러한 재정체계는 다차원적으로 불투명한데, 그 불투명성은 결국 권력을 가진 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따라서 경제구조 자체가 부익부빈익빈을 촉진하는 기능을 내장하고 있다. 또한 독재자가 가장 큰 재력가가 되고, 개별적 특권 기관과 그 연루 집단은 부유하지만, 국가재정은 영속적으로 붕괴 상태가 지속된다. 국가재정 붕괴는 경제성장과 인민생활 향상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국가의 공공재 공급 기능이 소멸한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평양은 흥성하지만, 국가의 공적 기능은 마비되고 인민경제 전반은 계속적으로 정체에 빠지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경제 체제에서 시장 확대는 정권기관이 영토 내의 부를 정권 유지 자금으로 동원하는 데 기여하는 장치 기능을 한다. 독재자가 정치적 필요에 따라 배분한 독점적 사업권, 주로 무역권을 기초로 정권 기관들은 ‘무역회사’를 설립해 상업적 활동에 참여했고, 이들이 북한의 시장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시장지배적 행위자’로 등장했다.

북한에서 ‘무역회사’는 권력기관의 자회사로서, 정치권력의 배려에 의해 독과점의 특혜와 초과이윤을 보장받고, 정권유지에 필요한 다양한 사업에 궁극적으로 자금을 제공하는 정치·경제 단위다. 정권기관의 무역회사들은 시장의 상층구조를 형성하며 상업적 유통 및 직접 생산의 하부구조를 직접 지배하거나 자생적으로 발생한 시장적 활동과 행위자를 포섭해 하부 구성 요소로서 종사시켰다. 국가기관의 외화벌이 관련 부서가 시장의 상품 유통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위치해 있고, 그 밑에 큰 ‘돈주’들이 있고, 그 아래 몇 단계를 거쳐 맨 밑바닥에 소매 장사와 원천 생산자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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