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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조국 위해 두 번 死線 넘어…돌아온 건 이중간첩 굴레”

前 북파 민간공작원 김소웅 ‘침묵서약’ 50년 만에 입 열다

  • 최호열 기자 │honeypapa@donga.com

“조국 위해 두 번 死線 넘어…돌아온 건 이중간첩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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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직후엔 주로 북한 지리를 잘 아는 북한 피난민을 민간공작원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빨갱이가 싫어서 내려왔는데 왜 다시 가겠느냐’며 통 지원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사형수나 무기수, 전쟁고아들을 활용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북한으로 넘어가자마자 자수하거나 내려오지 않았다. 그곳에서 새 삶을 선택한 것이다. 이들로 인해 북파공작 기밀이 유출되는 등 문제가 불거졌다. 1960년 1월 1일부터 정보부는 작전을 바꿨다. 물색조를 사회에 보내 일반인 중에서 포섭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 가장 먼저 타깃이 된 게 건달들이었다. 건달 중에서도 날래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스무 살 안팎의 청년들에게 접근했다.

극한의 생존훈련

포섭하는 대로 데려가서 키퍼로 불리는 교관이 1대 1로 훈련을 시켰다. 따라서 군대처럼 집단훈련을 받는 특수임무수행자들과 달리 동기나 기수가 없다. 점조직으로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했기에 같은 훈련을 받고 있어도 서로를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특수임무수행자들은 훈련 중에 찍은 단체사진이라도 있지만 민간공작원은 훈련받을 때 사진이 없다. 특수임무수행자가 무장공비처럼 적지에 침투해 파괴, 살상을 함으로써 혼란을 유도하는 게 주 임무라면 민간공작원은 정보수집, 요인 암살과 납치 같은 간첩 역할이 주 임무였다.

“민간공작원은 원래 ‘도꼬다이(혼자)’로 생활하고 훈련하는데, 나와 이현방은 2인1조로 같이 했어. 그런데 처음엔 빨래랑 식사를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는 거야. ‘우린 그런 거 해본 적도 없고, 할 생각도 없다, 더구나 이런 추운 겨울에 어떻게 하느냐’며 못 하겠다고 했지. 그랬더니 ‘알았다’며 광탄초등학교 근처에 하숙을 시켜줬어. 젊은 신혼부부가 사는 집이었지. 앞서 훈련받은 사람들이 혼자 지내니까 밥해먹기 귀찮아 미8군에서 나오는 식료품으로 끼니를 때우는 바람에 미제 물건 쓰레기가 많이 나온 거야. 젊은 놈이 만날 미제만 먹으니까 동네 주민이 이상하게 생각해서 112신고를 하는 등 보안 노출 문제가 생기니까 보급품을 차단하고 대신 하숙을 하게 한 거였어.”

▼ 훈련은 어땠나.



“보통 산에서 훈련했지. 5일 내리 산 속에서 생활한 적도 많아. 총알은 사고 날까봐 잘 안줬고, 주로 M1이나 카빈소총에 대검을 꽂은 게 전부였는데, 대검은 면도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로웠어. 주로 표창술을 배웠고, 목 꺾기 등 온몸을 활용해 상대를 제압하고 죽이는 기술을 배웠지. 비가 쏟아지면 밤에 공동묘지에서 담력훈련을 하고.”

산악훈련은 주로 산길을 뛰어 시간 내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10kg짜리 모래주머니를 양발에 하나씩 차고, 20kg짜리 배낭을 짊어지고 뛰었다. 걷거나 뛸 때 소리가 나면 안 됐다. 그뿐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노출될 위험이 있는 산 정상이나 계곡은 안 되고 눈에 안 띄는 7, 8부 능선으로 다녀야 했다.

“그렇게 비탈지고 험한 길만 골라서 1시간에 10km를 주파하라는 거야. 처음엔 절반도 못 갔지. 그러면 그 추운 겨울에 얼음을 깨고 물속에 들어가 5분 정도 있다 나오길 반복하는 기합을 받곤 했어. 죽을 고생이었지.”

“여자 한번 붙여주곤 끝이야”

“조국 위해 두 번 死線 넘어…돌아온 건 이중간첩 굴레”

김 씨(왼쪽)는 북파공작원을 그만둔 후 강제징집되어 현역으로 입대했다.

사람의 능력은 무한한 모양이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1시간 10km 주파가 가뿐해졌다. 그러자 곳곳에 지뢰와 모래장애물, 실(絲)장애물이 설치된 지형을 통과하는 훈련이 이어졌다.

“실장애물은 스치기만 해도 실이 끊어져. 그런데 동물이 지나가면서 끊은 자국과 사람이 지나가며 끊은 자국이 달라. 모래장애물에 찍힌 자국도 동물 발자국과 사람 발자국이 다르고… 모래장애물을 지나갈 때는 나뭇가지로 발자국을 지워가며 이동해야 하는데, 나뭇가지도 가까운 데서 꺾으면 발각될 수 있어 멀리 떨어진 곳에서 꺾어와 발자국을 지워야 해.”

집에 있는 날에는 독도법(讀圖法)을 익히거나 유리창 파지법(소리 안 내고 유리를 깨는 것) 같은 것을 익혔다.

“군사기밀지도인 1만5000분의 1로 축소된 항공사진 위에다 실체경을 올려놓고 보면 마치 현장을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입체감이 생생해. 침투할 경로를 중심으로 매일 한 차례 이상 보면서 지형, 지물을 숙지하는 거야. 지뢰지대 등 장애물 위치도 하나하나 점검하고. 매일 보다보니까 나중엔 어디에 소나무가 있는지, 민가 화장실 위치까지 저절로 외워져. 그래서 실제 갔을 때는 처음 와본 곳이었지만 여러 번 온 것처럼 익숙하더라고.”

▼ 훈련 강도는 어느 정도였나.

“해병대에서 받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됐지. 영화 ‘실미도’에 나오는 건 훈련도 아냐. 한겨울에 그냥 산에 풀어놓는 거야. 민가에 들어가서도 안 되고, 민간인에게 노출돼서도 안 돼. 그런 상태에서 산속에서 스스로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해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어. 그런데 그게 다 북한에 침투했다 살아서 돌아오는 데 꼭 필요한 훈련들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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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열 기자 │honeypa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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