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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국무부, 윤창중 사건 때 ‘피해자에 압력 넣지 말라’ 요구”

‘尹 스캔들’로 곤욕 치른 최영진 전 주미대사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美 국무부, 윤창중 사건 때 ‘피해자에 압력 넣지 말라’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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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가해자 귀국, 피해자 접촉 못해 尹 스캔들 오리무중
  • ● 주미 한국문화원 여직원, “근무 못하겠다” 자진 사직
  • ● “박 대통령 미 의회 연설, 내용과 전달력에서 탁월”
  • ● 무역으로 국제관계 패러다임 변해…‘가치외교’ 절실
  • ● “국익 앞에서 국민정서 때문에 잘못된 결정 많았다”
“美 국무부, 윤창중 사건 때 ‘피해자에 압력 넣지 말라’ 요구”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첫 해외순방인 5월 미국 방문은 국제적 망신거리가 된 ‘윤창중 스캔들’로 얼룩졌다.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 성과가 ‘윤창중 스캔들’에 묻히는 것을 누구보다 안타깝게 지켜봐야 했던 이가 박 대통령 방미 실무를 총괄한 최영진(65) 전 주미대사다. 공교롭게도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최 전 대사의 41년 외교관 생활을 마감하는 마지막 소임이었다. ‘중국 당나라 측천무후 이후 유교문화권에서 배출된 첫 여성지도자’라는 논리까지 동원하며 박 대통령의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을 성사시킨 그의 노력은 윤창중 스캔들로 빛이 바랬다. 7월 3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최 전 대사를 만나 만감이 교차했을 한미 정상회담 뒷이야기와 41년의 외교관 생활을 마친 소회를 들었다.

“너희 나라 통일에 기여하라”

▼ 외교관 생활을 마감한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외교 분야에서 40년 넘게 일하는 동안 10년 단위로 현격하게 달라진 대한민국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불과 한두 세대 만에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모두 이뤄내 후진국에서 선진국 대열로 진입한 드문 경우다. 원조를 받던 나라가 원조를 하게 됐고, 선진국의 충고를 들어야 했던 나라에서 다른 나라가 우리 얘기를 경청하는 나라가 됐다.”

▼ 외교관의 길로 들어선 계기는.



“내가 대학에 다니던 1960년대 후반에는 물품도 그렇고 문학작품, 영화 등 모든 게 외국에서 들어온 것 일색이었다. 젊은 혈기에 ‘외국은 어떻게 해서 저렇게 발전했나’ 하는 답답함이 컸다. 처음엔 의과대학(연세대)에 다녔는데 외국 문물을 체득하고 본질을 파악해야 인생의 좌표를 세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의대 4년을 마치고 (정치외교학과로) 학사편입을 했다. 그때는 외국에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외교관이 되는 것 말고는 거의 없었다.”

▼ 뜻대로 외교관이 됐으니 외국 생활을 원없이 했겠다.

“외교관으로 41년 근무하면서 해외에서 보낸 기간이 25년 정도 된다. 그 가운데 9년은 일반 외교관과는 조금 다른 업무를 담당했다.”

최 전 대사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초대 사무차장, 유엔평화유지군 평화담당보, 코트디부아르 담당 유엔 사무총장 특별대표 등을 지냈다. 유엔 사무총장 특별대표로 부임했을 때 코트디부아르는 우리처럼 남북분단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에게 부여된 임무는 분단된 코트디부아르에서 대통령선거를 실시해 통일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

각고의 노력 끝에 3년 반 만에 양측으로부터 대선을 실시하고 대선에서 선출된 대통령이 통일 대통령직을 수행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나 막상 실시한 대선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현직 대통령은 승리할 것을 예상하고 유엔이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였는데 막상 대선에서 패하고 말았다. 낙선한 대통령은 선거 결과를 부정하고 군대를 동원해 선거 결과를 무효화하려 했다.

“코트디부아르에서 마지막 넉 달 동안은 사무실에 포위당한 채 지냈다. 낙선한 대통령은 우리더러 ‘유엔 나가라’고 했고, 우리는 ‘낙선한 당신이 물러나라’고 대치했다. 위험하고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우리가 버티며 지속적으로 진실을 전하고, 실각한 대통령이 실수를 하기 시작하니까 결국 민심이 민주화로 돌아서더라. 덕분에 우리의 미션을 완수할 수 있었다.”

코트디부아르의 대선 실시와 통일이라는 임무를 완수한 최 전 대사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실각한 대통령의 친구였으니까 우리와는 정반대편에 있던 사람인데, 내게 ‘우리나라는 이제 통일이 됐으니 이젠 네 나라에 돌아가 너희 나라 통일에 기여하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다.”

▼ KEDO 사무차장 때 직접 경험한 북한은 어땠나.

“KEDO는 당시 경색된 남북관계를 푸는 첫 단추와도 같았다. 사무차장 자격으로 북한에 6번 다녀왔다. 3년 동안 북한을 상대했는데 지금의 개성공단 가동 중단 사태를 보며 당시와 똑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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