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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연구

‘공공의 적’인가 ‘천리안 전략가’인가

‘NLL 南南전쟁’ 태풍의 눈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 이정훈 편집위원 | hoon@donga.com

‘공공의 적’인가 ‘천리안 전략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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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적’인가 ‘천리안 전략가’인가

민주당 의원과 변호사들이 남재준 국정원장 등을 국정원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소·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지난 18대 대선 직전 노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을 터뜨린 이는 정문헌 의원인데 그는 뒤로 빠졌다. 정 의원은 남 원장과 교감을 나누고 바통 터치를 한 것일까. 두 사람을 잘 아는 이들은 “전혀 상의가 없었다”고 말한다. 정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의 통일비서관을 지냈기에 범MB계로 분류된다. 남 원장은 박근혜 캠프와만 접촉해온 ‘오로지’ 박근혜 맨이다. 그런데도 남 원장은 전문을 공개해 정 의원을 도와줬다. 다음은 국정원 관계자의 말이다.

“정 의원이 노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을 터뜨려 진위 논쟁이 일었을 때 국정원에서는 2차 정상회담 회의록을 일부라도 공개해 의혹을 풀어줘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원세훈 당시 원장은 대선 정국에서 그렇게 하면 정치행위를 했다는 오해를 받는다며 동의하지 않았다. 또한 일부 간부들이 ‘국정원이 가진 회의록이 국가기록물인지 공공기록물인지 판단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피력했기에 원 원장은 회의록 공개를 막았다.

NLL 발언 공개로 정 의원은 고소·고발을 당했는데, 이 사건을 조사한 검찰은 ‘이 회의록은 국정원이 자체 생산한 후 (노무현) 대통령 지시에 따라 국정원에서 관리해온 공공기록물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서는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도 재가했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이 회의록은 국정원장이 비밀 평가를 다시 할 수 있는 공공기록물임이 확실하다. 지난 6월은 대선이 끝난 지 오래인 데다 다른 선거를 앞둔 시점도 아니어서 공개해도 정치에 개입했다는 얘기가 나올 수 없다고 판단, 남 원장이 국가 안보를 위해 공개를 결정했다.”

어항 속의 금붕어

국정원 국정조사 사태가 불거졌는데도 ‘관저귀신’의 행동엔 변화가 없다고 한다. 점심은 국정원 구내에서 먹고, 저녁식사는 퇴근 후 ‘국정사’에서 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 남 원장은 국정원 간부들을 점심 자리에 참석시키지도 않는다. 그의 점심 상대는 자신이 데리고 온 비서실장으로 고정돼 있다시피 하다. 회의록 파문 이후로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선지 청와대 호출도 사라져 그의 차가 내곡동 밖으로 나갈 일도 줄었다고 한다. 그의 사무실에서 ‘국정사’까지는 차로 5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 5분이 그가 바깥바람을 쐬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 된 것이다.



그는 관저생활의 달인이다. 군에서는 관저를 ‘관사’라고 하는데, 대대장 이상의 지휘관은 위수지역을 벗어날 수 없기에 관사를 제공받는다. 30, 40대 지휘관에게도 자녀 교육은 중요한 문제다. 그래서 가족은 대도시에 두고 혼자 관사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아내는 자녀가 대학에 들어가고 남편은 사단장쯤 됐을 때 비로소 관사생활에 동참한다. 이러한 경험 덕분에 남 원장은 관저생활에 익숙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저생활에는 비밀이 없다. 관저에는 요원들이 있기 때문에 ‘어항 속의 금붕어’처럼 살아야 한다.

외부의 적보다는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법. 국정원 직원이라고 해서 정치 성향이 여당 일색일 것으로 보는 것은 단견이다. 지난 대선 직전 터져나온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은 국정원 현직 직원이 민주당에 제보하면서 시작됐다. 남 원장과 정치적 성향이 다른 직원 중 일부는 그를 ‘공적(公敵) 1호’로 보고 소리 없이 관찰할 수도 있다. 국정원 직원들은 모두 ‘미감(미행 감시)’ 교육을 받았으니 ‘그림자 추적’에 능하다.

군에서 회식을 하면 아랫사람들이 회식비를 낸다. 지휘관이 주도한 자리에는 경리 장교가 참석해 비용을 정산한다. 관례가 그렇기에 회식비에 신경을 쓰지 않는 지휘관이 많다. 그러다 외부인이 마련한 자리에 ‘생각 없이’ 참석했다가 오명을 쓰기도 한다. 그래서 ‘군 지휘관은 털면 (비리가) 나온다’는 속설이 굳어졌다.

하지만 남 원장은 ‘관사 회식의 달인’이라 그런 약점이 없었다. 그는 군 지휘관 시절에도 외부 음식점에서 회식을 하지 않았다. 회식은 관사에서만 했는데, 관사 회식은 부대 규정에 따라 예산으로 처리된다. 그러니 신세를 진 부하가 없어 청탁을 받지도, 들어주지도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부하였던 한 예비역 장교는 진급이 확정돼 다른 부대로 떠나게 됐을 때 남 원장에게 “딱 한 번만 부대 밖에서 모실 기회를 달라”고 청했다. 남 원장은 “좋지. 그런데 밥값은 내가 내는 조건이야”라고 응했다고 한다. 그는 관사 회식 원칙을 국정원에서도 이어가고 있다.

‘꼿꼿 재준’

남 원장은 국정원 간부들을 통해서만 보고를 받고 판단하지 않는다. 개성공단 철수처럼 국정원의 일은 아니지만(통일부 소관) 국정원이 대통령을 대신해 판단해야 할 것은 외부 인맥에게도 판단을 의뢰한다. 주로 군과 사회생활을 통해 그와 신뢰를 쌓아온 예비역 장교, 전직 외교관 등 안보통들이다. 부탁을 받으면 이들은 성심껏 판단 자료를 만들어주는데, 남 원장은 가끔 이것을 들고 가 박 대통령을 설득한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의견이 갈리면 박 대통령의 지시라도 듣지 않는다고 한다.

남 원장은 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골프도 치지 않는다. 그러니 주말 외출도 없다. 신세를 진 외부 인사에겐 관사 회식도 베풀지 않는다. 데리고 온 직원을 보내 대신 감사의 접대를 하게 한다. 판단 자료는 구하면서도 외부에서 ‘○○○은 남재준 인맥이다’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접촉을 원천 차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냉정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그는 딸 둘을 뒀는데, 출가한 딸 가족이 주말에 ‘국정사’를 찾는 거의 유일한 손님이다.

그는 담배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절제하는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듯 줄기차게 불을 붙인다. 여가는 전사(戰史)를 중심으로 한 독서로 일관한다. 독서량이 엄청나서 그를 만난 국정원 간부들은 그가 앉아서 천리를 보고, 서서 만리를 보는(座見千里 立見萬里)’ 것 같다고 평하기도 한다. 그의 말을 ‘어록’으로 받아 적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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