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호

말 안 하면 중간도 못 간다 ‘청문회 스타’처럼 뜨라

회의(會議)의 정치

  • 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입력2014-03-19 1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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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직에 몸담은 사람은 회의를 피해갈 수 없다. 사실 회의에서 많은 것이 결정된다. 자신이 성공의 길을 걷게 될 것인지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나 상당수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회의에 임한다.
    말 안 하면 중간도 못 간다 ‘청문회 스타’처럼 뜨라
    회의 때 혹시 졸진 않는가? 어떤 말을 하는가? 반응은 어떤가?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신통치 않은 답변이 나온다면 회의 전략을 바꿔야 한다.

    ‘뭔 회의가 이렇게 많나’

    많은 이는 회의(會議)에 회의(懷疑)한다. 2012년 8월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54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의 평균 회의 횟수는 일주일에 3.2회였다. 이틀에 한 번은 회의에 참석한다는 뜻이다. 이보다 더 많은 곳도 있을 것이다. ‘뭔 회의가 이렇게 많나’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회의에 대한 평가도 ‘역시나’였다. 직장인이 매긴 회의 효율성 점수는 5점 만점에 2.8점에 그쳤다. 거의 낙제 수준이다.

    회의가 비효율적인 원인으로는 ‘결론은 없고 시간만 낭비하므로’(47%), ‘상사가 결국 모든 걸 결정하므로’(26.5%), ‘회의를 하지 않아도 될 일인데 회의를 하므로’( 14.6%), ‘의견을 내는 사람만 내므로’(7.3%)가 나왔다. 들어보면 공감이 가는 내용이고 한 번쯤 경험한 이야기다.



    회의에 대한 회의론은 이미 팽배하다. 그 결과 회의를 줄이려는 노력이 관가에서, 대기업에서, 도처에서 진행 중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세계 도처에서 회의가 열린다. 모두가 ‘회의, 그거 안 해도 된다’고 외치는 상황에서 정말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다. 하지만 회의는 계속 열릴 것이다.

    회의가 열리는 진짜 이유들

    회의가 열릴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들이 있다. 첫째, 답이 보이지 않아서다. 대체로 감당하기 벅찬 일이 터졌을 때 회의부터 하고 본다. 상사가 스스로 해법을 찾았다면 굳이 직원을 모아 숙의할 필요가 없다. 답답하니까 회의를 하는 거다. 그런데도 모두 침묵한다면? 당연히 상사는 다른 차원의 회의론에 빠져든다. ‘이런 자들에게 계속 월급을 줘야 하는 걸까?’

    둘째, 확신이 안 들어서다. 자기 나름의 답을 찾았다고 생각하지만 좀 더 확신이 필요할 때, 상사는 회의를 소집한다. 자기 구상을 말한 뒤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본다. 실제로 원하는 건 자신에게 확신을 심어달라는 거다. 그런데 확신을 깎아내리는 발언만 난무한다면 좌절할 수밖에 없다. 의기소침, 심지어 삐친다. 이때도 상사는 회의에 빠진다. ‘정말, 세상에 믿을 X 하나 없네.’

    심지어 삐친다

    셋째, 총대를 메줄 누군가가 필요해서다. 이미 결론을 내렸고 단지 누군가 악역을 맡아줄 일만 남았을 때, 용의주도한 상사는 직원들을 찾는다. 직원들도 바보가 아니기에 섣불리 나서지 않는다. 모두 입을 닫는 순간 상사도 고개를 떨군다. ‘정말 아무도 없단 말인가.’

    넷째, 단번에 상황을 전파하기 쉬워서다. 일일이 한 명씩 불러서 설명하기 번거로울 때 상관은 회의를 소집한다. ‘상사가 늘 결론을 내려서 불만’이라니, 상사의 처지에선 당치 않은 생각일 뿐이다. 이때 상사는 실소한다. ‘참새가 봉황의 뜻을 어찌 알까.’

    실력과 충성도 평가

    다섯째, 직원을 평가하기 위해서다. 상사는 연말에 문서로 하는 업무 평가보다 자신의 주관적 평가를 더 신뢰한다. 회의를 몇 번 해보면 직원들 간 우열은 물론 인간성까지 여실히 알 수 있다. 상사는 직원들을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단번에 해부한다. 들판의 토끼들은 높은 하늘 위에서 맴도는 독수리의 시선을 벗어나기 어렵다. 독수리는 어떤 토끼가 영민한지 어떤 토끼가 어수룩한지 꿸 수 있다. 상관은 이때 충성도도 평가한다. 사실, 실력보다 이것에 관심이 더 많다. 실력이 비슷한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고, 실력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충성도가 높은 직원을 선호한다. 회의는 충성도를 비교 평가할 수 있는 좋은 계기다.

    회의에 대한 회의론은 투정에 불과하다. 혹은 ‘역공작’이다. “만날 회의만 하면 뭐해”라고 푸념을 늘어놓으면서도 정작 회의 때는 잽싸게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직원이 있다. ‘의견을 내는 사람만 내서’라는 불만을 제기하게 하는 주범이다. 어느 직장에나 이런 직원이 있는데 사람들은 흔히 이런 직원을 ‘잽싸새’라고 칭한다.

    잽싸새, 어벙새, 졸리새…

    잽싸새에게 당하는 줄도 모르고 번번이 당하는 직원은 ‘어벙새’다. 회의 자리엔 잽싸새와 어벙새만 있는 게 아니다. 습관적으로 조는 ‘졸리새’도 있고, 자주 핀잔을 듣는 ‘깨지새’도 있고,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놓는 ‘불평새’도 있고, 상관의 말이라면 무조건 맞장구치는 ‘아부새’도 있다.

    회의는 기회의 장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음지에 묻힌 강자라면, 양지로 화려하게 데뷔할 수 있는 최고의 무대가 회의다. 그런데 잽싸새의 꼬임에 넘어가 회의 때마다 묵언수행으로 일관한다면,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유언비어 중에 “말 안 하면 중간은 간다”는 말이 있다. 참으로 나쁜 말이 아닐 수 없다. 중간만 가서 뭐할 것인가? 가늘고 길게 오래 살아남아보자는 뜻 같은데, 누가 살려는 준다던가?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게 현실이다.

    회의는 정보 수집의 귀중한 장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말하는 정보는 비단 귀로 듣는 것 말고도 눈으로 보는 것, 코로 맡는 것을 포괄한다. 육감까지 동원하면 엄청난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 물 위로 삐죽 고개를 내민 그 ‘일각’을 모아 ‘빙산의 전모’를 그려내야 한다.

    회의는 또한 조직 내부 권력의 판세를 읽을 수 있는 기회다. 현재 주도권을 쥔 세력이 누구인지, 각 세력이 어떤 논리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 있다. 주류는 표시가 난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여유로움이 묻어나게 행동한다. 새롭게 고개를 드는 세력도 본색을 숨기기 어렵다. 회의가 이러하므로 입을 열어야 한다. 물론, ‘잘’ 열어야 한다.

    회의는 오디션 프로그램

    먼저 회의를 오디션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대중가요를 부르는 자리는 아니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처럼 듣는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울림’을 줘야 한다. 은둔자는 루저(loser·실패자)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처음엔 완성도가 떨어지겠지만 일단 입을 열어 말을 해야 한다. 1년만 지나면 달라진다.

    필자는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의 TV토론 자문에 응한 경험도 있고, 중요한 면접을 앞둔 이들의 자문에 도움을 준 경험도 있다. 이때 불과 1시간 정도만 훈련해도 정말 많이 좋아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스스로 놀라워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발표, 토론, 말 잘하는 능력은 확실히 약간의 반복 연습만으로도 개선이 가능하다. 내용, 즉 콘텐츠에 해당하는 부분도 회의 전 성의 있게 준비하면 좋아진다.

    토론에 약한 한국인

    한국인은 토론에 익숙하지 않다. 최근 학교에서 토론 교육을 강화하곤 있으나 여전히 우리 교육은 주입식이 주류다. 토론하는 이유는 합의를 도출하려는 데 있다. 하지만 토론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자기 주장을 펼치는 데에만 열중한다. 결국 회의에서 서로의 의견 차이만 확인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아가 많은 사람은 회의에서 상대방의 반대의견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이 역시 토론 경험 부족에서 기인한다. 토론을 많이 하면 사람마다 생각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 수 있다. 또 타인의 생각 가운데 의외로 합리적인 내용이 많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토론 경험이 부족하다보니, 지적을 당하면 불쾌해한다. ‘대체 무슨 억하심정이 있기에’ 식의 반응이다. 토론은 자주 싸움이 되고 빈정이 상해버리는 비극적 상황으로 끝나곤 한다.

    흥분하면 진다

    타인의 지적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피해를 가장 크게 보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상대방을 겁박한다 해서 그를 설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반발심만 키울 뿐이다. 흥분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불필요한 비난을 초래한다. 공감을 획득해야 주장을 관철할 수 있는데 오히려 그 반대로 가고 있으니 바보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감정 절제는 회의에 임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다.

    그런데 상대방도 차분하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곳이 한국 사회다. 회의 뒤풀이는 이래서 필요하다. 회의 후 술자리를 말하는 게 아니다. 회의 후 격론을 벌인 상대와 감정을 해소하는 시간이다. 복도에서 잠시 대화하는 것도 좋다. 차를 한잔 같이 마시는 것은 더 좋다. 식사를 함께 한다면 물론 더 좋다. 상대에게 나쁜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이해시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일보 후퇴와 뒤풀이

    그 연장선에서 회의 때 타인의 지적에 또 다른 지적으로 바로 맞대응하는 것은 자제할 일이다. 특히 상대방이 불쾌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역력할 때는 더 그리해야 한다. 과감하게 일보 후퇴해야 한다. 번지수를 잘못 찾은 즉각적 반응은 이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의외로 많은 공력을 필요로 한다.

    질문이 나오지 않는 만장일치? 최고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희소하다. 중요한 것은 질문 유도다. 질문에는 호의적 질문과 비판적 질문이 있다. 자신의 말에 대한 호의적 질문을 유도하는 것이 목표이긴 하지만, 비판적 질문이라고 해도 질문이 없는 편보다는 낫다.

    질문이 많은 것은 좋은 일이다. 내 말이 이슈가 된다는 뜻이다. 설명할 시간이 늘어 설득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체로 질문을 던진 사람은 지지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지엽말단 버리고 종심 타격

    질문을 유도하려면 종심을 타격하는 것이 좋다. 종심 타격은 전선이 넓게 퍼진 상태에서 전투력을 끌어 모아 후방의 적 수뇌부와 핵심 전력을 집중 공격함으로써 승리로 이끄는 전술이다. 회의에서 반대론을 돌파할 때 지엽말단적인 쟁점에 일일이 대처하는 방식으로는 상대방을 압도할 수 없다. 이보다는 핵심 쟁점 하나를 집중 공략해 거기에서 우위에 서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다. 그러면 나머지 쟁점은 잔불에 불과해진다.

    종심을 타격할 땐 승리가 확정될 때까지 한동안 압도해야 한다. 초반엔 창대했으나 용두사미로 끝날 것이라면 안 하는 것만 못하다. 그래서 실탄을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호기심 또는 반발심이 들 만한 발언으로 일차 타격을 가하자. 그러면 질문이 쏟아질 것이다. 바로 이때 상대의 군단급 질문 하나에 논리적 융단폭격을 퍼붓는 방식으로 답변하자.

    진정 훌륭한 참모는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안을 단순 나열하기보다 본인이 대안을 선택해 그 대안으로 가자고 제안한다. 그래서 보스가 이의 없이 오케이를 할 수 있게 한다.

    진행자는 을이 되라

    회의를 소집해 진행하는 사람에게도 전술이 필요하다. 상당수 상사는 회의에 관한 아무 철학 없이 회의에 임한다. 자연히 ‘회의장에선 내가 갑’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이런 사고, 매우 위험하다. 적어도 회의할 때 갑은 을처럼 행동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을들이 솔솔 입을 연다. 명령을 하달해도 거부반응을 덜 보인다. ‘모신다’는 기분으로 회의를 끌고 가는 게 훨씬 생산적이다.

    같은 맥락에서 가끔 유머를 구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실력과 충성심을 보여주려는 직원들에게 개그 프로그램 유행어 같은 것을 원용해 잠시 즐거움을 준다고 권위가 훼손되지 않는다. 오히려 반색할 것이고 호평할 것이다. 이때 유머는 간결해야 하고 회의 내용과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질문 샘솟고 이야기 피어나는…

    정치의 중심인 국회는 회의의 연속이다. 공식 회의와 비공식 회의, 대규모 회의와 소규모 회의가 끊임없이 열린다. 이런 회의가 없다면 내전이 일어날 것이다. 회의는 총칼 들고 싸울 일을 말로 해결하게 한다. 그래서 정치에선 회의를 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상황은 여러 형태의 조직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말 안 하면 중간도 못 간다 ‘청문회 스타’처럼 뜨라
    이종훈

    성균관대 박사(정치학)

    국회도서관 연구관

    CBS 라디오 ‘이종훈의 뉴스쇼’ 진행자

    現 아이지엠컨설팅(주) 대표, 시사평론가

    저서 : ‘정치가 즐거워지면 코끼리도 춤을 춘다’ ‘사내정치의 기술’


    회의에선 스타가 탄생한다. 우리는 이미 적지 않은 청문회 스타를 안다. 많은 사람의 이목이 집중된 회의에서 출중한 언변과 논리로 통찰력 있게 길을 제시하는 사람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질문이 샘솟고, 이야기가 피어난다. 그래서 스타가 되는 것이고 성공에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회의의 이런 긍정적 기능에 주목하면서 회의를 내 성장의 기회로 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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