잽싸새, 어벙새, 졸리새…
잽싸새에게 당하는 줄도 모르고 번번이 당하는 직원은 ‘어벙새’다. 회의 자리엔 잽싸새와 어벙새만 있는 게 아니다. 습관적으로 조는 ‘졸리새’도 있고, 자주 핀잔을 듣는 ‘깨지새’도 있고,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놓는 ‘불평새’도 있고, 상관의 말이라면 무조건 맞장구치는 ‘아부새’도 있다.
회의는 기회의 장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음지에 묻힌 강자라면, 양지로 화려하게 데뷔할 수 있는 최고의 무대가 회의다. 그런데 잽싸새의 꼬임에 넘어가 회의 때마다 묵언수행으로 일관한다면,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유언비어 중에 “말 안 하면 중간은 간다”는 말이 있다. 참으로 나쁜 말이 아닐 수 없다. 중간만 가서 뭐할 것인가? 가늘고 길게 오래 살아남아보자는 뜻 같은데, 누가 살려는 준다던가?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게 현실이다.
회의는 정보 수집의 귀중한 장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말하는 정보는 비단 귀로 듣는 것 말고도 눈으로 보는 것, 코로 맡는 것을 포괄한다. 육감까지 동원하면 엄청난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 물 위로 삐죽 고개를 내민 그 ‘일각’을 모아 ‘빙산의 전모’를 그려내야 한다.
회의는 또한 조직 내부 권력의 판세를 읽을 수 있는 기회다. 현재 주도권을 쥔 세력이 누구인지, 각 세력이 어떤 논리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 있다. 주류는 표시가 난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여유로움이 묻어나게 행동한다. 새롭게 고개를 드는 세력도 본색을 숨기기 어렵다. 회의가 이러하므로 입을 열어야 한다. 물론, ‘잘’ 열어야 한다.
회의는 오디션 프로그램
먼저 회의를 오디션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대중가요를 부르는 자리는 아니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처럼 듣는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울림’을 줘야 한다. 은둔자는 루저(loser·실패자)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처음엔 완성도가 떨어지겠지만 일단 입을 열어 말을 해야 한다. 1년만 지나면 달라진다.
필자는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의 TV토론 자문에 응한 경험도 있고, 중요한 면접을 앞둔 이들의 자문에 도움을 준 경험도 있다. 이때 불과 1시간 정도만 훈련해도 정말 많이 좋아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스스로 놀라워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발표, 토론, 말 잘하는 능력은 확실히 약간의 반복 연습만으로도 개선이 가능하다. 내용, 즉 콘텐츠에 해당하는 부분도 회의 전 성의 있게 준비하면 좋아진다.
토론에 약한 한국인
한국인은 토론에 익숙하지 않다. 최근 학교에서 토론 교육을 강화하곤 있으나 여전히 우리 교육은 주입식이 주류다. 토론하는 이유는 합의를 도출하려는 데 있다. 하지만 토론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자기 주장을 펼치는 데에만 열중한다. 결국 회의에서 서로의 의견 차이만 확인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아가 많은 사람은 회의에서 상대방의 반대의견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이 역시 토론 경험 부족에서 기인한다. 토론을 많이 하면 사람마다 생각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 수 있다. 또 타인의 생각 가운데 의외로 합리적인 내용이 많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토론 경험이 부족하다보니, 지적을 당하면 불쾌해한다. ‘대체 무슨 억하심정이 있기에’ 식의 반응이다. 토론은 자주 싸움이 되고 빈정이 상해버리는 비극적 상황으로 끝나곤 한다.
흥분하면 진다
타인의 지적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피해를 가장 크게 보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상대방을 겁박한다 해서 그를 설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반발심만 키울 뿐이다. 흥분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불필요한 비난을 초래한다. 공감을 획득해야 주장을 관철할 수 있는데 오히려 그 반대로 가고 있으니 바보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감정 절제는 회의에 임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다.
그런데 상대방도 차분하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곳이 한국 사회다. 회의 뒤풀이는 이래서 필요하다. 회의 후 술자리를 말하는 게 아니다. 회의 후 격론을 벌인 상대와 감정을 해소하는 시간이다. 복도에서 잠시 대화하는 것도 좋다. 차를 한잔 같이 마시는 것은 더 좋다. 식사를 함께 한다면 물론 더 좋다. 상대에게 나쁜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이해시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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