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호

전통문화 알리고 받는 사람에게 미소를

대통령 선물에 담긴 ‘박심(朴心)’

  • 동정민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ditto@donga.com

    입력2014-03-20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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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이름으로 나가는 선물을 직접 고른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각별한 정성을 쏟는다. 외국 귀빈에게 한국 고유 문화를 알리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3월 초 대통령 휘장과 서명을 새긴 가짜 시계를 만들어 판매한 50대 시계 판매업자가 검찰에 붙잡혀 기소됐다. 이 업자는 개당 2만~4만 원의 가격에 시계를 팔았다고 한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 ‘대통령 시계’가 처음 만들어진 이래 4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대통령의 시계는 인기다. 대통령과의 인연을 과시하며 매일 차고 다닐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는 손목시계만한 선물이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도 저렴한 가격으로 생색을 낼 수 있는 시계를 계속 만든다.

    박근혜 대통령은 ‘선물’ 하나를 고르는 데에도 여성 특유의 꼼꼼함과 세심함이 묻어나도록 각별한 정성을 쏟는다. 더욱이 자신의 이름으로 나가는 선물은 박 대통령이 직접 고른다. 오래전부터 박 대통령은 선물을 선택하는 자신만의 원칙을 갖고 있다고 한다. 받는 사람을 미소 짓게 하고, 준 사람을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하며, 우리 고유의 문화적 특징이 담긴 선물이 그것이다. 받는 사람과 관련된 스토리가 있는 선물을 특히 선호한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나가기 전 현지 대사관들은 해당국 정상이 어떤 스타일의 선물을 좋아하는지를 파악한다. 박 대통령의 방문 콘셉트와 강조점 등을 따져 외교부 의전장이 대통령에게 선물 리스트 후보군을 보고한다.

    대통령은 해당 국가 정상뿐 아니라 실무진에게 전달할 선물까지 직접 챙긴다고 한다. 대통령이 주는 선물은 그 나라의 얼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과거 대통령들은 해외로 나갈 때 정상 이외에 실무진에게는 의례적으로 봉황 마크가 찍힌 시계나 USB 등을 선물로 줬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꼭 그들에게도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알리는 선물을 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스토리가 있는 선물

    박 대통령은 해외 정상들에게 선물을 전달하면서 선물에 담긴 의미를 상세히 설명해준다. 지난해 5월 미국 방문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가족사진을 담기 적당한 크기의 은제 사진액자를 선물했고, 부인 미셸 여사에게는 붉은 복숭아꽃 문양을 넣은 반상기 세트와 유기 수저를 전달했다. 붉은 복숭아꽃 문양은 ‘나쁜 기운을 멀리하고 행운을 부른다’는 의미를 갖는다. 또 미셸 여사가 김치를 만들 정도로 요리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영어로 된 한식 요리책도 준비했다.

    지난해 6월 중국 방문 때 시진핑 국가주석에게는 춘천옥으로 된 찻잔 세트를 선물했다. 연꽃무늬를 모티프로 옥을 찻잔 형태로 조각해 만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우리나라 춘천에서 나오는 옥으로 만든 것인데 옥은 예부터 여러 잡귀를 쫓아낸다는 말이 있다”고 설명했다. 시 주석은 “중국에도 그런 비슷한 뜻이 있다”고 화답했다.

    시 주석의 부인인 펑리위안 여사에게는 나전장인인 이복동 씨가 옻칠을 하고 전면부에 자수기능인 김애옥 씨가 자수를 놓은 보석함을 선물했다. 박 대통령은 “이 함은 예부터 우리나라 궁에서 소중한 것을 담아 감사의 뜻을 표시하던 선물함이다. 귀한 사람에게 고마움을 담아드리는 함”이라고 말했고 펑 여사는 “함이 참 예쁘다”고 즐거워했다.

    리커창 총리에게는 실용적이면서 세련된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알릴 수 있는 서류함을 선물했다. 수국 문양으로 꾸며져 있고 옻을 섞어 만든 안료로 칠한 작품이었다. 장더장 전인대 상무위원장에게는 쇠뿔을 얇게 갈아 투명하게 만든 문양이 있는 화각함을 선물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여성인 응예 티 조안 부주석에게 맞춤 제작한 족두리를 선물했다. 응예 부주석은 박 대통령 취임식 때 베트남 정부 대표로 한국을 방문해 접견한 적이 있다. 이 족두리 4면에는 학이 수놓아져 있고 파란 라피스(청금석)가 장식돼 있다. 경제·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봉’은 한국 전통 매듭으로 묶여 있었다. 이에 화답해 응예 부주석은 레드와인 색으로 베트남의 국화(國花)인 연꽃 자수가 놓인 베트남 전통 의상 아오자이를 선물했다.

    박 대통령이 해외 정상에게서 받은 선물 가운데 가장 인상 깊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선물한 마트료시카 인형이다. 지난해 11월 푸틴 대통령 방한 때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이 마트료시카 인형에 대한 호감을 표시하자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최고의 인형을 선물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박 대통령은 그냥 지나가는 말로 여기고 있었는데 푸틴 대통령이 귀국한 후 12개의 인형이 켜켜이 들어 있는 마트료시카 인형을 대통령에게 보내왔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올해 1월 3일 문화예술인 신년인사회에서 직접 그 인형을 갖고 나와 참석자들에게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이 선물을 보내온 것을 보고 약속을 잘 지키는구나 생각했다”며 “러시아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이 인형을 보면 호기심과 호감을 가지며 러시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고 호평했다.

    전통문화 알리고 받는 사람에게 미소를
    박 대통령은 지난해 중국 칭화대에 연설하러 갔을 때 ‘중국철학사’의 저자 펑유란의 외손녀로부터 펑유란의 서예 작품 족자를 선물로 받았다. ‘중국철학사’는 박 대통령이 본인이 읽은 책 중 가장 감명 깊은 책으로 꼽는다. 그 사실을 안 평유란의 외손녀가 직접 가져온 것이다. 이 족자는 중국에서 우리나라의 문화재에 해당하는 ‘문물(文物)’로 등록된 작품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문화재를 반출하거나 선물하려면 국가문화국(우리나라의 문화재청)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외손녀가 이 허가 절차를 마치고 대통령에게 깜짝 선물로 건네 감동을 더했다.

    올해 8월 방한할 예정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10월 방한해 대통령과 접견하는 페르난도 필로니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에게 “아주 특별하고 특별하고 특별한 선물을 꼭 대통령에게 전해달라”며 교황의 문장(紋章)이 그려진 묵주를 보내오기도 했다. 가톨릭 재단인 성심여중고, 서강대를 졸업한 박 대통령은 ‘율리아나’라는 세례명도 갖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6월 박 대통령을 접견한 이후 열흘쯤 지나 박 대통령에게 운동복을 선물로 보내왔다. 왼쪽 가슴에 태극기가 달려 있고 그 옆에 페이스북 마크가 달린 운동복을 받은 박 대통령은 직접 블로그에 사진을 올렸다.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 데 대해 기뻐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처럼 설과 추석 명절에 선물을 보낸다. 의원 시절에도 본인이 직접 챙겨야 할 인사들에게는 별도의 선물을 했다고 한다. 지난해 추석엔 고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우리 농축산물인 잣, 찹쌀, 육포 3종 세트로 구성해 9000여 명에게 선물을 보냈다. 육식을 하지 않는 불교계 인사에게는 육포 대신 호두를 보내고 소년소녀 가장들에게는 외국어 학습에 도움이 되는 어학학습기를 보내기도 했다.

    올해 설 연휴 때는 노랑과 분홍색 떡국 떡과 장흥 표고버섯, 사천멸치가 담긴 선물세트를 보냈다. 떡과 버섯 등을 담은 청와대 문양이 찍힌 유리그릇도 주부들에게는 인기가 많다.

    명절 선물은 전직 대통령과 각계 인사 외에 국가유공자, 애국지사, 천안함·연평도 포격 희생자 유가족, 독거노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중증장애인, 독거노인 등 사회 배려계층 등에 골고루 보내진다.

    국민이 선물한 브로치 착용

    지난해 12월 24일 강원도 인제군에 있는 을지부대를 방문해 신병 교육생들을 격려하는 자리에서는 닭강정을 싸가지고 부모의 마음으로 군인들에게 먹였다. 다음 날인 성탄절에는 일일 산타클로스가 돼 서울 SOS 어린이마을을 방문했다. 박 대통령은 쇼핑백에 남자 어린이에게는 운동화, 여자 어린이에게는 가방, 아직 학교를 다니지 않는 어린이에게는 장난감을 넣어 나눠주면서 “어린이들이 뭐를 좋아할까 생각을 많이 하다가 골랐다. 마음에 들면 좋겠는데 잘 맞혔는지 모르겠다”고 웃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각지에서 전해오는 선물들도 하나하나 뜯어보며 고이 간직한다고 한다. 3월 6일 국가조찬기도회 때 박 대통령이 성경책을 읽는 모습이 사진으로 찍히기도 했는데 그 성경책은 지난해 7월 기독교 지도자 오찬 때 받은 것이다. 본인이 잘 간직하고 있다가 다시 챙겨 나온 것이다.

    지난해 7월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은 “종소리를 들으며 번뇌를 소멸하고 새로운 밝은 지혜를 얻으라는 뜻”이라며 용주사 보물 120호를 모형으로 만든 종을 건넸다. 당시 박 대통령은 “국민을 위한 것 외에는 모두 번뇌”라고 말하며 웃으며 화답했다.

    박 대통령이 민생 현장에 나가면 중장년층이 구름 떼처럼 몰려오는데 그 열기가 가장 뜨거운 곳이 바로 전통시장이다. 시장 상인들의 선물도 이어진다. 그때마다 박 대통령은 “염치없이 받기만 한다”며 멋쩍게 웃는다. 때로는 그냥 받을 수 없다며 온누리상품권이나 현금을 내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9월 인천 부평종합시장에 갔을 때는 노점에서 김을 파는 상인이 “김 먹으면 밥 한 그릇 뚝딱 먹겠어요”라는 박 대통령의 말을 듣고 김 한 통을 선물로 줬다. 한 속옷 파는 상인이 분홍색 내복을 상자에 담아 선물로 주자 “예쁜 색으로 골라주셔서 잘 입겠다”고 말하며 웃으며 받았다.

    아버지와 얽힌 선물을 받는 경우도 꽤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박 대통령이 2013년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를 참관하려 전남 순천에 내려갔다. 현장에서 순천시장이 “1962년 동천에서 큰 홍수가 났을 때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분이 방문해 신속한 복구를 지시해 오늘날 동천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혹시 사진이 있는지…”라고 묻자 순천시장은 사진첩을 보여줬다. 박 대통령이 사진 한 장 한 장을 유심히 살펴보며 “50년 전 일이네요”라고 감회에 젖자 순천시장은 즉석에서 기념품으로 증정하겠다고 싸주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에는 국민이 선물로 보내온 브로치를 직접 착용하고 공식 행사에 나온 적도 있다.

    화제가 된 청와대 시계

    전통문화 알리고 받는 사람에게 미소를

    국민이 보내준 브로치를 착용한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는 지난해 초만 해도 시계를 제작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과시용 선물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 이래 시계를 만들지 않은 정권이 없었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요청이 쇄도했다고 한다. 특히 대선 때 대통령을 도왔던 이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당시 선거 공신들에 대해 박 대통령이 기대만큼 자리를 챙겨주지 않자 불만에 차 있을 때였고 그들을 달래기 위해 시계라도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결국 대통령은 시계를 만들기로 했고 지난해 8월 15일 광복절 청와대 오찬에 초대받은 독립유공자와 유족들에게 선물로 제공하며 처음 공개했다. 당시 청와대는 시계 수량을 제한하기로 하고 대통령이 주재하는 공식행사에 참여하는 사람에게만 주는 걸로 원칙을 정했다.

    지난해 추석 전 한 국회의원이 의원 모임을 하는데 시계를 좀 갖다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듣게 된 박 대통령은 “의원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주는 것은 이상하니 추석을 맞아 여당 의원들에게 다 돌리라”고 지시했고 한 쌍씩 전달됐다.

    이후에도 정치권의 추가 요청이 이어졌고 올해 1월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 새누리당 소속 의원과 당협위원장을 초청했을 때 설을 맞아 손목시계 5쌍, 벽시계 하나를 추가로 제공했다. 선물 제공 이후 일부 의원들은 “5개만 주니 누군 주고 누군 안 줄 수 없고 더 곤란해졌다. 넉넉하게 주거나 아예 안 주는 게 더 낫겠다”는 말도 전해왔다고 한다.

    역대 대통령의 손목시계는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 문양과 무궁화, 대통령 이름이 적힌 공통점을 지녔다. 박 대통령 시계는 봉황 문양과 함께 ‘박근혜’라고만 적힌 심플한 디자인이다.

    청와대는 시계 제작비로 올해 1월까지 3억8000만 원 정도를 지출했다. 이전 개당 3만~4만 원이었던 것보다 비용이 조금 더 들었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 지난 한 해 경·조화비와 기념품비로 나간 돈은 14억9642만 원이다. 지난해 상반기 6323만 원이던 것을 감안하면 하반기에 집중적으로 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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