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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심리학

좌절이 분노와 공격으로 ‘죽일 놈’ 잡아야 해소

‘세월호 분노’의 비이성

  •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좌절이 분노와 공격으로 ‘죽일 놈’ 잡아야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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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높은 나무에 매달려 있는 과일을 혼자 쳐다보면서 아무리 아쉬워해도 이 고통스러운 경험은 실패와 실망이지 좌절이 아니다. 이 경우 나무에 분노하거나 나무를 공격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손이 닿을 수 있는 과일을 막 먹으려 할 때, 누군가가 그 과일을 가로채거나 나무를 흔들어 떨어뜨려 과일을 버린다거나 나를 밀치며 방해한다면 이 경험은 좌절이 된다. 이때 그 누군가에게는 분노하게 되고 공격하게 된다. 그렇다고 누군가 나한테 고통을 주고 실패를 경험하게 한다고 항상 좌절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누군가 내 발을 밟아서 너무 아플 때가 있다. 이때 만약 출퇴근 시간이어서 지하철에 사람이 가득 차서 모든 사람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상황에서 어떤 사람 자신이 원하지도 않고 어쩔 수도 없이 내 발을 밟았다면 우리는 짜증은 나도 분노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지하철이 텅 비어서 충분히 안 그럴 수 있었는데도 누군가 내 발을 밟는다면 별로 아프지 않았어도 우리는 무척 분노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바로 정당화(justification)다. 정당화할 수 있는 좌절은 분노를 일으키지 않는데 정당화할 수 없는 좌절은 분노와 공격행동을 일으킨다. 실제로 인생에서 많은 실패와 고통, 그리고 부정적인 사건을 경험하면서 살지만 그것이 반드시 좌절도 아니고 분노를 일으키지도 않는 이유다. 

세월호 사고는 좌절-공격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도저히 정당화할 수 없는 좌절의 연속이었다. 세월호 사고의 가장 큰 특징은 상대적으로 긴 시간 동안 진행된 침몰 과정, 그리고 완전히 가라앉지 않고 배의 일부가 계속 보였다는 사실, 긴 구조작업이었다. 그냥 대형버스끼리 충돌하는 교통사고나 대형 화재로 삽시간에 건물이 불길에 휩싸여서 대규모 인명피해가 난 사건과 다소 다르다. 배가 채 넘어가기도 전부터 전국에 생방송되기 시작했고, 넘어가는 과정에서 침몰하는 순간까지, 심지어 침몰한 이후에도 뒤집힌 배의 앞부분이 물 위로 계속 나와 있었다.

이런 사고 자체가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고 싶어 하는 우리 국민에게는 실패이고 일정 부분 좌절로 경험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방송에서 생중계되는 순간부터 온 국민의 마음속에는 배 안의 사람들이 살아서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과 꺼내오고 싶어 하는 간절한 바람이 굉장히 컸다. 무려 그 기간이 골든타임이라는 72시간을 넘어 비현실적이었지만 거의 2~3주를 유지했다.

필자와 필자의 아내도 거의 하루 종일 TV를 보면서 한 명이라도 살아서 돌아오길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다. 한 구의 시체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이 겪었을 좌절은 상상하기 힘들다. 나도 그 좌절감에 가슴이 답답해서 잠을 이루지 못한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건물이나 다리처럼 매우 빠른 시간에 사고가 종결되는 사건에서는 오히려 좌절을 덜 경험한다. 또 한두 명이라도 구조한다면 그 좌절감은 크게 상쇄되고 위로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는 한 달이 넘는 기간에 한 명도 구조되지 않고 시신으로 돌아오는 것을 계속 지켜봐야 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온 국민이 동시에 좌절을 겪은 예는 역사상 찾기 힘들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좌절을 경험하게 만든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특별히 방해한 사람이 없이 불가항력적으로 과일을 못 따 먹은 게 아니다. 태풍이 와서 배가 뒤집힌 것도, 태풍 때문에 구조가 어려웠던 것도 아니었다.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사고가 일어나서 구조하는 데 시간이 걸린 것도 아니었다. 조류 때문에 구조가 힘들었을 수 있지만 조류는 눈에 보이지도 않기에 지켜보는 국민이 이해하기 힘들다. 오히려 배가 침몰하기도 전에 수많은 어선과 심지어 경비정도 접근했고, 사고가 일어나자마자 수많은 인력과 장비가 도착했는데도 단 한 명도 살리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것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냐를 떠나 못 구한 게 아니라 안 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마치 텅 빈 지하철에서 바짝 가까이 서 있다가 발을 밟고는 지하철이 갑자기 움직여서 중심을 잃어서 발을 밟았다고 변명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발을 밟혀서 아픈 사람 처지에서는 왜 처음부터 텅 빈 공간 놔두고 가까이 서 있는데…라고 생각하고, 좌절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다. 보통 좌절의 양이 분노와 공격행동의 양을 결정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온 국민이 지난 50여 일 동안 누적한 좌절의 양에 비교하면 이 정도의 분노는 많이 참았다고 얘기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이 너무 오랫동안 좌절을 경험하게 된 데는 사고 이후 정부의 대처 과정도 상당 부분 일조했다. 계속되는 발표 자료의 오류, 통합적 구조 시스템의 부재,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여러 국가 기관 간의 다툼과 비협조, 구조 방법과 과정을 둘러싼 혼란과 논란 등 이 모든 과정은 국민에게 엄청난 좌절을 안겨줬다.

공격의 전이

그래서 어찌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세월호 사고의 가장 큰 책임을 진 선장과 선원은 잊혀버렸다. 지금은 오히려 정부와 유병언 일가가 관심의 초점이 되었고 책임의 주체가 됐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세월호의 침몰에서부터 대규모 인명피해가 나게 된 과정에서 다른 모든 원인은 2차적이고 간접적이다. 선장과 일부 선원들의 비정상적이고 비윤리적인 행동이 가장 큰 원인이다. 선장과 선원이 적절히 행동했다면, 퇴선 명령과 인명구조 활동만 열심히 했다면 사실 배는 가라앉아도 이렇게까지 큰 사고로 이어질 일은 아니었다. 많은 이는 퇴선 명령만 제때 내렸어도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아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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