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은 조각하는 자의 마음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한다. 자비행을 뜻하는 보현보살을 다듬는 이재순 장인.
“흔히 돌을 우직하고 멍청한 것으로 알지만 저 산도 돌이 없으면 서 있지 못하고 땅을 2, 3m만 파도 돌이 나옵니다. 사실 흙도 돌의 다른 모습이지요. 그러니 돌 없이는 세상이, 아니 우주도 이루어질 수가 없어요.”
우주의 숱한 별 가운데 물이나 공기 없는 별은 있어도 돌 없는 별은 없으니, 그의 말은 일리가 있다. 어쩌면 우리 발밑의 돌이야말로 저 하늘의 별과 가장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고대인들은 큰 돌에 별자리를 새겼고, 돌로 무덤을 만들었고, 가장 신성한 조각도 돌에다 남겼다.
“돌은 나무나 금속보다 더 오래 견디니 소중한 것일수록 돌에다 남기려 한 거지요. 특히 화강암은 내구성이 가장 뛰어난 돌이어서, 이집트 신전 앞의 스핑크스는 사암으로 만들었지만 신상은 화강암으로 만들었어요.”
숭배 대상인 신을 표현하기 위한 돌이라니, 이쯤 되면 돌에도 격이 있다고 해야 할까. 화강암은 쥐라기와 백악기에 형성된 돌로 이미 1억~2억 년은 된 것인데, 앞으로 얼마나 긴 억겁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낼지 가늠이 안 된다. 그러니 지상에서 영원성을 담을 수 있는 물질은 돌밖에 없고, 신의 형상을 돌로 만든 것은 당연해 보인다.
“산도 돌 많은 산을 영산(靈山)이라고 했으니, 돌에는 신령스러운 기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은 무슨 소원이든 한 가지는 꼭 들어준다고 하지 않습니까? 천년 넘게 비바람을 견딘 화강암 부처님인데,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찾아와 빌었겠습니까? 그 세월과 사람들의 염원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서 더욱 영적인 기운을 내는 것 같습니다.”
화강암의 나라

전통적인 반가사유상을 살짝 바꾼 작품.
“밖으로 드러난 돌을 뜬돌(부석浮石)이라고 합니다. 땅을 파서 돌을 캐는 채석장과 달리 땅 위의 돌을 가지고 오기 때문에 예전에는 돌 캐는 곳을 부석소라고 했지요. 워낙 산이 많고 절벽도 많아서인지 떨어진 돌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만큼 흔하다보니 우리 민족이 가장 즐겨 이용한 소재가 바로 돌이고, 화강암이다. 풍화작용에 강한 화강암은 그러나 결이 치밀해 조각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섬세한 조각보다는 부드러운 선으로 특징을 잘 잡아 표현하는 ‘원만한 조각’을 주로 한다.
“같은 화강암이라도 입자가 작은 것(소매)으로는 섬세하게 표현하지만 보통 화강암으로는 원만한 조각이 자연스럽게 어울리죠. 또 색깔이 예쁘거나 문양이 화려한 돌은 시간이 지나면서 칙칙해지는데, 우리 화강암은 처음에는 아무 색깔도 안 나다가 세월이 흐를수록 고상한 빛을 띠게 됩니다.”
화강암 예찬을 듣지 않더라도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화강암 조각이 우리나라 사람의 가슴에 깊이 들어와 있음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돌의 거친 질감이 그대로 살아 있는 은은한 백색 돌에 새긴 부드러운 선. 어쩌면 너무 매끄럽지도 않고,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아서 더 신비하고 다정한 느낌을 주는지도 모른다. 화강암 조각이 비록 섬세하지 않다 해도 우리 석장의 솜씨가 섬세하지 않은 건 결코 아니다. 외국 조각가들은 화강암을 떡 주무르듯이 만지는 우리 돌조각가의 솜씨에 경탄하곤 한다. 조각하기 힘든 그 단단한 돌에 조각을 해왔으니 무른 돌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다. 경기도 구리에 있는 이재순의 실내 작업장에는 소매 화강암으로 섬세하고 화려하게 조각한 관음보살상이 떡하니 버티고 앉아 있어 눈길을 끈다. 하지만 마음을 끄는 것은 역시 저 바깥 태양 아래 바람을 맞는 원만한 조각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