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 그들에게 ‘야신(野神)’ 김성근(72) 감독은 절대적인 존재다. 김 감독은 그들에게 생존의 법칙을 알려줬다. 야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개조’를 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감독은 21명이 빠져나간 자리를 다른 선수들로 대체하며 그들을 강하게 조련했다. 독립구단에서 뛸 수조차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실력을 가진 선수들도 1년여 김 감독 밑에서 야구를 배우면 전혀 다른 선수로 거듭난다. 결국엔 도미니카공화국, 푸에르토리코, 미국 등지의 외국인 선수까지 고양 원더스를 찾았다. 현재 원더스는 독립구단임에도 5명의 외국인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
프로팀 감독 자리가 공석일 때마다 감독 영입 후보 0순위로 꼽히는 김성근 감독. 올 시즌 고양 원더스와 재계약 마지막 해를 맞아 향후 그의 행보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퓨처스리그 팀들과 교류전을 치르며 시즌을 보내는 그를 만났다.
감독 영입 후보 0순위
‘스포츠 ZOOM 人’ 인터뷰를 위해 고양 원더스 야구장 감독실에서 기자와 마주한 김성근 감독은 얼마 전 방송된 ‘이미자 노래 인생 55년 기념 공연’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한다. 55년간 외길을 걸어온 가수 이미자 씨의 무대가 기품과 감동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
“과연 나는 지도자 생활 55년이 됐을 때, 이미자 씨처럼 가슴을 울리는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싶더라. 새벽까지 이어진 방송을 보면서 그분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세가 꽤 됐을 텐데, 노래로 사람의 심금을 울릴 수 있다는 게 대단했다. 그런데 그분의 나이가 어떻게 되지?”
기자가 휴대전화 검색을 통해 1941년생이라고 대답하자 김 감독은 “와, 나보다 한 살 위시네. 정말 엄청난 열정을 갖고 계신 분이야. 내가 배울 점이 많은 분이고”라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이미자 씨에 대한 얘기로 인사를 주고받다가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했다.
▼ 7월 9일 현재,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는 퓨처스리그와의 교류전을 통해 34승9무17패를 기록했다. 승률이 무려 0.667을 기록 중이다. 프로야구 2군들을 상대로 모두 승리를 거뒀고, 각 팀 성적도 모두 앞서 있다. 프로 팀에 21명의 선수를 보내놓고도 이런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게 대단해 보인다(2013 시즌에는 27승6무15패, 승률 0.643 기록. 고양 원더스는 퓨처스리그에 정식으로 등록돼 있지 않기 때문에 번외 경기 형식으로 리그에 참여한다).
“리더는 어떤 상황에서도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야구를 해야지. 그리고 그 잇몸을 이로 성장시켜야 하는 것이고. 물론 그 과정이 결코 쉽진 않다. 처음부터 다시 뜯어고쳐야 하니까. 우린 올 시즌에 투수를 포함해 주전 1, 2, 3번을 모두 프로에 보냈다. 팀 전력 면에서 큰 손실이었지만, 프로를 꿈꿔온 선수들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기쁜 마음으로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빈자리는 또 다른 선수로 채우면 된다.”
베이스볼 사관학교
▼ 채울 선수는 많겠지만, 경기에 출전시킬 만한 선수는 많지 않다고 들었다.
“그럴 때 리더의 역할이 필요하다. 자격이 안 되는 선수를 자격이 되게끔 만드는 게 내가 할 일 아닌가. 난 ‘안 된다’ ‘선수가 없다’면서 타령하는 성격이 아니다. 거기서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며칠 전 신생 팀 KT 위즈에 15대 0으로 대패하고 그날 밤 11시 반까지 모든 선수가 훈련에 임했다. 패한 것보다 더 안 좋았던 건 게임 내용이다. 형편없었다. 선수들의 의식 개조가 필요했다. 선수가 많이 빠져나간 상태에서 어떻게 다시 시작하느냐가 중요했다. 그런 훈련을 통해 사람을 만들고, 조직을 살리는 작업이 필요했다. 프로 팀을 보면 선수는 많다. 그런데 그 많은 선수를 상품화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자꾸 선수가 없다는 얘기를 한다, 감독들이.”
▼ 고양 원더스에는 LG에서 은퇴한 이상훈 코치와 김수경, 최향남 등 프로에서 내로라했던 투수들이 합류했다. 특히 김수경은 넥센에서 코치를 하다가 원더스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나 지금 기대만큼의 모습은 보이지 못하는 것 같다.
“선수의 ‘희망사항’과 ‘현실’은 거리가 있다. 거기서 헤매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지금 그 선수들 정도라면 야구장에서 경기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은퇴 후 지도자 생활을 할 때 지금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선수가 나이를 먹으면 자신이 해오던 폼을 바꾸기가 굉장히 힘들다. 모험을 하는 것도 두려워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김수경, 최향남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고양 원더스가 창단 후 3년이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전히 퓨처스리그에는 정식 회원으로 등록되지 못했다. 번외 경기로 경기 수만 확대했는데, 한국야구위원회(KBO)와 이 문제에 대해 협의는 하는 건가.
“야구계에선 고양 원더스가 프로야구의 사관학교, 즉 베이스볼 아카데미 구실을 한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유독 KBO에선 우리를 정식 구단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각 구단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KBO가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원더스는 허민 구단주가 매년 개인 재산을 50억 원씩 내놓아 운영된다. 순전히 야구를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김성근을 믿기 때문에 이 일을 벌인 것이다. 우리는 프로야구 팀의 적이 아니다. 21명의 선수를 프로 팀에 보내며 도움을 준다. 프로 팀들이 어디에 가서 21명의 선수를 수급할 수 있겠나. 그런데도 프로 구단들은 퓨처스리그에 원더스가 들어가는 걸 꺼린다. 아니, 굉장히 싫어한다.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팀에 선수를 보내주는 건 ‘땡큐’지만, 그런 선수를 만들어내는 팀을 퓨처스리그에 포함시키는 건 허락하지 않는다는 심보다.
만약 이렇게 퓨처스리그에 등록하지 못하고 독립구단으로 팀을 운영해야 한다면 고양 원더스는 머지않아 문을 닫을 수도 있다. KBO에선 허민 구단주의 진심을 읽어야 하고, 인정해줘야 한다. 김성근이 이 팀에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프로구단이, 또 KBO가 우리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야구계의 비극이다. KBO에선 원더스를 위해 10원 한 푼 지원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성장하고, 프로 선수를 배출해내는 데, 진심으로 고마워해야 하지 않나. 단순히 경기 참가 횟수를 늘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요즘같이 어려운 상황에 개인 재산을 털어서 야구를 위해 헌신하는 허민 구단주가 아니라면 고양 원더스는 존립할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