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이 같은 풍습이 나타난 가장 큰 원인이 가난이라는 데 있다. 당연히 이 관습은 상류 계층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 가난한 기층 민중 사이에서 흔적을 남겨왔는데, 특히 조선시대에는 민며느리제도가 일종의 매매혼으로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비례론이 대두되었음에도 하층 민중 사이에서 꽤 넓은 범위에 걸쳐 행해졌다고 기록은 전한다.
따라서 노래 칠갑산에 등장하는 홀어머니와 어린 소녀는 특별한 누구가 아니라 가난하고 힘들었던 세월 저편의 우리 어머니와 누나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궁상각치우 5음계에다 일부에 양악 7음계를 접해 모두 12음계로 만든 노래는 그에 따른 반음계가 주는 유장함이 그 절절함을 배가시킨다. 1978년에 만들어진 노래는 발표 당시 일반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이후 10여 년 동안 대학가에 입소문으로 퍼지다가 1990년 초부터 일반인에게 알려지며 큰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고단한 하루 일과를 끝낸 샐러리맨이 노래방에 가면 앞다투어 부르던 노래가 바로 칠갑산이다. 처음에는 평온하게 시작했다가 ‘울어주던 산새소리만 어린 가슴속을 태웠다’는 후반부에 가면 모두가 절규하듯 악을 쓰듯 같이 부르던 슬픔의 노래, 고향의 노래다.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 소리만 어린 가슴 속을 태웠소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 소리만 어린 가슴 속을 태웠소
추계예술학교 출신인 주병선이 부른 이후 국악인 김영동, 조용필 등 수많은 가수가 앞다투어 불렀고 지금도 불린다. 칠갑산은 순수 가곡과 대중가요의 어정쩡한 경계에 있다. 일부에서는 대중가요로 분류하지만 또 다른 일부에서는 국악가곡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면서 연구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작곡가 조운파는 이 대목에서 ‘대중가요로서는 가사가 주는 주제의식이 너무 무겁고 멜로디가 전통가락에서 따왔기 때문에 당연히 국악가곡’이라며 순수 예술 가곡임을 주장한다. 하기야 오늘날과 같은 탈장르, 융합, 통섭의 시대에 이 같은 자리매김이 덧없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칠갑산은 청양고추와 함께 충남 청양군의 상징쯤 된다. 그래서 군 전체에는 빨간 고추와 칠갑산 노랫말과 관련된 조형물이 넘친다. 매운 고추의 대명사쯤 되는 청양고추는 이제 힘을 잃어간다. 고추로 유명한 경북 청송과 영양에서 자기네 마을 이름의 머리글자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워낙 경상도 음식이 맵고 짠 탓에 설득력이 있다.
그런 까닭에 노래 칠갑산이 청양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인정받는다. 군내 여기저기 ‘콩밭 매는 아낙네상’이 등장한다. 그러나 조형미라고는 전혀 찾아볼 길 없는 조악한 형상물이 대부분이다. 어떤 기준도 없어 여기저기 세워진, 모습과 표정이 각기 다른 ‘콩밭 매는 아낙네상’은 찾는 이들을 실망케 하기에 충분하다. 완전히 따로국밥 조각상에 다름 아니다. 절창 가락에 걸맞은 조각상을 기대했다면 아예 찾아보지 않는 편이 좋겠다.
그나마 노래 칠갑산을 받치는 것은 유서 깊은 사찰 장곡사(長谷寺)다. 장곡사는 이름만큼이나 오래된 절이다. 850년(통일 신라 문성왕 12)에 보조국사가 창건했다. 규모는 작지만 국내에서 유일하게 대웅전 가람 배치는 2개나 있는 아주 특이한 사찰이다. 두 곳의 대웅전이 특별하다. 상·하 대웅전 건물은 두 사찰이 합쳐진 것인지, 전각이 이름이 바뀐 것인지 알 수 없다. 방향까지 완전히 달리하는 두 법당은 각기 소중한 불교 유물을 간직한 보물 창고다.
칠갑산 받치는 장곡사

장곡사 공양간에 나란히 자리한 무쇠솥. 오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했다.
섬세한 조각으로 조선시대 불교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광배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다. 국보급 문화재도 많다. 위편 대웅전의 철조 약사불은 국보 58호이고 철조 비로자나불은 보물 174호다. 아래 대웅전은 법당 자체가 보물 181호이고 법당 안 고려시대 금동약사불은 보물 337호다. 무려 국보가 둘, 보물이 4개다. 귀중한 국가문화재가 넘치도록 가득하다. 그러나 산이 높고 계곡이 깊어 스님들조차 콩밭 매는 아낙네 못지않게 살기가 힘들었나보다. 깊은 계곡 안 한 뼘 공간에 자리 잡은 절은 작고 초라하기 그지없다.
장곡사를 허리에 끼고 있는 칠갑산에 뻐꾸기 울음소리가 쏴아 왔다가 아득히 사라져 간다. 길고 긴 여름날, 노래 속에 등장하는 땀에 젖은 베적삼을 걸치고 콩밭 매던 아낙네는 우리의 어머니였다. 포기 포기마다 눈물을 심던 이 땅의 어머니는 이제 할머니가 되고 하나둘 이승을 떠난다. 그래서 노래 ‘칠갑산’은 배고픔을 경험한 이 땅의 장년세대에게 어린 날의 초상과 같은 추억이 된다. 그런 시절들이 과거로 포장된 채 빛바래 간다는 것은 너무나 쓸쓸한 일이다. 이 풍진 세상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