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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화 간첩 조작 의혹 3탄

“간첩을 잡은 게 아니라 만들었다”

<충격증언> ‘최초 내사’ 소진만 전 경기경찰청 보안수사대장

  • 한상진 기자 | greenfish@donga.com

“간첩을 잡은 게 아니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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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원인 Y에게선 어떤 보고가 올라왔나.

“원정화가 술을 아주 좋아한다는 것, 정신적으로 엄청 불안하다는 것 등이었다. 한번은 Y를 시켜 원씨의 집을 수색한 적도 있다. 방바닥, 천장, 심지어 밥그릇 속까지 다 뒤지게 했다. 그런데 간첩 혐의가 될만한 증거가 없었다. 이상했다. 특수훈련을 받은 흔적도 없었다.”

▼ 원씨가 특수훈련을 받지 않았다는 건 어떻게 확인했나.

“간첩수사 때 기본은 ‘육체 검열’이다. Y를 통해 육체 검열을 실시했다. 그러나 훈련을 받은 여자라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예를 들어 (KAL기 폭파범) 김현희의 경우 얼굴은 예쁘지만 송곳 하나 들어가지 않는 몸을 가지고 있다.”

▼ 간첩 혐의가 전혀 없었다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2007년 초 Y를 통해 ‘원정화가 중국에 있는 북한사람인 김 선생과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보고를 받고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원씨는 항상 ‘김 선생’이라고 표현하며 메일을 주고받았다. 난 그 대목에서 ‘김 선생이 지도원이면 원정화는 간첩이 맞다’고 판단했다.”

▼ ‘김 선생’이 누군지는 확인됐나.

“당시는 이름도, 직업도 몰랐다. 그냥 무역업에 종사하는 북한사람 정도로만 파악했다. ‘김 선생’이 북한 단동 무역대표부 부대표란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김 선생’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중국으로 우리 요원을 파견하기 직전 나는 보안수사 2대장으로 밀려나면서 수사팀에서 배제됐다.”

▼ 그럼 2007년 초 이후 수사 내용은 모르나.

“아니다. 수사팀에서 배제됐지만, 내가 심어놓은 정보원 Y, 보안수사대 후배들을 통해 수사 내용을 보고받았다. 또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주무부서인 보안 1대에 넘겼다. 2007년부터 원정화가 일본에 드나들기 시작한 것도 내가 알려준 사실이다.”

“원정화, 남파간첩 아니다”

▼ 원씨와 ‘김 선생’이 주고받은 메일은 어떤 내용이었나.

“문어 장사와 관련된 것이 많았다. 원씨가 한번은 ‘국정원 요원들이 북한 관련 정보를 달라고 해서 귀찮아 죽겠다. 북한 쪽 루트를 만들어달라고 한다’고 짜증을 내는 메일을 ‘김 선생’에게 보냈다.”

▼ ‘김 선생’은 거기에 대해 뭐라 답변했나.

“특별한 답을 안 한 걸로 기억한다.”

▼ 또 다른 내용은 없었나.

“한번은 원씨가 말을 못하는(농아)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보내달라는 요청을 했다.”

▼ 농아들은 왜 보내달라고 한 것인가.

“농아 관련 단체를 통해 뭔가 돈벌이를 하려고 했던 것 같다. ‘김 선생’은 요청을 받고 ‘그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답을 했었다.”

▼ 원씨가 ‘김 선생’과 메일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은 어떻게 확인했나.

“내가 Y를 수사에 투입한 게 2006년 11월경이다. 그런데 Y는 이미 9~10월경 원정화의 부탁을 받고 e메일을 만들어줬다고 했다. 원씨가 그 e메일을 통해 ‘김 선생’과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김 선생’의 존재가 확인된 것이다. 원씨는 인터넷도 모르고 e메일도 만들 줄 모르는 희한한 간첩이었다.”

(이와 관련 지난 7월 12일 원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e메일은 내가 만들었다. 어떤 문제가 생겨 Y에게 내 e메일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알려준 적은 있다. 당시 내가 쓴 e메일 계정은 ‘wjw**** @hanmail.net’이다”라고 주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원씨에게 e메일을 만들어주고 결정적인 정보를 수사팀에 제공했던 Y는 원씨 수사과정에서 정보통신법 위반 혐의로 처벌을 받았다. 원씨 명의 e메일을 무단으로 들여다 봤다는 혐의였다.)

▼ 원씨는 북한 단동 무역대표부 김교학(김 선생) 부대표에게 지령과 공작금을 받아 간첩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는데.

“김교학과 돈 거래가 있었다면 그건 사실 김교학과 문어 장사를 하면서 주고받은 돈이다.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씨가 문어값으로 돈을 보냈다. 내사와 체포가 이뤄질 당시 원씨는 김교학과 문어 장사를 하다가 거의 망한 상태였다. 원씨가 김교학과 크든 작든 정보를 주고받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원정화는 절대 북한에서 지령을 받고 내려온 간첩이 아니다. 지령을 받고 왔다면 그동안 원씨가 사귄 경찰·군인이 우선 포섭 대상이 됐어야 했다. 사건 당시 원씨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딸은 원씨에게 볼모와도 같았다. 아마도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만들어진 사건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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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진 기자 | greenf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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