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호

불안과 구원 그 영원한 숙제

엘 그레코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부활’

  • 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장·포사람 원장

    입력2015-03-19 17: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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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과 구원 그 영원한 숙제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한자로는 심(心)이고, 영어로는 하트(heart)입니다. 마음과 비슷한 말로는 의식(consciousness), 또는 정신(spirit)이 있습니다. 의식이라는 용어는 심리학에서, 정신이라는 말은 철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개념입니다. 인간의 정신적 활동이라는 점에서 이 세 개념은 유사합니다. 하지만 엄밀하게 보면 각각의 의미가 다소 다릅니다. 의식이 인간에게 특유한 심리적 활동의 총체를 뜻한다면, 정신은 과학·예술과 같은 심적 능력과 관련된 고차원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이에 비해 마음은 다소 모호한 개념입니다. 일반적으로 마음은 인간 정신 활동의 모든 것이라고 정의됩니다. 하지만 마음은 의식보다 넓은 외연을 가졌고 정신보다 개인적인 주관성을 강조합니다. 분명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가 마음이 육체와 대립되는 인간의 주요한 속성이라는 점이라면, 다른 하나는 이 마음을 통해 타자들과 구별되는 자신의 정체성(identity)에 대한 생각을 갖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리스인’ 엘 그레코

    이런 마음의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숙고해온 분야는 종교입니다.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종교가 기본 가정으로 삼는 것은 인간의 불완전성입니다. 인간이란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불완전한 존재이고, 삶은 영원한 게 아니라 일시적인 것이라는 가정을 대부분의 종교는 공유합니다. 이러한 삶의 불완전성은 우리 인간에게 불안을 안겨주는데, 종교는 이 삶의 불안을 해소하고 평화를 주는 기능을 합니다. 예를 들어, 불교는 자기 수양과 도(道)를 깨우치는 것을 통해, 기독교는 하나님이라는 절대자에 대한 믿음을 통해 삶의 평화와 안식을 선물해줍니다.

    종교는 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서양에서 기독교가 미술에 끼친 영향은 지대했습니다. 기독교가 절대적이던 중세 미술은 곧 기독교 미술이었고, 르네상스로 시작된 근대 미술에서도 기독교는 한 중심을 이뤘습니다.



    기독교가 서양을 대표하는 종교로서 갖는 정치·사회·문화적 영향이 컸다는 게 일차적인 배경입니다. 동시에 인상주의 이전의 미술 생산방식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근대 초기 미술가에게 중요한 이들 중 한 사람은 작품 제작을 주문하는 후원자였는데, 가장 중요한 후원자 그룹은 교황을 위시한 성직자들이었습니다. 성직자가 미술가에게 요청한 작품은 당연히 기독교와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오늘 제가 소개해드리고 싶은 작품도 기독교와 관련된 미술입니다. 16세기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인 엘 그레코(1541~1614)의 그림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엘 그레코는 그리스 크레타 섬에서 태어나 스페인에서 활동한 화가입니다. 벨라스케스, 고야와 함께 스페인 근대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로 손꼽힙니다. 그는 자신이 살았던 16세기에도 널리 알려졌지만, 20세기에 들어와 새롭게 재평가되면서 명성이 더 높아진 화가입니다. 그의 본명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Domenikos Theotokopoulos)입니다. 그런데 스페인에서 활동하면서 ‘그리스인’이라는 뜻의 엘 그레코(El Greco)라고 불렸습니다.

    지상계와 천상계

    엘 그레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은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The Burial of the Count of Orgaz·1586~1588)’입니다. 그는 그림의 화면을 지상계와 천상계, 둘로 나누었습니다. 아래 지상계에선 지금 막 장례식이 시작됐습니다. 장례식의 주인공은 14세기에 선행을 많이 베푼 것으로 알려진 오르가스의 백작 루이스 곤잘레스입니다. 이 그림이 그려진 톨레도의 산토 토메 성당 아래에는 백작의 실제 무덤이 있다고 합니다. 엘 그레코는 백작을 매장할 때 성 스테파누스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나타나 시신을 옮겼다는 전설을 지상계의 그림 중앙에 표현해 놓았습니다.

    천상계는 백작의 영혼이 승천할 때의 광경입니다. 천국의 한가운데는 그리스도가 앉았고, 그 아래는 성모 마리아와 세례 요한이 지킵니다. 왼쪽에는 천국의 열쇠를 든 베드로가 눈에 들어옵니다. 아래 지상계가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를 띤다면, 위 천상계는 화려한 색채와 함께 밝고 경건한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엘 그레코가 이 작품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사후 영혼의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지상계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운명을 보여주는 반면, 천상계는 그 죽음에도 그리스도에 의한 영혼의 구원을 상징합니다. 엘 그레코는 지적이고 신앙심이 깊은 화가였다고 합니다. 비록 주문 받아 제작한 작품이지만, 지상계와 천상계로 상징되는 현재의 불안과 미래의 안식을 화폭에 담아 신앙의 의미와 중요성을 계몽하고 있습니다.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에서 흥미로운 것은 엘 그레코가 지상계의 장례식에 참여한 톨레도의 유력 인사들 가운데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는 점입니다. 중앙에서 왼쪽으로 가는 도중 정면을 똑바로 응시한 사람이 엘 그레코입니다. 그리고 왼쪽 아래에 있는 소년은 그의 아들로 알려졌습니다. 화가가 이런 식으로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담는 것은 서양 미술의 오랜 전통입니다. 이 작품을 볼 때마다 저는 정면을 응시하는 엘 그레코가 감상자들에게 전하려는 말의 의미를, 다시 말해 믿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메시지를 생각해보곤 합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 그림이 매너리즘 화풍의 그림이라는 것입니다. 엘 그레코는 매너리즘을 대표하는 화가의 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매너리즘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사이에 놓인 예술양식으로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성취한 조화와 균형이라는 르네상스의 이상을 넘어 더는 앞으로 나갈 수 없었을 때 화가들이 모색한 새로운 표현방법이었습니다. 매너리즘 화가들은 불안정한 구도, 공간의 왜곡, 길게 늘어진 인물, 현실과 비현실의 공존 등을 통해 자아의 불안과 의식의 위기를 캔버스에 담았습니다. 엘 그레코는 폰토르모, 브론치노, 파르미자니노, 틴토레토와 함께 이 매너리즘을 대표합니다.

    부활의 메시지

    불안과 구원 그 영원한 숙제

    ‘부활’

    당시 이탈리아는 신성로마제국 카를 5세의 로마 약탈(1527)로 사회 불안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습니다. 매너리즘 화가들은 이런 불안한 현실에 대응해 르네상스의 원리를 부정하고, 외부 대상의 재현이 아닌 내면 의식의 형상화를 추구했습니다. 과거에는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 모방 또는 아류의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지만, 20세기 이후부터는 개성이 뚜렷한 독자적인 미술 양식으로 재평가됩니다.

    미술과 마음이라는 이 연재 제목을 생각할 때, 현실에 대한 마음의 대응에서 매너리즘은 이채로운 양식입니다. 화가를 포함한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시대, 자기 삶에 대한 해석과 재현일 것입니다. 시대와 자아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시대가 불안하면 자아는 그 시대의 불안을 무의식적으로 반영하는 동시에 창조적으로 해석합니다. 바로 이 점에 엘 그레코의 작품이 주는 예술적 감동과 공감이 있습니다.

    또 하나의 엘 그레코의 작품을 소개하려 합니다.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박물관에 있는 ‘부활(The Resurrection·1590년대 후반)’입니다. 이 그림이 기독교에서 갖는 의미는 각별합니다. 부활이란 새로운 시작, 즉 새로운 생명의 획득을 의미하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 교리입니다. 이 그림은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믿음을 갖는다면 영원히 죽지 않는 천국에서의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이 그림에서도 엘 그레코 특유의 화풍이 잘 드러납니다.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에서처럼 그는 화면을 위와 아래로 분할했습니다. 위는 부활한 그리스도의 빛나는 모습을 담았고, 아래는 혼돈스러운 현실의 풍경을 묘사합니다. 길게 늘어진 신체, 군상의 역동적인 몸짓, 강렬한 색채, 그리고 환상적인 장면은 매너리즘의 방식으로 인간의 불안한 심리를 잘 드러냅니다.

    심리적으로 불안이란 위험에 직면해 무력감과 두려움을 느끼는 상태를 말합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 불안을 현실적인 불안(realistic anxiety)과 신경증적인 불안(neurotic anxiety)으로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전자가 외부의 실제적 위험에서 생겨나는 것이라면, 후자는 대상 상실 등의 경험을 통해 인간의 내면 안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느끼는 불안이든 내면의 상처로부터 경험하는 불안이든 개인의 불안 경험 강도가 너무 커지면 극단적인 정신적 혼란이 나타나는데, 이런 혼란을 공황상태라고 합니다. 공황상태가 될 때 인간은 극심한 무기력과 두려움에 빠지게 되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몰두함으로써 불안 극복을 모색하게 됩니다. 상담학을 공부하는 제가 보기에 엘 그레코는 앞서 다룬 그림과 마찬가지로 ‘부활’에서도 역시 기독교 신앙만이 이러한 공황적 불안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해주리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내면의 믿음, 부조리한 현실

    삶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요. 구약성서 전도서 작가의 한탄처럼 이 세상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된 것’일까요. 결국 두려운 죽음으로 가는 고난의 과정일까요.

    안타깝게도 지상에서 벌어지는 풍경들을 바라보면 희망보다는 절망이 앞섭니다. 엘 그레코가 살았던 16세기에도 돈과 힘과 이익을 얻기 위한 인간의 투쟁과 경쟁은 현재와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그림 속의 일그러진 얼굴, 과장된 몸짓, 무수한 비명은 바로 시대를 초월해 존재하는 지상의 풍경으로 보입니다. 그림 속에서 드러나는 이 이상한 불안함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세상에서도 비슷한 모습으로 곳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엘 그레코는 이러한 현실에 맞설 수 있는 치유의 힘으로 기독교 신앙을, 다시 말해 절대자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자신의 작품에 담았습니다. 그는 지상의 것보다 천상의 것을 중시함으로써, 외면적 대상을 객관적으로 재현하는 것보다 내면의 믿음을 주관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부조리한 현실에서 오는 불안과 고통을 이겨내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불안과 구원 그 영원한 숙제
    박상희

    1973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문학박사,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방문학자

    現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포사람(사단법인) 원장, JTBC ‘사건반장’ 고정 패널

    저서 : ‘자기대상 경험을 통한 역기능적 하나님 표상의 변화에 대한 연구’ 등


    이번 호에선 엘 그레코의 작품을 통해 시대의 불안과 그것을 치유하는 구원으로서의 종교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마침 4월 5일은 부활절입니다. 삶의 유한성을 넘어서는 영원한 세계에 대한 동경은 모든 사람이 갖는 소망일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은 그 영원성으로 가는 출발점이겠지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해마다 부활절이 되면 저는 엘 그레코의 화집을 찾아 들춰보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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