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호

나는 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다 外

  • 담당·최호열 기자

    입력2015-03-20 09: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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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나는 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다

    한혜경 지음, 샘터, 252쪽, 1만4000원

    나는 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다 外
    이 책은 ‘100세 시대’라는 단어가 사람들 입에 자연스럽게 오르내리기 시작하던 2012년 후반부터 1년 넘게 동아일보에 연재한 ‘한혜경의 100세 시대’ 칼럼 원고를 기초로 했다.

    ‘100세 시대’라는 단어 앞에서 사람들 대부분은 걱정과 불안이 가득한 표정을 짓는다. 그게 어떤 세상인지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지도도 없이 나아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사실, 나도 처음에는 밝고 따뜻한, 희망적인 이야기도 써보리라 마음먹었다. “100세까지 산다니까 이제까지와는 좀 더 다른 인생을 살아야겠다. 중국어도 배우고 여행도 실컷 해야지” 하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은퇴한 후 아프리카 오지로 떠나 봉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쓰고 싶었다.



    그러나 웬걸! 칼럼 연재를 시작하자마자 마치 ‘100세 시대란 바로 이런 거야!’라고 알려주려는 듯이, 그동안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사건들이 연일 터지기 시작했다. 황혼이혼이 신혼이혼을 추월했다는 뉴스가 나왔고, 노인이 노인을 간병하는 ‘노노(老老) 간병’과 그로 인한 ‘간병살인’ 사건이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혼자 죽음을 맞이한 뒤 한참만에야 발견되는 ‘고독사’ 뉴스도 속출했다. 부모와 자녀 간에 돈을 둘러싼 갈등이 심해지더니 급기야 ‘효도계약서’를 써야 하는 우울한 시대가 오고 말았고, 더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은퇴자들의 분노범죄도 증가하는 추세다. 이런 사건들 앞에서 나는 ‘사건’ 자체보다는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직접 파고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처한 개별적인 상황과 주관적인 생각을 조사하기 위해 수십 명을 만나고 인터뷰했다. 때로는 이들이 미처 말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느껴보려고 노력했다.

    이 책에서는 열심히 산 당신이 100세 시대에 버려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새로이 갖춰야 할 미덕이 무엇인지를 제시했다. 버려야 할 것들은 돈에 지나치게 얽매이는 마음, 자식에 대한 ‘짝사랑’이나 과도한 책임감, 고독하게 사는 습관, 나이 듦에 대한 지나친 불안과 걱정 등이다. 100세 시대에 갖춰야 할 미덕은? 나는 사람들과의 진정한 교류, 이웃에 대한 관심과 투자, 오래 일하기 위한 준비, 1인 가구 시대에 필요한 ‘혼자 사는 기술’ 등을 강조했다. 특히 남자일수록 끊임없이 변화하는 가족에 대한 적응 능력과 함께 가족 내 갈등에 대처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자녀와도 협상하고 합의하는 기술이 필요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여자들로부터도 배울 건 배워야 하고, 힘들면 도와달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도 가져야 한다.

    100세 시대에 품위 있게 살기 위한 조건은 ‘인생 60~70년 시대’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남이 시키는 일만 하며 살아도 시간이 빨리 갔고, 설사 잘못 살았다 한들 과거를 되짚어보며 후회할 시간도 많지 않던 시대는 이미 가버렸다. 소중한 일에 집중하면서도 숨차지 않게 달려나갈 수 있는 장기적인 삶의 기획이 필요한 이유다.

    한혜경 |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 교수 |

    사물의 철학_ 함돈균 지음

    나는 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다 外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사물의 ‘기능적 쓰임새’가 아니라 ‘관계적 (혹은 맥락적) 차원에서의 의미’다. 일상에서 흔히 마주하는 사물들을 실용적 차원이 아닌 사회나 인간과의 ‘상호 관계’ 속에서 고찰한 것이다. 이를테면 한때 ‘순간의 파라다이스’를 제공하는 사물이었으나, 이제 혐오스러운 사물로 그 가치가 극단적으로 추락한 ‘담배’에서 저자는 사물이 유통되는 사회의 억압과 인식론적 허위를 읽는다. 바이러스의 흡입을 막기 위해 쓰는 ‘마스크’에서는 인간이 아직도 알 수 없는 것들과의 생존 전쟁에 격렬하게 노출돼 있는 연약한 생물종이라는 사실을 환기한다. 속살을 보여줄 듯 말 듯 시선을 기술적으로 끌어당기고 밀어내는 ‘시스루’ 패션에서는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욕망이라는 심리 운동이 물리적으로 실제화하는 것을 본다. 세종서적, 303쪽, 1만5000원

    생각의 융합_ 김경집 지음

    나는 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다 外
    인문학적인 ‘융합적 사고’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책. 인문서 대부분이 지식을 얕고 넓게 횡으로 나열해왔다면, 이 책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종으로 횡으로 가로지르며 생각의 깊이를 더하고 영역을 넓혔다. 100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을 뛰어넘어 콜럼버스와 이순신을 만나게 하고, ‘자유로운 개인’의 역사 속에서 렘브란트와 거스 히딩크의 교차점을 발견한다. 또한 한국의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과 프랑스 드레퓌스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같은 듯 다른 역사의 장면들을 목격하게 한다. 이처럼 시간과 공간, 다양한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기존에 알고 있었던 단편적 지식들의 연결고리를 심도 있게 찾는 과정에서 독자는 새로운 관점과 낯선 진실들을 만나게 되고, 그 길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새로운 생각의 지도를 갖게 된다. 더숲, 495쪽, 1만6500원

    불멸에 관하여_ 스티븐 케이브 지음, 박세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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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대중철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저자가 20년 동안 탐구한 ‘불멸’에 관한 역사적 고찰을 통해 인류 문명이 발전해 나아갈 길에 대한 신화적·종교적·과학적·역사적 고민을 담고 있다. 저자의 고민은 “당신은 언제 처음으로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처음으로 죽음을 인식하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죽고 싶지 않은 욕망이 생기거나, 살면서 한 번쯤은 ‘영원히’ 살기를 꿈꾼다. 저자는 인간의 이러한 집착이 과연 달성할 수 있는 것인지 논리적으로 따져보고, 인류 문명이 수천 년 전부터 불멸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전해왔다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불멸을 향한 욕망이 어떻게 역사적 성취, 예술적 영감, 다양한 종교, 그리고 문명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었는지 설명한다. 엘도라도, 415쪽, 1만6800원

    번역자가 말하는 “내 책은…”

    삶은 어떻게 철학이 되는가

    천자잉 지음, 박주은 옮김, 블루엘리펀트, 304쪽, 1만3000원

    나는 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다 外
    누군가 서점에 쌓인 수많은 책 가운데 이 책을 선택하게 됐다면, 먼저 그 선택의 이유에 대해 묻고 싶다. 당신은 왜 이 책을 선택했을까. ‘중국이 인정하는 진정한 철학가’이자 ‘중국 철학계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천자잉 교수의 명성 때문인가, 아니면 그저 제목과 표지가 당신의 눈을 끌었기 때문인가. 그럴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을 것이다.

    사실 우리의 선택에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것까지 포함돼 있다. 다시 이렇게 생각해보자. 어떤 사람이 반달곰 구조활동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왜 그 사람은 반달곰 대신 에이즈 환자를 돕기로 결정하지 않았을까. 아마 그는 어느 날 우연히 반달곰 사육장에 가게 됐고, 거기서 반달곰이 처한 끔찍한 상황을 보면서 반달곰이 불쌍하다고 느꼈을 수 있다. 혹은 TV를 보면서 반달곰이 실제로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알게 됐을 수도 있다.

    우리는 자신이 발 딛고 선 현실과 무관한 일에는 아무래도 관심을 갖기가 어렵다. 인간은 자신이 처한 모든 조건을 따져보고 일일이 비교한 뒤에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게 아니다. 피와 살을 가진 우리 인간의 삶은 그리 이성적이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이렇게 질문해볼 수 있다. 아니 반드시 이렇게 질문해야만 한다. ‘이 일은 나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가?’

    어느 누군가가 한 번도 자신의 선택에 대해, 그 일의 가치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면 그 일은 이미 의미를 잃은 것이다. 당신의 선택이 당신을 어떤 존재로 만들어나간다. 당신의 선택은 당신이 온 마음을 다해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즉 당신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그러니까 당신이 선택한 이 책은 당신이 ‘왜 사는가’라는 질문을 무의식 중에라도 품고 있었기에 당신의 눈에 띌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신이 한 선택, 당신이 몸담은 조직, 당신의 자녀, 당신의 배우자…. 이런 것들이 바로 당신의 삶이고, 당신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근원이다. 당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 그런 것들의 가치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사명이자 철학의 사명이다.

    천자잉은 이 책에서 종교와 문화, 역사, 과학, 건축, 정치, 문학, 사상에 숨은 인간의 심리적 측면을 더욱 깊고 세밀하게 파고든다. 그가 생각하는 철학은 바로 세상 만물에 숨은 이치를 따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책이 다루는 모든 주제는 한 가지 목적에 도달하려는 노력이다. 바로 나 자신을 알고, 내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이를 통해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 알아내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삶은 과학이 아니지만, 우리는 앎에 대한 욕구를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 천자잉은 이렇게 확신한다. “철학은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다. 우리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이것이 바로 철학을 통해 우리가 탐구해야 할 문제이다.”

    박주은 | 번역가 |

    만해, 그날들_ 박재현 지음

    나는 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다 外
    1904년 백담사 산문을 나와 한양으로 떠나던 순간을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해 1944년 6월 숨을 거둘 때까지 만해 한용운(1879∼1944)의 생애를 다룬 평전. 러일전쟁, 청일전쟁, 한일병합, 손기정 일장기 말소사건, 동학운동, 3·1운동 등 굵직한 사건들에 대해 일반적인 평전처럼 문헌 기록을 제시하고 해설을 덧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만해가 직접 자신의 생각을 토로하는 1인칭 시점으로 다뤄 소설처럼 읽힌다. 3·1 독립선언 준비 당시 유학자 면우 곽종성, 월남 이상재와 한규설, 문인 윤용구 등과 접촉한 일들이나 독립선언 발표 후 검찰의 심문을 받을 당시 상황 등도 생생하게 재구성했다. 시인이나 독립운동가가 아닌 승려 만해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내용도 곳곳에 들어 있다. 저자는 간화선 연구자로 현재 동명대 불교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푸른역사, 372쪽, 1만5000원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_ 김근우 지음

    나는 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다 外
    전 재산이 4264원밖에 없는 빈털터리 삼류 작가, 주식 하다 완전히 망한 여자, 그리고 아버지보다 돈이 더 좋은 맹랑한 꼬마. 이 3명이 가족같이 여기던 고양이 호순이를 잃은 노인의 과제를 수행하다 모이게 되고, 그로 인해 생기는 사건들이 펼쳐진다. 노인의 과제란 자기 고양이 호순이를 잡아먹은 오리의 사진을 찍어 오는 것이고, 만약 그 오리를 잡아 오면 성공 보수 1000만 원을 주겠다는 것인데…. 서울 변두리 개천인 불광천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가짜와 진짜 사이에 갇힌 것들이 혼재하면서도 양립되는 과정을 그려간다. 올해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심사위원들은 “진짜와 가짜, 돈과 가족과 꿈, 세대 간의 화해라는 주제 의식이 뚜렷하게 부각되었고 그것을 이끌어가는 입심이 만만찮았다”는 찬사를 보냈다. 나무옆의자, 272쪽, 1만3000원

    살면서 마주한 고전_ 이종인 지음

    나는 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다 外
    독서를 평생의 직업으로 삼은 전문번역가인 저자는 독서와 인생은 상호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봄에서 이야기의 실마리가 정해지고 여름에서 이야기가 질풍노도와 같이 전개되고 가을에 들어서면 이야기가 급격히 반전해 겨울에 이르러 어떤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이 마치 인생과 같다는 것. 봄 시기에 해당하는 가족과 성장을 다룬 작품, 여름 시기에 해당하는 청년기의 방황과 사랑을 다룬 작품, 가을 시기에 해당하는 결혼과 갈등을 다룬 작품, 겨울인 노년기와 명상을 다룬 작품을 각 90편씩 총 360편을 이야기 흐름에 따라 자유롭게 소개했다. 동서양의 정치학 서적에서부터 현대 영미소설, 한국 문학작품, 에도시대 하이쿠까지 지역과 시대를 망라한 고전에 대한 설명을 따라가다보면 작품의 의미에 대한 깨달음과 함께 읽고 싶은 생각이 든다. 도서출판 책찌, 608쪽, 1만8000원

    번역자가 말하는 “내 책은…”

    이슬람 불사조

    로레타 나폴레오니 지음, 노만수·정태영 옮김, 글항아리, 210쪽, 1만3000원

    나는 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다 外
    시오노 나나미는 ‘십자군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한다. “전쟁은 인간이 여러 난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할 때 떠올리는 아이디어이다.” 중동은 전쟁의 화약고다. 어떤 난제들이 뒤엉켜서일까. 답을 찾아보고자 글항아리 출판사에서는 ‘이슬람총서’를 기획했다. 이슬람을 ‘분쟁사와 국제정치경제학’ 렌즈로 바라보는 책은 독자의 시각을 넓혀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테러리즘 전문가라고 평가받는 저자가 ‘테러리즘 정치경제학’이라는 독특한 분석틀로 객관성을 확보하며 쓴 ‘이슬람 불사조(이슬람국가 IS의 정체와 중동의 재탄생)’가 단연 눈에 띄어 기획·번역을 하게 됐다.

    저자가 왜 제목을 ‘이슬람 불사조’라고 했는지부터 궁금했다. 수니파 무슬림들이 IS를 그렇게 부르기 때문이었다. 오비디우스가 아라비아나 페니키아에 산다고 한 피닉스 즉 불사조는 아랍 신화에서 500년마다 나타나 스스로 불타서 재가 됐다가 부활하는 존재다. ‘이슬람 절대 통치자(칼리프)’ 무함마드를 은유하기도 한다. IS 지도자 알 바그다디는 수개월 전 7세기 이래 이슬람 제국의 영광을 누렸던 칼리프의 영토를 회복하겠다고 공언하며, 무함마드를 상징하는 검은 깃발을 올렸다. 그 야망을 실현한다면 IS는 불사조가 되어 훨훨 날 것이다. 물론 불사조가 결국 잿더미가 된다는 신화도 있으니 앞으로 IS의 운명이야말로 초미의 관심사임에 틀림없다.

    이 책은 IS의 탄생 비사와 정체, 테러 조직들의 계보와 IS와의 차별성 및 IS의 조직 확대·유지 방법 그리고 목표를 분석하고 있다. IS는 우연히 탄생한 게 아니다. 중동에서의 제1차 세계대전과 오스만 제국의 몰락, 그 와중에 벌어진 서구의 분할공작 사이크스·피코 협정(1916) 및 영국이 이스라엘 건설을 지지한 벨푸어 선언(1917) 등 종파를 중시하는 무슬림 전통을 무시한 서방의 잘못된 중동 정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는 이런 맥락에 따라 무슬림에게 IS는, 이스라엘 시오니즘과 엇비슷한, ‘현대판 살라피즘(이슬람 근본주의)’이라고 강조한다. 서구제국주의가 100여 년 전 자의적으로 그은 국경선보다 옛 칼리프 제국의 영토에 근거해 이슬람 신정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IS에 정통성이 있다고 믿는 지하드 전사들이 ‘중동의 재탄생’을 기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래서 IS를 기존 테러 조직과는 다르게 역사·종교·종파·정치·경제 문제가 중층적으로 겹치는 ‘유사 국가(shell state)’ 차원으로 접근하라고 주문한다. 이미 시리아와 이라크 일부를 실효지배하는 IS가, 과연 테러 조직 역사상 최초로 국가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인가. 테러리즘과 정복 전쟁을 통한 국가 건설 지향적 IS가 정말로 영토와 주권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날이 온다면 전대미문의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저자는 설령 전면전을 통해 IS를 잿더미로 만들더라도 근본적인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다른 세력이 테러로 칼리프 국가 건설을 꾀할 수 있고, 제3차 세계대전의 징후도 점점 더 짙어질 거라고 음울해한다. 저자가 군사개입이 아닌 제3의 길을 찾으라고 역설하는 까닭이다.

    노만수 | 번역가 |

    시와 술과 차가 있는 중국인문기행_ 송재소 지음

    나는 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다 外
    다산 정약용 연구가이자 풍류를 아는 한문학자로 유명한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중국 서남부 장시(江西)성과 안후이(安徽)성, 난징(南京)의 절경과 명소들을 찾아 느낀 감상과 소동파, 도연명, 이백, 주원장 등 역사적 인물들에 얽힌 일화, 시문들을 풀어놓았다. 저자의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이 술술 풀어놓은 문체에 얹혀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멋부리지 않으면서도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경구를 떠올리게 하는 데 손색이 없다. 유적 자체의 내력을 넘어 유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더해진 인문적 소산들을 부각함으로써 통상의 기행과 차별화를 기했다. 저자는 기행의 여정 사이에 시인들의 풍류가 깃든 각 고장의 전통주인 사특주와 고정공주, 여산운무차, 황산모봉 등의 기원과 이에 얽힌 이야기, 또 저자 개인의 품평까지 곁들여 풍미를 더했다. 창비, 452쪽. 1만8000원

    내 얼굴에 숨겨진 7가지 비밀_ 엄태범 지음

    나는 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다 外
    농협중앙교육원 교수이자 20여 년간 관상을 연구해온 저자가 쓴 ‘얼굴 사용설명서’. 저자는 인간의 얼굴을 ‘자연의 한 조각’이라고 말한다. 나뭇잎을 통해 나무뿌리의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듯 얼굴을 통해 마음의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 얼굴에 드러나는 분위기나 형태는 그 사람이 오랫동안 살아온 환경과 습관, 성품의 결과물이다. 생활습관에 따라 살이 찌거나 빠지고, 자세에 따라 골격의 변화가 오기도 한다. 눈웃음을 자주 짓는 사람들은 눈가에 주름이 생기고, 특정 표정이 습관이 되면 보조개 등이 생긴다.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모든 것이 조합돼 ‘인상’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저자는 얼굴에 숨겨진 7가지 비밀을 안다면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타인의 성격이나 행동을 예측할 수 있어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책넝쿨, 236쪽, 1만2000원

    해방일기 10권_ 김기협 지음

    나는 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다 外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기 직전인 1945년 8월 1일부터 해방 이후 남북분단이 구체화한 1948년 8월 14일까지 3년간의 역사를 일기체로 써내려간 해방일기가 10권으로 마무리됐다. 2011년 4월 첫 권이 나온 이후 4년여 만이다. 이 책은 민족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민세 안재홍(1891~1965)의 시각을 최대한 살린 것이 특징. 안재홍은 6·25전쟁 당시 납북됐으며 여운형과 함께 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하던 중도파. 미국과 소련을 등에 업으려던 우익과 좌익 모두에게 비판적이던 인물이다. 제목에 ‘일기’란 명칭을 붙인 이유도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는 코너를 통해 가상 대화를 창작하는 등 저자의 주관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라고 한다. 또한 이 책은 저자의 아버지 김성칠(1913~1951) 전 서울대 역사학과 교수가 쓴 ‘역사 앞에서’에 대한 화답이기도 하다. 너머북스, 536쪽, 2만4000원

    편집자가 말하는 “내 책은…”

    죽이는 책

    존 코널리·디클런 버크 엮음, 김용언 옮김, 책세상, 816쪽, 2만3800원

    나는 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다 外
    우리나라에서 장르문학 독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불행한 일인지도 모른다. 장르문학과 순문학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평가에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문학계의 풍토는 둘째치고 소설깨나 읽는다는 사람들조차 장르문학이 오락용 읽을거리에 불과하다는 케케묵은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나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서문에서 엮은이들이 주장하듯 ‘장르’의 핵심 요소인 ‘미스터리’나 ‘범죄’는 소설의 형식이자 메커니즘일 뿐이다. 도스토옙스키나 토머스 하디, 찰스 디킨스 같은 작가가 이런 요소들을 썼다고 해서 이들을 장르 작가로 분류하지 않는 것처럼, 장르문학과 순문학의 경계가 그렇게 선명한 것은 아니다. 그저 같은 미스터리 형식을 차용하더라도 나쁜 작가의 손에선 형편없는 소설이 나오고, 위대한 작가들의 손에선 마법이 창조될 뿐이다.

    이 책은 마이클 코넬리, 데니스 루헤인, 이언 랜킨, 요 네스뵈 등 오늘날 미스터리 장르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각자 생애 최고의 걸작 미스터리로 꼽은 책에 대해 쓴 서평집이다. 20개국 작가 119명이 온 마음으로 추천하는 이 미스터리 걸작들은 인간 유전자에 깊이 각인된 스토리텔링의 본능을 자극하는 엄청난 쾌감을 선사하는 동시에, 위대한 미스터리는 재미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스터리 장르가 오락용 읽을거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각 작품의 핵심을 꿰뚫는 작가들의 열렬한 옹호의 글은 미스터리가 내포한 다양한 면모와 그 가치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19세기 산업혁명기 영국 사회의 어두운 사회상을 담아낸 찰스 디킨스의 ‘황폐한 집’과 ‘두 도시 이야기’가 에드거 앨런 포의 ‘뒤팽 시리즈’와 함께 미스터리계의 고전으로서 소개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가장 밝은 사회에서조차 그늘을 찾아내 그 명암을 부각함으로써 부조리를 고발하는 미스터리 소설은 인간 본성과 삶의 본질, 사회 정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미스터리계의 ‘정전’으로 꼽히는 책들만 모아놓은, 미스터리계의 거물들이 꼽은 ‘죽이는 책’들로 이루어진 이 책의 목록은 완벽하기보단 진심 어린 목록이며, 빠진 책이 없다기보다는 적어도 포함된 책을 놓고 보면 흠잡을 데가 없다. 그리고 나에게 이 책은 ‘죽이는 책’을 넘어 치명적인 책이 됐다. 800쪽이 넘는 분량의 책을 편집해야 하는 노역은 둘째치고 121편의 서평을 하나씩 넘길 때마다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 쌓여가는 책들을 보며 달콤한 설렘과 절망을 동시에 느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중 절반은 번역이 안 되어 있다는 정도랄까. 그렇다 해도 도대체 이 책들을 언제 다 본단 말인가!

    이 책을 편집하면서 나는 장르문학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최고의 미스터리 입문서다. 앞서 농담 반으로 불행 중 다행이라고 말했지만 어쨌든 이 책에 소개된 주옥같은 미스터리 명작들이 하루빨리 우리 독자들을 만날 수 있길 바란다. 또한 199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 불었던 장르문학 바람이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불기를 기대해본다.

    김경은 | 책세상 편집자 |

    권력의 종말_ 모이제스 나임 지음, 김병순 옮김

    나는 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다 外
    베네수엘라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저자는 지난해 스위스 고틀리브 두트바일러 연구소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100인’에 꼽혔다. 책은 정부의 권력은 물론, 다양한 영역에서 권력의 이동과 쇠퇴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탐구한다. 그 원인으로 세 가지를 꼽는다. 인구 규모, 제품 수량 등이 급증한 ‘양적 증가 혁명’, 노동력과 상품, 가치가 빠르게 세계 곳곳으로 이동하는 ‘이동 혁명’, 그로 인해 누구나 권력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의식 혁명’이다. 인터넷 등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쇠퇴하는 권력을 움켜쥐고 있는 이들에게 시대에 걸맞은 변화를 주문한다. 예를 들어 정치인과 정당은 신뢰를 회복하고, 효과적 통치를 위한 새로운 메커니즘을 만들어 다극화된 세계에 대비해야 한다고. 책 읽는 수요일, 392쪽, 2만2000원

    미국이 만든 세계_ 로버트 케이건 지음, 이영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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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이 조만간 미국이 쇠락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실제로 상당수 미국 지식인과 정치가들, 정책 입안자들도 그런 전망을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과연 그럴까. 저자는 국제사회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강력히 변호하며,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는 세간의 평가를 단호하게 부정한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역할이 국제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위해 얼마나 중요했는지에 대해,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고 앞으로의 전망도 들려준다. 최근 미국 경제의 회복 등 ‘미국의 부활’이 국제적으로 논의되는 현상을 보며,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미 브루킹스연구소의 선임연구위원인 저자는 미국 외교정책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인물로, 베스트셀러 ‘낙원과 권력에 대하여’의 저자이기도 하다. 아산정책연구원, 180쪽, 1만5000원

    인권 오디세이_ 조효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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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무부 정책위원, 국제앰네스티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한 저자의 인권 이야기. 저자는 먼저 인권의 뿌리를 찾는 역사의 여정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유를 위한 투쟁’의 상징이 된 1215년 ‘마그나 카르타’와 1948년 ‘세계인권선언’까지 인권을 신장시킨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만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독일, 폴란드, 헝가리, 체코, 오스트리아, 일본, 러시아 등 저자가 직접 보고 느낀 세계 인권 현실을 보여준다. 또한 자유권, 평등권, 사회권, 연대권 등의 인권 개념과 인권 담론도 일상의 언어로 풀어 쉽게 설명하며 인권을 둘러싼 온갖 오해 섞인 의문에 명쾌하게 답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인권이 나와 무관한 소수자만의 문제가 아닌 인간 삶을 보편적으로 아우르는 중요한 문제임을 역설하며 우리 시대의 과제로 인권 인식의 일대 전환을 제시한다. 교양인, 440쪽,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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