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호

“‘문재인 탈노(脫盧)’ 막는 세력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당권 패배’ 이인영 새정연 의원 격정토로

  • 엄상현 기자 | gangpen@donga.com

    입력2015-03-20 15: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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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文 캠프 ‘이인영 찍으면 박지원 된다’며 표 빼가
    • 분당 가능성 여전…4월 재보궐 선거 걱정
    • ‘이중적’ 친노…우리가 박정희 참배하면 난도질했을 것
    • 文은 ‘2007년 레코드’…자기 정치 시작해야
    “‘문재인 탈노(脫盧)’ 막는 세력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이 제 모든 걸 끝냈습니다. 목이 너무 많이 쉬어서 희망을 많이 얘기하지 못했습니다. 분열을 넘어서야 하는 절박감에 프로답게 하지 못한 탓입니다. 남은 것은 이제 국민과 당원의 몫입니다.”

    2월 8일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출마한 이인영 의원이 참담한 패배 직후 자신의 페이스에 올린 글이다. ‘남은 것은 이제 국민과 당원 몫’이라니…, 뭔가 의미심장하다. 이 의원이 전당대회에서 거둔 성적은 후보 3명 중 3등, 다시 말해 꼴찌다.

    득표율이나마 높았다면 위안이라도 받았을 것이다. 45.30%를 얻어 당 대표로 선출된 문재인 후보와 41.78%로 아쉽게 2위로 탈락한 박지원 후보에 비해 이 의원이 얻은 12.92%는 초라하다. 언론은 ‘참담한 성적표’ ‘486의 몰락’ ‘벽에 부딪힌 세대교체’ 등 비관적인 평가를 쏟아냈다. 결국 이번에도 486세대 의원들이 결집하지 못하고 당내 주요 계파의 ‘하청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당대회 이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온통 문재인 대표에게 쏠렸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 대표의 지지율은 상승세를 탔다. 전당대회와 같은 정치 이벤트를 치른 후 지지율이 상승하는 이른바 ‘컨벤션 효과’의 영향이 크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패자들은 무대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박 의원은 득표율만큼이나 당내 존재감이 여전한 반면, 이 의원의 존재감은 지극히 미미하다.

    “당 무너지는 건 아닌지…”



    “‘문재인 탈노(脫盧)’ 막는 세력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2월 8일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서 당원들의 지지를 호소하는 이인영 의원

    과연 이 의원을 중심으로 한 운동권 출신 486 의원들은 세대교체를 이루지 못한 채 정치적 세력으로서의 존재감을 상실하고 마는 것일까. 전당대회가 끝난 지 한 달쯤 지난 3월 4일, 이 의원을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났다. 전당대회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는 처음이다.

    ▼ 그동안 어떻게 지냈습니까.

    “2월 국회가 열려 있었으니까, 그냥 시쳇말로 바로 현업 복귀해서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 업무 처리하기에 바빴죠. 전당대회 때 도와준 사람들, 명절 앞두고 지역구 사람들 인사도 하고요. 일상적인 정치활동으로 복귀한 거죠.”

    ▼ 전당대회 득표율이 너무 저조했던 것 아닌가요.

    “사람들은 20% 정도 얘기했던 모양인데, 그건 과도한 설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선배들은 ‘한 15% 정도 나오면 많이 나오는 거고, 10%는 넘기겠지?’ 이랬으니까. 이부영 선배 같은 분은 제가 15% 넘어가면 문재인 후보가 안 될 것 같아 걱정하고…. 저는 최악의 상황에선 10% 미만으로도 빠질 수 있겠다 싶었어요. 막판 일주일 남겨놓고 문재인, 박지원 두 후보 간의 갈등이 극대화했잖아요.”

    ▼ 둘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겠습니다.

    “솔직히 두 분에 대한 혐오감이 나한테로 올지, 아니면 내 표조차 가져갈지 불안했어요. 제 정당판 선거 경험상 양쪽이 극단적으로 가면 중간 표를 다 쪼개 가거든요. 그런데 여지없이 빠져나가더군요. 양쪽이 서로 네거티브로 손가락질하면서, 문재인 캠프는 ‘이인영 찍으면 박지원이 된다’며 일주일 사이에 제 표를 상당히 빼갔고, 박지원 캠프에서도 호남을 중심으로 (‘이인영 찍으면 문재인이 된다’) 그랬다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최소한 2~3%포인트, 아니 그 이상 제 표를 빼간 것 같아요.”

    486 죽이려는 ‘암수’

    ▼ 심경이 어땠습니까.

    “내 표가 문제가 아니라 당이 박살날 판이었어요. 두 사람이 양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방송 카메라 앞에서 대놓고 싸웠잖아요. 이러다 당이 무너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많았죠. 마음이 굉장히 무거웠어요.”

    ▼ 지금은 상황이 어떻습니까. 분당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건 아닌지.

    “아주 없다고는 못하겠어요. 4월 재보궐 선거 결과가 걱정거리죠. 그게 잘못 나오면 문재인 대표 체제를 흔드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거예요. 그렇다 하더라도 분당은 막아야죠. 새누리당이 좋아할 일이고, 박근혜 대통령이 ‘만세’ 부를 일인데. 어떻게든 혁신에 성공해서 분당이나 제2야당 출현의 명분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보선 결과가 잘 안나오더라도 오히려 역으로 우리가 분열하지 않고 뭉치면 국민이 다시 볼 겁니다.”

    이 의원은 전당대회에서 당의 대대적인 혁신을 위한 세대교체론을 전면에 내세웠다. 결과는 참패였다. 파괴력도 부족했고, 판을 흔들지도 못했다. 국민뿐 아니라 당원들에게도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해 당의 대안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심지어 ‘486의 몰락’이라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온다. 그러나 이 의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비판은 비판대로 받겠지만, 그래도 많은 당원이 우리에 대해 기대를 갖고 또 대안으로 생각했을 거라고 봐요. 제 참모들이 선거기간에 당원이나 대의원들을 접촉하면서 ‘너희들이 무슨 낯짝으로 세대교체 이야기를 해?’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없고, 오히려 세대교체 열망을 느꼈다고 해요. 일부에서 ‘486도 세대교체 대상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그건 마타도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를 죽여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연장하려는 정치적인 ‘암수(暗數)’ 같은 거죠.”

    ▼ 어떤 세력이 그런 음수를?

    “그건 모르죠. 대놓고 얘기할 성격도 아니고. 물론 (486을 정치적 음수로) 가두려는 그런 시도조차 이겨서 타고 넘어갔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면, 그건 맞는 얘기죠.”

    ‘저 XX들 맛이 갔네’

    구체적인 답변을 피한 이 의원은 슬쩍 전당대회 직후 문 대표의 박정희 묘소 참배 사례를 들어 친노(親노무현) 세력의 ‘이중성’을 비판했다.

    “만약 우리가 박정희 묘소를 참배했다면 아마 (친노세력으로부터) 여지없이 난도질당했을 거예요. ‘저 XX들 맛이 갔네’ 그러면서. 그런데 문 대표가 갔을 땐 아무도 문제 제기 안하잖아요. 친노들은 좀 이중적이라고 생각해요.”

    ▼ 이 의원은 동행하지 않았는데, 문 대표의 박정희 묘소 참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대통령이 되거나 아니면 대통령 후보가 돼서 할 것과 야당 대표로서 할 것은 좀 다르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때 완곡하게 ‘아직 참배할 준비가 안 됐다’고 표현하고 사양했는데, 사실은 ‘꼭 가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해요. 어떤 면에선 당의 정체성일 수도 있는 건데…쌍용차 공장이나 세월호 참사 현장을 먼저 갈 수 있는 거죠. 그런 면에서 생각이 좀 달랐어요.”

    친노세력에 대한 이 의원의 비판이 이어졌다. 뭔가 단단히 응어리진 듯했다.

    “그들 안에도 486세대가 많잖아요. 아마 훨씬 많을 거예요. 그런데 그들이 우리(운동권 출신 486)더러 ‘하청정치’라고 비판하는데, ‘하청정치’는 그들이 훨씬 많이 했어요. 참여정부 때 친기업 정책, 예를 들어 이헌재 경제부총리 시절에 삼성과 가까웠잖아요. 그런데 그런 건 자기들끼리 다 용서해버리고, 우리가 조금만 그러면 심하게 난도질하잖아요. 그건 아니죠. 그렇다고 그들과 치고받고 논쟁해봤자 전혀 생산적이지 않으니까, 우리가 그냥 감수하고 끝낸 겁니다.”

    ▼ 친노세력이 노무현 정부의 실정(失政)에 대해 제대로 반성했다고 봅니까.

    “그 사람들은 지금 훨씬 많은 질문에 직면했다고 생각해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친노란 이름으로 지방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이 된 사람이 많잖아요. 만약 그들이 노무현재단 기획위원이나 노무현 정부 시절 행정관, 비서관을 하지 않았으면 그렇게 되지 못했을 거예요. 우리(운동권 출신 486)가 ‘젊은 피’로 수혈됐을 때보다 훨씬 쉽게 승차했고, 훨씬 더 점프한 거죠.”

    “486은 사라진 게 아니라 ‘분화’”

    ▼ 이번 전당대회에서 486세력이 아무런 결집력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입니다.

    “그게 좀 아쉽죠. 사실은 처음에 같이 이야기를 해서 시작한 건데, 여러 가지 여건상 합류가 쉽지 않았어요. 우선 제도가 바뀌는 바람에 같이 편짜서 하는 게 어려워졌고, 또 하나는 제가 득표를 하면 그만큼 ‘문재인 후보가 어떻게 되는 건 아닌가’ 이런 위기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나중에 문재인 대표한테 흘러가버린 친구들도 있었어요. 중간에서 고민하다가 그냥 자기 표 행사하는 정도만 한 사람도 있었고. 결국 저 혼자만의 싸움이 돼버렸는데, 어쨌든 제 부덕의 소치죠.”

    ▼ 결국 486세력은 정치적으로 사라진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

    “이젠 이렇게 단언해도 좋을 것 같아요. 사라졌다기보다는 ‘우리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으로 분화된 것이다’ ‘여러 흐름 속에서 프리즘처럼 분산된 것이다’ 이렇게. 언젠가는 다시 집단화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잖아요.”

    ▼ 일부 486들이 왜 문재인 대표 쪽으로 갔다고 생각합니까.

    “‘우리가 지금 문재인의 가치를 버릴 순 없는 것 아니냐’ 이게 유일하게 순수한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나머지, 문 대표가 될 것 같아서 갔으면 그건 ‘하청정치’이거나 곁불 쬐는 것이지만요. 만약 문 대표의 가치에 투자한 거면 상관없는데, 내년 총선 공천 때문에 갔다면 그건 비판받아야죠.”

    ▼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는데, 내심 공천에 대한 생각들이 다 있지 않겠어요?

    “매우 상식적이고 민주적이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절차를 만들고 그걸 통해 공천을 하겠다고 문 대표가 누차 얘기했어요. 자기가 한 얘기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 거라고 생각해요.”

    ▼ 문 대표가 취임한 지 한 달 가까이 돼가는데, 어떻게 평가합니까.

    “아직은 평가하기에 좀 이르고요. 4월 재보선 이후에나 평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 문 대표가 당내 친노 계파를 청산할 수 있을까요.

    “그건 본인이 약속한 거니까 지켜야죠. 문 대표가 ‘탈노(脫盧)’하려고 시도하지 않을까요?”

    ▼ 친노 세력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가만히 안 있으면 어떡할 겁니까. 만약 문 대표가 그걸 넘어가려고 하는데 ‘그건 배신이야’ 그러면 친노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죠. 친노가 그렇게까지 옹졸하게 하겠어요? 한때 패권싸움을 했어도, (문 대표가 ‘탈노’를 해서) 넘어가는 게 뭐 모두가 사는 길인데 그걸 반대하거나 그러진 않을 거라고 봐요. 이번 재보선 선거가 지나면 곧 알 수 있겠죠.”

    “‘문재인 탈노(脫盧)’ 막는 세력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전당대회 다음 날인 2월 9일 문재인 대표가 동작구 국립현충원 내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文, 2007년에 서 있어”

    ▼ 당이 새롭게 바뀌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봅니까.

    “좋은 사람들, 젊은 세대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겠어요? 저는 없다고 봅니다. 했던 사람들이 자꾸 나서면 당이 바뀌지 않죠. 그리고 ‘최저임금 1만 원의 가치’와 같은, 그간 소홀했지만 굉장히 중요한 가치들을 당의 기치로 내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문 대표의 ‘정치적 가치’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이제는 문재인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정치를 본격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친노에 얹혀 있는 문재인’ ‘노무현 2중대’ 이런 이미지를 빨리 털어야죠. 어느 누구도 ‘노무현 정부 2기’의 출연을 원하진 않아요. ‘민주정부 3기’의 출연을 원하지. 그래서 제가 상속된 정치로는 안 되고, 창업자의 정치, 개척자의 정치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 그동안 문 대표가 내놓은 정책들을 보면 노무현 정권 때와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던데요.

    “2012년 대선 치를 때도 제가 옆에서 봤고, 이번 당 대표 경선하면서도 봤는데 새로운 게 없어요. 문 대표는 아직도 2007년에 서 있어요. ‘2007년 레코드’가 그대로 도는 겁니다. (문 대표가) 이런 얘기 들으면 기분 나쁘고 섭섭하겠지만, 전당대회 때 제가 세게 비판하려다 봐줬어요. 아마 얘기했으면 굉장히 아팠을 거예요.”

    ▼ 이 상태라면, 문 대표로 정권 교체가 가능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문재인의 이름으로 정치를 하라는 거죠. 새로운 내용으로.”

    이 의원은 2012년 총선 때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를 주도했다. 이석기 통진당 의원이 국가보안법 위반 및 내란선동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통진당은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 결정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종북세력’의 숙주 노릇을 했다는 비판은 지금껏 새정연의 발목을 잡고 있다.

    ▼ 과거 통진당과의 야권연대가 새정연에 대한 국민의 이반, 지지 기반 약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진 않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그 시점에 우리는 독자적인 힘만으로 총선 승리나 정권 교체를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종북연대’를 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정권 교체를 위한 국민연대’를 한 겁니다. 그걸 부정하면 안 됩니다.

    물론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진보정당이 잘못한 게 세 가지 있죠. 첫째, ‘진보의 패권을 강화하겠다’는 명분으로 민주적 절차를 어겨도 되는 건가. 둘째, 이른바 경기동부연합과 같은 특정 정파가 진보정당이라는 대중적 권력 체계를 지배해도 되는 건가. 셋째, 종북 시비로부터 대중적으로 명명하게 정리를 못 해낸 게 아닌가. 저는 통진당이 북한의 지령에 의해 움직인다고는 보지 않아요.”

    ▼ 헌재는 통진당에 대해 해산 선고(북한과 연계해 활동해온 점을 볼 때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등 통진당의 활동과 목적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판단)를 했는데요.

    “이석기 전 의원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움직였다고 보긴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건 증거도 없고요. 그냥 경향적으로 종북이라는 이유로 해산한 것 아니겠어요? 제 생각엔, 그런 경향성의 문제는 대중이 선거를 통해 심판하고 평가하게 하는 게 헌재가 판단하는 것보다 나았을 거예요.

    이런 얘기하면 또 한심하다고 그럴지도 모르겠는데, 가령 1980년대엔 광화문 사거리에서 ‘김일성 만세’를 외치면 빨갱이 나타났다고 그랬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신병자라고 하는 사람이 훨씬 많지 않을까요?”

    노동·통일과 나눔정치

    ▼ 그럼 옛 통진당 세력과 향후 또 야권연대를 할 수 있다는 겁니까.

    “앞서 말한 세 가지를 털어내지 않으면 다시 연대하기가 쉽지 않은 거죠. 진보이기 때문에 민주적 절차를 훼손해도 된다? 그런 세력과 어떻게 연대를 합니까.”

    ▼ 앞으로 정치적 행보는 어떻게 구상하고 있습니까.

    “그동안 제가 해온 게 두 가지예요.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 제가 2010년 전당대회 나가서 최고위원이 될 때 굉장히 강하게 주장했어요. 제가 아무것도 안했다고 그러는데, (제가 한 걸) 부정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제 입으로 말을 안 하니까 (저를) 바보로 아는데, 사람들이 그러면 안돼요.

    앞으로는 ‘노동이 있는 복지’ ‘노동이 있는 경제민주화’로 한발 더 나아가려고 해요. 노동을 배제한 경제민주화, 노동을 배제한 보편적 복지, 이런 건 다 허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당에서 재벌하고 싸운 사람들조차 노동자를 위해 싸운 적은 없잖아요.

    그 다음엔 통일이에요. 저는 노동과 통일을 테마로 삼아 할 수 있는 데까지 나눔정치를 할 생각입니다. 앞으로 10~20년 사이에 통일 단계로 들어간다고 봐요. 그때 우리가 제대로 하면 통일하는 거고 안 그러면 못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준비해야 해요. 역사적 당위나 정치·군사·안보 논리를 떠나 경제적인 차원에서도 통일에 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북의 자원과 남의 자원, 북의 산업과 남의 산업을 연계할 때 우리 기업들도 새로운 국제경쟁력을 가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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