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호

‘직무관련성’ ‘공개적 요구’ ‘명확히 거절’…헷갈리면 대화 녹음해두라

모호한 규정·용어 꼼꼼 분석

  • 강지남 기자│layra@donga.com

    입력2015-03-20 15: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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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무관련성’ ‘공개적 요구’ ‘명확히 거절’…헷갈리면 대화 녹음해두라
    공직자는 부정청탁을 받아선 안 된다. 금품은 줘서도 받아서도 안 된다.

    이것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김영란법)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공직자’는 누구이고, ‘부정청탁’이란 무엇이며, 어디까지가 금지된 ‘금품’일까. 부정청탁이나 금품을 받았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처벌을 면할 수 있을까. 김영란법의 주요 내용을 들여다보자.

    적용 대상

    기간제 교사,인턴기자도 포함될 듯

    김영란법 적용 대상은 모든 공공기관과 각급 학교, 언론사다. 언론사에는 방송, 신문, 잡지, 인터넷 매체 등이 모두 포함된다. 언론 기능을 하지만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적용을 받지 않는 포털사이트, 블로그 등은 열외다.



    법은 이들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을 ‘공직자 등’으로 부른다. ‘공직자 등’에 해당하는 사람은 국가·지방공무원, 공직유관단체·공공기관의 장(長)과 임직원, 각급 학교 장(長)과 교직원, 학교법인 임직원, 언론사 대표 및 임직원이다. 그리고 이 ‘공직자 등’의 남편이나 아내 역시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 적용 대상은 또 있다. ‘공무수행사인’이다. 공공기관의 의사결정 등에 참여하는 민간인을 뜻하는데,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는 민간위원, 공공기관에 파견 근무하는 민간인, 심의·평가 업무를 담당하는 외부 전문가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기간제 교사, 인턴기자·PD, 신문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하는 필자 등도 ‘공직자 등’에 포함될까.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교사로 일하고, 언론활동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포함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마지막 적용 대상은 ‘모든 국민’이다. 공직자 등과 배우자, 공무수행사인에게 부정청탁을 하거나 수수 금지 금품을 제공하는 사람은 김영란법에 의해 처벌 받는다.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외국인이 이 법이 금지하는 행동을 했다면 처벌 받는다. 샘 오취리나 장위안 등이 방송국 PD에게 비싼 밥을 사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부정청탁

    ‘방송 출연’ ‘기사 빼달라’는 해당 안돼

    우리 판례에서 규정하는 부정청탁이란 ‘사회상규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청탁’을 말한다. 부정청탁인지 판단할 때는 ‘청탁 내용 및 이와 관련해 주고받은 재물의 액수나 형식 등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김영란법은 부정청탁을 정의하는 대신 15개 유형으로 규정했다. 다시 말해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부정청탁이 아니다. 15개 유형은 세금 면제, 기금 배정, 성적 조작, 행정단속 결과 조작 등 모두 공무원 업무와 관련한 것이다. 따라서 신문기자에게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를 빼달라거나, 자기 사업 홍보 목적으로 방송사 PD에게 방송 출연을 시켜달라고 요구하는 행위는 이 법이 금지하는 부정청탁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한 이 법은 부정청탁의 예외로 7개 유형의 행위를 규정했다. ‘공개적으로 공직자 등에게 특정 행위를 요구하는 행위’ ‘선출직 공직자·정당·시민단체 등이 공익적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는 행위’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것으로 인정되는 행위’ 등이 여기에 속한다.

    ‘공개적으로’는 어떤 행위를 말하는 걸까.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제3자가 있거나 공개된 장소에서 발언하는 것을 뜻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제3자가 해당 사안에 대해 이해관계가 없는지를 증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공문 등 누가 봐도 공식적인 건의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는 의견이었다.

    학생이 교수에게 직접 성적을 올려달라고 하는 건 괜찮지만, 제3자인 부모가 요구하면 안 된다. 이해 당사자가 자신의 일을 직접 공직자에게 부정청탁하는 행위는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제3자를 통한다면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학생은 1000만 원 이하, 부모는 2000만 원 이하(부모가 공직자 등에 속한다면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만약 교수가 부정청탁을 받아들여 성적을 올려줬다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직무관련성’ ‘공개적 요구’ ‘명확히 거절’…헷갈리면 대화 녹음해두라


    금품

    회식 끝날 무렵 참석해도 금품 수수?

    공직자 등은 직무 관련 여부와 상관없이 1회 100만 원 또는 매 회계연도 300만 원을 초과한 금품을 수수할 경우 형사처벌 받는다(3년 이하 징역, 3000만 원 이하 벌금). 100만 원 이하 금품 수수는 직무관련성이 있을 경우 수수 금액의 2~5배에 해당하는 과태료가 부과된다.

    직무관련성이란 어떤 개념일까. 그 판단 기준은 명확하게 설정된 걸까. 건설업자가 교육부 공무원에게 금품을 제공했다거나, 언론사 경제부 기자가 의사로부터 골프 접대를 받았다면, 직무연관성이 있다고 봐야 할까.

    복수의 법조인은 “직무관련성이 있고 없음은 구체적 상황에서 대가성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며 “결국 법원의 판단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영희 변호사(법무법인 천일)는 “김영란법 제정 계기가 된 ‘벤츠 여검사’ 사건을 보더라도 대가성 및 직무관련성에 대한 판단이 1심(유죄)과 2심(무죄)에서 달랐다”며 “재판부마다 의견이 다른데, 일반인이 어떻게 스스로 직무관련성을 판단하고 행동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금품에 해당하는 것은 금전, 유가증권, 부동산, 물품, 숙박권, 회원권, 입장권, 할인권, 초대권, 관람권, 부동산 등의 사용권, 음식물, 주류, 골프 등의 접대·향응, 교통·숙박 등의 편의, 채무 면제, 취업 제공, 이권(利權) 부여 등이다. 요즘 선물용으로 인기가 높은 스타벅스 상품권 등 커피교환권도 유가증권에 등록돼 있으므로 수수 금지 대상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금품이 있다. 공공기관이 직원에게 회식을 제공하거나, 원활한 직무수행을 위해 음식물, 경조사비, 사교·의례·부조 목적으로 제공되는 금품 등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가액’ 내에서 가능하다. 대통령령이 정하는 가액은 현재 논의 중이지만, 공직자윤리강령이 정한 금액(식사 3만 원, 경조사비 5만 원)보다는 높아질 것이란 예상이 많다. 기념품이나 홍보용품, 경연·추첨을 통해 받는 상품은 괜찮다. 그밖에 사회상규에 따라 허용되는 금품도 주고받을 수 있다. 명절 선물은 사회상규에 따라 허용될 것으로 보인다.

    예외가 많다보니 빠져나갈 ‘구멍’도 많다. 대법원은 벤츠 여검사가 받은 벤츠 승용차, 샤넬 가방, 법인카드 등을 금품이 아닌 ‘사랑의 정표’라고 판단했다. 김영란법을 적용하더라도 연인 간 사회상규에 따라 허용되는 금품이라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배우자가 금품 등을 수수할 경우 처벌 받는다. 그런데 처벌 받는 당사자는 공직자이지, 배우자가 아니다. 또 배우자의 금품 수수를 공직자가 몰랐다면 처벌을 피할 수 있다.

    식사 값은 n분의 1로 계산된다. 10명이 참석한 자리의 밥값이 80만 원이었다면, 8만 원의 금품을 수수한 셈이 된다. 만약 자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참석해 소주 한두 잔에 동그랑땡 두어 개만 먹었다면? 법조인들은 “정상 참작할 여지가 있으므로 결국 법원 판단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처신

    e메일·통화녹음 등 ‘물증’확보 습관 들여야

    공직자 등은 부정청탁을 받았을 땐 부정청탁을 한 사람에게 부정청탁임을 알리고 이를 거절하는 의사를 명확하게 표시해야 한다. 그럼에도 재차 부정청탁을 받으면 소속기관장에게 서면으로 보고해야 한다. 공직자 등은 금지된 금품을 받았거나 자신의 배우자가 받은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소속기관 장에게 지체 없이 서면 보고해야 한다. e메일도 서면 보고에 해당한다. 권익위 관계자는 “서면 보고가 불가한 경우 전화로 구두 보고하는 것도 인정할지 여부는 앞으로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부정청탁 거절 의사를 ‘명확하게’ 표시한다는 것은 문구 그대로 “부정청탁이므로 거절하겠다”라고 말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 다르고 ‘어’ 다른 법. 앞으로 “거절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는 등의 분쟁 소지가 높으므로 대화를 녹음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법조인들이 조언한다.

    김영란법에 따라 앞으로 모든 공공기관, 개별 학교, 각 언론사는 ‘부정청탁 금지 담당관’을 지정해야 한다. 자신에게 닥친 상황이 김영란법 위반인지 아닌지 궁금할 때 일차적으로 부정청탁 금지 담당관에게 문의하고, 판단이 어려울 경우 상급기관이나 권익위 등에 문의하도록 한다.

    사립학교 교장과 학부모 대표가 공식 회의가 끝난 후 단둘이 밥을 먹고 식대가 20만 원 나왔다. 최대 5만 원까지 밥을 얻어먹는 것이 허용된다고 가정할 때, 이 교장이 밥값으로 5만 원을 보탰다면 김영란법 위반이 아닌 걸까. 출입기자 50여 명이 참석한 송년회에서 퀴즈대회 상품으로 호텔숙박권이나 스마트 폰을 내건다면 김영란법 위반일까. 권익위 관계자는 “애초 공무원 위주로 만든 법인데, 국회 논의 과정에서 그 대상이 확대돼 예상치 못한 부분이 많다”며 “앞으로 복잡다단한 사례를 수집, 검토하고 각계 의견을 수렴해 시행령과 예규 등을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직무관련성’ ‘공개적 요구’ ‘명확히 거절’…헷갈리면 대화 녹음해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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