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호

‘뇌 먹는 아메바’ 공포 확산 한국도 안전지대 아니다

  • 용태순 | 연세대 의대 열대의학연구소장 tsyong212@gmail.com

    입력2015-03-24 09: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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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뇌 먹는 아메바(brain-eating ameba)’라고 불리는 파울러 자유아메바(Naegleria fowleri)가 미국의 상수원에서도 발견됐다”며 “물놀이를 한 청소년 3명이 아메바에 감염돼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 소식은 CNN 방송 등을 통해 확산되면서 세계적인 관심거리가 됐고, 우리나라에서도 포털사이트 최상위 검색어에 오르며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미국뿐만 아니라 베트남에서도 수영을 하던 청년이 사망했고, 파키스탄에서는 13명의 환자가 전원 사망했다. 파울러 자유아메바에 감염된 사람들은 대부분 뇌수막염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가장 단순한 생물의 대명사 격이던 아메바가 한순간에 공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숙주 불필요해 도처에 분포

    아메바는 세균보다는 훨씬 크지만 몸 전체가 세포 1개로 구성된 원생생물의 한 종류다. 핵을 둘러싼 막이 없어 유전물질이 세포질에 이리저리 퍼져 있는 세균(박테리아)이나 바이러스와 달리 아메바는 핵막이 있고 모든 유전체가 그 안에 구분되어 들어가 있다. 따라서 아메바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보다 더 진화한 진핵생물의 초기 형태를 띤다.

    ‘아메바’라고 불리는 생물에는 다양한 종류가 포함되는데 이들은 생리적으로도 서로 다르다. 기생생활을 하는 기생아메바(Entamoeba)들은 일정 시기에 숙주동물의 체내에 기생해야만 증식·생존할 수 있는 반면 자유아메바(Naegleria), 가시아메바(Acan-thamoeba) 등 자유생활아메바(free-living ameba)들은 호수나 온천, 수영장, 냉·난방기기 안에 있는 민물과 반염수(半鹽水)에 살면서 주변환경으로부터 영양분을 획득한다.



    자유생활아메바에 대한 연구나 조사가 아직 많이 이뤄지진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보고들을 볼 때 전 세계 도처에 어디든지 널리 분포해 있다고 판단된다. 원생생물 중 ‘원충’이라고 불리는 기생생물들은 분포 지역에 따라 특정 매개체나 숙주동물을 필요로 하지만, 자유생활아메바는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양한 유전적변이 특징을 지녔으며, 생존을 위한 특별한 환경도 필요 없다. 지구상 어디든 물이나 토양 등 자연환경에 적절히 적응해 존재한다. 물론 대부분은 질병과 무관하지만, 이들 중 일부는 인체의 정상 조직에 침투해 병변을 만들거나 혹은 면역 기능이 떨어진 사람에게서 감염을 일으켜 치명적인 질병을 야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아메바의 영양형(trop-hozoite)은 환경 변화에 민감하지만 포낭(cyst) 시기에는 이에 잘 저항하고 견딘다. 영양형이란, 우리가 보통 ‘아메바’라고 하면 쉽게 상상하는 작은 바게트 빵 모양으로, 운동기관인 위족(헛다리)을 내어 아메바운동을 통해 움직이면서 양분을 섭취하는 형태와 시기를 말한다.

    감염 실험쥐 대부분 사망

    ‘뇌 먹는 아메바’ 공포 확산 한국도 안전지대 아니다

    파울러 자유아메바의 영양형(왼쪽)과 포낭. 포낭에 있는 핵에 둥그런 핵소체가 크게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아메바는 주변 환경이 생존에 불리한 경우, 예를 들어 영양물질이 부족하면 포낭 형태로 바뀌어 더 효과적으로 장기간 생존한다. 포낭은 영양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딱딱한 포낭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대개 둥근 공 모양이다. 기생아메바의 경우 숙주의 장내에서는 영양형으로 지내지만, 대변과 함께 외계로 나올 때는 포낭 형태로 바뀐다.

    자유아메바의 영양형은 위족을 내밀어 활발하게 움직이며 크기는 7~20㎛이다. 경우에 따라 이들은 종종 긴 털, 즉 편모(flagella)를 가진 형태로 변모하기도 한다. 편모를 가지면 운동성이 증가해 주위의 더 나은 환경으로 이동하기 쉽다. 그러다가 더욱 어려운 환경을 만나 견디기 어려우면 포낭으로 형태를 변환한다. 포낭은 10~18㎛ 크기로 두꺼운 이중 포낭벽을 갖고 있다.

    파울러 자유아메바는 원발성 아메바 수막뇌염(primary amebic meningoencephalitis. PAME)을 일으키는 원인 병원체다. 원래 자연환경에서 자유생활을 하지만, 경우에 따라 인체에 우연히 기생할 수 있는 원생생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자유아메바(Nae-gleria) 무리 중에는 질병을 야기하는 것과는 무관한 종류가 더 흔하다.

    원발성 아메바 수막뇌염은 1965년 첫 증례가 보고된 이후 이제까지 세계적으로 320여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지구상에서 연간 100만 명가량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말라리아 등의 주요 감염병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나, 일단 감염되면 거의 대부분 치명적인 수막뇌염 환자가 돼 사망하는, 드물지만 무서운 감염병이다.

    감염 사례는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의 15개 나라로부터 보고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98년에서 2009년 사이에 35명의 감염자가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최근에도 물놀이 후 감염돼 생명을 잃은 청소년들의 소식이 전해졌다.

    필자도 경험했지만, 실험실에서 자유생활아메바의 인공감염 실험을 하면 대부분의 실험쥐는 수막뇌염을 일으켜 사망했다. 약 5만 개 정도로 배양한 파울러 자유아메바를 실험쥐의 코에 접종하면 대체로 수일 후 한쪽 뇌에 손상을 일으킨다. 실험쥐는 지속적으로 빙빙 돌다가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사이에 대부분 사망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감기와 유사한 증상

    우리나라에서는 이 같은 인공감염 실험과 기초연구를 통한 연구 결과는 발표된 바 있지만, 인체 감염이 의심되거나 확진된 예는 아직 보고된 바 없다. 또한 실태조사도 미진해 이제껏 별로 알려진 게 없는 현실이다. 다만 자유생활아메바 감염에 의한 질병은 앞서 언급한 다른 무리, 즉 가시아메바에 의해 1976년과 1998년 두 차례 육아종성 아메바 수막뇌염(granulomatous amebic encephalitis)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보고됐다.

    가시아메바는 흔히 콘택트렌즈 착용자의 각막에 구멍을 내는 각막염을 일으켜 심각한 시력감퇴를 일으키기도 한다. 콘택트렌즈 보관용기에 넣어둔 식염수나 물에서 가시아메바의 포낭이 흔히 발견되지만 치료법이 마땅하지 않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가질 만하다. 우리 주변 환경의 물, 공기, 흙 등에 다양한 종류의 가시아메바가 흔히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파울러 자유아메바와 아울러 이러한 자유생활아메바들에 대해서는 향후 연구와 조사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파울러 자유아메바는 어떻게 감염될까. 일반적으로 파울러 자유아메바는 따뜻한 담수를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다. 사망 환자 대부분은 발병하기 전 2주 동안 호수나 수영장에서 수영을 한 적이 있으며, 면역 기능이 온전한 건강한 청소년이 많았다. 파울러 자유아메바는 수영을 하다가 코를 통해 들어간 물을 따라 중추신경계를 침범한다. 활발한 운동성을 지닌 영양형이 후각점막을 파괴하고 들어간 뒤 얇은 그물 모양의 구조인 체판(cribriform plate)을 침범하면 빠르게 후각신경을 따라 바로 뇌로 올라간다.

    일반적으로 병원성이 없는 자유생활아메바들은 체온과 같은 고온에 노출되면 생존하지 못하거나 증식을 멈추는데, 파울러 자유아메바와 같이 강한 병원성을 가진 아메바는 고온을 잘 견뎌낼 뿐 아니라 오히려 잘 증식하는 유전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뇌조직에 침투하면 회백질과 전두엽 조직을 먹는다. ‘뇌를 먹는 아메바’라고 불리는 이유다.

    증상은 대개 급성으로 나타나지만 때로는 두통과 졸음을 동반한 감기와 유사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초기 증상은 입맛을 잃는 후각 상실, 인후통, 코막힘, 비강 내 분비물 증가, 두통, 빛에 대한 공포증, 메스꺼움, 구토 등이다. 목에 강직이 오거나 정신착란 등이 동반되기도 한다. 결국 뇌신경마비가 오고, 간질, 혼수를 거쳐 사망하게 되는데, 증상이 시작된 지 7~10일 사이에 급속히 진행되는 일이 흔하다. 병리검사에서는 흔히 후각망울(olfactory bulb)에서 가장 뚜렷한 뇌조직 출혈성 괴사가 보이고, 뇌압이 상승한 증거가 나타나며, 뇌수막에 현저한 염증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

    원발성 아메바 수막뇌염은 급성화농성 뇌수막염과 임상 소견이 비슷하다. 따라서 환자가 수영이나 물놀이를 했다면 의사에게 알려줘야 한다. 뇌척수액을 배양한 후 운동성이 있는 자유아메바 영양형을 발견하면 진단할 수 있다. 이때는 형태와 움직임이 유사한 인체의 대식세포(macrophage)와 감별해야 한다.

    불결한 물로 코 씻지 말아야

    염색표본에서 파울러 자유아메바는 매우 뚜렷하고 큰 핵소체가 핵 중앙에 자리 잡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검사실 소견은 세균수막염과 비슷한데 뇌압이 상승하고, 척수액 검사에서는 단백질량과 백혈구 수가 증가하고 포도당이 줄어든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적절한 병력과 증상이 있지만 다양한 실험실 검사와 세균배양 검사 등에서 모두 음성 판정이 나서 원인을 찾기 어려운 화농성 수막뇌염 환자는 반드시 원발성 아메바 수막뇌염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불행하게도 원발성 아메바 수막뇌염 환자의 예후는 좋지 않다. 원발성 아메바 수막뇌염의 치료는 대단히 어려워 95% 이상 사망한다고 알려져 있다. 실험적으로는 파울러 자유아메바가 항생물질인 암포테리신 B(amphotericin B)에 의해 잘 억제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정작 환자에게 투여했을 경우엔 효과가 현저히 떨어진다고 한다. 고농도의 임포테리신과 항생물질인 리팜핀(rifampin)을 병용 치료할 경우 드물게 생존자가 보고됐을 뿐이다. 적절한 치료제나 방법이 없으며, 콩팥 기능의 저하를 가져오는 등 약물 자체의 부작용도 심각하다.

    지구 온난화와 더불어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없는 것으로 알려진 병원체들이 확인되고 있고, 일본과 타이완 등 아시아 지역에서도 파울러 자유아메바 감염 사례가 보고된 만큼 우리나라도 적극 대처할 필요가 있다. 국내 실태 조사와 이로 인한 원발성 아메바 수막뇌염 환자가 발생하는지 확인한 뒤 이에 관한 관리와 예방책을 미리 마련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깨끗하지 않은 물로 심하게 코를 씻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야외에서 수영할 때 파울러 자유아메바 감염을 대비할 수 있는 방도는 없지만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 현재로선 외국 여행을 할 때 ‘파울러 자유아메바 감염을 주의하라’는 표지판이 있는 호수 등에 들어가는 것을 피하는 게 좋겠다. 향후 우리나라에서도 특정 호수나 온천에서 파울러 자유아메바의 존재가 확인되면 수영이나 목욕 등을 삼가는 것이 안전을 위한 대비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적극적 대처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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