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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에 길을 묻다

사욕에 찌든 ‘배신의 정치’를 경계한다

‘지록위마(指鹿爲馬)’와 망국(亡國)

  • 김영수 | 사학자, 중국 史記 전문가

사욕에 찌든 ‘배신의 정치’를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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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정치가 혼돈에 빠져들었다. 여당은 친박과 비박으로, 야당은 친노와 비노로 갈려 권력투쟁에 혈안이다. 진정한 리더가 안 보이는 이런 시기에 거짓과 권모술수는 국가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
사욕에 찌든 ‘배신의 정치’를 경계한다
지난 연말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사기(史記)’에 나오는 ‘지록위마(指鹿爲馬)’를 선정했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뜻으로 진실과 거짓을 제멋대로 조작하고 속이는 언행을 비유한 말이다. 전문가들은 “2014년은 수많은 사슴이 말로 바뀐 한 해였다”며 “온갖 거짓이 진실인 양 우리 사회를 강타했다. 사회 어느 구석에서도 말의 진짜 모습은 볼 수 없었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세월호 참사, 대통령 주변 인물의 국정 개입 의혹 등을 보면 정부가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000년 넘게 인구에 회자돼왔을 만큼 정치적 함의가 큰 ‘지록위마’가 이 시대에 새삼 등장한 이유는 뭘까. 이 고사성어는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제국인 진(秦)나라의 멸망과 관계가 깊다. 진나라는 통일 후 15년 만에 망했다. 진시황(秦始皇)이 죽은 지 불과 5년 만이다. 진나라가 이렇게 단명한 데는 진시황의 뒤를 이은 그의 작은아들 호해(胡亥 · 기원전 230~207)의 무능함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사람 많이 죽이면 ‘충신’

호해가 큰아들을 제치고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조고(趙高)라는 환관 덕분이다. 호해는 어려서부터 중거부령(中車府令) 벼슬에 있던 조고에게서 형법을 배웠다. 진시황 37년(기원전 210) 진시황이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조고는 승상 이사(李斯)를 설득해 진시황의 유서를 조작하고, 호해를 2세 황제 자리에 앉혔다. 또한 조작한 유서를 내세워, 진시황이 죽기 전 후계자로 지목한 큰아들 부소(扶蘇)를 자살하도록 압박했다.

조고 덕분에 즉위한 호해는 자식이 없는 진시황의 후궁 모두 진시황을 따라 죽게 하는 한편 여산(驪山)에서 진행 중이던 아버지 진시황의 무덤 공사를 재촉했다. 호해는 여러 왕자와 대신들이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조고와 짜고 몰래 법률을 바꿔 왕자와 공주 20여 명, 진시황의 측근 대신, 그리고 자살한 큰아들 부소의 측근인 몽염(蒙恬), 몽의(蒙毅) 형제까지 모조리 죽였다. 이때 죽임을 당한 사람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조고는 호해를 부추겨 진시황 때의 무리한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게 했다. 진시황릉과 아방궁(阿房宮) 공사를 계속 추진했고, 건장한 병졸 5만 명을 징발해 함양을 지키게 하는 한편 활쏘기와 군견, 군마, 금수를 조련케 했다. 그러나 먹어야 할 사람은 많은데 식량이 모자라 각 군현에 식량과 사료를 징발해 보급토록 하니 세금과 부역의 부담은 점점 심해졌다.

호해 재임 직후인 기원전 209년 7월, 변방 수비를 위한 인원 징발이 극심해진 와중에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의 봉기가 터졌다. ‘반진(反秦)투쟁’은 순식간에 관동 지역을 석권했다.

그러나 호해의 정책은 더욱 가혹해졌다. 세금을 많이 거두는 신하를 유능한 관리로, 사람을 많이 죽이는 자를 충신으로 여겼다. 형벌을 받은 자가 길거리 곳곳에 널브러졌고, 저잣거리엔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 호해는 간신 조고의 헛된 말을 듣고는 좌승상 이사를 죽이고 우승상 풍거질(馮去疾)과 장군 풍겁(馮劫)을 핍박해 자살하게 만들었다. 그러고는 조고를 중승상에 앉혀 조정을 멋대로 주무르게 하니 민심은 떠나고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민심 이반과 반란에 관한 보고서가 잇따라 올라왔지만 호해는 철저하게 무시했다. 심각한 보고를 올리면 벌을 줬고, 거짓으로 반란을 진압했다는 보고를 올린 자에게는 상을 내렸다. 관리들은 호해에 입맛에 맞는 보고만 올렸다. 그 결과 호해는 나라에 관한 중요한 정보와는 철저하게 차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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